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51)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151화(151/203)
151
<151>
흑기사단의 비공정, 흑염룡의 단장실.
『충격! 소국에 대패한 제국군』
『궤멸적인 손해를 본 적흥주와 은화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나?』
『기사전에서 소국의 우두머리에게 끔찍하게 살해당한 적흥주의 적자, 레벤스 하이난』
『설명할 수 없는 에반 리오넬의 무력. 제국의 마법사와 신관들, 그는 마족의 계약자가 확실하다고 단언』
“휘유, 난리네요, 난리.”
소파에 앉아 신문을 뒤적이던 클라우가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벽에 걸린 하믈 제국 전도를 바라보던 샤를이 고개를 돌리지 않고 입을 열었다.
“머저리가 천지군. 클라우, 너조차 리오넬 왕국이 압승할 거라는 예상을 했는데 말이야.”
“하핫, 너조차라니요. 황자님도 리오넬 왕국의 승리를 점치시지 않으셨습니까.”
“우리가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리오넬 왕국군과 칸족의 침략. 곧바로 이어진 황제의 사망.
제국은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흑기사단만 해도 전혀 상반되는 임무가 동시에 내려왔었다.
하나, 리오넬 왕국이 아이언포지를 점령하기 전, 먼저 도착해 그곳을 지켜라.
둘, 벽람주로 향하는 칸족을 막아라.
흑기사단은 제삼의 선택을 했다.
전부 알겠다 답한 뒤 자취를 감춰버린 것. 정확히는 샤를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녹원주에서 휴가를 즐겼다.
샤를은 왼쪽 눈에 손을 살짝 가져갔다.
에반의 왕세자 즉위식에서 당했던 상처가 만져졌다.
그와 흑기사단이 리오넬 왕국을 막기 위해 적흥주와 은화주를 지원했다면 신문의 내용들은 달라져 있을 것이다.
“아쉬우십니까?”
클라우의 물음.
샤를은 얼굴에서 손을 뗐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사사로운 감정은 잠시 내려놓으셔야 합니다. 누군가의 손짓에 이리저리 움직이는 장기말이 되셔선 안 됩니다.”
“네 말대로 움직이는 것도 장기말처럼 움직이는 것 아닌가?”
“어······ 저와 황자님은 그러니까······ 한 몸······ 에잇, 이렇게 말하니까 좀 그렇네요. 그래! 운명공동체죠.”
“하여간 말은 잘하는군.”
코웃음 친 샤를.
-리오넬 왕국이든, 칸족이든 저희가 피를 흘리는 건 남 좋은 일만 해주는 겁니다. 제국의 침략자들을 처단한 위대한 장군, 샤를 한 하믈 황자 전하! 그런 허명 정도 얻겠지요.
클라우의 그런 설득이 아니었어도, 그는 전쟁에 개입할 생각이 없었다. 그 정도 머리는 있었다.
고개를 털어 머릿속에서 에반의 얼굴을 지워낸 샤를은 다시 하믈 제국 전도에 집중했다.
비공정이 향하고 있는 황원주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제국인들이 황위를 계승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수군대는 이들이 세 명.
1황자, 7황자, 11황녀.
현재, 그중 유일한 여성인 11황녀의 세력이 가장 뒤떨어진 상태였다.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있었다.
하나, 황제가 남긴 유서.
둘, 리오넬 왕국.
먼저, 유서.
그 속에는 1황자에게 황위를 맡긴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전국새가 찍혀있진 않지만, 그래도 그건 작지 않은 파급력을 불러일으켰다. 어느 곳에나 전통을 따지는 고루한 이들은 있기 마련.
덕분에 1황자는 상당한 힘을 얻었다.
만약, 클라우가 전국새를 훔치지만 않았어도 다른 두 명보다 훨씬 앞서나갔을 것이다.
그다음, 리오넬 왕국.
그레이스틸 광산 개발을 주도했던 황원주의 병력이 움직였다면 제국이 다시 아이언포지를 탈환했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웃기지도 않는 주장이긴 했다.
만약 그랬다면 11황녀는 지금쯤 이 세상 사람이 아닐 확률이 높았다.
그 밖에도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11황녀를 빼고 1황자와 7황자의 이파전이라고 봐야 하지 않냐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겠지.’
샤를은 그런 11황녀에게 손을 내밀러 가는 중이었다. 고양이 장갑을 뒤집어쓴 흉물스러운 손을 말이다.
그는 힐끔 리오넬 왕국이 점령 중인 지역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잠시 승리를 즐기고 있어라, 에반 리오넬.’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 먼저였다.
복수는 에반 리오넬, 그가 가장 찬란하게 빛나려는 순간에 하는 것이 맞았다.
***
아이언포지 방어전 이후.
잠시 정비의 시간을 가진 왕국군은 차근차근 하믈 제국에게 빼앗겼던 서북부를 점령해나갔다.
그리고.
지금 나는 비공정, 블랙와이번의 갑판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장성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천하장성.
하믈 제국의 건국 이래 끊임없이 증축되고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장성. 서북부를 탈환하게 위해서 넘었던 허술했던 국경과는 비교가 민망했다.
지금은 넘을 수 없다.
빼앗긴 곳을 되찾는 것과 새로운 곳을 점령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지금 왕국의 역량으로는 되찾은 지역을 안정시키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치는 게 현실이었다.
“저건 볼 때마다 엄청나군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증축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내 옆에 다가온 줄리앙이 말을 건네왔다.
나는 천하장성에서 시선을 떼고 그를 바라봤다.
“고생했어. 왕국으로 돌아가면, 줄리앙 자작이라 불리겠군.”
“부끄럽습니다.”
말과 표정이 달랐다.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전혀 부끄러운 표정이 아니었다.
“참 솔직하지 못해. 아이라 자작은 자네의 어떤 면에 반했나 몰라.”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저 같은 사람에게 마음을 줄 여자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이제야 좀 부끄러운 얼굴.
1년 넘게 세계 구석구석을 붙어 다녔던 아이라와 줄리앙. 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던 걸로 알고 있다.
배를 타던 중 태풍을 만나는 바람에 단둘이 무인도에 갇힌 적도 있다고. 아마 거기서······.
“이제, 서북부 탈환 이후에 계획을 공유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줄리앙의 기습적인 질문.
나는 서둘러 애먼 상상을 머릿속에서 지운 후, 그의 물음에 답했다.
“당분간은 하믈 제국으로부터 되찾은 서북부가 안정될 때까지 꼼짝도 못하겠지. 지금 우리가 이렇게 블랙와이번에서 하믈 제국의 천하장성을 보고 있는 걸 클리앙과 아이라가 본다면 쓸데없는 돈 낭비라며 펄펄 뛸걸?”
“확실히······ 하지만! 재정의 문제는 금방 해결되겠지요. 마력초전도체 연구단지, 이자벨 소장의 연구실, 그리고 마력학부의 지하실. 저도 접근할 수 없는 극비지역인 그곳에 자금 문제를 해결한 방안이 있지 않으십니까?”
줄리앙의 눈이 반짝였다.
그조차 쉬이 접근할 수 없는 두 곳이 어지간히 궁금한 모양이었다.
“저도 아이라 자작을 따라다니며 에이츠상회의 일을 배우면서 자금의 흐름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믈 제국이 막대한 배상금을 제시하지 않는 한, 이번 전쟁으로 인해 소모된 왕국의 재정은 복구할 길이 없습니다. 1년만 지나도 왕국인이 먹을 곡식을 빼앗아 칸족에게 건네야 할 일이 벌어지겠지요.”
줄리앙이 꽤 근접하게 계산했다.
정확히는 1년 3개월.
“폐하가 아무런 계산도 없이 칸족과 그런 약속을 하시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제게도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줄리앙, 제국이라 불리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
그의 의문과 별 관계가 없어 보이는 나의 질문. 그래도 줄리앙은 성의를 다해 답해왔다.
“수많은 요건을 갖추어야 하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둘을 꼽아보면 역시 광활한 영토와 강력한 군사력이겠지요.”
“현재 리오넬 왕국은? 냉정하게.”
“그중 어느 하나 갖추지 못했습니다. 영토든, 군사력이든, 최소한 지금의 세 배 정도는 되어야 제국이라 칭해도 타국에서 비웃지 않을 겁니다.”
“왕국이 제국이라 불릴 날이 올 것 같아?”
움찔한 표정의 줄리앙.
하늘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던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폐하의 대에 기반을 닦아놓으신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내 대에선 안 된다는 말인가? 조금 서운한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유를 알려줄 수 있나?”
“인구입니다. 리오넬 왕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제국에 걸맞은 인구수를 갖추기 위해선 최소한 두 세대는 필요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인구는 줄리앙이 꼽았던 제국 두 요소 중 하나인 강력한 군사력과도 깊은 관련이 있었다.
인구가 만 명의 국가보다 백만 명인 국가에서 초고위 마력 각성자가 나올 확률이 월등히 높은 건 당연한 일.
하지만 나는 빙긋 웃었다.
“줄리앙, 아이멘 제국이 왕국이던 시절, 지금의 왕국과 인구수가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았던 것 알아?”
내 말에 그가 눈을 부릅떴다.
인구수가 부족해도 군사력을 끌어올릴 방법이 있었다.
바로 압도적인 기술력.
“설마 비공정에 버금가는 무언가를······.”
이 하늘 위에서 우리 말을 엿들 첩자는 없겠지만, 줄리앙이 주위를 한차례 둘러보며 말을 아꼈다.
나는 시선을 돌려 천하장성을 바라봤다.
장벽을 일시에 무너트리고, 제국의 비공정을 포격하는 왕국의 타이탄이 머릿속에 절로 그려졌다.
한 명의 기사가 동급의 기사를 열, 스물을 상대하게 만드는 타이탄.
쿵! 쿵! 쿵!
강철의 거인들이 전장을 울리는 발걸음이 귓가에 선명히 들려왔다.
***
전쟁이 사실상 종결되었다.
협상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암묵적인 종전이었다.
지금 하믈 제국에는 정전 협상 같은 큰 건을 책임질 사람이 없었다.
사실 황제가 죽기 직전 황태자로 지목된 1황자나 공작과 대공 사이의 직위인 적흥주와 은화주의 주목이 못 할 것도 없지만······ 여러 정치적 사유로 그들은 두 손 든 상태.
놈들이 우리에게 패한 것을 인정하는 것.
그걸 하믈 제국을 대표해 인정하는 것은 엄청난 정치적 타격이었다.
그런고로, 이제 북부에서 내가 있어야 할 필요성이 딱히 없어졌다.
돌아갈 때가 되었다는 말.
나는 서북부에 배치된 부대들을 순방한 뒤 노야 부족을 찾았다.
처음 그들을 찾아갔을 때는 추운 겨울이었는데, 벌써 봄. 아직 새싹이 막 얼굴을 내민 상태지만, 한참 남쪽인 왕국에는 벌써 봄꽃이 폈을 거다.
((크하하하! 어서 오게, 사위.))
얼굴에 못 보던 흉터가 몇 개 생긴 누르갈이 나를 반갑게 맞았다.
칸족은 얼마 전, 우리보다 한참 늦게 벽람주의 동부 지역을 점령했다. 하늘에서 마력포를 쏘아대는 비공정에 단단히 고생한 것 같았다.
((이번에 전쟁으로 다른 부족장들도 확실히 깨달았네. 이렇게 흩어져 전통을 고수하다가는 칸족이 멸절할 거란 것을 말일세.))
누르갈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민이 많아 보였다.
이런저런 조언을 해줬다.
기술! 마공학! 전사나 주술사의 자질이 없는 이들을 천대하지 말아야 한다. 뭐, 그런 것들.
솔직히 잘 될지는 모르겠다.
애초에 왕국에서도 제대로 안 되고 있던 일. 마력을 다루지 못하는 마공학자들이 그나마 대우를 받기 시작한 것이 근래였다.
어쨌든 그 결과.
((라누아 누님! 비공정이 뜨고 있어요!))
((자르얀! 조금 소리 좀 낮춰주겠니? 조금 창피해.))
2왕비가 될 라누아 외에도 칸족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유약한 인상의 남자아이를 혹으로 달고 오게 되었다.
라누아의 동생, 자르얀.
나도 처음 본 이였다.
-자르얀이라고 하네. 어리지만, 노야 부족에서 가장 머리가 좋네. 사절 놈이랑 붙어 다니더니 리오넬어를 능숙하게 할 정도로 말일세.
서너 달 만에 리오넬어를 익힐 정도면 확실히 모자란 머리는 아니었다.
-자네 곁에서 많은 걸 보고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네. 데려가 주게. 도중에 쓸모가 없다 생각되면 그냥 그곳에서 하급 관리로 살게 하면 되네.
내가 누르갈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자르얀을 쳐다보고 있자 라누아가 오해를 한 것 같았다.
“소란스러워 죄, 죄송. 폐하. 자르얀, 너도.”
단기간에 리오넬어를 배운 그녀가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죄송합니다. 폐하. 자중하겠습니다. 어떻게 이런 커다란 배가 뜨는지 너무 궁금해서 저도 모르게 그만······.”
외국인이 그렇게 어려워하는 리오넬어의 존댓말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걸 보면 정말 머리는 좋은 것 같았다.
“그대들 탓이 아니다. 마음껏 구경하도록.”
그런데.
지금 나는 자르얀을 챙기기에 조금 벅찬 상태였다.
왕국에서 기다리고 있을 레이나. 그녀가 라누아가 곧 만난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자르얀에 관한 생각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쌔앵 불어온 바람에 살짝 몸이 떨렸다.
어째 서북부 탈환을 위해 국경을 넘을 때보다 더 긴장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