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63)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163화(163/203)
163
<163>
로렌스 피렌체는 심판의 신인 율리아를 따르는 신관이다.
브리센 연합 소속, 피렌체 왕국의 왕족 출신인 그는 율리아 교단 내에서 승승장구하던 이였다.
든든한 배경.
수려한 외모.
뛰어난 신성력과 의학 지식.
만신전에서 이단심문관 활동을 마치고 율리아 교단에 복귀하면 대주교, 추기경을 거쳐 차후 교황의 자리도 노릴만한 인물이었다.
리오넬 왕국이라는 소국에서 수석 이단심문관으로서 큰 실수를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베오르티오 리온.
네크로노미콘을 소지하고 있던, 마족과의 계약이 의심되던 마녀. 만신전으로 압송해야 했던 그녀가 청문회 도중 사망해버리고 만 것.
‘에반 리오넬······.’
로렌스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는 베오르티오를 그렇게 만든 배후가 에반일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비단 그의 생각만은 아니었다.
현장에 있던 이단심문관 대부분이 그랬다.
근데 그래서?
누군가는 책임져야 하는 법이다. 그러라고 있는 상급자다. 로렌스는 당시 현장에 있던 이단심문관 중 최상급자였다.
그 결과, 그의 출셋길은 험난한 가시밭길로 변해버렸다.
올해 말, 만신전에서의 이단심문관 생활을 마치고 율리아 교단으로 돌아가면 주교 정도의 직위가 주어질 게 그의 눈에 선했다.
역전의 기회가 한 번 있었다.
왕세자 즉위식에서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무력으로 8성 기사의 심상영역을 깨트렸던 에반. 하믈 제국이 그를 마족의 계약자라며 만신전에 고발한 것.
그 진상을 조사하게 된 것이 로렌스였었다.
에반이 마족과 관련 있다는 사실을 파헤쳐내면 가시밭으로 변한 그의 출셋길이 다시 깨끗하게 청소될 터.
실제로 조사 과정에서 마기의 흔적을 느꼈던 그는 입가에 진한 미소를 띠었었다.
하지만.
곧바로 에반이 [바리사다]의 사용자임을 공표해버렸다.
반마족의 육체를 벼려 만든 [바리사다]는 여러 정치적 이유로 만신전에서 손대지 않기로 정한 흉물 중 하나.
에반이 [바리사다]를 사용한다면, 그와 그가 생활하는 에메랄드궁에서 마기가 느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여러모로 에반과 악연으로 엮인 로렌스.
그가 벌써 세 번째로 리오넬 왕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시간과 운명의 신이라 주장하는 다나르라는 존재 때문이었다.
‘시간과 운명? 터무니없군.’
리오넬 왕국으로 향하는 비공정 갑판에서 로렌스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과장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소국의 인간들을 위해 나선 신의 등장에 리오넬 왕국의 왕실에서 여론 조작을 한 것이 틀림없었다.
‘에반 리오넬이 베오르티오를 마녀로 몰았던 것처럼 말이야.’
로렌스는 다시금 4년 전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다 이내 머리를 털며 불쾌한 과거의 기억을 털어냈다.
‘보나 마나 보잘것없는 신일 테지.’
뚜껑을 열어보면 갓 신성을 얻은 존재일 게 분명했다. 분명 만신전에서 하급신으로 인정받지도 못할 그런 존재이리라.
아르야 왕국의 에트림처럼 말이다.
***
레온궁, 집무실.
서부 원정을 다녀온 후 쌓여있는 업무를 처리하느라 바쁠 때였다.
똑똑, 똑똑.
“폐하, 재정경제부가 보낸 보고서를 가지고 왔습니다.”
“들어와.”
보고 있던 서류에 결재 사인을 한 후 고개를 올렸다. 알폰소와 서류를 한 무더기 들고 있는 보조 시종이 들어왔다.
알폰소가 슥 시종을 바라보았다.
시종이 눈치껏 책상 귀퉁이에 서류 더미를 올려놓고 고개를 숙여 보인 뒤 집무실을 나갔다.
“무슨 일 있었어?”
“만신전에서 조사관을 파견했습니다.”
“누군데?”
“로렌스 피렌체랍니다.”
또 그 인간인가? 리오넬 왕국 전담이라도 되는 건가? 만신전과 엮일 일만 있으면 그가 온다.
개인적으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나만 아니었어도 승승장구했을 텐데.
권력욕이 강한 것 같긴 하다만 딱히 몹쓸 짓을 한 인간은 아니었다. 무고한 인간에게 이단의 탈을 씌워 쓱싹하는 그런 짓 말이다.
‘딱히 왕국에 해를 끼칠 건 없으려나?’
내가 없는 신을 있다고 우기는 것도 아니었다. 시간과 운명의 신 다나르는 실존한다. 그의 신수 해리도 왕궁에서 키우는 중이고.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창가로 돌렸다.
따스한 햇볕을 쬐며 꾸벅꾸벅 졸고 있는 해리가 보였다.
“저 녀석, 갑자기 부쩍 컸네요.”
알폰소도 내 시선을 따라 해리를 본 것 같았다.
녀석의 말대로였다.
서부에서 미카엘과 지드래곤이 마수를 토벌하며 다나르의 이름을 알리면서 해리가 급성장했다.
다나르에 대한 신앙이 해리의 성장과 관련이 있다는 걸 확신하게 되었다.
그래도 아직 귀여운 새끼다.
아주 연약하지만은 않은.
“손톱이랑 이빨이 제법 날카로워졌어. 말귀도 잘 알아들으니까 조심하는 게 좋아.”
나는 해리에게서 시선을 떼고 알폰소를 바라봤다.
“그래서 로렌스는 바로 서부로 간 건가?”
“아무래도요. 현장에서 조사 좀 하다가 목격자들의 진술을 들을 계획인 것 같습니다. 현장을 목격했던 타 교단의 신관들이 워낙 많으니 다나르 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겠습니까?”
“인정할 수밖에 없겠지. 실존하는 신을 없다고 주장하는 건 말이 안 되지.”
흠······.
그래도 기왕이면 만신전 측에 그럴듯한 보고가 올라가는 편이 좋았다.
악연이 항상 악연으로 남아야 할 이유는 없다. 이번 기회에 로렌스 신관과의 악연을 끊고 서로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괜찮을 것 같았다.
“참, 저번에 시켰던 건 별다른 보고 없어?”
“네? 어떤······.”
나의 눈이 가늘어졌다.
‘신이 점지한 아이’라는 업적을 달성한 이후 알폰소에게 마리를 은밀히 관찰하라 일러두었었기 때문이었다.
“아! 마리 말씀이신가요?”
그제야 기억해낸 듯한 알폰소.
“워낙 시키신 일이 많아서 바로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내가 마리를 예의주시하라고 시킨 거 말고 또 뭐가 있는데?”
“예를 들어······ 매일 그 녀석의 간식을 챙겨주는 것과 매일 그 녀석의 갑옷을 청소해주는 것과 매일 그 녀석과 놀아주는 것을 시키셨죠. 그것도 모두가 잠든 새벽에 말이죠.”
지드래곤과 관련된 일만 늘어놓는 걸 보면 꽤 힘든 모양이었다.
나는 녀석의 시선을 살짝 피했다.
“조금만 참아. 조만간 그 녀석이 일반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게 되면 그것도 졸업이니까. 마리에 관한 보고나 해봐.”
“아직 특별한 보고는 없습니다. 페리쥬르 제과점의 초코 쿠키를 특히 좋아하는 평범한 여자아이라는 것 정도가 다입니다.”
평범한 아이가 아니다.
분명히 무엇인가 있다. 괜히 신이 점지한 아이겠는가.
나는 마리를 주기적으로 진찰하는 슈이츠의 보고를 되새겼다.
‘신성력이 사라졌다고 했었나?’
신성력.
기본적으로 신과 소통할 능력을 지닌 이들이 태어날 때부터 지닌 선천적인 힘이다.
아, 물론 간혹 후천적으로 신성력을 각성하는 예도 있긴 하지만, 특수한 경우니까 논외로 하자.
재미있는 건 신성력을 지닌 이들은 자신이 모실 신을 정한 후에 신성력의 성질이 달라진다는 것.
불의 신 라그니의 신관들 같은 경우는 신성력을 이용해 적탑의 화염 마법 같은 파괴적인 신성 마법을 구현할 수도 있다.
2차 전직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신성력을 보유한 아이들을 발견하면 신관들이 눈이 뒤집히는 거다. 미래에 교단을 이끌어나갈 동량이기 때문이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런 신성력이 사라진다?
정말 듣도 보도 못한 일이다.
사라진 게 아니라······.
‘숨기고 있는 걸 수도 있어.’
일단은 내 생각이 맞는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가만히 기다리다가는 너무 늦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리오넬 왕국.
만신전의 바로나 지부.
리코는 침을 꿀꺽 삼키며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로렌스 피렌체.
이단심문관인 그가 날카로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분명히 그 신의 사도라는 존재가 자신이 시간과 운명의 신 다나르의 사도라 직접 언급했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똑똑히 들었습니다.”
“그렇습니까?”
사각, 사각.
로렌스가 펜을 들어 종이에 무엇인가를 작성했다. 괜히 심장이 두근거린 리코는 추가로 입을 열었다.
“당시 현장에 있던 다른 신관분들도 똑똑히 들었습니다.”
한참 펜을 놀리던 그가 다시 시선을 올려 리코를 바라봤다.
“알고 있습니다. 다양한 교단의 신관분들이 작성해주신 진술서를 이미 보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왜 직접 호출을······.”
“다들 공통적으로 말씀하시더군요. 신의 사도와 함께 나타났던 신수의 기운이 조금 이상했다고. 그런데 유독 리코 신관님은 그 존재가 신수라고 확신하고 계시더군요. 혹시······ 찾으신 겁니까?”
로렌스의 시선이 리코의 가슴팍을 향했다.
모시는 신이 있다면 응당 있어야 할 상징이 없었다.
로렌스는 리코처럼 신을 찾아 방황하는 신관들의 심정을 잘 몰랐다. 자신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자연스럽게 율리아 교단의 신관이 되어있었으니까.
리코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그분의 이름을 듣는 순간 바로 알았습니다.”
“오랜 방황을 끝내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이후 몇 가지 질문을 더 던진 로렌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작성하던 서류를 내려놓았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돌아가 보셔도 됩니다.”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리코가 홀가분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리코가 나가고.
로렌스는 리코의 진술서를 한 번 더 쭉 읽어보았다. 그리고 서류철을 하나 꺼내 뒤지기 시작했다.
‘이쯤이었는데······ 아, 여깄군.’
그는 리코의 신상 명세가 적힌 서류를 꺼냈다.
다시 봐도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었다.
뛰어난 잠재력을 가졌지만, 신을 찾지 못한 신관.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그런 부류였다. 이유는 대개 하나였다.
그 신이 만신전에 등록되지 않아서.
신성을 얻은 존재라고 모두 만신전에 등록되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인신공양을 받는 아르야 왕국의 에트림 같은 잡신도 만신전에 등록시켜야 한다.
물론, 하믈 제국의 아우렐리스처럼 잡신이 만신전에 등록되는 일도 있다.
열강의 토속신들이 대개 그렇다.
‘일개 토속신일 거로 생각했는데······.’
조사하면서 자연히 알게 되었다.
다나르라는 신이 정말로 시간과 운명을 관장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을. 붉은 달이 떴을 당시 현장에 있던 대지모신, 물의 여신, 전쟁의 신 같은 거대 교단의 신관들도 그리 증언했다.
‘이건, 내 선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일개 수석 이단심문관이 판단할 문제가 아니었다.
만신전의 고위층이 의논할 일이었다.
보고를 올리는데 다나르라는 신에 대해 부정적으로 작성할 수는 있었다.
예를 들어 신수의 기묘한 느낌이었다든지, 신의 사도에게서 별다른 신성력을 못 느꼈다는 신관들의 진술을 악의적으로 확대하는 식으로 말이다.
‘오늘 리오넬 국왕과의 식사가 있었지?’
별일이었다.
저번에 왔을 때는 코빼기도 안 보이던 에반이 자신에게 식사를 제안했다.
그동안 악연으로 엮였기에 불편한 자리일 건 확실했지만 그는 거절하지 않았다.
신앙은 정신을 풍요롭게 만들지만, 아쉽게도 육체를 살찌우지는 못한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로렌스는 에반이 손을 내민 사람들이 모두 한자리 꿰찼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조금 설레는 건 그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