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21)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121화(121/203)
121
육체, 정신, 마력.
심장에 마나를 품은 기사는 그 세 가지를 합일하는 순간 다음 경지에 올라가기 위한 벽을 마주친다.
기사처럼 몸을 쓰지 않는 마법사에게 요구되는 것은 육체가 아닌 고도의 학습 능력.
즉, 지능.
지능도 정신의 일부라 주장하는 마법 학파가 있긴 한데, 마법사가 다음 경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능, 정신, 마력의 세 요소를 합일해야 한다는 걸 부정하는 이는 없다.
그렇다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121화면 마검사는 어떨까?
세 가지 핵심 요소가 삼위일체를 이뤄야 하는 기사, 마법사와 달리 벽을 넘기 위해 합일해야 하는 것이 하나 더 늘어난 셈.
그게 마검사의 경지 향상을 극악하게 만들고, 결국 마검사라는 존재가 사장된 원흉이다.
정삼각형과 정사각형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길이가 같은 두 변이 준비되면 나머지 한 변의 길이가 결정되며 무조건 정삼각형이 만들어진다.
반면, 정사각형은 길이가 같은 네 변이 준비되어도 무수히 많은 마름모를 만들 수 있다. 그것들 속에서 완벽한 정사각형을 찾아내야 한다.
아, 당연히 마검사의 네 요소를 합일하는 것은 정사각형을 만드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일. 예시가 그렇다는 거다.
삼류 수준이었던 [무극 마나연공법]을 개량해 나가며 인류사 최초로 8성 마검사가 되었던 나다.
그런 내게.
‘이딴 것쯤은!’
나를 옭아매려는 보이지 않는 사슬을 일시에 끊어냈다.
챙! 챙! 챙그랑─!
세계의 눈을 어설프게 속인 것에 불과한 이런 잡기로 구속되기에는 내 정신이 절대 나약하지 않다.
샤를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한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놈의 창이 심장에 닿기 직전이었다.
피할 수 없다.
검으로 막을 수도 없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육체적 능력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하지만.
나는 마검사.
[압축] [형태 변환] [바람의 가호]심장을 노리는 샤를의 창보다 빠르게 마법의 술식이 설계, 구축, 발현되고.
후우웅-
마력에 휩싸인 바람이 나를 보호한다.
콰가가가강!
흑룡포가 [바람의 가호]를 때렸다.
헬멧을 비켜 맞은 총알처럼, [바람의 가호]가 샤를의 창이 옆구리를 스쳐 지나가도록 인도했다.
피싯! 갑주를 스치고 지나가는 창.
심장을 노린다는 것을 뻔히 아는데, 이 정도도 못 막는다면 마검사로서 힘겹게 벽을 넘었던 과거의 내가 불쌍해서 안 된다.
-이게 과연 옳을까?
여태껏 숨겨왔던, 내가 마검사라는 사실을 이 자리에서 드러내는 것이 과연 맞는지 머릿속에서 의문을 표시했다.
‘이게 맞아.’
내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마주치게 될 난관이 아무리 크더라도, 샤를이 큰 견제 없이 ‘미래’에서처럼 하믈 제국을 장악하는 것보다는 못하다.
이미 일도 저질렀는데 이제 와서 무슨 상관이랴.
어쨌든 내가 밑천을 한 장 깠으니, 이제 샤를도 한 장 보여줄 차례. 나는 [바리사다]의 검자루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에반식 리오넬 제왕검술 4초식 용파쇄.
품 안에 파고든 샤를의 머리통을 향해 검자루 끝, 폼멜을 내려찍었다.
샤를의 팔이 기형적으로 꺾였다. 창대 끝으로 폼멜을 후려쳐 방향을 틀려는 것이 분명하리라.
그래, 그렇게 막아 봐라.
진짜는 따로 있다.
[마력 화살] [냉기 부여] [명중 보정] [고속 회전]머릿속에서 기초 마법의 술식이 합쳐지며 하나의 술식을 만들어냈다.
[나선의 얼음 화살]후우우웅- 휘리릭-
샤를의 뒤통수 쪽에 생겨난 얼음 화살에 주위 온도가 얼어붙었다.
쇄애애액─
발리스타의 화살만큼 거대한 크기에 고속으로 회전하는 얼음 화살이 샤를의 머리를 꿰뚫기 위해 출발했다.
((크아아앗!!))
정면에선 용파쇄, 후방에선 얼음 화살.
샤를이 동시에 머리통을 가격할 두 공격을 막을 방법은 하나뿐이다.
강제(强制).
촤륵- 촤르륵─ 촤르륵!
보이지 않는 쇠사슬이 내 육체를 휘감는 불쾌한 느낌. 그것들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육체를 통제하려 들었다.
샤를의 머리통을 향해 일직선으로 내리꽂히던 폼멜의 방향이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했다.
휘익─ 콰창!
용파쇄를 막아내려던 샤를의 창이 방향을 바꿔 후방의 얼음 화살을 후려쳤다. 얼음 화살이 산산이 부서지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샤를의 투구 너머로 그의 눈이 보였다. 경악, 안도, 분노 등이 뒤섞여있는 눈.
마음에 안 드는 것이 하나 껴있었다.
안도.
내 공격을 모두 막아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1차 목적은 이미 달성했다.
샤를은 용파쇄를 막기 위해 강제를 사용했다. 그가 7성 기사의 무위를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
그래도 거기서 끝이면 섭섭하지 않은가.
“으아아아아!”
내 움직임을 억제하려는 샤를의 강제에 저항했다. 흑룡포를 파훼할 때처럼 단번에 끊어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카가가강─ 우지끈! 챙강!
샤를의 검은 투구에 달린 뿔을 부수며 전면부를 날릴 정도는 되었다.
얼굴이 드러난 샤를.
투구가 망가지는 과정에서 왼쪽 눈을 다친 모양이었다.
얼핏 보면 맹수의 발톱에 긁힌 듯한 상처.
한층 강인해 보이는 인상을 만들어준 내게 감사의 인사를 표해야 할 것 같지만, 썩 고마워 보이는 표정이 아니었다.
***
‘마도구?’
샤를의 머릿속에는 떠오른 단어는 그것뿐이었다.
그가 어떤 손해를 감수해서라도 짓밟아놔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기사의 재능을 보인 에반이었다.
기사도 마법사도 되지 못한 반푼이, 마검사일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마도구를 사용한 것이냐!!))
왼쪽 눈에 소매를 가져가 피를 지혈한 샤를이 분노를 담아 외쳤다.
기사 간 대련에서 마도구라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동시에 이해가 안 되는 일.
그때, 그의 귓가에 대련을 지켜보던 사절단 마법사들의 수군거림이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분명 처음 발동된 게 바람의 가호였지?
-마도구인가?
-아니야! 일반적인 형태가 아니었어! 분명 형태 변환과 특수한 술식을 즉석에서 추가했었어. 마도구로는······ 불가능한 일이야.
-얼음 화살 또한 마찬가지야! 기존에 존재하던 마법이 아니야.
-······ 설마!
-마검사! 왕세자는 마검사였던 거야!
-아니, 아무리 그래도······.
-맞아, 난 마도구라는 쪽에 조금 더······.
눈가의 피를 지혈하던 샤를은 움찔했다.
‘마검사?’
샤를은 해명을 바라는 눈빛으로 에반을 바라봤다.
((이런, 오해를 풀지 않고는 대련의 속행이 불가능하겠군요. 저는 마도구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에반이 왼손바닥을 펼쳤다.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그가 구축한 술식에 색이 입혀졌다.
[발화]화르륵, 불이 피어나고.
[형태 변환]불타오르는 거대한 사자의 형태를 이루더니.
[기파 조작]크아아아아아앙!!
왕도 전역이 흔들릴 정도로 크나큰 포효를 내질렀다.
((사용할 생각이 없었지만······ 이 정도는 봐주실 수 있지 않습니까? 황자님도 7성 기사인 걸 숨기셨지 않습니까?))
에반의 말에 그제야 다들 샤를이 대련 중 강제를 사용했다는 것이 떠올랐다.
-맞아!
-분명히 강제를 사용했었어!
-너무한 거 아냐? 왕세자가 마검사라는 사실을 숨긴 거보다, 실력을 숨기고 대련장에 오른 게 더 치졸한 거 같은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여간 하믈 제국 인간들은 염치가 없어요. ······ 그런데 왕세자는 어떻게 그걸 저항한 거지?
-그, 글쎄······ 마검사는 강제에 유난히 강하기라도 한 건가?
-왕세자 정도의 성취를 이뤘던 마검사가 없으니 알 도리가 없군.
바람이 전해주는 관중들의 속삭임에 샤를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확실히 에반이 마검사를 숨기고 있던 사실보다는 자신이 경지를 숨기고 대련장에 올랐다는 사실이 더 비웃음을 살 일이었다.
거기다.
-근데 말이야, 왕세자가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으면 위험했던 거 아니야?
-아마도? 리오넬 왕국의 7성 기사들 봐봐. 지금 둘 다 낭패한 표정으로 검을 빼 들고 있잖아. 딱 봐도 개입할 시기를 놓쳤던 것 같지 않아?
-저기 8성 마법사 프란도 벌떡 일어났다가 다시 자리에 앉고 있어.
자신이 에반에게 위해를 가하려 했다는 사실을 눈치챈 이들이 대부분. 샤를은 지금은 물러날 때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죽여.
누군가 그의 귓가에 나직이 속삭였다.
황궁의 구석에서 태어난 19황자가 지금까지 살아남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본능의 목소리였다.
-짓밟는 정도가 아니야 확실히 숨통을 끊어놔야 해. 여덟 개의 별을 다룬다는 사실이 들통난다 해도 반드시.
아무리 자신의 생명을 수없이 살린 본능의 목소리지만, 그건 너무 갔다. 샤를은 놀라운 이성의 힘으로 본능의 목소리를 억눌렀다.
3년도 안 되어 빈털터리에서 왕국을 장악한 에반이 어떤 인간인지 궁금했었다. 그 호기심 탓에 잃은 것이 너무 많다.
아니.
얼마나 위험한 인간인지 제국 내의 누구보다 빨리 알았다.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리오넬을 방문했던 대가는 충분할지도 모른다.
‘에반 리오넬. 이 빚은 천배 만배로 갚아주마.’
샤를은 실력을 숨겼던 사실을 어떻게 포장해야 하나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대련 중에 깨달음을 얻어 벽을 깼다고 하는 것이 가장 깔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막 입을 열려는 찰나.
((오해가 풀리셨다면, 다시 대련을 속행하도록 하죠.))
((······.))
샤를은 말문이 막혔다.
대련을 계속하자고?
자신이 7성 기사임을 뻔히 알면서 말인가?
((아! 대련 중에 7성의 벽을 깨신 것 같은데, 축하드립니다. 살살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말하는데, 거부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샤를은 에반을 죽일 듯 노려보며 창을 잡은 두 손에 힘을 주었다.
((정말, 다쳐도 책임지지 않겠다.))
((걱정하지 마시죠.))
콰앙! 샤를이 땅을 박차는 소리가 대련장을 울렸다. 억눌러져 있던 그의 본능이 흉포하게 웃었다.
휘익- 까앙!
챙! 채앵-! 챙강─!
이미 7성 기사임을 들킨 샤를의 창은 매서웠다. 노골적으로 심장을 노렸던 것처럼 코어가 위치한 명치를 노리지도 않았다.
[바리사다]의 마나 증폭, 요소요소 사용된 마법, 강제에 대항하는 정신력 중 하나라도 없었다면 에반의 팔 한 짝은 진작에 날아갔다.쇄애애액- 피싯!
샤를의 창이 에반의 투구를 스쳐 지나갔다.
탱그랑. 마스크 부분의 이음새가 망가지며 에반의 얼굴이 드러났다.
땀에 흠뻑 젖은 얼굴.
눈빛이 전혀 죽지 않았다. 여전히 알 수 없는 눈웃음을 짓고 있다.
샤를의 살심이 다시 들끓었다.
대련의 속행 이후, 그는 계속 번민 중이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 8성의 경지를 드러내는 한이 있더라도 에반이 두 번 다시 마력을 사용할 수 없게 만들지, 아닐지.
그런 샤를의 속마음을 에반이 읽었다.
‘결심이 안 선다면 내가 도와줘야지.’
강마(降魔).
고오오오-
[바리사다]가 잘게 떨었다.막대한 마나가 검을 쥔 에반의 손아귀를 따라 그의 코어를 향해 돌진했다.
에반이 품은 소우주, 코어.
그곳에 몰려든 마나가 한순간 빛을 발하고 사멸해버릴 운명의 가련한 별을 탄생시켰다.
6성.
부족하다.
더, 더, 더.
마침내 새로운 별이 하나 더 생겨났다.
별이라기도 민망한 아주 작은 크기. 하지만, 그것 또한 하나의 별이었다.
7성.
타인에게 작용하는 세계의 법칙을 뒤틀어버릴 수 있는 초월자의 경지.
짙은 마력의 소용돌이가 에반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심상치 않은 현상, 에반과 대련 중이던 샤를이 가장 먼저 눈치챘다.
((무슨 짓을 한 거냐!))
에반은 그저 빙긋 웃었다.
이미 내부가 진탕되어 눈, 코, 귀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나오고 있는 참이었다. 말을 꺼낼 여유는 없었다.
‘막아봐라.’
에반식 리오넬 제왕검술, 13초식.
본래 12초식으로 이루어져 있던 리오넬 제왕검술에는 없는 오의(奧義).
에반식 리오넬 제왕검술의 1초식은 파천이다. 하믈이란 단어가 뜻하는 ‘하늘’. 에반은 그걸 부수겠다는 의미로 초식명을 그렇게 지었었다.
하늘을 부수면서 시작되는 에반식 리오넬 제왕검술.
그 최후의 오의, 13초식.
‘개천(開天).’
에반은 검을 휘둘렀다.
오의, 개천은 오롯이 검술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마법 계열 중 최고의 난도로 손꼽히는 ‘공간’ 마법이 융합되어 있다.
쩌적, 쩌저적- 콰가가가가가─
공간이 찢겨 나갔다.
현세의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마검술.
이루어지지 못할 꿈을 소망했었던 에반.
그리고 끝내 이루지 못했던 꿈.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졌다.
에반이, 새로운 하늘을 열었다.
한편.
샤를은 직감했다.
전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
‘흑염창마옥(黑炎槍魔獄).’
샤를을 중심으로 검은 불지옥이 현세를 뒤덮기 시작했다. 단순한 베기, 찌르기조차 비전 기술의 오의와 마찬가지 위력을 발하는 그의 심상영역.
샤를은 공간을 찢어발겨 오는 에반의 참격을 향해 창을 휘둘렀다.
콰아아아아아앙─!
샤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째서?’
쩌적- 챙그랑!
잔금이 가 있던 창이 기어이 부러지고, 현세를 뒤덮어가던 검은 불길이 사그라들었다.
탱그랑.
창날이 대련장에 떨어지며 맑은소리를 울렸다.
“······.”
인파로 가득한 바로나 광장.
입을 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