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24)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124화(124/203)
124
<124>
클리앙이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밀로아가 찾아왔다.
눈에 묘한 독기를 품고 있었다. 신혼여행에서 다투고 돌아온 새색시들이 품을만한 그런 독기 말이다.
“신혼여행은 잘 다녀왔나?”
“그럼요. 특히 마지막 삼일은 아주 즐거웠어요. 일정이 꼬이는 바람에 혼자 돌아다녔거든요.”
환한 미소를 짓는 밀로아. 그런데 눈이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태교에 안 좋을 것 같았다.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생각하라는 말을 건네려다 그만두었다. 성인식도 안 치른 내가 말하는 게 신뢰가 갈 리 없었다.
‘슈이츠가 말하면 신뢰가 가겠지?’
세계에 손꼽히는 치료사인 슈이츠의 말이라면 밀로아도 진지하게 받아들일 거다.
주변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못 끊던 담배도 그의 한마디에 단번에 끊어버렸다고 알고 있다.
이따가 슈이츠와 만날 예정이니 그에게 밀로아의 케어를 부탁하면 될 것 같았다.
“이건 뭔가요? 왕실사관학교 개편안?”
클리앙에게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한번 되풀이했다. 그러니까 같이 왔으면 얼마나 좋아, 똑같은 말을 두 번 안 해도 되잖아.
내 말을 모두 들은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찬성이에요. 저도 마공학을 선도하는 국가가 세계의 패권을 쥐리라 생각했거든요. 근데 국내에서 나가본 경험도 없는 대신들은 쓸데없는 예산 소비라며 반대할 수도 있겠네요.”
“아, 괜찮아. 에이츠 상회에서 지원할 테니까.”
“가능하시겠어요? 에이츠 상회의 매출, 하락세 아닌가요?”
“상회의 기밀을 밀로아 백작이 어떻게 아는 거야? 스파이라도 심어놓은 거야?”
“딱 보면 척이죠. 전 세계를 휩쓸었던 붉은별열병도 이제 비실비실하잖아요.”
“그래도 향후 1년은 괜찮아. 프란니가 부족한 부분을 잘 메워주고 있어.”
전자레인지, 프란니가 에이츠 상회를 통해 세계 각지로 팔려나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외국의 상인들과 만난 아이라가 홍보에 한창일 터였다.
“하믈 제국에서 프란니와 유사한 제품을 만들었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뿌란니였나?”
인상이 팍 찡그려졌다.
진짜 상도덕 없는 놈들 같으니라고. 잘 팔리는 것 같으니 그새 짝퉁을 만들어냈다. 그래도 아직 프란니의 적이 되진 않아 다행이다.
“괜찮아. 믿을만한 소식통에 의하면 조리 중 터지는 일이 다반사라 개발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 같으니까.”
“그래도 결국 완성하지 않겠어요?”
“그러니 세계를 놀라게 할 마도구를 연이어 만들어내야지. 하믈 제국이 따라하기도 벅찰 속도로 말이야.”
밀로아의 표정이 묘해졌다.
“마력초전도체를 최초로 공개했을 정도로 우리보다 마공학이 월등한 놈들이에요. 그게 가능하겠어요?”
“그러기 위해서 마공학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는 거잖아.”
“뭐, 왕자님이 진행하시는 일이니 믿고 있을게요. 참, 그 녀석은 잘 도착했나요?”
그 녀석, 1왕자 루카스를 말하는 거였다.
“두 사람이 신혼여행을 떠나고 얼마 안 가 무사히 잠입했다고 연락이 왔었어.”
그는 리오넬수호군 특수부대와 함께 과거 왕국이 빼앗긴 엘렌베이라 지역에 침투했다.
그곳에서 하믈 제국에 ‘공화정’이라는 독을 은밀히 살포하고 있는 공민회를 은밀하게 지원하는 등 각종 비밀 작전을 수행하게 될 거다.
“언제까지 그 추운 곳에 있게 하실 생각이세요?”
“음······ 한 2년?”
“너무 부려 먹으시는 거 아니에요?”
“밀로아 백작도 잘 알잖아. 만성적인 인력 부족인 거.”
“휴······ 출산하는 순간까지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이 상상되네요.”
“에이, 내가 그래도 그 정도는 챙기지. 출산 휴가는 넉넉히 챙겨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얼마나요?”
“음 출산 전 3일, 출산 후 3일이면 되나?”
밀로아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
슈이츠가 찾아왔다.
일주일에 두 번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공포의 시간이 되었다는 말.
나는 웃통을 까고 간이침대에 누워 그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끄으······.”
“절대 입을 벌리시면 안 됩니다. 아주 살짝 아프실 겁니다.”
“흐읍!”
“잘 참으셨습니다. 이번엔 여기입니다. 조금 전보다 아주 조금 더 아플 겁니다.”
“학!”
그는 거짓말에 너무 능하다.
치료하면서 진실을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도저히 못 참겠다 싶을 즈음 그의 손길이 멈췄다.
“휴······ 끝났습니다. 무리하지 마시고 천천히 일어나십시오.”
“후······ 할 때마다 죽을 맛이야.”
“그러니 다음부터는 바리사다의 사용을 자제해주십시오. 처음 왕자님을 진료했을 때도 느꼈지만, 너무 위험합니다.”
“알았어. 안 그래도 죽을 거 같은 상황 아니면 안 쓰려고.”
웃으며 말하는 내 모습에 슈이츠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백신의 개발상황은 어때?”
“거의 완성했습니다. 왕자님의 이름을 판 덕분에 임상 실험의 참가자도 모두 모집한 상태입니다.”
“좋아. 마지막까지 부탁해.”
“염려하지 마십시오.”
“참, 마리는 요즘 어때?”
‘미래’에서는 하얀 마왕 아크네로 불렸던, 신성력을 사용하는 게 눈에 띄어 왕국민을 키메라 재료로 사용하던 라드완에게 납치되었던 아이.
“여전합니다. 신성력이 봉인된 게 아니라 사라진 게 아닌가 의심하는 중입니다. 정말 신성력을 사용했던 게 맞습니까?”
“확실해. 라드완의 일기장에 적혀있었거든.”
“으음······ 옆에 두고 지속해서 관찰해보겠습니다.”
“이것저것 시키는 게 많아서 미안하군.”
“아닙니다.”
“이제 그만 가봐도······ 아! 밀로아 백작이 요즘 스트레스가 심한 것 같더라고. 조만간 그녀를 진료할 때, 참고하면 좋을 것 같아.”
“왕자님이 일을 많이 시켜서 그런 것 아닙니까? 스트레스는 태교에 아주 안 좋은데 큰일이군요.”
“나 때문이 아니야. 업무 외적으로 받는 스트레스 같아. 혼자였다 부부가 되면서 생긴 그런 거. 음······ 내가 보기엔 클리앙 쪽이 문제였던 게 맞아. 여심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더군.”
“아! 그런 쪽이군요.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시죠. 이거 조만간 클리앙 백작님과 술 한잔하면서 원활한 부부생활을 위해 지켜야 할 마음가짐에 관해 이야기해주어야겠군요.”
귀족 부인들 사이에서 사랑꾼으로 소문난 슈이츠였다.
그의 조언이 있다면 클리앙도 사랑꾼으로 거듭날 수 있으리. 더불어 내 계획들도 잡음 없이 착착 진행되길.
***
점심을 가볍게 해결한 후,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검술을 수련했다.
1초식 파천.
2초식 하늘 베기.
3초식 섬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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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을 최소한으로 운용하며 에반식 리오넬 제왕검술 초식을 펼쳐봤다. 큰 통증 없이 무사히 12초식까지 완료.
‘이 정도면 거의 완치인가.’
만족의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며칠 전만 해도 마력을 운용했다 하면 명치를 칼로 푹푹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었다.
신이 나서 오후 일정은 다 내팽개치고 검만 휘두르고 싶어졌지만, 금방 정신 차리고 수련을 마무리 지었다.
‘과도한 수련은 안 하느니만 못하지.’
지금 내게 중요한 건 육체라는 그릇을 완성하는 것. 이미 그 안을 채울 내용물은 준비된 상태다.
검을 검집에 집어넣은 뒤, 눈을 감고 내부를 관조했다. 강마(降魔)를 사용하느라 두 번이나 초토화되었던 코어를 자세히 살폈다.
‘확실히 튼튼해졌어.’
찢어졌다 회복하길 반복하며 강해지는 근육이 생각났다. 그것과 비슷한 효과인가?
조만간 여섯 개의 별을 품어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예상보다 1년이나 빨라졌다. 잘하면 성인식 즈음해서 7성 마검사의 경지를 회복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감았던 눈을 뜬 나는 알폰소를 찾았다.
시원한 그늘에서 하품을 쩍쩍하고 있었다.
왕세자 즉위식 이후 특별히 시킬 일이 없어 가만히 내버려 뒀더니 무기력증에 걸려버린 모습이었다.
“알폰소, 몇 시야?”
녀석이 느릿느릿 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딸깍 열었다.
“으음······ 1시 35분입니다.”
목소리도 나른.
뭔가 배알이 꼴렸다.
“요즘 별로 할 일이 없지?”
“헛! 할 일이 없다뇨. 너무너무 많아서 정신이 잠깐 멍했던 겁니다.”
위기감 하나는 기가 막히는 녀석이었다.
만약 그렇다고 대답했으면 저기 루카스 옆에 잠깐 보내려고 했었다.
“2시 일정이 프란 님의 연구실 방문이었죠? 어서 가시죠. 일찍 일찍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핫.”
프란의 연구실을 향해 앞장서는 알폰소.
천천히 그 뒤를 밟으며 녀석에게 물었다.
“원혈목의 흡수는 아직이야?”
“생각보다 쉽지 않네요. 아시다시피 그게 워낙 위험······”
“역시 안락한 왕궁 생활이 문제······.”
“오늘 밤! 다시 한번 흡수를 시도해보겠습니다. 혹시라도 잘못되면 저 알폰소, 왕세자 전하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고 묘비에 새겨주십시오.”
그렇게 알폰소와 시시껄렁한 대화를 나누다 보니 금방 프란의 연구실에 도착했다.
똑똑, 똑똑.
“저 왔습니다.”
대답이 없었다.
흔한 일이었기에 그냥 덜컹 열고 들어갔다. 실험에 몰두한 프란의 등이 보였다.
슬쩍 다가가 살펴보니 스텔라에 마나회로를 새겨놓는 작업 중이었다. 매우 섬세한 작업이다. 저거 잘못하다가는 큰일······.
“아, 씨!”
우웅- 번쩍- 콰앙!!
저렇게 폭발해버리고 만다.
마공학이 저렇게나 위험하다. 실험하다 목숨을 잃는 이들이 부지기수. 물론 프란 같은 고위 마법사가 저 정도로 다치지는 않는다.
그녀가 순식간에 스텔라를 감싸는 보호막을 발현했기에 서류들이 사방으로 흩날리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때를 잘못 맞췄네.’
시험에 성공해서 기분 좋을 때 찾아와도 모자랄 판이었는데.
“무슨 일로 보자고 했어?”
아니나 다를까 내게 용건을 묻는 그녀의 표정이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기분이 별로이신 것 같으니 다음 기회를······.”
“됐어. 공사 구분을 못 할 정도로 열받진 않았으니까.”
뭐 그러시다면.
“제가 조만간 왕실사관학교에 마공학부를 신설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마공학부의 학부장을 맡을 사람은 프란 님뿐입니다. 부디 맡아주시죠.”
“거절한다.”
일말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프란의 단호한 거절이 비수처럼 심장에 꽂혔다.
그래도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아이들 뒤치다꺼리는 적탑에서 넌덜머리 날 정도로 해봤어. 이제 안 해.”
“교수가 아닙니다. 학부장입니다, 학부장. 가만히 자리만 지키고 계셔도 됩니다. 이름만 빌려주시면 됩니다, 이름만.”
“내가 네 속셈을 모를 줄 알아? 내가 리오넬의 작위를 안 받으니까 어떻게든 왕국에 묶어놓으려는 거 아니야?”
그동안 프란에게 너무 많은 것을 보여줬다. 내 생각을 꿰뚫고 있었다.
괜찮다.
그녀를 설득할 자신이 있으니 온 거였다.
“으음······ 전자레인지의 어머니라는 별명 마음에 안 드시죠?”
프란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놀리려고 온 거면 당장 나가!”
나는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일단 저 좀 따라와 보시죠.”
“안 가!”
“아, 빨리 와 보세요.”
“어디 가는지 알면.”
“바로 옆입니다. 제 연구실이요.”
이자벨이 남부의 마력초전도체 연구단지로 이사하고, 남겨진 연구실은 내가 개조해 사용하고 있다.
이중 삼중의 보안 마법으로 보호되어 있었다. 프란이라면 몰래 열 수 있겠지만, 그녀의 연구윤리를 믿었다.
“보여달라고 할 때는 그렇게 숨기더니.”
“다 오늘을 위해서였죠.”
내가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저녁만 되면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었으니 대체 뭘 하고 있나 궁금했을 거다.
연구실 앞에 도착한 나는 보안 마법을 하나하나 해제해 문을 열었다.
“뭐야? 이자벨 때랑 변한 게 거의 없잖아.”
“아래에 있습니다.”
“아래?”
나는 카펫을 걷어냈다.
거대한 철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문고리를 잡고 마력을 흘려보내 마지막 보안을 해제했다.
우웅 하는 진동과 함께 열리는 철문.
먼저 훌쩍 뛰어내렸다.
“프란 님은 계단으로 내려오시면 돼요. 빨리 내려와 보세요.”
“보채지 마. 다 내려왔······.”
그렇게 아래로 내려온 프란.
지하 공간을 꽉 채우는 것같이 거대한 거인을 발견한 그녀는 잠시 넋을 잃고 말을 잇지 못했다.
“······ 저게 뭐야?”
“소문 못 들으셨습니까? 타이탄입니다. 우연히 설계도를 입수해서 대충 하나 만들어봤는데, 어떻습니까? 전자레인지의 어머니보다는 타이탄의 어머니로 이름을 남기고 싶지 않으십니까? 어쩌면 비공정의 아버지라 불리는 라이트보다 더 위대했던 마법사로 역사에 남게 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