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48)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148화(148/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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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7성 기사는 사단급이라 평가받는다.
한 명이 홀로 몇천의 병력을 상대할 수 있다? 마력을 각성하지 못한 이들의 처지에서 보면 그런 비합리적인 일이 없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사단급 병력으로 7성 기사를 잡아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7성 기사라도 벗어나지 못하는 약점이 있다. 육체라는 굴레를 뒤집어쓴 이상 그들도 지친다.
실제로 병력을 갈아내는 인해전술로 적국의 고위 기사나 마법사를 잡아낸 사례는 꽤 많은 편이다.
······.
문득 아픈 기억이 떠올랐다.
‘미래’의 나도 마지막 순간엔 그렇게 죽었다. 밑도 끝도 없는 하믈 제국의 물량 공세에 휩쓸려서 말이다.
나는 고개를 털며 그때의 기억을 지웠다.
인해전술은 만성 인력 부족인 리오넬 왕국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쓸 마음도 없고.
병사 한 명을 사람이 아닌 서류상 숫자 1로 봐야 가능한 방법이다.
그러니까 결론.
적흥주와 은화주 연합의 7성 기사 중 하나를 상대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
“한 명은 폐하가 맡으실 겁니다.”
막사에 모인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이 내가 5성 마검사였던 시절, 왕세자 즉위식에서 샤를의 심상영역을 깨트리는 걸 실시간으로 목격했다.
한두 단계 위 강자를 1:1로 상대해 이기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기존의 전투 교리였지만, 그걸 몇 번이나 깨트렸던 나를 다들 규격 외로 평가하는 중이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폐하.”
그래도 걱정은 되는지 베르트가 조심스레 물었다.
나는 까딱 고개를 끄덕여줬다.
“병사들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라면 내가 직접 나서야겠죠. 그리고 이것도 쓸려고 입은 거 아니겠습니까.”
입고 있는 갑옷을 툭툭 쳤다.
다나르의 유적에서 얻은 미스릴 갑옷.
항마력이 예상보다 훨씬 뛰어났다. 마법은 물론이거니와 어지간한 오러도 거뜬히 견딘다. 나 말고 다른 6성 기사가 이걸 입고 싸워도 상당한 시간을 벌 수 있을 거다.
내가 유적을 발굴한 것을 아는 사람 중에도 거기서 나온 유물이 이 갑옷이라고 알고 있는 이들이 상당히 많을 정도.
“큼큼.”
줄리앙의 헛기침에 나에게 모였던 시선이 다시 그에게 향했다.
“사실 저를 비롯한 참모진은 폐하께서 직접 나서시는 상황은 최대한 피하고 싶었습니다.”
“으음······.”
기사들이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혔다.
그럴만했다.
나는 총사령관.
그것도 단순한 군의 총사령관이 아닌 리오넬 왕국의 국왕이다. 내가 전장에서 사망하면 그 여파가 어느 정도일지 쉬이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전장에서 폐하가 적군에게 노출되는 순간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참모들이 머리를 모았습니다.”
줄리앙의 말의 몇몇 기사가 눈을 크게 떴다.
“기사전이로군.”
청사자기사단장 갈라드가 답을 맞혔다.
“그렇습니다. 폐하께서 전장에 모습을 드러내시는 순간은 단 한 번, 바로 상대와 1:1 기사전을 벌이는 때입니다.”
***
아이언포지.
하믈 제국이 점령하고 있던 리오넬 왕국의 서북부에서 가장 많은 그레이스틸이 매장된 지역이다.
중요한 곳이지만 전략적 요충지는 아니다.
아이언포지를 둘러싼 주변 도로가 아주 잘 발달해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베링턴 요새 같은 경우는 좁은 협곡을 통과한 이후에야 적군이 요새에 닿을 수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원래부터 허허벌판은 아니었다.
본래는 산림이 우거진 산악 지형이었는데, 하믈 제국이 아이언포지 광산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싹 다 밀어버렸다.
그나마 방어하는 측이 언덕의 높은 곳을 선점할 수 있다는 것이 이점의 전부였다.
리오넬 왕국군이 선점한 언덕에서 하믈 제국군을 날카로운 눈으로 내려다 바라보는 사내가 한 명 있었다.
병장, 주바르 하인스.
과거 삼색 지팡이단에 의해 라드완 룬티아의 실험실에서 구출된 후, 죽을 자리를 찾아 떠돌아다녔던 그였다.
-제가! 에반 리오넬이! 반드시 우리의 자녀, 그 자녀의 자녀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왕국을 만들겠습니다.
남부 민란에도 동참했었던 주바르는 당시 에반의 외침에 영혼이 떨리는 느낌을 받았었다.
비록 자신의 아이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다른 아이들은 에반이 말했던 그런 세상을 살아갔으면 싶었다.
그래서 리오넬수호군이 되었고, 2년이 지난 현시점에서는 10명으로 이루어진 궁수 분대의 분대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만약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는다면, 하사로 진급하는 것도 문제없을 터였다.
“저, 저희가 이길 수 있겠지요? 때놈들 중에 7성 기사가 네, 넷이나 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멍청한 녀석! 왕세자 즉위식에서 국왕 폐하가 제국 황자의 심상영역을 깨트렸던 이야기를 못 들어봤냐!”
“그, 그거 진짜겠죠?”
“당연한 소리를!”
두려워하는 이병을 일병이 타박하는 소리가 들렸다.
주바르는 힐끔 그들을 바라봤다.
일병 역시 얼굴에 묻은 두려움을 전부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 역시 소문을 완전히 믿지는 않는 것 같았다.
‘당연한가.’
수많은 목격자가 있었지만, 왕도 바로나에 사는 이들이 전부였다. 일병과 이병은 왕도와는 멀리 떨어진 시골 출신.
반신반의할 만했다.
“진짜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벌써 2년 전 이야기다. 국왕 폐하시라면 그사이에 범인들이 상상하기 힘든 뛰어난 성취가 또 있으셨겠지.”
과묵한 병장, 주바르가 오래간만에 내뱉은 긴 문장들에 두 부하가 동시에 눈을 크게 떴다.
“주바르 병장님. 혹시 직접 보셨던 겁니까?”
주바르는 고개를 살짝 끄덕여줬다.
얼굴이 밝아진 일병이 이병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주바르 병장님의 말 들었지?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주바르 병장님만 잘 쫓아다녀. 사신도 피해 가는 남자라는 소문이 있는······.”
뿌우우우우─
전 군영에 울려 퍼진 고동 소리가 일병의 말을 끊었다.
곧 전투가 벌어질 거라는 신호.
주바르는 손에 쥔 활을 움켜쥐었다.
그때!
“어! 저기!”
“폐, 폐하다! 국왕 폐하다!”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하얀 백마를 탄 에반이 홀로 적군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사전! 기사전이다! 폐하가 기사전을 나서시려는 거야!”
***
기사전.
일기토라고 생각하면 된다.
전생에서도 제대로 된 무구를 갖춘 장수는 일개 병사를 압도했었다. 그들 간의 대결을 통해 승패를 가르려는 것이 허구 속 이야기만은 아니었다고 알고 있다.
마력 각성자가 존재하지 않는 전생도 그랬는데 현생은 어떠하겠나.
리오넬 왕국만 해도 지방 영주간의 대립이 있을 때, 전 병력이 서로 쾅 붙는 경우는 생각보다 별로 없다.
기사 간의 대결만으로도 승패는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3성 기사가 이끄는 백인대와 그냥 백인대가 맞붙으면 어느 쪽이 이길지는 동네 바보도 맞출 수 있다.
어차피 전 병력이 맞붙었어도 기사가 먼저 전멸당한 쪽이 지는 게 뻔하다면 기사전을 통해 전쟁의 승패를 가리려는 건 결코 비합리적인 일이 아니다.
물론, 그게 영지 단위를 넘어 국가 간 분쟁으로 오면 기사전만으로 전쟁의 승패가 결정되는 일은 없다.
거기다 보통 총사령관의 경지가 가장 높은 경우가 많기에 아래 단계 기사를 내보내 사기를 진작시키는 정도가 관례.
적흥주와 은화주, 두 주가 연합한 하믈 제국군의 지휘부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거다.
그런데.
내가 단독으로 튀어나왔다.
제국군의 진형이 동요하는 게 절로 느껴졌다. 나는 그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
“나는! 리오넬 왕국의 국왕, 에반 리오넬이다! 나의 검을 받아볼 용기를 지닌 기사가 있다면 누구든 앞으로 나와라!”
***
적흥주와 은화주.
하믈 제국의 두 주가 극적으로 연합을 맺고 아이언포지로 진격할 수 있었던 것은 두 주의 주목이 자신들이 밀던 황자가 황제감이 아니라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황위 계승 싸움에서 일찌감치 손을 털고 일단 중립을 선언한 적흥주와 은화주. 인접한 주의 관계가 대부분 그렇듯 그 두 곳 역시 원수지간이나 다름없는 사이였다.
하지만.
아이언포지를 리오넬 왕국에 뺏길 수 없다는 것에는 서로 의견 일치를 봤고, 각 주 병력의 절반이 넘게 동원돼 아이언포지를 되찾기 위한 연합군이 형성되었다.
그런 연합군의 지휘부가 에반이 던진 기사전이란 돌멩이로 인해 매우 어수선한 상태였다.
빨간 갑주를 입고 등에 붉은 대검을 걸친 기사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막사에 모인 이들을 한차례 노려보았다.
“내가 나간다.”
적흥주목의 아들, 7성 기사 레벤스였다.
그의 말에 호리호리한 체형에 팔이 긴 원숭이 같은 사내가 코웃음을 쳤다.
“헛소리. 내가 나가겠다.”
은화주목의 사위.
레벤스와 마찬가지로 7성 기사인 에르난.
두 사람이 서로를 노려보며 기 싸움을 펼쳤다.
“허······ 이것 참.”
“설마 에반 리오넬이 직접 기사전에 나설 줄이야.”
“대체 무슨 자신감이지?”
“숨기고 있는 수가 있는 건가.”
살얼음 같은 분위기 속에서도 느긋하게 대화를 나누는 두 기사. 레벤스와 에르난을 보조하는 적흥주와 은화주의 기사단장이었다.
둘 역시 원수 같은 사이지만, 이래저래 마주칠 일이 많아 그래도 정상적인 대화를 나눌 정도는 되었다.
쑥덕쑥덕 이야기를 나누던 두 기사단장.
그들은 같은 결론을 내렸다.
기사전을 피할 이유가 없다는 것.
5성 마검사 시절, 19황자가 펼쳤던 심상영역을 깨트렸다는 헛소문은 고려할 가치도 못 되었다.
만약 진실이더라도 리오넬 왕국의 기물을 이용한 것이 분명할 테니까.
7성 기사라는 초월자의 자리에 오른 그들이었다. 여섯 개의 별조차 품지 못한 이가 8성 기사의 심상영역을 자력으로 깨트린다? 그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숨겨둔 수가 있긴 할 거다.
그러나 그게 무엇이든 7성 기사를 해할 수준은 못 될 거다. 기껏해야 적당히 버티다 도망갈 정도의 수준.
리스크는 적은데 리턴은?
에반 리오넬의 목숨을 취한다면 그 순간 전쟁은 깔끔하게 끝난다. 기세를 몰아 리오넬 왕국을 집어삼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그들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기사단장들과는 다른 생각을 하는 노기사도 한 명 있었다.
막사에 몇 없는 5성 기사 중 한 명.
‘느낌이 좋지 않아.’
에르난이 은화주목의 눈에 들기 전부터 그와 함께했던 노기사는 감이 좋았다. 나설 자리와 나서지 말아야 할 자리를 기가 막히게 알았다.
늙었다는 것은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이였다.
고심하던 그가 레벤스와 대치하고 있던 에르난의 귀에 작게 소곤거렸다.
딱 한 마디면 됐다.
“에르난 님, 감이 좋지 않습니다.”
에르난이 힐끔 노기사를 바라보더니 이맛살을 구겼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에반과의 기사전에 나서기로 마음먹었던 그였다.
전장에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한다면 은화주목의 심기가 불편할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거기다 자신은 주목의 직계인 레벤스와 다르게 사위일 뿐이다.
‘어쩌지.’
에르난의 고심이 깊어졌다.
***
체감상 두 시간은 왕국군과 제국군 사이에 서 있었던 것 같다.
설마 제국군 쪽에서 기사전을 거부하려는 건가 싶은 생각까지 들 무렵. 대검을 등에 멘 붉은 갑주를 입은 사내가 보였다.
‘레벤스인가.’
나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흑마를 타고 지근거리까지 온 그가 말을 제국군 쪽으로 돌려보냈다. 나 또한 타고 있던 백마를 왕국군으로 보냈다.
승리하지 않고서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각오를 보여주는 것.
기사전은 말에서 내린 두 기사 간의 생사결. 현생에서 기사전을 일기토라 하지 않는 이유였다.
뭐, 기사가 도망치면 말보다 빠르게 도망칠 수 있지 않냐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만.
“그 갑옷이 주제도 모르고 7성 기사에게 기사전을 신청한 자신감의 근원이었나? 체구도 나랑 비슷하고 네놈의 피로 염색해서 내가 입고 다니면 딱 좋겠군.”
레벤스가 눈은 있는지 내 갑옷을 알아봤다.
나는 피식 웃음으로 대꾸를 대신했다.
전생에서도 내 손에 생을 마감했던 녀석. 이번에는 놈이 과연 운명을 벗어날 수 있을지, 검으로 묻는 게 예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