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40)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140화(140/203)
140
<140>
라누아와 에반이 함께 하룻밤을 보내는 것을 목격한 후, 오르한의 머릿속은 그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계획을 세우느라 분주했다.
((오르한, 무슨 일 있나? 눈이 새빨간데?))
((어제 후반야 담당이었지? 근무 후에 잠을 안 잔 거야?))
지금도 마찬가지.
오르한은 그를 발견하고 인사하는 동료들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못한 채 발걸음을 옮기는 데 여념이 없었다.
((뭐지, 저 녀석.))
((설마 안 들렸나?))
((정신이 살짝 나간 표정이었는데? 아! 혹시 그거 들은 거 아니야?))
((그거라면······ 라누아 말인가?))
오르한은 발걸음이 우뚝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라누아의 이름이 귓가에 천둥처럼 들렸던 탓.
멀어지고 있는 두 대전사가 보였다.
((그래. 저 녀석이 대족장에게 라누아를 달라고 요청했던 건 유명하잖아.))
((그럴 수도 있겠네. 우리한테도 행여나 라누아를 탐내지 말라고 엄포를 놨었잖아.))
((그나저나 그 외지인, 대체 어디서 온 거지?))
((글쎄······ 그들을 데리고 온 녀석들이 입에 자물쇠를 채웠나, 도통 말을 해주지 않더라고.))
((하믈 제국에서 온 걸까?))
((아마도 그렇겠지?))
((왜 먼젓번에 대족장을 만나야 한다고 미친놈처럼 외쳤던 녀석도 하믈 제국 쪽에서······.))
오르한은 둘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게 될 때까지 우두커니 귀를 세우고 대화를 엿들었다.
하믈 제국?
웃기지도 않는다.
리오넬 왕국에서 온 인간들이다. 심지어 국왕이 직접. 오르한은 그 극비를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노야 부족의 전사였다.
썩은 미소를 짓던 그의 뇌리에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 왜 왔던 거지?’
머릿속이 다시 분주해졌다.
대족장은 아끼던 딸, 라누아를 리오넬 국왕에게 주려 하고 있었다.
칸족 내에서 갈등이 많았던 두 부족이 화해하거나 동맹을 맺을 때 가장 많이 행하는 것이 자녀들을 혼인시키는 것.
노야 부족에는 리오넬 왕국이 있는지도 모르는 부족인도 있다. 그만큼 자신들은 그들과 별다른 접점이 없다.
화해하고 말고 할 것이 없다는 말.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대족장과 리오넬 국왕이 동맹에 준하는 거래를 한 것이었다. 혈연을 맺을 만큼 아주 중대한.
‘무엇을 위해서?’
오르한의 인상이 구겨졌다.
밥 먹고 도끼만 휘둘러왔던 그의 머리로는 쉽사리 그 이유를 떠올릴 수 없었다.
그때.
오르한의 머릿속에 잠들어 있던 오래된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성인식 무렵이었다.
칸족의 남자들은 14살 성인식 때 사냥을 나간다. 강한 맹수, 마수를 사냥해 올수록 뛰어난 전사로 인정받는다.
당시 그는 칼날늑대를 목표로 삼았었다.
적당한 목표였다. 무리에서 벗어난 개체를 어렵지 않게 찾아냈고, 생사를 걸고 대치하는 중이었다.
-크아아아아!
중급 마수, 바실리스가 나타났었다. 칼날늑대의 강철같은 가죽을 씹어먹는 강인한 턱을 가진 용의 아종.
성인식에서 돌아오지 않는 전사가 그가 될 수도 있는 위기였다.
하지만 오르한은 살아남았었다.
생사를 걸고 대치하고 있던 칼날늑대와 협공해 바실리스를 사냥했던 것.
당시의 자신이 노야 부족.
칼날늑대는 리오넬 왕국.
그렇다면 바실리스는······.
‘하믈 제국!’
답이 나왔다.
대족장과 리오넬 국왕은 하믈 제국에 대항하기 위해 손을 잡은 것이다.
‘대족장은 리오넬 왕국과 무엇을 할 작정이지?’
오르한은 생각을 거듭했다.
하지만 거기까지.
한계 이상의 노동을 한 뇌가 고통을 호소했다. 그 이상의 추론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 두통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는 잠시 머리를 비우고 발걸음을 옮겼다.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도착한 그는 바위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했다.
잠시 그렇게 시간을 보내자 과열된 머리가 식었다. 탈진했었던 뇌가 다시 기운을 차리고 활동을 시작했다.
‘대족장이 리오넬 왕국과 붙어서 무엇을 할 것인지는 관심 없어.’
중요한 건 라누아를 되찾는 것이다.
오르한은 자연스레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떠올렸다.
약탈.
뺏으면 된다.
대족장이 리오넬 국왕과의 동맹을 맺었다는 기밀을 들고 하믈 제국에 투항하면 적당히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을 마친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문제는 라누아를 어떻게 납치하느냐인데······.’
뛰어난 전사라 평가받는 그녀지만, 그래봤자 평전사. 대전사인 자신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마을 내에서는 무리.
‘보는 눈이 너무 많아.’
가장 적기는 사냥을 나갈 때인데······ 아쉽게도 사냥을 쉬는 시기였다.
다시 사냥철이 될 때까지 기다려?
‘아니야. 그러면 너무 늦어.’
라누아가 리오넬 왕국으로 훌쩍 떠나버리면 답이 없다.
떠나버린다?
갑자기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당장 리오넬 국왕이 돌아갈 때 그녀를 데리고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대한 이른 시일 내로 라누아를 납치해 하믈 제국으로 떠나야 한다.
당장이라도.
그런 생각을 하며 오르한은 사이한 눈으로 노야 부족 마을을 바라보았다. 무엇인가를 발견한 그의 눈이 번뜩 뜨였다.
누군가 이곳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 저건?’
라누아.
분명 라누아였다.
아무리 먼 곳이라도 그녀를 몰라볼 리가 없었다.
라누아가 이곳에 올라오고 있는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알 필요도 없었다.
오르한은 반사적으로 자신의 애병을 찾았다, 수많은 마수와 하믈 제국군의 머리통을 쪼갠 대형 도끼.
그는 누런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하늘이 그에게 기회를 준 것이 분명했다.
한편.
언덕 위에 다른 누군가가 있을 거란 상상을 전혀 못 하고 가벼운 발걸음을 놀리고 있는 라누아.
그녀가 언덕으로 향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노야 부족을 떠나 고국으로 돌아갈 에반을 멀리서라도 배웅하기 위해서였다.
마음 같아서는 코앞에서 하고 싶었지만, 스쳐 가는 손님처럼 소리소문없이 떠난다고 한 그였다.
찰그락, 찰그락.
손목에 차고 있는 팔찌가 그녀의 걸음에 맞춰 흔들렸다. 들을수록 기분 좋아지는 그 소리에 라누아는 얼굴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윽고.
라누아는 언덕의 정상에 도착했다.
‘응?’
기분이 조금 싸했다.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녀가 어렸을 적, 사냥에 나서 은신해있던 마수에게 목숨이 위험했을 때도 지금과 같은 감각을 느꼈었다.
그녀는 애병인 쌍단창에 손을 가져가며 주변을 경계······.
바스락.
‘위!’
나무 위에서 커다란 무엇인가 떨어져 내렸다.
퍼억!
머리가 깨지는 듯한 통증을 느끼기도 전에 그녀의 의식이 뚝 끊어졌다.
***
번쩍번쩍 요란하게 빛나는 마정석을 보자마자 든 생각은 차라리 잘되었다는 것. 이어서 라누아에 대한 걱정이었다.
그녀가 알면 매우 서운하겠지? 보통은 순서가 반대여야 하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어제야 처음 얼굴을 본 사이니.
‘잡생각 할 때가 아니지.’
나는 서둘러 마정석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파사삭 가루가 되는 마정석.
가루들이 한데 뭉쳐 화살 모양을 만들었다. 빙글빙글 도는 화살이 이내 한 방향을 가리키며 길어졌다.
촉은 팔찌의 방향.
화살의 길이는 거기까지의 거리.
‘멀어.’
노야 부족 마을을 한참 벗어나 있었다.
대충 열차로 두 시간 정도 달린 거리.
방향은······.
‘역시 하믈 제국인가.’
기절? 수면제?
모종의 방법으로 라누아의 의식을 잃게 만들어 그녀를 납치한 뒤, 하믈 제국에 투항하려는 것 같았다.
6성 기사급인 대전사가 전속력으로 달리는 속도를 계산해보니 얼추 한 시간 정도 후면 하믈 제국의 국경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전에 막아야 해.’
촉박한 시간.
오르한이 전속력으로 달리는 속도보다 3배를 빨리 달려야 하믈 제국으로 넘어가기 전에 잡을 수 있었다.
물론 놈이 쉬지 않는다는 가정이지만, 항상 최악을 고려해야 한다.
그게 가능한 인간은······.
‘누르갈도 장담할 수 없어.’
8성 전사인 그가 오르한보다 세 배 빨리 달리는 것? 가능하다. 세 배가 뭐야. ‘한순간’이라면 열 배의 속도도 낼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걸 지속한다는 건 다른 문제다.
단거리에 능한 육상선수, 장거리에 능한 육상선수가 있는 것처럼 마력 각성자들 역시 특화된 분야가 있다.
누르갈은 육상선수로 치면 한순간 폭발적으로 모든 것을 끌어 쓰는 단거리 타입. 생사결을 벌이는 일대일 전투 전문가다.
그러니 결론.
‘나밖에 없어.’
마력으로 증폭한 신체 능력에 마법의 힘을 더할 수 있는 나는 놈이 하믈 국경을 넘기 전에 잡을 수 있었다.
판단이 끝났다.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오갔었지만 실제로는 찰나의 순간.
나는 루카스를 바라봤다.
“쫓아가면서 흔적을 남기겠습니다. 소란스럽지않게 대족장에게 그의 딸, 라누아가 납치당했다고 전해주십시오.”
“혼자 가겠다고?”
대답해줄 시간도 없었다.
나는 게르를 박차고 나가 화살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전속력으로 달렸다.
“앗! 폐하! 폐하! 어디 가십······.”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던 줄리앙이 다급히 외치는 소리가 금방 흐릿하게 들려왔다.
우선은 마력을 이용한 신체 능력 강화만으로 오르한을 쫓았다. 그렇게 한 십분 지나고, 육체의 예열이 완료되었다.
[바람 날개] [가속] [신속의 호흡].
.
.
순간적인 폭발력보다는 지속해서 속도를 늘려주는 마법 위주로.
휘이이이─
날아가는 화살보다 빠르게, 나는 달렸다.
***
라누아가 정신을 차린 것은 얼추 한 시간 전.
머리가 깨질 것 같은 통증과 함께 의식이 돌아온 그녀는 누군가 자신을 들쳐메고 달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범인은 금방 알았다.
오르한.
이미 아내를 셋이나 둔 부족의 대전사.
공공연히 그녀가 자신의 것이 될 거라며 떠들고 다녔다. 대족장인 아버지에게 실제로 그런 의향을 내비친 것도 알고 있었다.
만약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면?
상상도 하기 싫었다.
어쩌면 삶을 포기해버렸을지도 모른다.
부족의 전사들은 오르한이 죽은 형들의 형수들을 거둔 훌륭한 이라고 하지만, 여자들은 알고 있다.
그의 아내들이 얼마나 심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 말이다.
라누아는 뜨거운 여름에도 그녀들이 긴 옷을 벗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 속이 구타로 인한 피멍으로 가득하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
‘왜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지?’
온몸이 결박되고 재갈이 물린 라누아.
다행히 의식을 찾자마자 에반이 건넸던 팔찌의 붉은 보석을 깨트리는 데 성공했었다.
-멋있는 왕자님이 구해줄 거야.
마법처럼 그가 나타나길 기대했다.
하지만 한 시간째 감감무소식. 보석이 깨지면서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팔찌를 받았을 때 생각했던 것처럼 위험을 대비하는 마도구란 소리는 선물을 주기 위한 변명이었던 것 같았다.
‘거짓말쟁이.’
헛된 기대를 하게 한 에반이 갑자기 원망스러워졌다.
라누아는 입을 악물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봤다. 어찌나 단단히 결박해놨는지 마력을 동원해도 거의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하아··· 하아··· 라누아. 기다리고 있어. 조금만 있으면 하믈 제국의 국경이야. 그곳에서 우리는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될 거야.))
전속력으로 달리느라 거친 숨이 거친 오르한. 그의 말에 라누아는 귓속에 벌레가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더욱 힘차게 몸을 꿈틀거렸다.
결국 오르한이 멈췄다.
언뜻 보기에는 그녀의 노력 덕분.
((하아··· 하아······ 이 정도 왔으면 안심해도 되겠어.))
하지만 아니었다.
그저 하믈 제국 국경이 육안으로 보이는 곳에 도착한 오르한이 잠시 쉴 겸 멈춘 것뿐이었다.
((웁- 웁-))
그는 발버둥 치는 라누아의 턱을 움켜쥐고 그녀의 고개를 들어 올려 눈을 마주쳤다.
((라누아, 넌 이제 내 것이 될 거야. 어때? 너도 리오넬의 비실비실한 놈보다는 내가 낫지? 그렇지?))
((웁- 웁-))
오르한은 물끄러미 자신을 경멸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라누아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아름다웠다.
저 속에 빠지고 싶을 만큼.
입술을 혀로 핥은 오르한은 얼굴을 천천히 그녀 앞으로 가져갔다.
파리한 안색의 라누아가 재빨리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의 눈꺼풀과 오르한의 입이 맞닿으려는 찰나.
쇄애애액-
어디선가 날아온 마력 화살.
콰앙!
오르한이 번개같이 대형 도끼로 쳐냈다.
((누구냐!))
그는 재빨리 마법이 날아온 곳을 바라봤다.
((후우······ 후우······ 늦을 뻔했군.))
에반의 목소리.
라누아의 안색에 화색이 돌았다. 그는 거짓말한 적이 없었다. 정말 멋있는 왕자님이 그녀를 구해주러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