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59)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159화(159/203)
159
<159>
왕도 바로나.
한 청년이 빈민가로 이어지는 골목에 들어섰다. 멈칫, 발걸음을 멈춘 그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의 이름은 리코.
“굉장히······ 달라졌네.”
길을 잘못 들어선 줄 알았다. 그가 기억하던 빈민가보다 훨씬 깨끗했다.
거의 햇빛이 들지 않는 위치라 창고 곰팡내가 느껴지긴 했지만, 코가 썩을 것 같은 악취는 흘러나오지 않았다. 누군가가 남긴 구토 흔적과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강아지만 한 쥐들도 보이지 않았다.
리코의 머릿속 가장 오래된 기억은 그런 빈민가의 골목에서 열병으로 쓰러진 자신에게 다가오는 노신관의 인자한 얼굴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신성력을 자각한 리코.
만신전의 본산이 있는 서대륙의 신성 도시 바르티아에서 수학하다 오랜 항해 끝에 고국으로 돌아온 참이었다.
그를 거두었던 노신관의 삶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소식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아직 늦지 않았겠지······.”
리코는 멈췄던 발을 다시 움직였다.
빈민가 내부로 진입할수록 자신의 기억과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 실감 났다.
‘새로운 국왕 폐하 덕분이겠지?’
기본적으로 만신전에 등록된 신관이 되는 순간부터 국적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는 게 사실이지만, 속세의 모든 것을 털어버리는 건 아니다.
리코의 출신이 리오넬 왕국이란 사실은 그가 죽을 때까지 안고 가야 하는 지문 같은 것이었다.
리코는 리오넬 왕국의 발전을 이끄는 에반을 꽤 존경하고 있었다. 그런 마음이 빈민가의 거리를 걸을수록 더욱더 샘솟았다.
중간중간 보이는 빈민가 아이들의 눈이 빛나고 있었고, 어른들의 눈에는 희망이 담겨있었다. 빈민가를 순찰하는 3인 1조의 병사들도 보였다.
그가 신성 도시 바르티아로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들.
“어? 리코? 너, 리코 맞지?”
누군가 크게 외쳤다. 리코는 자연스레 발걸음을 멈추고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병사 중 하나가 동료들에게 뭐라 말하더니 그에게 달려왔다.
‘누구지?’
투구 탓에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나야, 나. 못 알아보겠어?”
병사가 수북한 턱수염을 살짝 들어 올렸다. 지저분하게 찢어진 흉터가 보였다.
“랄프? 진짜 랄프야?”
리코가 신성력을 자각하게 된 계기를 준 친우였다. 삐쩍 말랐던 어린 시절과 전혀 달라진 모습이었다.
“상상도 못 했어.”
“하핫, 내가 좀 많이 달라지긴 했지.”
랄프가 큼직한 이두박근을 보이며 호탕하게 웃었다.
“너는 어릴 적 그대로네. 바르티아에서 이제 돌아온 거야? 이유는······ 신관님 때문이겠지?”
“그래.”
“같이 가자.”
리코는 멀리서 자신들을 지켜보는 병사들을 슬쩍 바라봤다.
“그래도 돼?”
“그럼. 안 그래도 교대하고 복귀하는 길이었어. 신관님한테 잠시 들렀다가 돌아간다고 하면 문제없어. 잠깐만 기다려 봐.”
멀뚱멀뚱 기다리고 있는 동료들에게 간 랄프. 그의 말을 들은 그들이 리코를 한 번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등을 돌렸다.
“어서 가자. 안 그래도 신관님이 리코, 너를 꼭 보고 싶다고 하셨어.”
리코는 랄프와 함께 그들이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곳으로 이동했다.
“많이 변했지?”
“어. 처음 항구에 도착했을 때부터 느꼈지만, 여기는 정말······ 내가 떠날 때와는 완전히 달라졌네.”
“다 국왕 폐하 덕분이지.”
랄프의 표정에 에반을 향한 존경심이 가득 묻어있었다.
“나만 해도 붉은별열병이 한창 기승을 부릴 때 말이야······.”
랄프가 에반이 그동안 이룬 업적을 줄줄이 읊기 시작했다. 리코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묵묵히 그의 말을 들었다.
누군가의 말을 귀담아듣는 것은 어느 신을 모시는지를 떠나 신관의 기본 자질이었다.
에반의 굵직한 업적들은 대부분 고국으로 돌아오는 배편에서부터 지겹도록 들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리코가 처음 듣는 이야기들도 많았다.
갈 곳 없는 아이들을 위한 보육원 신설.
오물 처리를 위한 하수도 정비.
빈민가 범죄자들의 일망타진.
그 외 기타 등등.
“이번에 왕국이 서북부를 탈환할 때 나도 전장에 있었잖아. 너도 폐하가 제국의 7성 기사를 단칼에 베는 걸 봤어야 하는데. 신성력을 발현하기 전에는 너도 기사가 꿈이었잖아.”
“서북부 탈환에 참전했었다고?”
가만히 듣기만 하던 리코가 깜짝 놀라며 반문했다.
“왕국의 병사라면 대부분 참전했었지. 내가 서북부 탈환 작전이 시작된 새벽에도 눈이 펑펑 내리는 베링턴 요새의 성벽 위에서 경계 임무를 서고 있었잖아. 칸족이 언제 쳐들어오나 초조한 와중에 갑자기 요새의 비공정들이 일제히 떠오르더니 서북부를 향해 날아가는데! 와, 진짜 다시 생각해도 소름 돋네.”
그렇게 쉴새 없이 이어지는 랄프의 말. 리코는 싫은 내색 없이 들으며 부지런히 발을 움직였다.
어느새 익숙한 골목에 도착했다. 리코가 어린 시절 누비던 곳이었다.
한데 있어야 할 건물이 없었다.
다 쓰러져가는 판자 더미로 지어진 보육원이 아닌, 제대로 된 자재로 만들어진 2층 건물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설마 저 건물이?”
랄프가 씩 미소 지었다.
“맞아. 너도 알다시피 신관님은 모시는 신이 없어 별다른 지원을 못 받았잖아. 그런데 국왕 폐하께서 즉위하시고 빈민가의 보육원들에 대대적인 지원이 이루어졌어. 들어가자.”
똑똑, 똑똑.
“누구세요!”
여자아이가 문을 살짝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소녀에서 숙녀로 가는 과도기에 있는, 주근깨가 귀여운 아이였다.
“앗! 랄프 아저씨! 또 오셨어요?”
“자니! 내가 아저씨라고 부르지 말랬지!”
“옆의 분은 누구······?”
“인사해. 리코라고 해. 들어봤지?”
“앗! 신관님이 항상 말했던 그분? 우리 보육원이 배출한 최고의 인재? 안 그래도 신관님이 오늘 반가운 손님이 올 것 같다고 하셨는데 정말 기가 막히네요.”
“시끄럽고, 신관님은? 안에 계시지?”
“네. 들어오세요.”
리코는 그녀의 안내를 받아 2층으로 올라갔다.
“신관님. 아침에 말씀하셨던 반가운 손님이 찾아오셨어요.”
“······ 들여보내려무나.”
기운이 쇠한 목소리.
-함께 가자꾸나.
죽어가던 자신을 들쳐메던 노신관의 그 목소리가 겹쳐 들린 리코는 마음 한편이 시큰거렸다.
소녀가 천천히 문을 열었다.
병색이 완연한 노신관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침대에 누워있었다.
“정말 다행이구나. 리코, 너에게 인사도 못 하고 긴 여행을 떠날 줄 알았단다.”
천천히 침대로 다가간 리코는 의자에 앉아 노신관의 손을 잡았다.
앙상하게 마른 손이 지독하게 차가웠다.
“소식은 전해 들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모셔야 할 신을 찾지 못했다고?”
노신관의 시선이 리코의 왼쪽 가슴으로 향했다. 신을 모시는 신관이라면 누구나 달고 있는 교단의 상징이 없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가슴팍을 내려다본 리코는 어색하게 웃었다.
못해도 대주교급 자질이라는 평을 받은 그는 만신전의 제의로 본산이 있는 바르티아까지 다녀왔지만, 끝내 자기가 모실 신을 찾지 못했다.
“마음이 동하지 않더냐?”
“대지모신의 베풂, 물의 여신의 자애, 전쟁의 신의 용맹, 그 외에도 만신전에 속한 수많은 신의 말에도 저의 심장은 평온할 뿐이었습니다.”
노신관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찾아보려무나.”
리코는 눈을 크게 떴다.
노신관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그의 신을 찾은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신관님, 설마······!”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노신관의 눈이 감겨있었다. 신의 부름을 받고 긴 여행을 떠난 상태였다.
***
보육원의 아이들은 사고뭉치다.
“너희들! 내가 벽에다 낙서하지 말랬지!
“으악! 주근깨 마녀가 나타났다! 도망치자!”
“도망치자!”
“섬나라의 마녀처럼 우리를 죽일지도 몰라!”
군기반장인 자니는 섬나라 마녀라는 말에 이를 으득 갈았다.
할머니를 포함한 왕족 7명을 살해한 것이 탄로 나 처형당한 무시무시한 악녀. 처형당했음에도 사실은 살아있다는 소문이 나도는 그런 섬나라 마녀와 자신을 엮으니 절로 꼭지가 돌아버렸다.
“이것들이 진짜!”
자니는 옷소매를 걷어붙이고 빗자루를 든 채 사고뭉치들을 쫓아다녔다.
“와하하하!”
“쫓아와 봐라, 주근깨 괴물아!”
그녀는 날쌘 아이들을 잡지 못했다.
결국.
“아얏!”
문턱에 발이 걸려 심하게 넘어지고 말았다.
쓸린 무릎에서 피가 철철 흘러나왔다.
“으··· 으아아앙!”
서럽게 우는 자니.
군기반장이라지만, 그녀도 아직 소녀였다. 그것도 이차성징이 시작되어 기분이 하루에도 서너 번씩 널뛰기하는 민감한 시기.
주근깨로 놀림당하고, 아이들을 쫓아다니다 다친 지금 상황이 그녀는 그동안 쌓였던 설움이 폭발하게 만들었다.
“누, 누나!”
“미, 미안해!”
“다신 괴물이라고 안 노릴게!”
아이들이 우물쭈물 자니에게 사과했다.
“으아아아아아앙!”
그래도 그치지 않는 자니.
아이들이 안절부절못하는 그때, 큰 그림자가 그녀를 덮었다.
“괜찮니?”
노신관의 사망 이후, 보육원의 운영을 맡은 리코였다.
“시, 신관님······.”
서럽게 울던 자니가 퍼뜩 울음을 그쳤다.
우락부락한데다 덩치가 큰 랄프와 달리 안경이 잘 어울리는 지적인 외모의 리코였다. 그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는 생각에 그녀의 얼굴이 벌겋게 물들었다.
“많이 다쳤구나. 잠시만 가만히 있으렴.”
화아아-
따뜻한 빛무리가 자니의 무릎을 맴돌자마자 출혈이 멎었다.
“와! 신관님 만세!”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리코가 엄한 얼굴로 아이들을 바라봤다.
“너희들. 위에서 다 들었다. 자니에게 주근깨 괴물이라고 그랬지?”
“······.”
“······.”
일시에 조용해진 아이들.
조곤조곤한 설교가 이어졌다. 아이들은 자니의 고함보다 리코의 그런 설교가 훨씬 더 무서웠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자니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알았지?”
“네!”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아이들.
리코는 품에서 작은 사탕을 한 움큼 꺼내 자니에게 주었다.
“자, 이건 자니가 낙서를 깨끗하게 지운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눠줘.”
“넵. 맡겨만 주세요, 신관님.”
리코는 결연한 표정으로 답하는 자니에게 빙긋 미소를 지어준 후 다시 2층으로 올라갔다.
“최근 들어온 아이들은 우리 때랑 다르지?”
아래에서 들린 소리를 다 듣고 있던 랄프가 리코에게 말했다.
“그러게. 우리 때는 형, 누나들이 한 말에 조금이라도 토를 다는 건 상상을 못 했는데.”
의자에 앉은 리코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 고충을 안다는 듯 랄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힘들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아이들은 사랑만으로 자라지 않는다.
잘 먹고, 잘 자야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다.
리코는 어째서 노신관이 하루를 멀다 하고 후원자들을 찾아 돌아다녔는지 절실히 실감했다. 머리로 알던 것과 직접 겪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리코는 랄프를 바라봤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로 찾아온 거야?”
“나, 이번에 서부 원정에 참여한다고 알려주려고.”
“서부 원정?”
“폐하가 이번에 쌍둥이숲의 그 괴물들을 토벌하려고 결심하신 것 같아. 지원자들을 뽑길래 냉큼 지원했지.”
“······ 위험하지 않겠어?”
“위험하겠지. 하지만 국왕 폐하가 친정하신다는 소문이야. 그 역사적인 현장을 귀로만 들을 순 없지. 뭐, 그것 외에도 돌아오면 포상이 두둑한 것도 한몫하고 말이야. 아! 신관들도 지원받는 걸로 알고 있어. 얼핏 듣기로는 상당한 혜택을 준다고 하던데? 한번 알아봐 줄까?”
두근, 두근.
가슴을 울리는 심장 소리.
리코는 흠칫했다.
반드시 이번 원장에 함께해야 한다는 계시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