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61)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161화(161/203)
161
<161>
시간은 금이다.
아니, 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치가 있는 자원이다.
RP만 있으면 하믈 제국을 들쑤실 전국새도 구할 수 있는 [만물상]이지만, 그곳에서도 시간은 살 수 없다.
왕국 내 지역별 지지도가 모두 100%가 된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4왕자 아카드 놈 때문에 머리통이 깨지며 전생을 자각했던 시점부터 시간은 내게 매우 소중한 자원이었다.
내 몸은 하난데 해야 할 일은 너무 많다.
몸을 두 개로 쪼갤 수도, 시간을 살 수도 없으니 한 번 움직일 때 일석이조는 기본으로 노려야 한다.
이번 서부 원정도 그렇다.
시간과 운명의 신 다나르를 홍보하고, 지드래곤을 자연스럽게 세상에 드러내며, 서부의 골칫거리인 쌍둥이숲을 청소해야 한다.
중요한 목표만 벌써 세 가지.
거기다 그 과정에서 병사들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고민이 많았다.
어떻게 해야 그 모든 것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내렸던 결론.
마경, 쌍둥이숲에 둥지를 튼 이후 단 한 번도 그곳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 서리와 염을 끌어내야 한다.
“서, 서리와 염이다!”
“쌍둥이숲에 있어야 할 놈들이 어째서!”
지금, 그 과제가 성공적으로 해결되었다.
‘전부 귀염둥이 덕분이지.’
지드래곤은 붉은 달이 뜨기 전부터 쌍둥이숲 여기저기를 들쑤시며 서리와 염의 신경을 긁었다.
칼을 든 침입자가 집 앞에서 어슬렁거리는 기분이었을 거다.
마경의 지배자급 정도 되면 붉은 달이 뜬다고 광기에 휩싸여 미쳐 날뛰지 않는다.
그래도 붉은 달이 뜨는 시기라 잔뜩 예민해지는 건 피할 수 없을 터. 결국 참지 못한 서리와 염이 둥지를 박차고 나왔다.
예상으론 늦어도 어제쯤이면 뛰쳐나오지 않을까 했었다. 솔직히 계획이 실패하는 건 아닐까 조금 조마조마했었다.
‘마지막 날에야 튀어나올 줄이야.’
뭐, 결국은 튀어나왔으니 됐다.
“그오!”
빼꼼, 무사히 임무를 완수한 지드래곤이 살짝 고개를 내밀었다.
거대화를 푼 귀염둥이 상태였다.
멋들어진 투구를 착용하고 있었다.
유니콘을 모티브로 한 뿔이 눈에 들어왔다. 안타깝게도 녀석이 거대화하면 쫙 늘어나면서 뿔의 흔적이 사라진다는 단점이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았다.
‘지금 할 생각은 아니네.’
나는 고개를 털어 잡념을 지우고, 만면에 미소를 띠며 지드래곤을 향해 입을 열었다.
“고생했어, 우리 귀염둥이.”
품에서 화염루비를 하나 꺼내 던져주었다.
“그오오!”
오독, 오도독.
맛있게 깨물며 서리와 염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는 지드래곤.
녀석도 태생이 마수다.
예민한 신관이라면 지드래곤이 아무리 숨기려 해도 마기를 느낄 가능성이 크다. 또한 태생이 태생인지라 녀석도 마경과 붉은 달의 악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그런 악영향을 줄이고 지드래곤을 신수로 위장하기 위해 많은 방법을 시도해봤었다.
‘쉽지 않았지.’
정말 쉽지 않았다.
붉은 달로 인한 악영향은 근성으로 커버한다 쳐도 몸에서 마기가 흘러나오는 건 어떻게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
우연한 사고로 모든 문제가 말끔히 해결되었다.
해리를 데리고 에메랄드궁에서 지드래곤과 놀아주러 갔던 어느 야심한 밤. 작다고 하기엔 좀 큰 사고가 있었다.
두 녀석을 놀라고 풀어놓고, 다나르의 신물인 모래시계를 만지작거리며 목걸이 같은 장신구로 만들어 지드래곤이 지니고 다니게 하면 마기가 좀 덜 흘러나오지 않을까 생각 중이었다.
그러다 잠시 소변이 마려워 잠깐 벤치 위에 올려놓고 자리를 비웠는데······.
갑자기 달려와 나를 잡아끄는 해리를 따라 돌아와 보니 지드래곤이 정원에 널브러져 작게 경련하고 있더라.
모래시계를 삼켜버린 것.
당시엔 패닉이었다.
다시 뱉어내라고 혼내도 입을 앙다물고 거부하더라. 신물의 기운을 마수가 감당할 수 있을 리 없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지드래곤이 기어코 해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것이었다!
내가 해결책이 없냐며 닦달하던 중인 바리사다도 깜짝 놀랄 정도로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그녀의 추측으론 신수인 해리와 가깝게 지낸 게 어떤 영향을 준 것이 아닐까 하던데,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하여튼!
그 사고로 인해 지드래곤에게서는 신수와 마수의 기운이 동시에 느껴졌다. 정말로 마신수가 되어버린 것이다.
아! 모래시계는 다시 뱉어낼 수 있냐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더라.
어차피 당장 쓸 수도 없는 것. 어디에 응가로 버리지 말라고 잘 일러뒀다. 설마 아만티움인데 녹아서 영양분으로 흡수되진 않겠지?
“그오오오······.”
그렇게 마신수로 다시 태어난 지드래곤.
붉은 달의 영향이 전혀 없지는 않은지 당장이라도 서리와 염에게 달려가 한판 하고 싶어 하는 분위기였다.
“키에에에에에에!”
“캬아아아아아아!”
서리와 염이 동시에 포효를 내질렀다.
쿠구구구.
그와 동시에 개미 떼 같은 마수 무리가 덮쳐오는 진동이 느껴졌다.
-뿌우우!! 뿌우우!!
각자의 위치에서 마수를 대비하라는 나팔수의 신호가 붉은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슬슬 가볼까?”
“그오!”
***
“키에에에에!”
“크르르!”
병사들이 구축한 목책을 향해 밀고 내려오는 마수들.
최전선에서 한참 떨어진 후방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는 리코의 눈에는 그 모습이 마치 산맥이 요동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몸이 절로 움츠러드는 광경이었다.
“룬디네시여······.”
“가이안이시여, 우리를 보우하소서.”
“발포르의 가호가 있기를.”
리코처럼 천막 밖으로 나와 있는 신관들이 각자의 신을 찾으며 오늘 밤이 무사히 끝날 수 있기를 기원했다.
저것들을 과연 막을 수 있을까?
리코는 최전선에서 마수 무리와 격전을 펼칠 친우, 랄프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서리와 염이라니!”
“대책은! 저 녀석들을 일반 병사들이 막을 수 있을 리 없잖아!”
소란스러운 바깥 분위기에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병상에서 일어나 천막 밖으로 나온 부상병들.
그들은 거대한 마수, 서리와 염을 발견하고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후퇴! 지금이라도 후퇴해야 해!”
“무슨 소리! 여기서 후퇴하면 일반인들의 피해가 얼마나 심할지 몰라서 그래!”
“그렇다고 여기서 다 죽을 순 없잖아!”
의미 없는 논쟁.
어차피 판단은 지휘부의 몫이었다.
스읍─
머리는 독수리를 닮은 서리와 염. 놈들이 숨을 크게 들이켰다.
“브레스다!”
“다 죽을 거야!”
“폐하는? 국왕 폐하는 지금 이 상황에 어디 있으신 거지?”
“위다! 하늘에 골든드래곤이 떠 있어! 분명 저기 계실 거야.”
후웅- 후웅- 후우우─
서리와 염이 브레스를 머금은 것만으로 마력의 폭풍이 요동쳤다. 리코가 있는 최후방까지 느껴질 정도.
‘신이시여.’
리코를 포함한 대부분이 눈을 질끈 감았다.
브레스가 뿜어지고 수많은 병사가 재로 화하고 얼음 동상이 되어 부서지는 광경이 절로 상상되었다.
그런데.
“그오오오오오오오!!!”
“키에에에엑!”
그가 상상했던 끔찍한 비명은 울려 퍼지지 않았다. 아니, 비명이 울려 퍼지긴 했는데, 병사들의 것이 아니었다.
분명 서리의 비명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리코는 감았던 눈을 다시 떴다.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거대한 생물이 서리의 다리를 물고, 마수들이 몰려오는 한복판으로 끌고 가 이리저리 패대기치고 있었다.
콰앙! 콰앙! 콰앙!
“키에에에에에!”
“깨갱! 깽!”
중급 이하의 마수들은 그 여파만으로 곤죽이 되어버렸다.
서리와 염을 압도하는 존재감!
지드래곤이었다.
‘신수? 아니, 조금 이상해. 마수?’
리코는 지드래곤에게서 느껴지는 친밀하고도 거북한 기운에 몹시 혼란스러워졌다. 그리고 그건 근처에 있던 다른 신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 저건 뭐지?!”
“신수? 신수인가!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지?”
“아니야! 느껴지는 기운이 조금 이상해! 저건 대체!”
“지금 그게 중요해! 저 신수가 우리 편이라는 게 중요하지!”
리코는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누군가의 말이 맞았다. 우리 편이라는 게 중요했다. 마수를 공격하는 걸 보면 신수가 분명하리라.
“크아아아아아아!”
염의 브레스가 기묘한 신수를 향해 발사되었다. 멀리 떨어진 리코가 후끈하다고 느낄 정도의 열기.
신수가 화들짝 놀라 서리를 입에 물고 땅속으로 파고들었다.
화륵, 화르륵.
“끼에에에엑!”
“깨갱! 깽!”
“크아아아아!”
염의 불길에 휩싸인 애꿎은 마수들이 재로 화했다.
‘불이 약점인가?’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듯한 반응.
지드래곤은 극랭과 극열을 넘나드는 칠미호 여우불도 견딜 만큼 열기와 냉기에 강하다.
물론!
서리와 염이 다루는 냉기와 화염은 여우불에 비할 바 없이 강력하다. 지드래곤에게 유의미한 피해를 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왕국의 병사들 생각처럼 치명적인 약점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지드래곤이 기겁하며 땅속으로 숨은 건 에반이 선물해준 무구가 염의 화염을 닿으면 녹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건 에반이 지드래곤의 상대로 서리를 점찍은 이유이기도 했다.
“크아아아아아!”
태어난 순간부터 함께했던 서리가 지드래곤에게 끌려 땅속으로 사라지자 염이 광분했다.
쿵! 쿵! 쿵!
놈이 서리가 빨려 들어간 구멍으로 다가가 손으로 파헤쳤다.
“크아아아아!”
주변에서 걸리적거리던 마수들이 분노로 인한 염의 화염에 단말마의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재가 되었다.
‘저 녀석은 누가 막지?’
그 광경을 두려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모두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 순간.
파앗─!
하늘에서 찬란한 광채가 터졌다.
일순간 전장의 모두가 눈을 가릴 만큼 밝은 빛. 손을 눈가에 가져간 리코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에 무엇인가 포착되었다.
‘저건!’
거대한 검과 방패를 들고, 네 쌍의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는 존재가 염을 향해 쏜살같이 낙하하고 있었다.
그건 분명 신의 사도였다.
“신의 사도다!”
“신께서 우릴 구원하시러 사도를 보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한 건 리코뿐만이 아니었다. 전장의 모두가 같은 생각을 했다.
“크아?”
땅을 파던 염은 갑자기 환해진 주변에 고개를 들었다. 이내 쏜살같이 자신을 덮쳐오는 적을 발견했다.
스읍- 재빨리 브레스를 준비하는 염.
“크아아아아!”
화륵- 화르르르륵!
화염의 브레스가 신의 사도를 덮쳐갔다.
하늘이라 피할 곳은 전혀 없었다.
병사들은 그 화염에 신의 사도가 재가 되어 사라질 것 같았다.
“안돼!”
누군가의 비명!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신의 사도가 찬란한 빛을 뿜어내는 방패로 몸을 막았다.
“아!”
“브레스가 갈라진다!”
불길을 가르는 낙하하는 신의 사도.
“크아아아!!”
브레스를 내뿜던 염은 당황했다.
놈은 쌍둥이숲의 지배자가 된 이후 자신의 화염을 견디는 존재를 서리 외에는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었다.
염은 재빨리 브레스를 멈췄다.
신의 사도가 검을 휘두르는 것과 땅에 착지하는 것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콰아아아앙!!
어마어마한 굉음!
쿠과과과과과-
거대한 먼지 폭풍이 병사들의 시야를 가리고, 여파에 휩쓸린 마수의 육편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뭐, 뭐야!”
“어떻게 된 거야?!”
“하나도 안 보여!”
혼란스러운 병사들.
리코는 눈을 부릅뜨고 신의 사도가 떨어져 내린 곳을 바라봤다.
“크아아아아아아아!!”
염의 괴성과 함께 먼지 폭풍의 중심에서 화염이 솟구치고, 이내 먼지가 걷혔다.
거대한 크레이터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한 가운데 염이 있었다.
상반신의 삼 분의 일이 뜯겨나간 놈이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고통에 울부짖었다.
“시, 신의 사도는!”
“바로 앞에 있어!”
땅에 박힌 검의 손잡이를 쥐고 있는 신의 사도. 네 쌍의 날개로 전신을 가린 채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촤악- 스릉
날개를 활짝 편 신의 사도가 천천히 일어나며 땅에 박혔던 검을 뽑았다.
“신이시여······.”
리코의 나직한 중얼거림.
처음 서리와 염을 목격한 이후 몇 번이나 내뱉었던 단어. 하지만 그 의미는 전혀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