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43)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143화(143/203)
143
<143>
아르야 왕국.
주요 대신들이 모여 국정을 의논하는 내각회의가 긴급하게 소집되었다.
국왕의 등장 전, 회의에 참가자들이 각자의 의견을 나누느라 분주했다. 한데, 신기하게도 선이라도 그어놓은 것처럼 좌우로 나뉘어 있었다.
좌측이 귀족파, 우측이 국왕파.
“곧 위대한 아르야 왕국의 국왕 폐하께서 입장하십니다!”
시종의 외침.
대신들이 하나둘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잠시 뒤, 회의장 문이 열리고 국왕, 오토 아르야가 입장했다.
오토는 상석으로 이동하며 힐끔 귀족파의 면면을 살폈다.
양과 질 모두 국왕파와 엇비슷한 세력.
‘에반 리오넬, 그놈만 아니었어도······.’
시작은 조 베이리 해적단이었다.
심혈을 기울여 키운 사략 함대.
해적들을 통제하고 아르야 귀족파의 자금줄을 막기 위한 비장의 수였다. 은밀히 제작한 최신예 철갑선까지 지원했었다.
해적들을 규합한 후 본격적으로 활동하기도 전에 바닷속으로 침몰해버리고 말았다. 에반과 레이나라는 두 영웅의 존재를 알리면서 말이다.
-보석을 깨트리고 나온 샛별이 떨어지는 별똥별을 붙잡았으니, 이는 곧 너희들의 근심이리라.
여덟 개의 머리를 가진 아르야의 수호룡, 에트림이 분명 경고했었다.
돌이켜 생각하니 너무나 뼈아팠다.
최소한 7성급 강자를 보냈어야······.
문득 7성 소환사 아미카 아르야가 리오넬 왕국에 투입되었다 허무하게 목숨을 잃은 것이 떠올랐다.
으드득, 이가 절로 갈렸다.
아미카를 잃음으로 인해 국왕파에 기울어져 있던 무게추가 평행을 이루게 되었다.
‘샛별, 그리고 별똥별.’
오토는 에트림의 계시 속, 아르야 왕국의 근심이 될 거라 칭했던 두 존재를 되뇌었다.
‘샛별’이 에반을 의미했음을 이제 명확히 안다. 그런데 오토를 미치고 환장하게 만드는 건 ‘별똥별’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는 것.
일각에선 ‘별똥별’이 얼마 전에 나타나 왕궁을 혼란스럽게 만든 연쇄살인마라는 이야기까지 있다.
그 의견을 처음 들었을 때의 오토가 느꼈던 어처구니없던 심정이란.
물론 대세인 의견은 있다. 이제는 리오넬 왕국의 국모가 된 레이나가 ‘별똥별’일 거라는 것.
하지만.
오토는 그 의견에 어쩐지 마음이 가지 않았다. 이유는 그도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굳이 이유를 대보라면 피로 점칠 된 길을 걸은 끝에 왕좌에 앉은 그의 감이······.
“국왕 폐하께서 심려가 크신가 봅니다. 안색이 안 좋아 보이시는군요.”
귀족파의 거두, 리히드 프로스의 목소리가 오토의 상념을 깨트렸다.
내각 총리대신이자 8성 마법사인 리히드의 말은 아르야의 국왕인 오토도 쉬이 무시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나라 안팎으로 소란스러우니 어찌 편안할 수 있겠소.”
리히드의 물음에 그리 답한 후, 자리에 앉은 오토. 좌중을 한 차례 둘러본 그가 입을 열었다.
“다들 비상 내각회의가 개최된 이유를 알고 있으리라 믿고 본론부터 말하겠소. 리오넬 왕국의 핵심 병력이 유례없는 칸족의 침략을 막기 위해 북상 중이요. 이에 우리 대 아르야 왕국이 취해야 할 행동이 무엇인지 가감 없이 의견을 제시해 보시오.”
“폐하, 어제 긴급하게 연락을 받고 모인 이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현 상황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선행되어야 옳지 않겠습니까?”
자신의 발언에 딴지 거는 리히드에 오토의 인상이 살짝 찌그러졌다.
오토가 입을 열려는 순간, 귀족파의 인물 하나가 리히드의 발언에 재빨리 추임새를 넣었다.
“하하, 리히드 공작님의 말대로입니다. 리오넬 왕국과 접점이 없는 일을 하는 저 같은 사람은 오늘 비상 내각회의가 열린 영문을 도통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국왕파의 인물이 역정을 냈다.
“무슨 소리! 내가 자네의 상단에서 에이츠상회의 물건을 취급하는 걸 알고있는데! 그리고 칸족의 부족들이 유례없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을 것 아니오!”
“에이츠상회의 물건을 취급하는 거야 아랫것들이 알아서 일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칸족 이야기는 듣긴 했지만, 어차피 이웃 나라 문제라 별로 신경 안 쓰고 있었습니다. 근데······ 자네라니요? 도란스 후작님은 내각회의라는 이런 중요한 자리에서 자네라고 불리면 기분 좋으시겠습니까?”
“오랜느 백작! 논점을 흐리지 마시오!”
리히드 프로스 공작이 냉큼 끼어들었다.
“도란스 후작. 오랜느 백작이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오. 사과부터 해야 하는 게 맞지 않소? 자, 어려우면 따라 해보시오. 미, 안, 하, 오.”
.
.
.
순식간에 개판이 되어버린 내각회의.
리오넬 왕국의 핵심 병력이 북상함에 발맞추어 아르야 왕국이 취해야 할 이득에 관한 이야기는 어디 가고, 귀족 예법에 관한 열렬한 토론이 벌어졌다.
오토는 이를 으득 갈았다.
귀족파 대신들은 바보가 아니다.
리오넬 왕국의 현 상황에서 아르야 왕국이 취할 수 있는 이득이 상당한 것을 모를 리가 없다.
최소한!
정말 최소한 붉은별열병의 치료제를 구걸하기 위해 과거 놈들과 맺었던 굴욕적인 협상을 무효화해야 했다.
리오넬 출신 조선공들의 귀환.
금월도의 소유권 포기.
10년간의 관세 없는 무역 허가.
일명 금월도조약.
오토는 이번 기회에 그걸 반드시 뒤집어엎고 싶었다. 한데 귀족파의 인간들이 저리 논점을 빙빙 흐린다?
‘리히드 공작! 저 인간이!’
귀족파는 리오넬 왕국의 일에 개입할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어째서?
오토는 답을 알 것 같았다.
금월도조약, 그중에서 10년간 관세 없는 자유 무역을 허가한 것은 아르야 왕국에게 있어 불평등조약인 게 맞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이득을 보는 이들이 있다. 특히 초거대 상회인 에이츠상회가 움직이면 떡고물이 상당하다.
근데 하필이면 그게 전부 귀족파의 인사.
리오넬 왕국이 중간에 수작을 부린 거였다.
리오넬의 상인들은 이득을 나눌 만한 건수가 있으면 언제나 아르야의 귀족파들과 손을 잡았다.
오토는 지끈거리는 두통에 당장이라도 처소로 돌아가 쉬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아르야의 국왕.
“지금은 급변하는 세계정세에 발맞추어 왕국의 힘을 모아야 하는 중요한 시기요! 그런데 이 무슨 쓸데없는 논쟁이란 말인가!”
쩌렁쩌렁한 오토의 고함에 내각 회의장이 그제야 조용해졌다.
그가 재차 입을 열려는 찰나.
덜컹!
회의 중 열려선 안 되는 문이 열렸다. 모두의 시선이 문 쪽을 향했다.
오토 또한 마찬가지.
‘어머니의 수석 시녀?’
의문은 의문이고, 그는 반사적으로 분노의 말을 내뱉었다.
“무슨 일이냐! 지금 얼마나 중요한 회의인지 모르느냔 말이냐!”
“폐하! 죽여주십시오. 대비께서 독살당하셨습니다.”
오토는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귀를 후볐다.
헛것을 들은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왕실의 연쇄살인마!”
“설마 대비에게까지 손을 댄 건가!”
“허······”
.
.
.
대신들도 충격에 빠지긴 마찬가지.
콰앙!
돌연, 8성 기사이자 아르야 왕국을 수호하는 검, 근위기사단장이 탁자를 내리치며 일어섰다.
“리히드 프로스! 기어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구나!”
“갑자기 무슨 헛소리요! 연쇄살인마는 우리와 전혀 무관하오!”
“그럼 어찌하여 연쇄살인마에게 당한 것이 전부 우리 측의 원로들인가 말이냐!”
“그걸 내가 어찌 아오! 아직 범인을 잡지 못하고 있는 당신들의 무능을 탓해야 하지 않겠소?”
“이익! 그래도 8성 마법사라는 존재만으로도 왕국에 도움이 되어 그동안 참았지만, 이제는 끝이다!”
근위기사단장이 검에 손을 가져갔다.
“폐하! 이 기회에 나라를 좀먹는 저 무뢰배들을 이 자리에서 쓸어버리십시오. 명하신다면 당장 저 연쇄살인마의 주구인 리히드의 목을 베어버리겠······.”
삐이──
오토의 귓가에서 이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가 바라보고 있던 근위기사단장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참을 수 없는 어지러움.
의식의 끈을 잡고 있는 게 힘들었다.
결국, 오토는 손을 놓아버렸다.
시야가 까맣게 암전하기 시작했다.
와당탕! 털썩.
“······하? ······하!!”
“······ 들것! ······ 가져와라!”
“······ 네놈들! ······ 꼼짝······.”
“······.”
오토의 귓가에 들리던 소음도 사라졌다.
매우 편했다.
다시 깨어나지 않고 싶을 만큼.
***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충격! 아르야 왕국 대비의 갑작스러운 죽음』
『또다시 연쇄살인마의 짓인가?』
미리 알았던 내용도 신문을 통해 다시 확인하게 된다. 나는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내리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언론에는 공표되지 않았지만, 아르야의 국왕파와 귀족파 간 대립이 극단으로 치달은 것을 [도서관]을 통해 확인했다.
내각회의에서 일어났던 일이 언론을 통해 새어 나올 확률은 없다고 봐도 좋지만.
『8성 마법사, 리히드 프로스 공작. 연쇄살인마 포획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표명』
그래도 줄리앙처럼 사건 속 진실을 추리할 수 있는 이들은 어느 정도 눈치챘을 거다.
‘연쇄살인마의 활약도 여기까지인가.’
미쳐 날뛰던 아르야의 연쇄살인마가 잡히는 것도 시간문제 같았다.
그동안 어떻게 근위기사단의 눈을 피한 건지 의문이지만, 8성 마법사가 협조하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다르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아르야의 연쇄살인마가 잡히지 않은 이유로 마법사들의 비협조가 컸다고 본다.
아르야의 귀족파를 이끄는 것이 8성 마법사 리히드 프로스 공작. 그를 따르는 고위 마법사들이 국왕파에 비협조적일 수밖에 없는 환경인 셈이다.
‘그래도 대비를 살해하는 건 선을 좀 넘긴 했어.’
연쇄살인마의 이번 행적은 기어이 귀족파의 거두, 리히드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도 더는 두고 볼 수 없었을 거다.
‘근위기사단장이 내각 회의장의 귀족파를 싹 베어버리겠다 했다지?’
아마 리히드는 국왕파의 원로들이 죽는 걸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거다. 오히려 잘 되었다며 박수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근위기사단장의 발언 이후 그도 정신이 번쩍 들었을 거다.
국왕파의 원로들만 살해당한다?
누가 봐도 자신들을 범인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흠······ 아르야 국왕에 관한 기사는 없나?’
오토가 혼절했었다는 기사는 없었다.
언론을 통해서는 얻기 불가능한 정보를 전해준 [도서관]의 사서 지니에게 다시 한번 속으로 감사의 말을 전했다.
내각회의 도중 충격을 받고 쓰러졌을 그를 상상해봤다. 하믈 제국의 황제처럼 쭉 누워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되겠지?’
그는 그래도 초월자의 반열에 들어가는 6성 기사. 아마 초월자가 심적 타격만으로 혼절한 것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사례.
스트레스가 그 정도로 무서운 거다.
“좋아, 아르야는 전혀 신경 쓸 거 없나.”
나는 읽은 신문을 모두 접어 책상 한구석으로 치웠다.
똑똑, 똑똑.
“폐하, 왕비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들어오라 해.”
알폰소가 문을 열고, 레이나가 들어왔다.
“조금 있으면 베링턴 요새로 이동하실 시간이에요. 가시기 전까지 바쁘시군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나?”
나는 힐끔 탁상시계를 바라보았다.
“이런, 벌써 시간이. 재미있는 기사가 있어서 읽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어. 알폰소!”
“넵! 안 그래도 출발할 시간이 되었다고 보고하려 했습니다. 이미 준비는 전부 다 되어있습니다.”
알폰소가 내게 외투를 건넸다.
“이리 주세요.”
레이나가 대신 받아 내게 걸쳐줬다.
“추운데, 굳이 배웅 안 해줘도 돼.”
“아니에요. 꼭 배웅할 거예요.”
“고마워. 그럼 가 볼까?”
집무실을 나선 나는 비공정 정박장으로 향했다. 이미 베링턴 요새로 떠날 모든 준비가 완료되어 있었다.
가기 전, 마지막으로 레이나와 포옹했다.
“그럼, 다녀올게.”
“다치시면······ 각오하세요.”
“걱정하지 마.”
“만약 안 좋은 소식이 들리면, 바로 베링턴 요새로 달려갈 거에요.”
그녀의 눈에 진심이 담겨있었다.
“그런 일 없을 거야.”
“······ 믿을게요.”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레이나의 이마에 쪽 키스를 해준 후 왕국의 유일한 대형 비공정, 골든드래곤에 탑승했다.
“골든드래곤! 상승합니다!”
서서히 떠오르는 골든드래곤.
마지막까지 레이나와 시선을 맞추고 있던 나는 그녀가 안 보일 때가 되어서야 골든드래곤이 향하는 방향을 바라봤다.
서북부 탈환 작전의 서막이 올랐다.
리오넬 왕국의 비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