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18)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118화(118/203)
118
기술자와 마법사들의 힘으로 금방 대련장이 설치되었다.
왕세자 즉위식이 진행되었던, 대련장이 내려다보이는 단상은 세계 각국에서 온 사절단과 귀족들의 관람석으로 변경. 광장에 모인 왕국민이 기사들의 대련을 생생하게 볼 수 있도록 허공에는 거대한 마법 스크린이 자리했다.
아돌 스미스, 리오넬 왕국을 대표하는 기사로 대련장에 가장 먼저 올라간 그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내가 처음일 줄이야.’
-처음엔 내가 나가겠어.
-흥, 누구 마음대로?
-그야 여기서 내가 가장 강하니까.
-웃기고 있네.
-해보자는 거야?
-나야 고맙지.
첫 주자가 되고 싶었던 베록과 청사자기사단의 소피아. 둘의 다툼은 에반의 한 마디에 종결되었었다.
-순서는 제비뽑기로 한다. 아, 참고로 나는 마지막에 나갈 테니, 불만 있으면 나를 이기고 말하도록.
잠시 그때를 회상했던 아돌은 고개를 털고 전방을 바라보았다. 다소 앳된 얼굴의 흑기사가 몸을 풀고 있었다.
‘올해 갓 흑기사가 된 녀석이라고 그랬지?’
아돌은 그가 들고 있는 창에 눈길이 갔다. 불이 타오르는 듯한 형상.
흑기사단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창술, 흑염창을 구사하는데 최적화된 것이라고 알고 있다. 월광창술을 펼치기 위해 제작된 자신의 월아극처럼 말이다.
긴장이 쉬이 풀리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기사단 인원끼리도 방심하는 순간 대형 사고가 터지는 것이 마력을 사용하는 대련이다. 국가를 대표하는 이런 자리에서는 오죽하겠는가.
왕국의 7성 기사 둘과 8성 마법사 프란, 제국의 흑기사단장이 언제든지 개입할 수 있게 준비하고 있고, 대주교급 신관도 여럿 대기 중이지만,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날 수 있는 법.
크게 다치는 것을 넘어 죽는 기사가 나올 수도 있었다.
‘이런, 나약한 생각을.’
아돌은 두 손으로 볼을 짝짝 치며 잡념을 털어냈다. 대련에서 목숨을 걱정할 정도였으면 애초에 기사가 되어선 안 되었다.
-양국의 기사는 준비해주시기 바랍니다!
로이스 백작의 목소리에 아돌은 투구를 착용한 후, 월아극을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
-양국 기사의 대련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와아아아아아아!
로이스 백작의 선언, 그리고 관중의 함성과 함께 대련이 시작되었다. 국왕과 나란히 앉아있던 나는 두 기사의 대련에 집중했다.
챙! 창-! 까앙─!
흑기사의 창과 아돌의 월아극이 맞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광장을 울렸다. 눈으로 따라가기 힘든 두 무기의 속도에 관중들의 입이 벌어졌다.
다만, 그들도 확연히 알 수 있는 게 있었다.
-어어!
-잘한다!
-아돌 경 최고다!
누가 봐도 아돌이 우위라는 것.
쇄액- 탱!
쇄애액- 챙!
아돌의 월아극이 흑기사 내지른 창에 제대로 된 힘이 실리기 전에 창이 움직일 경로를 미리 선점하며 수월하게 방어해냈다.
그리고 공격의 실패는 곧 빈틈의 허용.
쇄애애액- 피싯!
부웅- 까앙!
“크읏.”
흑기사는 사정없이 몰아치는 아돌의 월아극을 막아내는 데 급급해졌다. 대련장 중앙에서 맞붙었던 둘이건만, 흑기사가 연신 뒤로 밀리고 있었다.
투구를 쓴 상태라 표정을 확인할 순 없지만, 흑기사의 얼굴은 경악으로 일그러져있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잠시 기사들이 선발되었던 당시를 떠올렸다.
-까놓고 말해서, 지금 이대로 자네들이 흑기사들과 대련해 이길 확률은 열에 하나야.
그 말을 했을 때 기사들의 상처받은 표정이란······. 그래서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었다.
-놈들이 사용하는 흑염창을 전혀 모르는 상태니까. 하지만, 자네들이 놈들이 사용하는 창술을 리오넬 수호검술만큼 파악한다면 이야기는 다르지.
‘미래’에서 하믈 제국 기사들이 사용하는 검술, 창술 등의 파훼법을 연구하느라 매일 밤을 지새웠었던 나였다.
흑기사들이 사용하는 창술, 흑염창도 예외는 아니다.
-우와아아아!
-아돌 경! 멋있다!
연신 뒤로 밀리던 흑기사가 뒤로 훌쩍 물러나더니 창을 뒤로 뻗었다.
‘연옥의 준비 자세.’
흑염창의 7초식, 마력의 실로 휘감긴 창을 지면에 내리치는 순간, 바닥에서 솟구친 불길을 연상케 하는 창기(槍氣)가 상대방을 갈가리 찢어버린다.
핑- 화르륵.
흑기사의 손에서 고속으로 회전한 창에서 그가 뽑아낸 마력의 실이 불길처럼 치솟았다.
쇄애액- 콰직!
대지를 찌르는 창.
파훼법은 간단하다.
“우와아아아! 낙월!!”
아주 ‘절묘한’ 타이밍에 도약하면 된다.
버논과 대련하며 초식명을 외치는 몹쓸 버릇이 든 아돌이 흑기사를 덮쳤다. 그 모습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초승달을 연상케 했다.
투구를 쓰고 있음에도 흑기사의 당황한 기색이 느껴졌다.
창을 회수하기 힘든 찰나의 순간을 정확히 찌른 아돌의 공격이니 그럴만도 했다. 5성 수준에선 절대 아돌의 공격을 피할 수 없을 거다.
쇄애애액- 퍼억!
월아극이 흑기사의 투구를 정통으로 가격했다.
“커억!”
실 끊어진 연처럼 무너지는 흑기사.
힘을 살짝 빼며 월아극의 날이 아닌 면으로 내려쳐 준 아돌의 배려가 아니었으면, 흑기사가 그 자리에서 즉사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다급하게 대련장으로 올라간 신관과 치료사가 흑기사의 상태를 살피는 사이, 아돌이 투구를 벗었다.
더벅머리가 땀에 젖은 그가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우와아아아아!
-아돌 경 멋있다!
아돌에게 고개를 끄덕여 화답해준 후 샤를을 찾았다.
어제 내가 무슨 자신감으로 흑기사들에게 친선 대항전을 요청했냐며 떠들던데, 어떤 표정일지 궁금했다.
똥 씹은 표정으로 대련장 위의 아돌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시선을 알고도 피하는 건지, 정말 눈치채지 못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
아돌은 두 번째로 올라온 흑기사와도 시종일관 우위를 가져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샤를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흑염창의 약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저게 에반 리오넬이 보였던 자신감의 근원이었나.’
자신을 바라보는 에반의 시선이 느껴졌다. 샤를은 그 시선을 애써 외면했다.
‘제국으로 돌아가는 즉시 전직, 현직 흑기사들의 행적을 추적해야겠어.’
흑염창이 유출되었다.
그것도 파훼법이 연구될 정도로 자세하게.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이번에도 승자는 리오넬 왕국의 아돌 스미스 경입니다!
-우와아아아아!
샤를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두 번째로 올라간 흑기사조차 별다른 힘을 써보지 못하고 아돌에게 패해버렸다.
그리고 시작된 세 번째 대련.
-또다시 리오넬 왕국의 아돌 경이 승리를 거머쥡니다!
-아돌 경 최고다! 이러다 아돌 경 혼자 다 쓸어버리는 거 아니야?
-조금 지쳐 보이는데?
-아돌 경이 다시 투구를 쓴다!
-네 번째 대련도 나가려나 봐!
-우와아아아아아!
샤를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쓰러져 있는 흑기사들을 바라봤다.
씻을 수 없는 치욕이다.
리오넬 왕국의 기사 한 명에게 세 명의 흑기사가 연달아 나자빠진 것은 두고두고 제국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그의 귀를 더럽힐 게 분명했다.
샤를은 네 번째로 나서는 흑기사를 바라봤다. 얼굴선이 고운 장발의 미남, 흑기사단 내부에도 그가 6성 기사라는 걸 아는 이는 극소수.
-하믈 제국의 네 번째 주자는 유랜 크릭스 경! 리오넬 왕국은 여전히 아돌 스미스 경이 올라와 있습니다!
-우와아아아!
-아돌 경! 전승 가자아아아!
‘장난은 끝났다, 에반 리오넬.’
여느 무술과 마찬가지로 흑염창 또한 경지에 도달하는 순간, 약점이 약점이 아니게 된다. 약점을 노리려다 되려 치명적인 함정에 발을 들이미는 꼴이 될 수 있다.
유랜은 앞서 아돌이 상대했던 세 명과는 달리 6성의 경지에 도달한 흑기사.
리오넬의 기사가 공략하던 흑염창의 약점은 이제 치명적인 함정이 되어 사냥감을 기다릴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에반을 바라본 샤를.
‘웃어?’
에반은 귀여운 꼬맹이를 바라보듯 그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
-과연 왕국의 기사, 아돌 스미스 경이 네 번째 대련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대련 시작하겠습니다.
최대한 중립적인 입장에서 진행해야 할 로이스 백작이 어느 순간부터 자국 편파적인 말들을 내뱉기 시작했다.
연이어 흑기사를 격파해나간 아돌의 활약에 취해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아돌 경이 안타깝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너무 지쳐있던 탓이겠지요?
아돌의 활약은 여기까지.
제국의 흑기사 유랜의 창에 농락당하던 그는 끝내 엉덩방아를 찧으며 대련에서 패했다.
아돌 다음으로 올라간 기사는 소피아.
-아아······ 소피아 경의 장외 패입니다.
쾌검을 자랑하는 그녀는 단 한 번의 공격도 하지 못하고 방어만 하다 대련장에서 떨어졌다.
굴욕적인 패배.
-아아, 버논 경이 대부를 땅에 떨어트립니다. 또다시 유랜 경의 승리입니다.
버논 또한 마찬가지.
대련 중 무기를 떨구는 것은 두들겨 맞다 패배하는 것보다도 더 치욕스러운 일. 손등과 손목을 집요하게 공격하는 유랜의 창에 버논은 결국 청염대부를 놓치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베록.
미친개 두들겨 맞듯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다.
일부러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 집요하게.
대련 시작 전, 베록이 유랜에게만 들리게 뭔가 도발한 것 같은데 그 탓인 것 같았다.
쇄애애액- 퍼억!
투구가 날아가며 드러난 베록의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계속 속행했다가는 정말 죽을지도 모를 것 같았다. 나는 대련을 지켜보고 있는 청사자기사단장 갈라드에게 신호를 주었다.
개입할지 말지 갈등하던 표정의 그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훌쩍 대련장으로 올라가 대련을 중지시켰다.
“크아아아! 아직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그만해라, 베록.”
“저는 아직 싸울 수-”
퍼억-!
갈라드의 깔끔한 손날치기에 베록이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유랜 경이 또다시 승리합니다.
아까까지 만해도 아돌의 활약에 취해있던 로이스 백작의 담백한 음성.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은은한 분함은 숨겨지지 않았다.
-저게 진짜 제국의 흑기사······.
-여태까지는 예비인원이기라도 했던 건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진 왕국민들.
단상에서 일어난 나는 망토를 벗었다. 대련장이 설치되는 동안 착용한 갑옷이 태양 빛을 반사했다.
사람들이 다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왕자님이 진짜로 나가시려나 봐.
-괜찮으실까?
-그런데 난 저 흑기사 조금 의심스러워. 아돌 경이 앞서 상대했던 세 명과 수준 차이가 너무 나는 거 아니야?
-맞아! 6성 기사가 분명해! 분명 경지를 숨기고 있는 거야.
-그런 반칙이 어디 있어!
대련장으로 내려가는 중에 들리는 말들.
앞선 흑기사들과는 확연한 실력 차이를 보인 유랜의 경지를 의심하는 이들도 상당히 많았다.
-왕국의 마지막 주자는 자랑스러운 왕국의 왕세자, 에반 리오넬 전하십니다.
대련장에 올라선 나는 베록이 흘린 피를 힐끔 바라본 후 유랜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일찌감치 끝낼 수 있는 상대를 계속 괴롭히다니, 꽤 악취미군.”
“앞의 기사들과 달리 분수를 모르고 계속 기어오르더군요. 교육을 해주었을 뿐입니다.”
“그렇군, 교육이라······. 좋은 말이야.”
나는 투구를 쓴 후 검을 뽑았다.
[바리사다]가 아닌 평범한 근위기사단의 검이었다. 괜히 나중에 명검 덕분에 이겼다는 말은 듣기 싫었다.유랜도 창을 손에 쥐고 자세를 잡았다.
***
샤를은 유랜을 향해 검을 겨누는 에반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유랜에게 실력을 숨긴 6성 기사가 리오넬 측에서 나오면 기회를 틈타 두 번 다시 마력을 쓸 수 없는 몸으로 만들라 명했었다.
그런데.
‘실력을 숨긴 기사가 없어?’
샤를은 혀를 찼다.
그도 듣는 귀가 있었다.
흑기사 셋을 연거푸 이긴 아돌을 비롯해 리오넬의 기사들을 농락한 유랜. 그의 경지를 의심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명백히 그가 손해 본 장사였다.
-유랜 크릭스 경과 에반 리오넬 왕세자 전하의 대련을 시작하겠습니다!
샤를이 생각하기에 에반은 이미 얻을 것을 다 얻었다.
자신들이 제국으로 돌아간 뒤, 비열한 흑기사들이 실력을 숨긴 채 대련에 참여했다며 자국의 여론을 몰아갈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에반 리오넬, 네 녀석은 6성 기사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검을 맞댄 용감한 왕세자로 기억되겠지.’
에반이 꾸며놓은 소꿉 놀이터 위에서 신나게 놀아준 꼴이었다. 샤를은 이를 으득, 갈며 유랜의 창이 에반의 옆구리를 노리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에반은 유랜의 공격을 몇 차례 힘겹게 방어하다 적당한 선에서 물러날 것이다.
쇄애애액- 까앙!
“커억!”
그럴 게 분명했는데.
‘!!’
어째서 공격하던 유랜이 허공을 날고 있을까?
텅! 또르륵.
샤를은 대련장을 구른 유랜의 투구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 옆에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조그만 물체가 보였다.
유랜의 새하얀 이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