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29)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129화(129/203)
129
<129>
나는 이차성징이 막 시작될 무렵의 신체 건강한 나이에 20대 후반의 전생과 불혹을 넘긴 ‘미래’를 자각했다.
삶의 기억을 햇수로만 따지면 프란보다 많을지도? 그렇다고 내 정신연령이 나이 지긋한 노인 같냐면 그건 또 아니다.
아무래도 정신과 육체는 상호보완적인 면이 있어 균형을 맞추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면 과도하게 앞선 정신을 따라잡기 위해 육체의 그릇이 빠르게 완성되는 것도 설명이 쉽다.
그러니까.
“후후후, 피곤해 보이시네요.”
꾹꾹 눌러왔던 남자의 본능이 결혼식 후 폭발한 걸 부끄러워할 필요가 전혀 없는 거다.
집무실을 열자마자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넨 알폰소를 쌩 지나치며 책상에 가 앉았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신문들이나 내놔.”
“하핫. 여기 있습니다.”
알폰소가 건네는 신문 중 한 기사의 헤드라인에 눈이 갔다.
『하믈 제국의 황제, 쓰러지다!』
집중해서 기사를 쭉 읽었다.
제목은 자극적이었지만, 내용은 아주 소박했다.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마치고 일어나던 황제가 현기증을 느껴 잠시 소란이 있었다는 이야기.
“무슨 기사를 그렇게 집중해서······ 아! 폐하도 그 기사에 낚이셨군요. 저도 깜짝 놀라서 읽어보다 허탈해서 원. 기자들의 제목 뽑는 솜씨가 진짜······.”
나는 신문에서 시선을 떼고 알폰소를 바라봤다.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기자들을 비판하고 있는 녀석에게 물었다.
“왜 현기증을 느꼈을까?”
“네? 으음······ 나이도 있는데 땡볕에서 제사를 지내는 게 힘들었던 것 아닐까요?”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내게는 저 작은 뉴스가 황제에게 죽음이 성큼성큼 다가가고 있다는 걸 알리는 신호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에서도 황제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하기 시작한 건 일상 속 흔히 있는 사건, 사고가 반복되면서부터였다.
의문이 드는 게 있었다.
‘왜 빨라졌지?’
내가 예측한 황제의 사망 시기는 2년 후.
지금은 너무 이르다.
‘진짜 단순한 해프닝인가?’
국왕의 사망이 내가 생각보다 빨랐던 이유는 짐작하고 있다. ‘미래’에서는 그가 피우지 않았던 아르야산 유독 담배를 즐겼으니까.
그것처럼 나로 인해 발생한 나비효과 때문에 하믈 제국 황제의 수명이 단축된 일이 일어난 걸까?
도통 짐작 가는 게 없었다.
“알폰소, 머리가 맑아지는 제네센 차 좀 부탁해.”
“평소에 즐기시는 그것 말이시죠? 알겠습니다. 금방 준비해서 가지고 오겠습니다.”
알폰소가 차를 준비하러 가 있는 동안 계속 신문을 읽어나갔다.
『브리센 연합의 맹주 다이치 왕국, 붉은별열병의 종식을 선언하다』
『아직도 붉은별열병에 고통받는 하믈 제국의 금향주와 녹원주』
붉은별열병으로 인한 세계 각국의 혼란은 이제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사실상 종식되었다.
해열제인 제네시아, 치료제인 제네롤이 판매가 뚝 끊긴 건 아니다.
붉은별열병은 여전히 잊을만하면 마을 하나를 순식간에 콜록거리게 만든다. 다만 대부분 사람이 한 번은 앓고 지나갔기에 감기 정도로 위력이 약화한 것.
여전히 붉은별열병에 걸리면 사람들은 제네시아와 제네롤을 찾는다.
지속해서 하락하던 에이츠상회의 매출은 어느 순간부터 일정하게 유지 중이었다. 붉은별열병이 한창 유행하던 때가 머리라면 지금은 무릎쯤?
곧 다시 반등할 거다.
『에이츠 상회가 발표한 붉은사신의 백신 ‘천사의 손길’, 1차 임상에서 예방률 100%?』
『1차 임상이 끝나자마자 2차 임상에 들어간 ‘천사의 손길’』
『아이멘 제국, ‘천사의 손길’를 만든 슈이츠 레밍은 역사에 길이 남을 위인이 될 것이라고 찬사』
1차 임상을 성공리에 마친 세계 최초의 백신은 2차 임상을 진행 중이다.
『익명의 하믈 제국 치료사, ‘천사의 손길’은 사기라고 일축』
읽어볼 필요도 없는 기사는 그냥 넘겼다.
만약 백신의 효능이 인정되면 본래 자신의 것을 슈이츠가 훔쳤다고 할 놈들이다.
『만신전, 아직 ‘천사의 손길’의 안전성을 인정하기에는 데이터가 부족하다』
『백신을 잘못 맞으면 붉은사신에 감염될 우려가 있다는 만신전의 입장, 이에 대한 에이츠상회의 반응은?』
붉은별열병때는 시기가 시기인지라 만신전이 빠릿빠릿하게 움직였지만, 이번에는 그럴 것 같지 않았다.
‘로비를 좀 해야겠어.’
마음에 안 들지만, 적은 돈을 아끼려다 큰돈을 잃는 수가 있다.
그렇게 계속 신문을 읽어나는데 중간에 재미있는 기사가 있었다.
『샤를 황자와 흑기사단, 만드라의 황금빛 열매를 얻기 전까지는 황도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밝혀』
샤를과 흑기사단의 소식.
여전히 황제의 지시에 따라 죽기 딱 좋은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만드라는 식물로 뒤덮인 마수로, 머리 부분에 복숭아처럼 생긴 열매가 놈의 감정 상태에 따라 황금빛도 되고 칠흑같이 까만색도 되는 신기한 녀석이다.
만드라의 황금빛 열매는 세계수 열매에 버금간다는 소문이 있다. 아마 제사 중 현기증을 느꼈던 황제가 몸보신 좀 하려고 구해오라 시킨 게 아닐까 싶다.
‘······아! 혹시?’
뭐든 과하면 독이 되는 법.
샤를과 흑기사단이 갖다 바치는 진귀한 영약들이 오히려 수명을 깎아 먹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아니면 말고.
그런데 황금빛 열매는 만드라가 기분이 좋을 때나 볼 수 있는 걸로 알려져 있다.
인간을 싫어하는 만드라. 샤를과 흑기사단을 마주치자마자 바로 열매 색이 빨간색 혹은 검은색으로 변할 텐데 황금빛 열매를 어떻게 구하려나?
‘내 알 바 아닌가?’
똑똑, 똑똑.
“왕자님, 부탁하신 차를 가지고 왔습니다.”
“들어와.”
알폰소가 건넨 찻잔의 향을 맡았다.
시원한 민트초코향이 머리를 맑게 했다.
한입 홀짝 하며 마지막 신문을 살폈다.
『왕궁에서 일어난 의문의 죽음. 사고인가, 살인인가?』
국왕파와 귀족파 간의 집안싸움에 한창인 아르야의 소식이 실려있었다. 실종되었던 국왕파의 원로 하나가 호수에서 떠올랐다는 내용이었다.
‘아르야 귀족파의 짓인가?’
리오넬 왕국에 있어 나쁠 게 없기에 기분이 좋아야 할 일이건만 묘하게 찜찜했다.
문득, 결혼식 이후 뚝 끊겼던 아르야 1왕녀의 편지가 떠올랐다.
에이, 설마.
나는 고개를 털며 그녀의 얼굴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어쨌든 집안싸움 중인 아르야 왕국은 바깥으로 당분간 눈을 돌릴 수 없을 거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건 하믈 제국.
내 예감대로라면 늦어도 1년 안에 황제는 사망한다.
잃어버린 서북부를 탈환해야 한다.
전쟁을 준비할 시간이었다.
***
하믈 제국의 최남단.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마경, 만드라의 숲. 그곳을 지나는 이들이 있었다. 검은 갑주에 타오르는 형상의 창을 든 기사들.
샤를과 흑기사단이었다.
한데 도무지 기사로 보이지 않는 이가 한 명 있었다.
클라우 로비츠.
하믈 제국의 전통 문사복을 입고 있는 그는 불쾌 지수가 하늘을 뚫을 것 같은 습한 더위에 연신 부채를 움직이며 땀을 식혔다.
위잉- 위잉-
성인 남성의 손가락만 한 모기가 계속 클라우의 주변을 맴돌며 그를 성가시게 했다.
“아오, 이놈의 모기들. 에잇.”
부웅- 휘두른 클라우의 부채를 피한 모기가 향긋한 피 냄새를 흘리는 금발의 남성에게 날아갔다.
샤를이었다.
그의 왼쪽 눈을 가로지르는 흉터가 꿈틀거렸다.
와직, 피슛-
마력으로 인한 압력으로 찌그러진 모기.
녀석이 흡혈했던 피가 사방으로 튀며 클라우의 하얀 부채와 문사복을 더럽혔다.
“으앗! 피는 지워지지도 않는데.”
“누가 그런 하얀 옷을 입고 다니라고 시켰나?”
“황자님이 갑자기 끌고 와서 그런 것 아닙니까? 솔직히 준비할 시간은 주셨어야죠.”
황도의 새로 생긴 기루에서 술 한 잔 마시려는 찰나에 납치되듯 끌려온 그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길래 누가 도망 다니랬나. 준비할 시간을 줬으면 또 잠적했었겠지.”
“하하하, 설마요.”
클라우는 부채로 얼굴을 가리며 샤를의 시선을 피했다.
‘귀신 같아라.’
클라우는 말없이 모기를 쫓으며 샤를의 뒤를 쫓았다. 그렇게 한참을 걷던 그는 주변이 조금 어두워지는 걸 느꼈다.
“마경이라 그런지 해가 일찍 저무는군. 부단장, 저녁 식사를 준비하도록.”
“알겠습니다.”
8성급 마수인 원후왕 토벌 당시, 7성 기사였던 흑기사단장은 원후왕의 주먹에 머리통이 수박처럼 깨지며 사망했다.
자연스레 부단장이었던 샤를이 흑기사단의 단장을 맡게 되었다.
흑기사 단원이 전달해준 맛대가리 없는 식사를 하던 클로우는 힐끔 고개를 들어 정면의 샤를을 바라봤다.
왼쪽 눈의 흉터가 눈에 확 들어왔다.
리오넬 왕국에서 에반과의 대련 과정에서 얻은 것이었다.
“왼쪽 눈의 흉터는 안 지우십니까?”
“지워야 할 이유가 있나?”
“황도의 기녀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강하더군요. 없는 편이 인기가 많으실 겁니다.”
샤를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런 쓰잘머리 없는 이유로 치욕을 잊으라는 말이냐.”
“농담이었습니다. 진짜 이유는······ 신체에 흠이 있는 황자는 황위 계승에 있어 심각한 결격사유가 된다는 것, 아시지 않습니까.”
“흥, 자랑할 것이라곤 황족으로 태어난 것밖에 없는 황실의 버러지들이 만들어낸 악습일 뿐이다.”
“음······ 생각해보니 그냥 치료하지 않고 다니는 게 그들의 신경을 더 안 건드리는 것 같기도 하네요. 내버려 두시죠.”
“때가 되면 알아서 치료할 테니 신경 쓰지 마라.”
샤를의 시선이 리오넬 왕국이 있는 동쪽을 향했다. 그의 눈에 담긴 분노를 읽은 클라우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러길래 리오넬 왕국을 왜 가서는.’
들려오는 소식만으로도 에반 리오넬이 위험인물이란 걸 알 수 있지 않나. 그걸 굳이 가서 확인하고 온 샤를이 클라우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얻은 게 아예 없진 않다.
샤를이 황좌에 앉는 순간 그 첫 정벌 대상은 리오넬 왕국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원래는 3순위 정도였다.
클라우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하늘의 별들을 관측하던 그의 뇌리에 풍년 기원 제사를 마치고 현기증으로 비틀거리며 쓰러지던 황제의 모습이 계속 밟혔다.
‘황제가 갈 때가 되었나?’
어쩐지 이번 만드라 건이 끝나면 매우 바빠질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당분간 기루의 문턱도 밟지 못하겠군.’
클라우는 기루에 남기고 온 술이라 생각하며 맛대가리 없는 스튜를 입에 털어 넣었다.
***
가신들을 불러 회의 시간을 가졌다.
“하믈 제국의 황제가 보름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어요. 폐하의 생각처럼 건강에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어요.”
“밀로아 백작님, 단순한 감기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버논 경, 황제가 그래도 5성 기사 수준은 됩니다. 감기로 보름이나 앓아누울 사람이 아닙니다.”
하믈 제국 황제의 건강에 적신호가 커진 게 분명했다.
내 예상으로는 빠르면 반년, 늦어도 일 년 안에 황제가 사망하고 하믈 제국은 내란에 돌입할 거다.
그걸 회의에 모인 이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웁- 웁-”
갑자기 내 옆에 있던 레이나가 헛구역질을 했다.
“왕비님! 괜찮으십니까?”
백신의 2차 임상에 관한 중간 보고를 위해 회의에 참여했던 슈이츠가 재빨리 그녀를 진료했다.
“헛! 이건!”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뜨는 그.
무슨 말이 나올지 알 것 같았다.
“폐하! 축하드립니다. 왕비님께서 회임하셨습니다.”
역시나.
하필이면 하믈 제국과의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연 회의에서, 레이나가 왕실의 후사를 잉태했다 소식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