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30)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130화(13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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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폐하!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왕국의 근심거리가 하나 해결되었군요.”
“왕비님이 여기 계실 때가 아닌 것 같네요. 그렇죠, 슈이츠 자작?”
“맞습니다. 임신 초기에는 걷는 것도 조심해야 할 시기지요.”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진 회의장.
정리가 필요해 보였다.
“슈이츠, 왕비를 데리고 가서 자세히 진료해줘.”
“알겠습니다. 어서 가시지요, 왕비님.”
슈이츠의 재촉에 레이나가 머뭇거렸다.
오늘 내가 가신들에게 꺼낼 이야기를 베갯머리에 대략 들은 그녀였다. 얼마나 중요한 회의인지 알고 있는 탓일 터.
나는 레이나와 눈을 맞추며 입을 열었다.
“레이나, 아무런 걱정하지 말고 배 속의 아이만 생각해.”
“배 속의 아이······.”
손을 배에 가져다 대며 나직이 중얼거린 그녀가 이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슈이츠, 왕비를 부탁해.”
“믿고 맡겨주십시오, 폐하.”
그렇게 두 사람이 나가고, 잠시 어색한 침묵이 찾아왔다.
짝짝, 손뼉을 쳐 분위기를 환기했다.
“자, 이제 하던 이야기를 이어서 해볼까? 이미 대부분 알겠지만, 나는 하믈 제국의 황제가 오래 살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그런데 폐하께서 예측하신 시기보다 2년은 이른 것 같군요.”
왕위 계승 싸움에 속도를 내고 있을 때, 대략적인 황제의 사망 시기까지 들었던 클리앙이 의문을 표했다.
나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맞아. 그래서 조금 당황스러운 면이 없잖아 있어. 시간이 넉넉할 줄 알았거든.”
“폐하가 천기를 읽고 바꾸신 일들이 다시 천기를 뒤튼 까닭이겠죠.”
미약하게 천기를 읽을 수 있는 줄리앙이 자신의 의견을 내놓았다.
투병을 끝내고 아이라와 함께 세계 각지를 돌며 견문을 쌓은 그는 밀로아 밑에서 왕실기무대의 일원으로 일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얼마 전, 19황자가 이끄는 흑기사단이 만드라의 황금빛 열매를 황제에게 진상한 일이 있지 않습니까?”
“그랬지. 대체 어떻게 황금빛 열매를 얻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게, 정말 황금빛 열매였을까요?”
그의 의미심장한 물음.
클리앙이 입을 열었다.
“줄리앙 자네는 그게 가짜였을 수도 있단 말인가?”
“제가 19황자를 따르는 책사였다면, 그랬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폐하 때문에 숨기고 있던 비밀이 탄로 나 황제의 눈 밖에 난 그는 하루라도 빨리 황제가 죽는 게 이득이니까요.”
“으음······ 조금 억측 같은데? 분명 황제도 확인하고 만드라의 열매를 주워 먹지 않았겠어?”
밀로아도 반대 의견을 내비쳤다.
“그걸 감별하는 이들조차 속이거나 회유하면 가능한 일이죠.”
“에이, 설마······.”
그렇게 중얼거리며 나를 바라본 그녀. 갑자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네. 세상엔 폐하처럼 상대를 기만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많으니까.”
“밀로아 백작, 칭찬이야?”
“당연히 칭찬이죠. 그런데 폐하는 진짜 다시는 천기를 못 읽으세요? 너무 아쉽네요.”
밀로아가 서둘러 화제를 전환하며 입맛을 다셨다.
“밀로아 백작이 클로아를 임신했을 때부터 누누이 말했잖아. 태어날 아이의 성별도 못 맞추는 데 무슨 천기야.”
“비상용으로 하나 아끼고 있으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죠.”
“단 한 번, 왕국에 닥칠 재앙에 관한 꿈을 꾸었던 것뿐이야. 이미 많은 것이 변해버렸어.”
“꿈이요?”
밀로아가 흥미가 생긴 듯 몸을 앞으로 숙였다.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처음 꺼낸 이야기였다. 회의장에 모인 이들이 다들 흥미를 보였다.
“왜 성자, 성녀들이 흔히들 꾸잖아. 예지몽이라고.”
“······ 질문이 있습니다.”
“뭐지, 클리앙 백작?”
“폐하께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되는 겁니까? 왕비님이 왕실의 후사를 품으셨으니 이제 사실대로 이야기해주시죠. ”
심각한 그의 표정.
나는 픽 웃으며 입을 열었다.
“칼 맞아 죽는 것만 아니면 못해도 50년은 거뜬하지 않을까?”
“폐하가 붉은별열병을 대비하신 덕에 죽었어야 할 왕국민 중 절반 이상이 살아남았다는 보고서를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아무리 직접적으로 언급하신 게 아니더라도 그 정도로 미래를 바꾸셨다면 그 반작용이 없을 리가 없겠죠.”
어서 빨리 이실직고하라는 그의 눈빛.
“정말 몰라.”
짐작 가는 게 있지만, 그건 입 밖으로 꺼내면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확실한 게 있다면 클리앙 백작의 생각처럼 갑자기 요절하지는 않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리고 갑자기 왜 회의의 주제가 황제의 수명에서 내 수명으로 변한 거야?”
“으음······ 일단은 믿겠습니다.”
완전히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맘대로 생각하게 내버려두기로 했다.
“본론으로 돌아가지. 알다시피 하믈 제국의 황제는 황위를 계승할 이를 확실히 하지 않았어. 아니, 못했지.”
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아돌, 버논, 베록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원래 기사들이 타국의 정치 상황에 무지한 면이 없잖아 있다. 그들이 이해를 돕기 위해 추가로 입을 열었다.
“하믈 제국의 황제는 즉위 초부터 지방의 분열을 막기 위해 13개 주(州)를 통치하는 각각의 주목(州牧)들과 혈연 동맹을 맺었지. 그에게는 꽤 성공적인 방편이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이 되어버린 거야. 각 주목이 지지하는 황자, 황녀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태니까. 내가 왕세자 즉위식을 하기 전보다 훨씬 심한 상태라고 보면 돼.”
하믈의 황제도 자신의 사후에 닥칠 후계 간 골육상잔을 예측 못 했을 리가 없다. 아마, 알고도 방치했을 것이다.
자신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했겠지.
전형적인 폭탄 던지기인 셈이다.
“그럼 잘하면 하믈 제국이 조각조각 찢길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아돌의 희망찬 물음.
그럴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불가능한 일일세.”
“불가능한 일이죠.”
“불가능합니다.”
클리앙, 밀로아, 줄리앙.
세 사람이 동시다발적으로 같은 의견을 표시했다.
잠시 흠칫하고 서로를 마주 보던 그들.
내가 대신 답해줬다.
“아돌, 하믈 제국의 수호룡을 모르나?”
아르야의 토속 신, 에트림과 같은 존재가 하믈 제국에도 있다.
황금룡 아우렐리스.
심지어 에트림처럼 사이비가 아니다. 만신전에서 하급신으로 인정받은 어엿한 신이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하믈 제국이다. 아우렐리스는 그런 제국인들의 신앙을 받아먹고 신의 위계에 올랐다.
하믈 제국인이 아니면 신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나 아는 이야기이긴 하다.
“으음······ 수호룡 아우렐리스 그거, 제국인들이 떠드는 허무맹랑한 전설 아니었습니까?”
“안타깝게도 아니야. 황금룡 아우렐리스는 실존해. 만신전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지.”
“그런······ 신이란 존재가 한 국가를 편애하고 그래도 되는 겁니까?”
“신을 우리의 시선에서 이해하려 하지 마. 하지만, 자네 말도 맞아. 그렇기에 아우렐리스는 신의 위계에 오르면서 상당히 많은 제약을 당했어.”
“제약 말씀이십니까?”
“정확한 사항은 극비야. 아마 황제도 자세히 모를걸? 그래도 여태껏 알려진 것만 예를 들면······ 제국이 타국을 침략하거나 그런 행위에는 개입할 수 없어. 소규모 국지전도 마찬가지. 하지만, 제국인의 신앙을 먹고 신의 위계에 오른 만큼 집안싸움으로 인해 제국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 정도는 개입할 수 있을 거라는 게 신학자들의 중론이야. 제국의 분열은 곧 아울렐리스가 신으로 존재할 수 없게 됨을 의미하니까.”
“확실하진 않은 거군요.”
“그렇긴 하지.”
분위기가 조금 무거워졌다.
왜 리오넬 왕국에는 에트림이나 아우렐리스 같은 존재가 없는지 다들 한탄스러워하는 얼굴이었다.
그나마 바리사다인데······.
그녀는 에트림에 비해서도 격이 조금 떨어졌다.
‘원후왕 정도랄까?’
「갑자기 기분이 엄청 나빴어. 너 방금 이상한 생각 했지?」
순간적으로 들려온 바리사다의 목소리에 흠칫했다. 나는 검집에 시선을 주고 살짝 고개를 흔들어주었다.
그녀가 생각까지는 읽지 못해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을 하며 다시 회의장 인원들을 바라봤다.
“다들 얼굴 펴도 돼. 우리가 제국의 황도를 점령하려고 할 때나 되어서야 얼굴을 볼 수 있는 존재니까. 제국의 혼란을 틈타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면 돼.”
따악-!
내가 손가락을 튕김과 동시에 회의장 스크린에 왕국과 인접 국가의 지도가 떠올랐다. 화면이 확대되며 왕국이 잃어버린 서북부를 조명했다.
모두의 눈이 빛났다.
아직 빼앗긴 지 10년이 되지 않았다.
“하믈 제국의 황제가 사망하고, 최고로 혼란스러운 때, 우리는 이곳을 되찾는다. 오늘은 그런 내 의지를 표명하기 위한 자리야.”
뭐든 시작이 중요한 법.
나는 가신들 앞에서 왕국이 빼앗긴 서북부를 탈환할 것이란 걸 공식적으로 천명했다.
“그러니 이제 다들 의견을 내봐. 아주 은밀하게 칼을 갈고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
회의를 마치고 레이나에게 가는 길.
“베르트 의원님이 오늘 회의 내용을 알면 서운해하시지 않을까요? 쏙 빠지셨잖아요.”
“북부에 가 계시잖아. 그리고 이미 알고 계셔서 상관없어.”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야만인들이 슬슬 남하할 시기다.
국방부 장관을 겸직하고 있는 베르트는 며칠 전 북부의 최전선 베링턴 요새를 순방하기 위해 떠났다.
“올해도 겨우 평작인데 매년 난리네요. 안 그래도 살기 팍팍한 북부인데. 야만인들은 왜 매년 우리만 집중적으로 쳐들어오는지 모르겠어요. 저기 하믈 제국이나 라비안 제국 쪽이 훨씬 먹을 게 많을 텐데.”
“제일 만만하니까. 그들도 먹을 것보다는 목숨이 귀하지 않겠어?”
“지극히 타당한 선택이었군요.”
알폰소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레이나의 방에 도착했다.
문 앞을 지키고 있는 시녀에게 물었다.
“레이나는?”
“슈이츠 자작의 진료를 받고 쉬고 계십니다.”
“슈이츠가 별다른 이야기는 한 거 없고?”
“안정을 취하라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알폰소를 돌아봤다.
“레이나랑 이야기 좀 하다가 집무실로 갈 거니까. 할 일 하고 있어”
“알겠습니다.”
녀석을 보내고 시녀의 안내를 받아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앗! 폐하, 회의는 끝나셨습니까?”
침대에 누워있던 레이나가 문이 열리자마자 몸을 일으켰다.
방에서 부드러운 오르골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회의하는 사이에 태교를 위한 모든 것이 준비된 모양이었다.
시녀를 슬쩍 바라보자 눈치 빠르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입덧은 좀 괜찮아졌어?”
“슈이츠 자작이 손바닥을 몇 번 꾹꾹 누르니 금방 가라앉았습니다.”
“다행이네.”
“회의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잘 끝났지.”
“곧 하믈 제국이 혼란에 빠질 거라고 하셨었죠? 그때가 왕국이 잃은 서북부를 찾을 적기라고.”
“그랬지.”
“······ 전장에 직접 서시겠죠.”
“그래야지.”
“죄송합니다.”
레이나가 고개를 푹 수그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뻔히 보였다.
“전혀 죄송할 필요 없어. 애초부터 레이나는 그 전쟁에서 배제한 상태였으니까.”
“네?”
“당연한 거 아니야? 우리가 그동안 밤마다 후사를 만들기 위해 한 일이 있는데.”
그녀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오히려 레이나가 서북부 탈환에 참여하는 게 더 큰 일 아닌가? 그때까지 내 뒤를 이을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는 소리잖아.”
“아······.”
탄식을 내뱉은 레이나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이를 갖지 못한 것과 전쟁에서 내 옆을 지키지 못하는 것 중에서 무엇이 더 큰 일인지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제, 제가 폐하의 짝이 되었으면 안 되었던 겁니다.”
아니, 왜 생각이 그쪽으로 가는 건데.
“그래서 후회해?”
“······ 아니요.”
“그러면 됐어. 아! 참고로 나는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으니까 안심해도 돼.”
“폐하······.”
분위기가 묘해졌다.
그녀의 빨간 입술이 묘하게 시선을 끌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을 가져갔다.
“으음······.”
혀와 혀가 얽혔다.
초콜릿 맛이 났다.
내가 오기 전에 하나 먹었나?
콩닥콩닥, 레이나의 심장 소리와 따뜻한 체온에 잠시 정신이 흐릿해졌다. 나도 모르게 손이 스르륵-
덥썩.
“슈이츠 자작이 회임 기간 중에 사랑을 나누는 건 절대 금지라고 하였답니다.”
조금 전까지 수줍은 여인이었던 레이나. 단호한 표정의 한 아이의 엄마로 변한 그녀가 애먼 곳으로 향하던 내 손을 붙잡았다.
쩝······.
***
이틀 뒤.
집무실에서 리오넬 왕국의 북부 지도를 보며 상념에 잠겨있는데, 누군가 타다닥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알폰소가 국왕의 사망 소식을 알렸을 때가 떠오르는 그런 급박한 발소리. 좋은 일보다는 안 좋은 일일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고개를 들어 문 쪽을 바라봤다.
덜컹, 문이 열리고 알폰소가 뛰어 들어왔다.
“폐하! 큰일 났습니다! 베르트 의원님이 의식불명이랍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