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14)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114화(114/203)
114
히이이잉!
룬티아 기사단장을 태우고 달리던 말이 입가에 거품을 물며 괴로워했다.
“젠장.”
단장의 입에서 절로 욕지기가 나왔다.
힐끔 뒤를 바라본 그.
엘프가 흘리는 살기가 등골을 곤두서게 했다. 자신을 쫓고 있다는 사실을 숨길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새카만 옷, 새카만 가면을 쓴 엘프의 소문은 익히 들었었다.
최소 5성으로 이루어진 척살대.
단신으로 그와 부하들을 습격한 엘프의 공격을 막는 순간 바로 알았다.
이길 수 없다.
자신의 움직임을 강제하는 힘에 왼팔을 크게 다쳤다. 조금만 더 깊었으면 외팔이가 되었을 터.
‘최소 부대주급이야.’
힘겨워하는 말에서 뛰어내린 그는 너덜거리는 팔에서 밀려오는 통증에 인상을 절로 구겼다.
‘조금만 더 가면 돼.’
말을 버린 룬티아 기사단장은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척살대의 부대주로 추측되는 엘프까지 따라붙었다. 그도 자신이 챙긴 물건이 무엇이 짐작이 갔다.
‘세계수의 열매로 만든 영약이 분명해.’
어린 시절부터 룬티아 가문에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도록 세뇌받아온 그였기에 욕심은 전혀 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어떻게든 영약을 모리아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아, 하아······.”
숨이 거칠어지고, 입에 단내가 날 무렵.
「······ 치익··· 기사단장! 치익··· 상황은!」
그의 팔목에 장비된 마도구에서 모리아 초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젖 먹던 힘까지 달리는데 집중한 상태라 대답할 여유는 없었다. 조금만 속도를 늦추면 추적자가 자신을 따라잡을 것 같았다.
그렇게 달리던 룬티아 기사단장.
문득,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금방 그 이유를 깨달았다.
‘왜 거리가 안 좁혀지지?’
어느 순간부터 엘프와의 거리가 유지되고 있었다. 이건 마치······ 일부러 자신을 도망가게 유도하는 것 같았다.
– 조금만 더 달리면 9번 거점 지역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모리아에게 전했던 말이 천둥처럼 그의 귓가에 들렸다.
‘함정이다!’
우뚝, 자리에 멈춘 룬티아 기사단장. 서둘러 통신 마도구, 팔찌를 입에 가져갔다.
“공작님! 함정입니다! 영주성을 빠져나오시면 안 됩니다!”
「···치익······ 치익······.」
잡음만이 들릴 뿐이었다.
재차 외치려는 순간.
“소용없어.”
그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5왕자······.”
룬티아 기사단장은 전방에서 걸어오는 에반을 바라보았다.
대기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자신이 여기서 멈추길 알았다는 것처럼.
“이제 왕세자라고 불러야지. 뭐, 아직 즉위식은 안 치렀으니 한 번은 봐주지.”
「······ 치익··· 치익······.」
팔찌에서는 계속 잡음만이 들려왔다.
“그거 시끄러운데 꺼놓을 순 없나? 30분 정도는 9번 거점 지역에 있는 사람과 통신할 수 없으니까 그 이후에 다시 켜놓던가.”
“대체 거점 지역에 무슨······.”
“모리아 공작이 나타나면 주변 마력의 흐름을 뒤엉키게 만드는 마도구를 발동하라 지시했지. 마법을 못 사용하는 정도는 아니고, 공간도약과 통신이 조금 불안정한 정도? 그것만으로도 무려 소형 비공정 하나 만들 수 있는 자금이 들어갔어. 굉장하지?”
저벅저벅, 후방에 접근하는 이의 기척을 느낀 룬티아 기사단장은 고개를 살짝 돌렸다.
“레이나 남작······ 하하, 완전히 당했군요.”
숨길 생각이 없다는 듯 가면을 벗고 있었다.
그게 의미하는 건 하나였다.
“투항하겠나? 모리아가 역모에 가담했다는 걸 증언한다면 목숨은 살려주겠네.”
“제 대답을 뻔히 알면서 물어보시는군요. 그리고······ 그러실 생각도 없으시지 않습니까?”
“미안하군.”
***
역사적으로 정치판에서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된 방법은 역모의 주동자로 몰아가는 것.
『충격! 모리아 룬티아 공작, 남부의 분리 독립을 준비했던 것으로 드러나』
『남부의 왕, 정말로 왕이 되려 했다』
『역모의 세부 계획을 짜기 위해 귀족들을 불러 모았던 모리아 공작』
그만큼 검증되었다는 이야기. 굳이 다른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영주성을 나온 모리아가 왕국의 두 7성 기사와 혈투를 벌이고 있을 때, 줄리앙의 사주를 받은 호버트 백작이 영주성 곳곳에 조작된 증거를 뿌렸다.
『한밤중에 벌어진 역도 소탕 작전. 비공정을 타고 은밀히 이동한 청사자기사단』
『비밀 금고에서 발견된 반란의 증거들』
회동을 위해 룬티아 공작가 영주성에 와있던 남부 귀족들을 사로잡은 건 갈라드가 이끄는 청사자기사단.
줄줄이 수도로 압송된 귀족들은 결과가 준비된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수고했어. 줄리앙.”
나는 신문을 접어 책상에 올려놓으며 줄리앙을 치하했다.
“아닙니다. 성조차 없는 뒷골목 출신의 저에게 망설임 없이 전권을 맡겨주신 왕세자 전하 덕분입니다.”
“겸손해하지 않아도 돼.”
나는 품에서 서류 몇 장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이건······.”
그의 새로운 신분에 관한 것이었다.
“줄리앙 코와르. 앞으로 자네의 성은 코와르야. 하믈 제국의 북부 침공 당시 멸문한 남작 가문이지.”
모리아의 목이 떨어졌던 다음 날, 루카스가 밀로아를 통해 네이브로 활동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왔었다. 1왕비는 건드리지 말아 달라는 부탁과 함께.
그때 그가 선택하고 남은 신분 중 하나였다.
“자세한 사항은 나중에 읽어봐. 그리고 당분간은 치료에 전념해.”
“정말··· 정말 제게 세계수의 열매를 사용하시는 겁니까?”
“내가 약속을 어길 것 같았나?”
“세계수의 열매라면 그러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음 바뀌기 전에 얼른 치료받아.”
“······ 감사합니다.”
줄리앙이 내가 건넨 서류를 매만지며 감격에 젖은 사이, 나는 시선을 살짝 내려 그의 상태창을 바라봤다.
본래 ‘줄리앙’이라고만 표시되어있던 그의 이름이 ‘줄리앙 코와르’로 변해있었다.
자신을 코와르라고 받아들인 것 같았다.
다른 것은 볼 것 없었다.
그는 내가 남부의 처리를 맡긴 시점부터 이미 [가신]이 된 상태, [재인박명] 같은 스킬을 지니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치료가 잘 되면 [재인박명]은 사라지려나?
“이제 나가 봐. 바로 슈이츠한테 가보도록 해.”
내 말에도 줄리앙이 선뜻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왜? 뭐 할 말 있나?”
“왕국의 기사들이 사절단으로 올 하믈 제국의 기사들과 겨룬다고 들었습니다.”
“그랬지.”
“연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왕국인들을 단합하게 하고, 자긍심을 키워줄 좋은 행사 아닌가? 물론 이겨야겠지만.”
“정말 그것뿐이십니까?”
다른 이유가 있다고 확신하는 표정이었다.
픽 웃으며 입을 열려는 찰나.
섬뜩.
인지할 수 없는 존재들이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사절단으로 오는 제국의 19황자 샤를 한 하믈. 지금은 붉은이리라 불리는 그가 미래에 붉은황제라 불릴 거라고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예측할 수 없는 반작용이 몰아칠 게 분명했다.
“뭐, 소소하게 노리는 것도 있긴 한데, 슈이츠에게 치료받으면서 한번 고민하도록 해봐.”
“······ 알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줄리앙을 내보낸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연무장에서 아돌, 버논, 베록 삼인방과 레이나의 3대1 대련이 한창이었다.
창문을 열었다.
챙! 챙!
“우아아아! 한 대만 맞아라! 선월창!”
“청염진풍격!!”
“시끄러워 이 자식들아!”
훌륭한 집무실의 방음 탓에 안 들리던 삼인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챙! 채앵-! 까아아앙!
“크앗! 몸이 굳었어!”
“이건 반칙이잖아!”
“오러는 사용하지 않잖아.”
레이나가 셋을 압도하고 있었다.
탈 6성 기사라 할만했다.
‘하지만 놈한테는 안 되겠지.’
대외적으로 6성 기사로 알려진 샤를 한 하믈. 정확히 말하면 레이나처럼 7성에 근접한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반드시 놈을 친선 대항전 대장전에 나서게 할 생각이다.
그런데 심사가 뒤틀린 놈이 대련 중 사고를 가장해 레이나를 죽이려고 마음먹기라도 한다면?
위험한 일이다.
‘대비해야겠지.’
***
하믈 제국의 서북부.
소수민족, 흑암족의 한 마을.
– 끄아아악!
– 사, 살려주세- 컥!
– 이 개새끼들아!!
검은 갑주를 입고 불이 타오르는 형상을 한 창을 든 기사들이 까무잡잡한 피부의 사람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하믈 제국의 소수민족 탄압을 규탄한 흑암족의 지도자가 숨어들었다는 첩보 탓이었다.
구태여 그를 잡기 위해 일일이 수색할 필요가 없었다. 숲에 숨어든 쥐새끼 하나 잡기 위해서 능히 숲을 태워버릴 수 있는 것이 흑기사단이었다.
『500년을 이어온 리오넬 왕국의 룬티아 공작가. 백작가로 강등!』
『혜성 같이 등장한 에반 리오넬. 그는 과연 누구인가?』
– 꺄아아아아!
– 엄마아아아아!
– 도, 도망······.
아비규환의 현장.
한 사내가 흑암족의 시체를 의자 삼아 다리를 꼬고 앉아 신문을 읽고 있었다.
샤를 한 하믈.
하믈 제국의 19번째 황자이자, 악명높은 흑기사단의 부단장.
‘에반 리오넬······.’
그는 에반에게 아주 관심이 많았다.
동류라는 생각에서였다.
자신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숨기고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인간이었다.
얼마 뒤 있을 에반과의 만남이 기대되었다.
정말 생각대로의 인간이 맞을까?
만약 그렇다면 매우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훗날 제후국의 군주로 인정해주면 여러모로 쓸모가 많으리.
만약 친구가 안 된다?
그렇다면······.
“황자님. 정리가 끝났습니다.”
휙휙 창에 묻은 피를 털며 다가온 한 흑기사가 샤를에게 공손히 말했다.
흑기사단장이었다.
“그래?”
샤를은 신문을 접었다.
“그럼 돌아갈까.”
일어선 그는 자신이 의자 삼아 앉고 있던 시체를 향해 창을 휘둘렀다.
툭, 눈을 부릅뜬 남자의 목이 떨어졌다.
흑기사단의 목표였던 흑암족의 지도자, 흑기사단의 접근을 눈치채자마자 마을 사람들은 상관없다며 맨몸으로 투항한 이였다.
단장이 떨어진 그의 목을 주워 근처의 흑기사에게 던져주고 샤를을 따라갔다.
“사절단에 데려가실 인원은 생각해두셨습니까?”
“아니.”
“차륜전을 치를 인원에 유랜과 몬스나를 합류시키겠습니다. 그 둘이 오러를 다룬다는 사실을 아는 건 흑기사단 단원들 사이에도 소수만 아는 사실입니다.”
“단장 마음대로 해.”
“절대로 샤를 황자님에게 폐가 가지 않도록 인원을 엄선하겠습니다.”
샤를은 에반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그가 있을 남동쪽에 시선을 주었다.
***
에반에게 깊은 관심을 가진 외국 인사는 샤를 한 하믈 뿐만이 아니었다.
얀데르시야 아르야.
아르야 왕국의 1왕녀 또한 그에게 관심이 많았다.
『리오넬 왕국의 실질적인 왕, 에반 리오넬. 그의 행적을 파헤친다』
『형제 4명을 모두 제거한 냉혹한 왕자, 에반 리오넬』
『에반 리오넬, 귀족명예법이라는 독을 퍼트리다』
그녀의 비밀방에 스크랩되어있는 수많은 기사.
“하아······ 아름다워.”
얀데르시아는 기사 내용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녀의 시선은 오롯이 사진 속 에반에게 꽂혀있었다.
그녀는 달뜬 신음과 함께 사진 속 에반을 쓰다듬었다.
미치도록 갖고 싶었다.
새장에 가둬놓고 자신만 바라보게 만들고 싶었다. 어떻게 해야 그를 손아귀에 넣을 수 있을까?
비밀의 방을 한 바퀴 돌며 사진 속 에반을 어루만지던 얀데르시아.
‘응?’
에반을 알기 전, 비밀의 방을 가득 채웠던, 아르야 최고의 미남이라 불렸던 사촌의 사진이 하나 남아있었다.
그녀는 인상을 팍 찡그리며 그 사진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사진 속 에반에게 빌었다.
“죄송해요, 에반 왕자님. 부디 왕자님을 알기 전의 못난 소녀를 용서해 주시와요.”
***
프란의 연구실을 방문해 그녀와 막 이야기를 나누려는 참이었다.
순간적으로 등골이 오싹했다.
나도 모르게 [바리사다]에 손을 가져가며 뒤를 돌아봤다.
“뭐냐, 갑자기?”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프란도 경계의 눈빛을 띠었다.
“혹시 못 느끼셨습니까?”
“뭘 말이냐?”
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등골을 오싹하게 했던 기운은 이제 느껴지지 않았다.
“쯧쯧, 알겠군.”
“네?”
“신관을 한번 찾아가 봐라. 너에게 억울한 죽임을 당한 원혼이 달라붙은 거겠지.”
“제게 어머니의 유품이 있는 걸 잊으셨습니까?”
“그게 감당 못 할 만큼 많은 원한을 샀나 보지.”
으음······ 솔직히 반박하기 힘들었다.
정말 프란의 말대로 조만간 신전을 찾아 살풀이를 한 번 해야 할 듯했다.
“알겠습니다. 물건이나 보죠.”
“잠시만 기다려 봐.”
그녀가 금고에서 접시만 한 원판을 꺼냈다. 호두 하나가 반 정도 들어갈 구멍이 두 개 뚫려있었다.
“아직은 최하급 마정석 두 개를 증폭하는 정도지만······ 알지?”
“네. 성공한 것 자체가 굉장한 거란 거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에너지 혁명을 일으킬 스텔라, 그 프로토타입이 드디어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