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56)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156화(156/203)
156
<156>
바깥 일정을 마치고 왕궁으로 돌아왔다.
집무실 소파에 눕듯이 앉아 슈이츠의 병원에서 만났던 마리를 떠올렸다.
‘신이 점지한 아이라······.’
마리를 처음 본 것도 아닌데 왜 갑자기 그런 알림창이 나타났을까?
금방 그럴듯한 가설이 나왔다.
업적, ‘잃어버린 신을 찾아서’를 달성한 이후 마리를 만난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렇다면 마리를 점지한 신이 다나르 말고 또 있겠는가.
그렇다면 무엇을 점지했을까?
‘성녀이려나······.’
좋네.
성녀 마리.
신수 해리온.
다나르시여, 당신은 전부 계획이 있으셨군요. 혹시 교황과 추기경, 그 밑의 대사제들도 전부 점지해두셨습니까?
하늘 너머에 있을 그의 의사를 물었다.
들려올 리 없는 대답을 기다리며 노을 진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하암.”
갑자기 피곤이 몰려들었다.
눈꺼풀이 너무 무거웠다.
안 그래도 잠이 부족했는데, 귀염둥이를 추적할 탐지기를 만드느라 밤을 새운 여파인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스르륵 눈이 감겼다.
.
.
.
“······ 해리, 거긴 살살 만져야 해.”
“냐앙, 냐앙.”
“맞아, 맞아. 여기 아가가 있단다.”
레이나의 목소리.
깜박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따뜻한 담요의 촉감이 느껴졌다.
‘레이나가 덮어준 건가.’
확실히 왕궁 안이라 그런지 긴장이 풀어졌다.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나뭇잎 바스락거리는 소리에도 잠에서 깨어났었다.
나는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노을이 졌던 창밖은 깜깜해진 상태.
“왕자님일까? 공주님일까? 해리 네 생각은 어떠니?”
“냐앙!”
“왕자님이라고?”
“냐앙, 냐앙!”
“정말이려나.”
레이나가 그녀의 배에 앞발을 갖다 댄 해리와 놀아주고 있었다. 마음이 절로 평온해지는 그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며 힐링하는 시간을 가졌다.
“응? 폐하! 언제 일어나셨나요?”
레이나가 내가 눈을 뜬 것을 발견했다.
“냐앙! 냐앙! 냐아앗!”
그녀의 품에서 벗어나 내게 달려든 해리가 담요에 매달리다 미끄러졌다.
냉큼 녀석이 땅에 부닥치기 전에 낚아챘다.
“조심해, 이 녀석아.”
“냐앙!”
알아듣는 건지 대답은 잘한다.
발이 두 개 더 달린 것 빼면 영락없는 새끼고양이.
조심스럽게 해리를 소파 옆에 내려놓았다.
“냐앙, 냐앙!”
바로 내 무릎 위에 폴짝 뛰어 올라와 몸을 말았다.
이 녀석이 과연 왕국을 수호하는 늠름한 신수로 성장할 수 있을지 다시 한번 의문이 들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레이나를 바라봤다.
“왔으면 깨우지, 왜 기다리고 있었어.”
“많이 피곤하신 것 같아 깨우지 않았습니다. 어제 침소에도 들르지 않으시고,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오늘 시종장이 급히 휴가를 썼다고 들었습니다.”
“아, 어제 말이지······.”
지드래곤이 집을 나간 이야기를 요약해서 알려주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폐하가 왕궁을 비운 사이 챙겨주지 못한 저의 불찰입니다. 저라도 가끔 에메랄드 정원을 방문했어야 하는데 ······.”
나는 고개를 저었다.
레이나의 잘못은 하나도 없었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아야 할 지드래곤의 특성상 그녀가 홀로 정원을 산책해야 녀석이 자신이 깨어났다며 얼굴을 내밀 수 있다.
임신한 왕비를 홀로 정원을 산책하게 할 시녀는 어디에도 없다.
······.
문득, 지상의 공기를 맡고 싶을 때도 눈치를 보며 고개를 빼꼼 내밀었을 지드래곤이 생각나 가슴이 먹먹해졌다.
역시 자연에서 생활하게 내버려 두는 것이 맞는 걸까? 알폰소가 녀석을 데려오면 그때 진지한 대화를 한번 해봐야겠다.
***
에메랄드궁의 정원을 벗어났던 지드래곤은 사실 바로 왕도를 떠나지 않았었다. 왕도 주변을 얼씬거렸다.
혹시라도 자신이 사라진 것을 바로 눈치채고 달려오면 못 이긴 척 다시 에메랄드궁의 정원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오······.’
해가 뜨고 다시 질 때까지 에반이 자신을 찾으러 오지 않았다. 지드래곤은 힘없는 몸짓으로 왕도를 떠났다.
왕도를 벗어난 녀석은 고민했다.
‘그오?’
어디로 가지?
한참을 고민하던 지드래곤이 향한 것은 서쪽. 결국 돌고 돌아 고향이었다.
원래 살고 있던 곳으로 갈 생각이었다.
열차보다 빠른 속도로 땅굴을 팔 수 있는 지드래곤은 단 하루 만에 검은 모루 부족의 마을의 광산까지 이동했다.
“로틴! 방금 갱도가 울린 것 같지 않아?”
“너도 느꼈어, 하스텐?”
예민한 지드래곤의 감각이 드워프들의 대화를 잡아냈다. 녀석은 잠시 땅굴을 파는 걸 멈췄다.
“착각인가?”
“아냐, 확실히 느꼈었어.”
자신의 모습을 드워프에게 들킨다.
에반에게 소식이 들어간다.
그가 자신을 찾으러 온다.
지드래곤의 머릿속이 분주해졌다.
들키고 싶은데 들키면 안 된다.
그런 모순된 생각에 녀석은 그저 숨을 죽이고 드워프들의 대화를 도청했다.
“마을 어른들한테 보고해야겠어.”
“그러는 게 좋겠지?”
“일단 나가자. 위험해.”
지드래곤은 ‘최대한’ 안 들키고 생활하기로 마음먹었다.
최상급 마정석이 나오는 광산 근처라 그런지 맛있는 냄새가 솔솔 났다.
꾸르륵.
잊고 있던 식욕이 돌았다.
‘그오······.’
하지만 드워프들이 채굴하던 마정석을 먹으면 그들이 슬퍼할 게 뻔했다. 지드래곤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돌렸다.
폐광 쪽에도 먹을 것들이 꽤 있었던 것이 기억났다.
그렇게 폐광에 도착한 지드래곤.
드워프들조차 채굴을 포기한 깊숙한 곳에 있는 철광석을 찾아 오드득, 오드득 씹어먹었다.
‘그오?’
맛이 없었다.
에반이 ‘우리 귀염둥이’라고 부르며 따뜻한 눈으로 던져주던 철광석과는 뭔가 달랐다.
지드래곤은 금방 식욕을 잃었다. 녀석은 몸을 돌돌 말아 목에 멘 나비넥타이에 얼굴을 비볐다.
-오! 우리 귀염둥이, 아주 멋있는데? 거대화를 해도 견딜 수 있으니까 위험한 일이 생기면 안심하고 거대화하면 돼, 알았지?
칠미호를 가볍게 무찌른 후 에반이 상이라며 목에 걸어줬던 것. 탈피할 때 조금 거슬렸었지만, 소중한 물건이다.
‘그오······.’
지드래곤은 춥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 그렇게 검은 모루 부족의 폐광에서 하룻밤이 지나갔다.
그리고 다음 날.
‘그오?!’
지드래곤의 감각에 정신이 번쩍 뜨게 하는 것이 포착되었다.
화염루비.
에반이 겨울철 가끔 주던 특식 중의 특식.
지드래곤은 슬렁슬렁 움직여 화염루비가 있는 지상으로 다가갔다.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그, 그오!”
큼직한 화염루비로 저글링을 하는 알폰소가 있었다. 지드래곤을 발견한 그가 씨익 미소 지었다.
“후후후.”
“그, 그오!”
“어떻게 알았긴. 네가 갈 곳이 뻔하지.”
“그오오오! 그오!”
지드래곤은 결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따라가지 않겠다는 필사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
“하, 이녀석. 단단히 삐졌네.”
볼을 긁적이며 화염루비를 던졌다 낚아챘다를 반복하는 알폰소. 지드래곤의 고개가 그에 맞춰 끄덕거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와의 재회 후 지드래곤은 식욕이 확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알폰소가 피식 웃으며 화염루비를 던져줬다.
“옜다, 일단 다시 도망가지 말고 이거나 먹어라.”
“그오!”
날름 화염루비를 낚아챈 지드래곤이 오도독, 오도독 맛있게 씹어먹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알폰소.
‘저 녀석, 분명히 왕도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하는 짓이 어렸을 적 그와 똑같았다.
막둥이로 오냐오냐 자랐던 어린 시절, 크게 혼나고 가출을 했던 적이 있었다.
괜히 자신을 찾아줬으면 하는 마음에 멀리 안 가고 저택 뒤편의 동산에 숨어있었다. 어른들이 자신을 찾아주길 기다리면서 말이다.
‘정말 사라질 거였으면 아예 왕국 밖으로 벗어났겠지.’
알폰소는 다 알겠다는 표정으로 지드래곤을 바라보았다.
오도독, 오도독. 화염루비를 맛있게 먹던 지드래곤은 그런 알폰소의 시선을 느끼고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오오······ 그오.”
“알았다. 왕도로 안 돌아갈 거라 그거지?”
“그오, 그오.”
“좋아. 그럼 이제 잘 지내고 있는 것도 확인했으니 난 간다.”
“그, 그오?”
“그럼 진짜지, 가짜겠냐. 잘 살아라. 국왕 폐하에게는 내가 잘 전해줄게. 간다!”
“그오!”
지드래곤은 도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비공정에 탑승한 알폰소가 손을 흔들고 사라졌다.
‘그오, 그오?’
정말로 가버렸다. 지드래곤은 멀어지는 비공정이 감각에서 사라질 때까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알폰소가 사라지고.
오도독.
지드래곤은 입안의 화염루비를 씹었다.
조금 전, 맛나게 먹고 있던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맛이 없었다.
***
아침 일찍 메어튼 백작가에서 기별을 보내왔다. 아이라의 본가 말이다.
발신인은 알폰소.
지드래곤을 찾았단다.
일주일의 시간을 달라더니 이틀 만에 찾아냈다. 제법 탐정의 자질이 있었다.
하여튼 그래서.
나는 모든 일을 내팽개치고 비공정, 블랙와이번에 몸을 실었다.
“이렇게 갑자기 무슨 일로 서부에 가시는 겁니까? 저를 동행하신 연유를 여쭤봐도 괜찮겠습니까?”
내가 끌고 온 줄리앙이 조심스레 물었다.
“아주 예전에 내게 7성 소환사인 아미카 아르야를 어떻게 상대했냐고 물어본 적 있었지?”
“그렇습니다. 기회가 되면 알려주신다고 하셨는데, 2년이 넘도록 아무 말씀 없으시길래 잊으신 줄 알았습니다.”
직접 보여주려는 찰나 귀염둥이가 긴 수면에 들어가서 그랬다.
“그걸 이제 알려주려고.”
“아······.”
고개를 끄덕이는 줄리앙.
그가 왕궁이 있는 쪽을 힐끔 바라보았다.
왕실기무대에 잔뜩 남기고 온 업무가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걱정하지 마. 밀로아 백작이 어떤 여자인데. 오늘 하루 줄리앙이 빠져도 문제없어.”
실제로 그가 없을때도 아주 잘 돌아갔었다.
“아, 네.”
“그리고 가는 길에 줄리앙과 의논하고 싶은 것도 있어.”
“의논하고 싶은 것 말씀이십니까?”
“슬슬 다나르 교단을 왕국민에게 알려야 할 시기가 된 것 같아서 말이야.”
다나르라는 말에 내 가슴팍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해리가 고개를 쏙 내밀었다.
“냐앙!”
어쩐 일인지 오늘은 레이나 곁을 떠나 내 옆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하기에 어쩔 수 없이 데려왔다.
“······ 다나르 교단을 왜 국교로 삼으려고 하시는지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줄리앙의 물음에 딱히 할 말이 궁색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답변이 어려운 질문을 드린 것 같군요. 그럼 질문을 바꾸겠습니다. 다나르 교단이 국교가 되어 세가 커지면 왕국에 어떤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날 거로 예측하고 계시는지요?”
아, 이건 답해줄 수 있지.
나는 가슴팍에서 꼬물거리는 해리를 가리켰다.
“이 녀석이 지금은 새끼고양이 같지만, 다나르의 신수야. 다나르의 교단이 커지면 이녀석도 성장해서 아르야의 에트림이나, 하믈 제국의 아우렐리스처럼 우리 리오넬 왕국을 지켜주는 신수가 될 테지.”
“냐앙!”
가만히 있어 이 녀석아.
줄리앙이 해리를 뚫어져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그······ 신수라고 꼭 강대한 힘을 지닌 건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줄리앙은 이 녀석의 성체 모습을 못 봐서 그래.”
나는 유적에서 보았던 해리의 성체 모습을 떠올렸다.
포효하던 사자가 연상되는 강인한 모습.
약할 리가 없다.
팔두룡 에트림의 머리를 뜯어버리고, 황금룡 아우렐리스의 날개를 찢어버릴 정도로 강대한 힘을 지니고 있을 터.
······ 그렇지?
“냐앙!”
조금, 자신이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