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35)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135화(135/203)
135
<135>
레온궁의 집무실.
소파에 앉은 나는 옆을 돌아보았다.
해리온이 레이나의 품에 안겨 단잠을 자고 있었다.
‘다행이네. 레이나를 좋아해서.’
나를 부모로 인식하기라도 한 건지, 유적에서부터 내 곁을 벗어나면 계속 낑낑거렸었다. 비공정에 내리는 순간까지 녀석을 안고 있을 수밖에 없던 이유.
어쩐 일인지 레이나가 품에 안으니 잠시 움찔하더니 다시 고롱고롱 잠이 들었다. 그녀에게 내 냄새가 짙게 배어 있어서 그런가?
“왕비께서 안고 계신 저 녀석이 신수란 말씀이십니까?”
클리앙의 목소리에 해리온에게서 시선을 떼고 맞은 편을 바라봤다.
클리앙과 밀로아, 그리고 줄리앙. 내가 왕국의 두뇌 삼인방이라 일컫는 그들이 뜨거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내가 거짓말을 했겠어? 신수가 맞아.”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삼인방의 시선이 일제히 해리온으로 향했다.
고로롱, 고로롱.
때를 맞춰 해리온이 유난히 크게 코를 골았다.
신수, 환수, 마수.
언뜻 보기에는 구분이 쉽지 않지만, 자세히 파고들면 상당한 차이점을 보인다.
신수의 가장 큰 특징.
성자, 성녀 이상의 치유력을 가지고 있다.
‘······ 성체가 된다면 말이지.’
지금은 작고 연약한 존재일 뿐이다.
한동안 복잡한 시선으로 해리온을 바라보던 삼인방. 리더 격인 클리앙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하나의 종교를 국교로 정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자국에 들어와 있는 교단 대부분이 불만을 표출할 겁니다.”
나라고 모를까.
전생을 자각한 이후부터 가능하면 종교와 엮이고 싶지 않았던 나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잠시 유적 안에서의 일을 회상했다.
.
.
.
[신앙]을 누를까?아니면, [도서관]의 지니가 되찾은 기억에 관해 물어볼까?
잠시 고민하며 유령손을 [신앙]과 [도서관] 사이에서 왔다 갔다 움직였다. 이내 결정을 마친 나는 [신앙]을 먼저 눌렀다.
━━━━━━━━━×
바로나 : 0%
로크대론 : 0%
아스웰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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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별것 없었다.
‘지지도랑 거의 비슷한데?’
아무래도 각 지역에서 다나르를 섬기는 이들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알려주는 것일 터.
0%만 가득한 걸 보니 마음이 조금 짠했다.
[신앙]창을 닫고 [도서관]에 입장했다.텅 빈 대화창을 바라보며 잠시 할 말을 골랐다.
‘지니가 기억을 되찾았다고 했지?’
여태껏 나는 지니를 전생의 챗봇 같은 AI라 생각하고 있었다. 말투가 워낙 딱딱하기도 했고, 어지간히 융통성이 없어야지.
그런데 기억을 잃었었다는 걸 보면 바리사다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히 지니에게 실례되는 말이 있나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딱히 없는 것 같았다.
앞으로는 더욱 조심하기로 마음먹고 유령손의 손가락들을 빠르게 움직였다.
>지니, 잃어버렸던 기억을 되찾았다는 알림을 봤어. 무엇에 관한 것인지 이야기해줄 수 있나?
「모든 기록이 지워졌던, 제가 모셨던 신에 관한 기억입니다.」
술술 이야기해주는 걸 보니 RP를 요구하는 정보는 아닌 것 같았다.
>다나르 말인가?
「리오넬 왕국의 일부 지역에서는 그분을 다나르라고 칭하기도 하였습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어떻게 불렸는데?
「그건 저도 모릅니다.」
>기억을 떠올렸다고 하지 않았나?
「전부가 아닙니다.」
문득 내게 내려진 시련이 무엇일지 짐작이 갔다.
달성한 업적이 분명 ‘잃어버린 신을 찾아서’였지?
>다나르의 신앙을 퍼트려야 하는 건가? 그게 그가 내게 내린 시련인가?
「아닙니다. 그분의 진명을 찾는 것이 에반 님에게 주어진 시련입니다. 하지만 그분을 섬기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제가 잊은 기억들이 더 돌아올 테니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닙니다.」
>아르카나 아니야?
「아닙니다.」
.
.
.
회상을 끝내고 현실로 돌아왔다. 왕국의 두뇌 삼인방은 나의 입이 열리기를 진득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밤이 깊어져 가는데 얼른 집에 보내주는 것이 윗사람의 도리일 터.
“나도 아직 머릿속에서 완전히 정리가 안 돼서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는 건 무리야.”
“신수의 이름을 말씀하셨을 때부터 짐작은 했지만, 역시 지식을 계승 받으신 겁니까?”
줄리앙이 물었다.
간혹 유적을 발굴한 이들 중에서 잊힌 고대의 지식이나, 현세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의 지식을 획득하는 이들이 있다.
[도서관]을 통해 세상에서 잊힌 다나르 교단의 이런저런 정보를 획득할 수 있으니 그렇다고 해도 될 것 같았다.“뭐, 얼추 비슷하다고 보면 돼.”
고개를 끄덕이며 그리 대답해준 나는 세 사람이 가장 듣고 싶을 것 같은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당장 국교를 선포한다는 건 아냐. 잃어버린 서북부를 되찾느니 마느니 하는 지금같이 중요한 시기에 종교 문제까지 한 스푼 얹힐 생각은 나도 없어.”
세 사람의 안색이 확 밝아졌다.
밀로아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저 해리온이란 신수의 주인은 어떤 신인가요? 저희 세 사람 중 누구도 모르는 걸 보면 분명 잊힌 고신인 것 같은데.”
참 빨리도 물어본다.
그만큼 비공정에서 내리자마자 내가 했던 말이 충격이었나?
“운명과 시간의 신, 다나르.”
내 답변에 세 사람은 물론이고 해리온을 품에 안고 있던 레이나도 눈을 크게 떴다. 신이 담당하는 분야만 들어도 얼마나 고위의 신인지 알 수 있다.
호롱불의 신과 태양의 신.
하천의 신과 바다의 신.
어떤 신이 고위의 신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집무실에 모인 이들은 다나르가 운명과 시간이라는 거대한 개념을 관장한다는 것에 매우 놀란 것이다.
“운명과 시간······.”
“생각보다도 더 대단한 신이었네요.”
“이상한 일입니다. 운명과 시간이라면 분명 다나르라는 고신이 잊힌 후에 새로운 신이 탄생할만한 영역입니다.”
줄리앙이 날카로운 의견을 냈다.
존재에 대한 숭배는 신을 탄생시킨다.
그 반대는?
잊힌 고신이 되는 것이다.
전쟁, 전염병, 기아······ 한 신을 숭배하던 이들이 사라지는 일은 유사 이래 무수히 많았다.
누군가 고신의 이름을 다시 찾고 그를 다시 부르는 순간, 잊혔던 신은 서서히 힘을 되찾기 시작한다.
신의 유적이 존재하고 그곳에 신의 유물이 존재하게 된 배경이다.
신은 잊히기 직전, 후대에 자신의 이름이 다시 불리길 기원하며 자신의 유적을 만드는 이적을 일으킨다.
신의 유적은 무덤이자, 새로운 탄생의 요람인 셈이다.
다나르는 특별한 경우다.
신조차 반작용을 견딜 수 없는 이적을 일으키면서 단시간에 존재가 잊혔던 것. 운명과 시간을 관장하는 새로운 신이 탄생하기에는 극히 짧은 시간이었으리라.
“폐하께서는 뭔가 알고 계시는 것 같군.”
“줄리앙, 폐하는 말해주실 생각은 없어 보이셔.”
“사정이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러시겠지.”
“그래도 전보로 성물과 신수를 얻으셨다고 보내셨었어요. 그 둘에 대해선 이야기해주시겠죠?”
“신수는······ 많이 자라야 할 것 같고, 성물은 서북부를 탈환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었으면 합니다.”
자신들이 알아서 결론을 내는 삼인방.
말을 아낄 수 있어 좋았다. 나는 품 안에 손을 넣고 ‘망가진’ 모래시계를 만지작거렸다. 야심한 시간, 실망한 표정으로 돌아갈 그들을 생각하니 괜히 미안해졌다.
***
유적을 발굴하고 한 달이 훌쩍 지났다.
현재 내 위치는 왕국에서 멀리 떨어진 북쪽. 날씨가 제법 추웠다. 왕궁에서 떠날 때만 해도 쌀쌀한 정도였는데, 여긴 벌써 좁쌀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사이 발생한 가장 중요한 일을 꼽으라면 역시 그것.
『하믈 제국 황제의 무너진 건강! 황위의 행방은?』
각국 언론의 보도를 탈 정도면 사신이 황제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고 봐도 좋았다.
움직일 때가 된 것.
엘렌베이라 지역에서 네이브라는 이름으로 공민회를 은밀히 지원하고 있던 루카스에게 특명을 내렸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누르갈과 접촉하라.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이 없어 초조하게 기다리던 와중에 엊그제 드디어 기별이 왔다. 그런 이유로 은밀히 블랙와이번을 타고 북부를 ‘넘어’ 국경 밖까지 온 것이다.
나를 보좌하기 위해 동행한 줄리앙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폐하, 저기 보이는 설산을 넘으면 노야 부족의 영역입니다.”
노야 부족.
사람이 살기 힘든 이 야만의 땅에서 살아가는 칸족의 대족장, 누르갈을 배출한 부족이다.
“땅으로 가야겠지?”
“아무래도 그게 좋을 겁니다. 손님의 입장이니까요.”
“선장에게 산을 넘자마자 적당한 곳에 정박해 있으라고 전해 줘.”
“알겠습니다.”
잠시 후, 설산을 넘은 블랙와이번이 정박했다.
승무원들을 지킬 병력을 남기고 소수의 인원과 함께 이동했다.
정말 조촐했다.
줄리앙과 알폰소.
아돌과 근위 기사 다섯 명.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던 베르트가 동행하겠다고 우겨서 진정시키느라 힘들었었다.
대족장 누르갈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8성 경지에 오른 완숙한 전사.
제국의 19황자 샤를이 누르갈과 맞붙는다면 아마 10합 정도 만에 그의 도끼에 머리가 쪼개질 터였다.
베르트가 아닌 왕국의 누가 동행해도 나를 둘러싼 위험이 낮아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부상자는 왕도에서 몸조리나 하는 게 맞았다.
그렇게 누르갈에 관해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기다 황량한 벌판을 둘러보았다.
식량을 자급하는 게 불가능한 땅.
휘이잉- 메마른 찬바람이 얼굴을 할퀴고 지나갔다. 이런 곳에 살면 정말 약탈만이 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마중을 나온 것 같네요.”
알폰소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말을 탄 노야 부족의 전사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말들이 왕국의 말들보다 훨씬 작네?”
“체구는 작지만, 극한의 기후를 견디는 내구성을 지녔고, 적은 양의 먹이로도 살아갈 수 있지.”
“오, 역시 척척박사. 가끔 보면 네가 프란 님보다 아는 게 많은 것 같아.”
“사람마다 잘 할 수 있는 게 따로 있으니까. 나는 정보의 입력과 해석에 뛰어난 것일 뿐이야.”
동갑내기인 알폰소와 줄리앙.
어느 순간부터 친한 친구로 격의 없이 지내고 있었다. 둘의 잡담을 듣고 있다 보니 금방 노야 부족 전사들이 접근했다.
((당신이 리오넬 왕국의 국왕인가?))
((크하핫, 성인식도 치르지 않은 나이에 왕위를 쟁탈했다고 해서 기대했건만, 완전 애송이였군.))
((오르한! 대족장의 손님이다. 자중하도록.))
((쳇, 형님도 내심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 아니오. 그리고 어차피 못 들을 거니 상관없지 않소? 보자, 아 거기 비리비리한 네가 통역인가? 방금 내가 한 말은 전하지 말도록.))
코 평수가 넓고 누런 이가 눈에 밟히는 오르한이라는 전사가 비릿하게 웃으며 줄리앙을 바라봤다.
이런 순간이 오니 유령왕자 시절 에메랄드궁에 틀어박혀 세계 오지의 소수 민족 언어까지 공부했던 것이 마냥 헛된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통역은 필요 없어. 오르한이라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내게 직접 말하도록.))
다소 어눌하지만, 명확한 칸족의 언어.
노야 부족의 전사들이 움찔했다.
오르한도 마찬가지. 곧, 그가 내게 사과를 건네왔다.
((크하하, 알아들었소? 미안하군.))
전혀 미안한 표정이 아니었다.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오르한이라는 이름.
‘어디선가 들어봤는데.’
‘미래’를 자각했던 초기라면 바로 떠올렸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매몰된 것들이 많아 바로 생각나지 않았다.
오르한, 오르한, 오르한······.
아, 기억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