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20)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120화(120/203)
120
하믈 제국의 흑기사들이 리오넬 왕국에게 패한 것은 샤를에게 말로 설명하기 힘든 치욕이었다.
단순한 기분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제국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비난이 쏟아질 터였다.
흑기사단의 예산이 삭감되는 것은 기정사실. 최악의 경우 비공정, 흑염룡의 운용을 금지당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샤를의 입장.
대부분 사절단 인원에게 현재 대련장 위에서 벌어지는 일은 두 번 다시 보기 힘든 재미있는 이벤트일 뿐이었다.
((5성 기사 간의 친선 대련에 6성 기사를 상대할 수 있는 왕세자가 나왔다? 친선 대항전의 목적이 친선이 아닌 기만이었나?))
‘억지야.’
‘단단히 열받았나 보군.’
‘유랜이었나? 그 흑기사도 5성 수준이 아닌 것 같았는데. 샤를 황자, 역시 하믈 제국인답게 염치가 없어.’
‘리오넬 왕세자가 무슨 대답을 할까?’
그들의 시선이 샤를을 향해 열리는 에반의 입에 집중되었다.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차륜전의 규칙을 ‘오러를 사용하지 않는 기사’로 명확히 하지 못했던 점, 사과드립니다.))
((받아들이겠다.))
‘저렇게 쉽게?’
‘뭔가 꿍꿍이가 있군.’
에반의 사과를 단번에 수용하는 샤를의 모습에 사절단 인원들의 눈이 반짝였다.
아니나 다를까.
((다만, 본인 역시 한 사람의 기사이기에 5성의 경지임에도 6성 기사의 오러를 상대할 수 있는 기술을 창시한 왕세자와 검을 나눠보고 싶군. 어떤가? 잠시 뒤에 예정되어있던 대장전 대신 나와 그대가 검을 나눠보는 것은.))
‘흑기사단의 부단장, 샤를 황자는 7성에 근접한 걸로 알고 있는데?’
‘망신을 줄 생각이군.’
‘리오넬의 왕세자는 이미 원하던 바를 모두 얻었어. 굳이 샤를 황자와 검을 나눌 이유가 있을까?’
‘대답은 당연히 거절이겠지?’
((좋습니다. 그것으로 황자님의 화가 누그러질 수 있다면 얼마든지요.))
‘!!’
샤를과 에반의 대화를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던 사절단 인원은 생각지도 못했던 에반의 대답에 눈을 크게 떴다.
***
잠시의 정비 시간.
나는 대련장으로 올라가기 전, 샤를과의 대련을 대비해 특훈에 매진했던 레이나에게 사과의 말을 건넸다.
“미안하게 됐어, 레이나.”
“아닙니다. 대련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얻은 것이 많습니다. 제 걱정은 샤를, 그가 왕자님에게 무슨 해코지를 할지, 그것뿐입니다.”
“걱정 안 해도 돼.”
“······ 알겠습니다. 그래도 조심하십시오.”
나는 옅은 미소를 지어준 후 대련장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리사다만 들을 수 있도록 아주 작게 속삭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명심해. 강마(降魔)를 사용할 수 있는 건 최대 1분이야.」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잠력을 폭발시키는 강마.
4성 수준에서 조 베이리의 오러를 상대했을 때의 제한 시간이 3초였던 것에 비하면 무려 20배 아닌가?
비단 나의 성장 덕분만이 아니다.
‘슈이츠에게 고마워해야겠어.’
줄리앙을 치료하기 위해 그에게 건넸던 세계수 열매의 진액. 아주 조금 남았다. 그것을 이용해 만든 비상약이 있다.
그걸 사용한다고 가정했을 때의 시간제한이다.
아깝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아직 다섯 개의 별을 품고 있는 내가 놈의 숨겨진 송곳니를 세상에 드러나게 만들려면 동원할 수 있는 건 모두 동원해야 한다.
‘사용할 가치는 충분해.’
맞은 편에서는 흑기사의 갑주를 차려입은 샤를이 모습을 보였다.
그의 상태창을 열어봤다.
━━━━━━━━━━━━━×
샤를 한 하믈
성별 : 남
나이 : 29
종족 : 인간
[스탯] [스킬] [관계 : 적대]━━━━━━━━━━━━━
분명 첫 만남에서 악수할 때만 해도 ‘우호’였던 관계가 최악의 관계인 ‘적대’로 바뀐 상태.
여태껏 ‘적대’인 관계였던 상대들을 돌이켜보았다. 4왕자를 시작으로 모리아 룬티아 공작까지 주르륵 떠올랐다.
하나같이 나를 죽일 수만 있다면 팔 하나쯤은 자를 수 있는 인간들.
그 말은 곧.
‘샤를, 저 인간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지.’
대외적으로 7성에 근접한 기사로 알려진 샤를이지만, 나는 그가 8성의 벽을 넘었다고 확신하고 있다.
내가 한창 네이브로 활동하던 당시, 제국에서는 흑기사단이 7성급 영수 하얀외뿔룡 사냥에 성공해 떠들썩했었다.
진귀한 약재이자 미스릴을 뛰어넘는 소재이기도 한 하얀외뿔룡의 뿔을 황제에게 바치며 흑기사단은 흑염룡이란 이름의 비공정을 하사받았다.
세간에는 성체가 되기 위해 탈피 중인 하얀외뿔룡이었기에 흑기사단이 사냥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하얀외뿔룡? 벨카스 산맥 인근에 있던 녀석 맞지? 그놈 분명히 내가 죽기 직전에 성체가 되었던 걸로 아는데?
신문을 읽고 있던 내게 바리사다가 해줬던 말에 의하면 흑기사단이 사냥한 하얀외뿔룡은 성체가 된 지 500년이 넘은 녀석이었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흑기사단의 전력으로는 사냥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이야기.
성체의 하얀외뿔룡을 사냥하기 위해선 7성급 강자가 서넛 더 있거나, 8성급 강자가 한 명은 있어야 했다.
‘미래’에서 샤를이 제국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던 흑기사단의 전력을 생각해보면 그가 8성 기사인 것이 맞다.
하얀외뿔룡을 사냥하는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어 8성 기사가 된 것인지, 아니면 그전부터 8성 기사였는지까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뭐, 그건 중요한 게 아니지.’
그래, 중요한 건.
저 인간이 숨기고 있는 송곳니를 까발려 제국의 혼란을 키워야 한다는 것.
그것도 최대한 나는 피해 없이.
기껏 샤를의 비밀을 세상에 들춰냈는데 마나홀이 망가지거나, 팔 한 짝 날아가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게 왕세자의 검인가. 확실히 범상치 않아 보이는군.))
((검은 모루 부족장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검이죠.))
((기대하지.))
오늘 그와 대련하는 과정에서 나의 밑천도 몇 가지 드러날 텐데, [바리사다]까지 밝혀서 좋을 건 하나도 없다.
샤를이 투구를 썼다.
검은 갑주에 뿔이 달린 검은 투구. 마계를 뚫고 올라온 마족의 기사가 연상되는 모습이었다.
그가 창을 두 손으로 잡고 자세를 잡았다.
***
레이나는 대련장에서 서로를 마주 보는 두 사람을 긴장된 시선으로 지켜보았다.
-레이나, 대장전에는 제국의 19황자, 흑기사단의 부단장인 샤를 한 하믈이 나오게 될 거야.
제국 측이 전달한 상대와는 전혀 다른 이가 대전 상대일 거라고 말하는 에반에게 레이나는 아무런 의문도 제기하지 않았었다.
‘왕자님의 말씀이었으니까.’
보라.
지금도 그의 말대로 제국의 황자가 대련장 위에 서 있다.
약간의 계산 실수가 있었는지 그를 상대하는 사람이 자신이 아닌 에반이 되어버렸지만, 그게 또 인간미 아니겠는가.
-나는 그가 8성의 벽을 넘어섰을 거라고 짐작, 아니, 확신하고 있어.
8성 강자.
대인 수준이 아닌, 광범위한 지역에 본인이 세운 법칙을 강요하는 심상영역을 구축할 수 있다.
나 홀로 군단이라 불리는 괴물들.
-아, 물론 그가 대련에서 심상영역을 구축하는 일은 없을 거야. 알다시피 6성 끝자락으로 알려진 그가 8성의 경지를 숨기고 있다는 걸 드러내기엔 득보다 실이 압도적이니까. 심상영역은 물론 강제(强制)도 사용하지 않겠지.
강제는 마력을 이용해 세계의 눈을 잠시 속여 법칙을 비트는 힘.
마력을 각성한 이라면 주변에서 강제가 발휘되는 순간, 그걸 모를 수가 없다. 하얀 도화지를 더럽힌 검은 얼룩을 발견한 기분일 테니까.
-물론 그렇다고 그가 상대하기 쉽다는 이야기는 아니야. 내가 레이나에게 부탁하고 싶은 건 두 가지. 하나, 그가 7성 기사임을 세상에 드러나게 할 것. 둘, 대련장에서 걸어서 내려올 것. 그러기 위해서는······.
레이나가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대련장 위의 샤를이 입을 열었다.
((선공은 양보하지.))
레이나는 퍼뜩 잡념을 털어내고 허리춤의 검을 움켜쥐었다.
‘괜찮으시겠지만.’
그녀는 에반이 위험할 것 같으면 언제라도 뛰쳐나가겠다 다짐하며 둘의 대련에 집중했다.
에반이 투구를 쓴 후 자세를 잡았다.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땅을 박차는 에반.
콰앙!
바닥에 발자국이 남을 정도로 강한 힘.
위이이이이이잉!!
[바리사다]를 감싼 마력의 실이 고속으로 회전하며 기이한 검명을 토해냈다.‘미래’에서 언제나 한두 단계 위 상대로 살아남아야 했던 레이나와 에반이 오러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낸 비기, 와류(渦流).
에반이 전심전력으로 펼치는 와류와 마주한 샤를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어중간한 의지가 실린 오러는 종잇장처럼 찢어발기겠군.’
고오오오-
흑색 오러가 샤를의 창을 휘감았다.
선공을 양보했기에 방어 자세를 취하는 샤를. 에반이 검을 높게 치켜세웠다. 노리는 곳은 뻔했다.
‘머리.’
순식간에 그의 코앞에 도달한 에반이 검을 내리쳤다.
에반식 리오넬 제왕검술 1초식 파천.
하늘을 부순다.
샤를의 표정이 굳었다.
벼락처럼 덮쳐오는 에반의 검에 실린 어마어마한 의지를 느낀 탓.
어설프게 막았다가는 창이 부러진다.
콰아아아아앙!!
검과 창이 만났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굉음. 그 충격파만으로 샤를 주변 땅이 움푹 꺼졌다.
-오오오오!
-저게 5성 기사가 낼 수 있는 위력인가?
-어설픈 오러는 갈기갈기 찢어졌을 거야.
에반의 공격이 만들어낸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챌 식견이 있는 사절단의 기사들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래도 막았잖아.
-역시······ 샤를 황자는 10년 안에 7성 기사가 될 거라는 평이 자자하잖아.
-앗! 에반 왕세자의 검을 막은 샤를 황자의 창을 자세히 봐!
누군가의 말에 기사들의 시선이 샤를의 창에 집중되었다.
미세하게 실금이 가 있었다.
오러를 실은 무기가 아니면 부러지지 않는다고 샤를이 자신했던 흑기사들의 창. 오러까지 운용했음에도 에반의 검에 파손되었다.
‘오러를 사용하지 않아도 이런 위력이라고?’
샤를은 경악했다.
창에 담긴 그의 의지보다 검에 담긴 에반의 의지가 압도적이었다는 사실을 쉬이 인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
‘반드시 짓밟아놔야 해.’
샤를은 자신의 본능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다시금 확인했다.
((장난은 끝이다!))
화르르륵!
창을 감싸고 있던 그의 검은 오러가 불길처럼 타올랐다.
흑염격, 흑염풍, 흑염기.
샤를의 손에서 펼쳐진 흑염창의 초식들이 에반을 향해 매섭게 몰아쳤다.
챙-! 채앵-! 까아아앙!!
기사의 눈으로도 쫓아가기 힘든 공방.
허공에 떠 있는 마법 스크린을 통해 둘의 대련을 보는 관중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손을 꽉 쥐고 소리 없이 응원했다.
그들이 보기에는 검은 화마가 에반을 집어삼키는 듯한 광경이었다. 당장이라도 에반이 불타버릴 것 같은 모습에 눈을 가린 이들도 상당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과 달리 에반은 꽤 수월하게 샤를의 공격을 막아내는 중이었다. 아직 샤를이 채 완성하지 못한 흑룡창의 파훼법까지 알고 있는 그였다.
심상영역과 강제의 사용을 제한당한 샤를의 창을 막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챙-! 채앵-! 까아아앙!!
((아무래도 제가 황자님의 창에 쓰러지는 것보다 마력탈진이 오는 쪽이 빠를 것 같군요.))
도발할 여유가 있을 정도.
투구 속 샤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흑염창을 유출한 놈. 반드시 찾아내 9족의 목을 베어주마.’
있지도 않은 범인을 잠시 탓한 샤를은 이내 상황을 인정했다.
오러를 사용하는 선에서 깔끔하게 끝내고 싶었지만, 그건 틀렸다. 강제의 묘리를 뒤섞기로 마음먹었다.
샤를은 창을 극단적으로 짧게 잡았다.
흑룡창 1초식 흑룡포.
유랜은 에반의 심장을 노리다 창을 부숴 먹었지만, 창시자인 자신의 흑룡포는 다르다.
‘유랜, 잘 봐라.’
돌풍이 불고, 샤를이 에반의 품에 파고들었다. 관중들의 눈에는 흡사 에반을 노리던 검은 화마가 기어코 그를 집어삼킨 것처럼 보였다.
촤륵- 촤르륵─ 촤라락.
뒤로 물러나려던 에반은 몸을 구속하는 보이지 않는 쇠사슬을 느꼈다.
완벽한 강제가 아니다.
정말 7성의 벽을 넘기까지 단 한 걸음만 남겨놓은 기사가 펼치는 그런 수준.
“안돼!”
“왕자님!!”
여기저기서 비명이 튀어나왔다.
투구 속 샤를의 얼굴에 오랜만에 미소가 피어났다.
‘목표는 심장.’
콰앙!!
포탄처럼 발사된 창이 에반의 심장을 노렸다.
‘뒤처리가 골치 아프겠어.’
샤를은 그런 생각을 하며 에반의 눈을 바라봤다.
일그러져 있을 것을 기대하며.
하지만.
‘웃어?’
투구 너머로 보이는 에반의 눈꼬리가 기묘하게 올라가 있었다. 그건 샤를이 여태껏 전혀 겪어보지 못했던 웃음.
비웃음이었다.
챙! 챙! 챙그랑─!
에반의 몸을 구속하던 쇠사슬이 하나둘 파괴되는 소리가 샤를의 귀에 천둥처럼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