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32)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132화(132/203)
132
<132>
에반이 베링턴 요새를 향해 은밀히 이동한 사이, 왕실기무대의 회의장에는 세 사람이 모여있었다.
클리앙, 밀로아, 그리고 줄리앙.
“솔직히 두 사람의 의견이 아니었으면 폐하가 베링턴 요새로 향하는 걸 끝까지 반대했을 거야.”
내키지 않는 표정의 클리앙.
철저한 계획하에 모든 일이 이루어져야 심적 안정감을 얻는 그는 변수를 싫어한다. 그걸 아는 밀로아가 옅은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8성급 수호자가 지키는 유적이에요. 뭐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걸 제국 놈들이 홀랑 가져가게 둘 순 없잖아요?”
“제국이 유적을 눈치챈 건 확실한 건가?”
“확실해요. 그렇지, 줄리앙?”
“그렇습니다. 제국의 첩자로 의심하고 있던 베링턴 요새의 중견간부가 베르트 의원님이 유적 발굴에 실패한 후 행방이 묘연합니다. 분명 놈들의 귀에 흘러갔을 겁니다.”
“7성 기사인 베르트 의원님이 손도 못 써보고 당한 위험한 유적이야. 혹시라도 폐하께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걱정되는군.”
“별걱정을 다하네요. 분명 엄청난 유물을 들고 돌아오실 테니 그만 불안해해요. 진짜 예감이 좋다니까요? 지금 꼭 내가 클로아를 출산할 때의 표정인 거 알아요? 보는 사람도 불안해진다고요.”
“밀로아 백작, 줄리앙도 있는 공적인 자리야. 말을 골라서 했으면 좋겠군.”
“그러죠! 클리앙 백! 작! 님!”
“전 괜찮습니다. 편하게 이야기하시죠.”
“됐어, 줄리앙. 클리앙 백작님이 원하는 대로 해야지.”
줄리앙은 삐친 게 역력한 밀로아의 반응에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러려니 했다.
하루에도 서너 번은 다투는 클리앙과 밀로아. 그러고 다음 날이면 서로 손잡고 왕궁에 출근하는 두 사람이었다.
분명 내일도 그럴 것이다.
“폐하는 이미 유적으로 떠났습니다. 저희가 걱정한다고 달라질 일이 없겠죠.”
“그래, 자네 말이 맞아, 줄리앙.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야겠지.”
세 사람의 시선이 회의장의 스크린을 향했다.
밀로아가 마도구를 조작하자 13개의 주로 이루어진 거대한 하믈 제국과 리오넬 왕국의 지도가 펼쳐졌다.
줄리앙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황제의 후손 중 현재 객관적으로 가장 큰 세력을 이루고 있는 건 청운주목의 지원을 받는 7황자입니다.”
스크린에 한 남자의 사진이 떠올랐다.
호방한 인상의 7황자.
“두 분 다 아시다시피 청운주는 비옥하기로 소문난 곳으로 흉년이 들지 않는 땅으로 알려진 제국의 곡창지대입니다. 역사적으로 청운주목이 황제보다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적도 많습니다.”
줄리앙에 이어 밀로아도 자신이 생각하는 요주의 황손을 지목했다.
“11황녀도 7황자에 버금가는 세력을 이루고 있죠. 황원주목의 손녀이자 황탑주가 아끼는 제자예요.”
황도 바로 위, 황원주에 11황녀의 사진이 나타났다.
날카로운 인상의 미녀.
7황자와 11황녀의 사진을 바라보던 클리앙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봐도 저 둘이 가장 앞서 있겠다고 생각하겠지. 다만, 1황자 역시 예의주시해야 할 인물이야. 쉰이 넘는 나이까지 1황자로서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건, 그 역시 특별한 인간이란 뜻이겠지. 분명 숨기고 있는 것이 있을 거야.”
황도에서 웃는 상의 후덕한 남자의 사진이 떠올랐다.
“7황자, 11황녀, 그리고 1황자. 이 세 명이 황위 계승에 가장 가깝다는 데 이견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줄리앙의 말이 끝나고, 잠시 말없이 스크린을 바라보는 리오넬 왕국의 두뇌들.
클리앙이 침묵을 깨트렸다.
“세력은 미미하지만, 가장 본신의 능력이 출중한 그를 빼놓을 순 없겠지?”
“그렇······죠? 폐하가 아니었다면 누구도 그가 숨겨둔 송곳니를 몰랐을 걸 생각하니 소름이 돋네요.”
살짝 몸을 떨며 마도구를 조작하는 밀로아.
하믈 제국 내에서 가장 차별을 많이 받는 지역인 녹원주에 한 금발 미남의 사진이 자리했다.
19황자, 샤를 한 하믈.
“지지기반만 탄탄했다면 오래전에 다음 황위는 그가 계승할 거로 결정되었을 겁니다.”
“그렇겠지. 아무리 병력이 넘쳐나는 하믈 제국이라 해도 8성 기사는 이야기가 다르지. 공식적으로 열 명이 채 안 되니까.”
“솔직히 그가 황위를 계승할 확률은 절망적입니다. 이미 본신의 실력을 숨기고 있었단 이유로 황제와 측근들의 미움을 한 몸에 받았죠.”
“녹원주 출신의 황비 소생인 그의 통치를 받느니 자결을 택하는 대신들도 많을걸요.”
“녹원주의 인간들은 마족의 앞잡이였다인가······.”
클리앙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녹원주는 하믈 제국이 건국되기도 훨씬 전인 먼 옛날, 마족들을 도와 인간을 사육하는 데 앞장섰던 인류의 배신자들이 최후까지 항전했다고 알려진 지역이다.
“웃긴 일이죠. 사실인지 아닌지, 출처도 불분명한 이야기예요. 개인적으로는 가끔 기이할 정도로 특출난 인간들이 태어나는 지역이라 하믈 제국의 황족들이 낙인을 찍었다는 설에 동의하고 있어요.”
세 사람은 잠시 말없이 스크린에 떠 있는 샤를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침묵을 깨트린 건 클리앙이었다.
“줄리앙 말대로 그가 황위를 계승할 확률은 절망적이야. 만약 숨기고 있던 본신의 실력을 일시에 드러내며 다른 경쟁자들을 순식간에 처리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겠지만, 폐하 때문에 그의 비밀은 만천하에 드러나 버렸지.”
“폐하가 신경 쓰고 있다는 것. 그게 저 인간이 나머지 세 명과 나란히 뽑힌 이유겠죠. 얼마 전에 폐하가 그러셨잖아요. 왕국에 닥칠 재앙에 관한 꿈을 꿨었다고. 자세한 내용은 말씀 안 해주셨지만, 분명 폐하의 꿈속에서 하믈 제국의 황제는 19황자였을 거로 추측하고 있어요.”
“그렇습니다. 굳이 왕세자 즉위식 당시 흑기사단과 친선 대항전을 벌이신 것도 그를 경계하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줄리앙, 자네는 객관적으로 7황자가 황위를 계승할 확률이 가장 높다고 했었지? 그럼, 주관적으로는 누구라고 생각하나?”
클리앙의 물음에 줄리앙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3년 전, 폐하의 상황은 19황자보다 월등히 안 좋았습니다. 그런데도 결국 옥좌에 앉으셨습니다. 샤를, 그가 정녕 폐하가 꾸셨던 꿈의 마지막 재앙이라면 이대로 무너질 것 같진 않습니다.”
“저도 동의해요. 황제가 죽으라고 보낸 임무에서 꾸역꾸역 살아오는 걸 봐요. 종국엔 그가 황제의 자리에 앉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드네요. 클리앙 백작님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대답이 필요한가?”
클리앙의 말에 밀로아가 픽 웃었다.
“그럼 오늘은 19황자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방향으로 시나리오를 짜볼까요?”
“그래, 내가 먼저 시작하지. 하믈 제국의 황제가 사망이 임박한 시점, 우리가 해야 할 최우선 목표는 북부로의 병력 이동이겠지.”
스크린에서 왕국의 주요 병력이 일제히 서북부 국경지대에 배치되었다.
“폐하의 예측대로라면 황제의 사망은 향후 반년 이내입니다. 겨울이라는 이야기죠. 제국의 눈을 피해 병력을 이동시킬 방법이 두 가지가 떠오르는군요.”
마도구를 조작해 지도에 눈이 내리게 한 밀로아가 입을 열었다.
“하나는 내가 말해볼까요? 폐하가 엘프들을 도와주고 단 한 번 사용을 허가받은 뿌리 길이 있죠. 세계수의 가지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이동할 수 있는 뿌리 길이라면 놈들이 전혀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북부로 이동하는 것이 가능해요. 타국으로의 이동도 가능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밀로아가 정말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자국 내라는 조건이라도 뿌리 길의 사용을 허가받은 인간은 폐하가 처음일 거야. 우리 군의 서북부 국경 부근으로의 병력 이동만으로도 엘프들은 하믈 제국과 단단히 척지게 될 테지.”
“원래부터 엘프들은 하믈 제국과 사이가 최악이라 괜찮을 거예요. 어쨌든 뿌리 길을 이용하려면 먼저 서부의 메어튼 영지 부근으로 병력이 소집되어야겠군요.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제국을 지킨 동막 놈들의 눈을 피할 수 있을까요? 줄리앙의 생각은 어때?”
“벨카스 산맥의 마수들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례적인 대규모 마수 무리의 출현을 연기해야겠지요. 하믈 제국의 국경과는 연관성을 찾기 힘든 지역이라 아무리 동막이라도 쉬이 눈치채지 못할 겁니다.”
마도구를 조작해 병력을 서부로 이동시키던 밀로아가 잠시 멈칫했다.
“그런데 솔직히, 뿌리 길을 이용하는 건 너무 아깝지 않아요?”
“으음······ 그래, 아깝지.”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뿌리 길은 분명 이번에 서북부를 되찾는 것보다 훨씬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순간이 올 겁니다.”
“좋아 그러면 뿌리 길을 이용한 방법은 배제하도록 하지.”
밀로아는 마도구를 조작해 서부로 이동시키던 병력을 취소해 다시 북부로 옮겼다.
‘오늘도 집에 들어가긴 틀렸네.’
젖먹이 딸, 클로아가 떠올랐다.
능력 있는 부모를 둔 탓에 많이 못 안아줘서 미안해졌다.
그녀는 지도에 표시된 베링턴 요새를 바라봤다.
‘폐하, 저희는 이렇게 열심히 야근하고 있어요. 그러니 꼭 유적에서 근사한 물건을 가져오셔야 해요.’
***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서둘러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조금 전까지 바로 옆에 있던 일행이 아무도 없었다.
째깍, 째깍.
사방에서 들리는 시계 소리.
‘이런, 갇혔나?’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수호자의 심상영역으로 끌려 들어온 것 같았다.
전방에 서 있는 수호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시련을 치르러 왔냐고 물어보지 않았나? 아직 대답하지 않은 걸로 아는데.”
“사념을 전하는 건 나에게도 힘든 일이다, 계승자여. 불쾌했다면 사과하지.”
수호자가 즉시 답을 해왔다.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갔다.
상대의 머릿속에 자기 생각을 전하는 건 8성 마법사에게도 힘든 일인데, 수호자는 딱 봐도 기사 타입이었다.
“사과를 받아들이지. 다른 이들이 들어서 좋은 이야기는 아닐 것 같으니까. 그러니까······ 너를 뭐라고 부르면 되지.”
“편한 대로 부르도록.”
“그럼 계속 너라고 부르도록 하지. 그래서 넌 나의 태엽이 되감겼다는 걸 어떻게 알고 있지? 그리고 난 오늘 너를 처음 봤어. 약속된 시련이라니?”
수호자의 입이 열리지 않았다.
질문이 너무 많았나?
사과도 하고 물음에 답하는 걸 보면 인간에 준하는 자아가 있어 보이는데······ 다시 질문을 던지려는 찰나, 수호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하군. 그분의 뜻을 전달받는 데 시간이 걸렸다. 먼저 첫 번째 질문에 답해주겠다. 그대의 태엽을 되감은 것이 바로 내가 모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수호자의 답을 듣자마자 여긴 신의 유적이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려 시간을 되돌렸다.
만신전의 최고위 신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인지 의구심이 들 정도의 이적이다.
“다음으로, 그대는 오늘 나를 처음 본 것이 맞다.”
어이가 없어졌다.
“말이 안 되잖아. 처음 봤는데 약속된 시련이라니.”
“그대의 백성들이 약속했도다.”
눈가가 꿈틀했다.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설명을 듣는 것보다 직접 보고, 듣는 것이 빠를 터.”
째깍, 째깍, 째깍.
사방에서 들리는 시계 소리가 커지고 의식이 잠시 뚝 끊겼다.
정신을 차리자 육체에서 혼만 빠져나와 허공에 떠 있는 느낌이었다.
“하아······ 하아······.”
누군가 숨을 몰아쉬는 소리에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방금까지 내가 수호자와 대화하던 그곳이었다.
가면이 깨지고, 팔 하나, 다리 하나가 사라진 오스틴이 이를 악물고 수호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보자마자 알았다.
‘미래’의 오스틴이다.
가면 속 얼굴이 생각보다 미녀였다.
하믈 제국의 마지막 침공 때 어디 갔나 했더니 여기서 죽어가고 있었던 건가?
“그대는 시련에 통과하지도, 나를 넘어서지도 못했다.”
“리오넬의 수호신, 다나르의 종자여! 진정 이대로 왕국이 멸망해도 좋단 말인가!”
피를 토하며 외치는 오스틴.
‘다나르? 리오넬의 수호신?’
생전 들어보지 못한 존재에 눈가가 찌푸려졌다.
“다나르의 종자여! 폐하라면! 에반 폐하라면 분명 시련을 통과하실 수 있을 것이다. 부디! 부디 내게 그분을 이곳으로 인도할 시간을 다오!”
······ 아무래도 내가 하믈 제국의 침공에 맞서는 사이에 오스틴이 내 이름을 팔아먹었던 모양이다.
서지도 않은 보증 때문에 빚을 갚아야 하는 상황이란 비슷한 건가?
일단은 의문점들을 집어넣고 눈앞에 벌어지는 상황에 집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