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65)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165화(165/203)
165
<165>
에반이 정보를 얻는 루트는 크게 세 가지다.
먼저, [도서관].
낙서, 영상구, 일기 등등 어떤 형식으로라도 세계 어딘가에 ‘기록’되어 있으면, 원하는 정보를 앉은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넉넉한 RP만 있다면 말이다.
만약 [도서관]의 기능을 일부라도 발휘할 수 있는 신물이 세상에 출현한다면, 전 세계가 피로 물들 수도 있는 엄청난 능력.
단점이 없는 건 아니다.
일단 필요한 정보가 ‘기록’되어 있어야 하고, 그렇게 얻은 정보가 진실인지는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다음으로 왕실기무대.
에반은 RP를 사용하기 아까운 정보나, [도서관]의 정보를 교차검증하기 위해 주로 사용하고 있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기록’되지 않고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만 전달되는 정보도 상당히 많았다.
무엇보다 에반이 온종일 [도서관]만 검색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지막으로 리오넬수호군.
그들이 하는 일은 광범위했다.
태생이 북부해방군이었던 만큼, 왕국이 빼앗겼었던 서북부를 되찾는 것과 관련된 모든 일에는 한 다리씩 걸치고 있었다.
그중에는 당연히 첩보도 포함되어있었다.
국경을 맞대고 있던 하믈 제국 지역에 관한 정보의 양과 질은 왕실기무대를 월등히 앞섰었다.
전부 과거형인 이유는 왕국이 서북부를 탈환하면서 리오넬수호군이라는 조직에 대격변이 일어나는 중이기 때문.
목적을 달성한 인원 상당수가 10년 가까이 몸담았던 리오넬수호군과 아름다운 이별을 했다.
일부 왕국의 대신들은 이제 리오넬수호군은 해체해도 되지 않겠냐는 이야기까지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리오넬수호군 외에는 갈 곳이 없는 이들도 있다.
하믈 제국에게 피의 복수를 부르짖었던 강경파나, 어릴 적부터 북부해방군 틈에서 자란 이들이 대표적.
그 외에도 다양한 이유로 리오넬수호군을 떠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다.
오스틴, 알폰소와 함께 전대 새턴 자작가의 가주 밑에서 수련한 루나가 리오넬수호군과 작별하지 못한 것은 꽤 현실적인 이유였다.
생활비를 벌어야 해서.
루나도 왕국의 서북부 탈환으로 고대하고 고대하던 가문의 영지를 돌려받았다. 그런데······ 그녀가 제출했던 영지의 재건 계획서가 거부당해버렸다.
루나는 씩씩대며 알폰소를 찾아갔던 날을 떠올렸다.
-알폰소! 어째서 내 완벽한 재건 계획서가 반려된 거야!
-소문으로는 클리앙 백작님이 네 재건 계획서를 보자마자 박박 찢어서 휴지통에 버렸다던데?
-그, 그런!
-나나 오스틴 선배처럼 우수한 재건 계획서를 제출한 이들부터 지원이 돌아갈 텐데 너 어떡하냐?
이미 밀려버린 순위 탓에 계획서가 통과되어도 3~4년 후에나 지원이 시작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도 빨랐을 때 얘기야. 최악의 경우 10년도 더 걸릴 수 있을걸?
‘알폰소 녀석.’
남의 일이라며 실실 쪼개던 그를 생각하니 루나는 이가 으드득 갈렸다.
하마터면 주먹이 나갈 뻔했다.
알폰소의 이어진 말이 아니었다면 진짜 나갔을 거다.
-너도 소문을 들었겠지만, 리오넬수호군은 점진적으로 해체 절차를 밟게 될 거야.
-그거 진짜야?
-당연히 진짜지. 리오넬수호군에 남아있는 녀석들 모두 적성과 그동안의 공로를 고려해 적당한 자리가 주어질 거야.
-너, 그런 기밀을 나한테 말해도 되는 거야?
-후훗, 내가 이래 봬도 국왕 폐하의 오른팔이라고.
-왼팔 아니었어?
-오른팔이셨던 왕비님이 폐하의 심장이 되었으니 이제 내가 오른팔이지. 아니, 이건 중요한 게 아니고. 하여튼 기밀은 맞는데, 폐하가 내게 리오넬수호군에서 필요한 이들이 있으면 알아서 섭외하라고 하시더라고.
-섭외? 폐하가 네게 시종장의 업무 말고 다른 걸 맡기신 거야?
-이미 맡고 있어. 주로······ 세상에 드러나선 안 되는 일들을 말이지.
-아······.
어린 시절부터 북부해방군에서 자라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루나.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했었다.
에반을 위해 음지에서 일할 사람을 찾고 있다는 거였다.
-조금 위험하고 세상이 알아주지 않겠지만 다양한 복지가 기다리고 있지. 예를 들어······ 루나 너의 영지 재건을 지원한다든가 말이야.
루나는 알폰소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에반은 음지에서 일한 이들을 후에 필요가 다한 사냥개라며 살처분할 그런 이가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오늘도 별거 없나.’
그녀는 으슥한 골목 어귀에서 쪼그리고 앉아 페리쥬르 제과점에 들어가는 마리를 관찰하고 있었다.
솔직히 자신 같은 고급 인력이 자는 시간 빼고 조그마한 여자아이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복지를 위해 참았다.
여태까지 미행한 바에 의하면, 그냥 초코 쿠키를 좋아하는 여자아이일 뿐이었다.
제과점에서 풍겨오는 달콤한 쿠키 냄새가 루나의 침샘을 자극했다.
‘나도 먹고 싶다. 페리쥬르 초코 쿠키.’
루나는 입맛을 다시며 마리가 나오길 기다렸다.
한참이 지나 마리가 나왔다.
그녀는 마리를 다시 미행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다 눈을 반짝였다.
마리를 뒤따라 나온 남자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정확히 마리를 직시하고 따라붙는걸 목격했기 때문.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임무 중에 이벤트가 발생했다.
루나는 매의 눈으로 남자를 관찰했다.
‘신관? 진짜 신관인가?’
원래 못된 놈들이 착하게 보이려고 멀끔하게 챙겨입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혀로 입술을 핥은 그녀는 마리의 뒤를 쫓는 신관을 따라붙기 위해 움직였다.
사고는 그때 일어났다.
우당탕! 쾅쾅! 쨍그랑!
“으아아악!”
상자가 쏟아지고, 그릇이 깨지는 소리. 그리고 한 아이의 비명.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 근원지로 향했다.
루나도 마찬가지였다.
마차에서 하역하던 물품이 쏟아지며 길을 가던 아이를 덮친 것 같았다. 하필이면 깨진 도자기 파편이 아이의 가슴을 찌르고 있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아이어머니.
공황이 온 듯 입만 벙긋거리던 그녀가 큰 비명을 내질렀다.
“에디이이이이!! 누가! 누가 좀 도와주세요!”
루나는 입술을 앙 다물었다.
아무리 그녀 같은 고위 마력 각성자라도 저렇게 순간적으로 벌어지는 사고는 바로 옆에 있지 않는 한 막을 수가 없다.
아이는 의식이 없어 보였다.
다행히 숨은 붙어 있는 것 같지만······.
‘찔린 위치가 안 좋아.’
인체의 급소에 해박한 루나였다. 저 위치라면 즉사를 면한 것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
아니다.
빠르든 늦든 저 아이는 살릴 수 없다.
그녀의 판단으로는 적어도 대주교급 신관과 그에 준하는 치료사가 협업해야 아이를 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당장 말이다.
현장에 그런 인력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그녀의 시야에 아이를 향해 달려가는 신관이 보였다.
‘아, 진짜 신관이었어?’
루나가 마리를 미행하는 줄 알고 뒤쫓고 있던 신관, 리코였다.
“다들 비키세요!”
“시, 신관님! 우리 에디, 에디를 살려주세요! 전 재산을 기부하겠습니다. 제발 우리 에디을 살려주세요.”
리코는 아이어머니의 말이 귀에 들리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쫓고 있던 소녀에 관한 생각도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진 상태.
그는 오로지 아이의 상태를 살피는 데 집중했다.
‘아!’
먼 곳에서 봤을 때도 짐작했지만, 이건 안 된다. 가슴을 찌른 파편을 제거하는 순간, 피가 분수처럼 솟아오를 게 눈에 선했다.
자신의 신성력으로 치료를 시도해도 아이가 버틸 수 있는 한계를 한참 지난 후에야 출혈이 멎을 터였다.
“신관님! 신관님! 전 재산을 바치겠습니다. 제발 우리 에디를 살려주세요!”
아이어머니가 리코의 안 좋은 표정을 읽고 필사적으로 애원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본다.’
마음을 굳힌 리코는 아이의 가슴에 박힌 파편을 움켜쥐었다.
손이 살짝 떨렸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과도한 출혈로 차게 식은 아이의 모습이 그려진 상태였다.
픽! 촤아아앗!
리코가 아이 가슴에 박혀있는 파편을 뽑자마자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왔고.
“에디이이이이!!”
“꺄아아앗!”
화아아-
동시에 리코에 손에서 뿜어진 빛이 아이의 가슴을 맴돌았다. 비명을 질렀던 아이어머니와 사람들이 이내 입을 꾹 다물고 마음속으로 리코를 응원했다.
그중에는 마리도 있었다.
마리도 어른들 틈바구니에 끼여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는 한참 어렸다.
어렸을 때, 나쁜 어른에게 끌려갔을 때의 자기보다도 어린 것 같았다.
그런 아이가······.
‘죽는 거야?’
아이를 치료하는 신관님이 땀을 뻘뻘 흘리고 있지만, 아이의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그런 와중에서 빨간 피도 계속 뿜어져 나왔다.
“에디이이이이!! 제발, 제발 힘을 내주렴.”
마리는 아이의 손을 꾹 쥐고 애원하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엄마······.’
자기가 신관님을 도와주면 아이의 피가 멎을 것 같았다.
마리는 흠칫 몸을 떨었다.
강아지가 아픈 걸 고쳐준 자신을 내려다보며 무서운 표정을 짓던 나쁜 어른의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마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이 엄청 많았다.
분명······ 이번에 아이를 살리는 걸 도와주면 또 엄마랑 헤어지게 될 거다.
“대지모신이시여, 물의 여신이시여, 자애의 여신이시여, 누구라도 좋으니 제발 우리 에디를 살려주십시오. 이 한 몸 평생을 바쳐 봉사하겠습니다.”
마리는 엄마랑 같이 먹으려고 두 개 산 대왕 초코 쿠키를 바라봤다.
‘엄마, 미안.’
이번에는 자기가 사라져도 못생긴 인형 말고 이쁜 인형한테 ‘마리’라는 이름을 붙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마리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나갔다.
한편.
리코는 속으로 탄식하고 있었다.
‘끝났어······.’
아직 출혈도 못 막았지만, 설령 출혈을 막더라도 아이는 살 수 없다. 너무나 많은 피를 흘렸다. 지금 숨을 쉬고 있는 건 그의 신성력 덕분이었다.
신성력을 거두는 순간, 아이는 차디찬 시신이 되고 말 터였다.
그때.
파아아앗!
아이를 치료하던 신성의 빛이 서너 배는 밝아졌다.
화들짝 놀란 리코는 고개를 들었다.
‘이 아이는······.’
그가 제과점에서 보고 알 수 없는 이끌림에 뒤따라가던 소녀였다.
‘신성력을 지닌 아이였구나.’
리코는 소녀가 모시는 신이 없다는 것을 바로 알았다. 신을 찾지 못한 자들 특유의 신성력을 그가 못 느낄 리 없었다.
그게 아이에게 이끌린 이유였을까?
‘신을 모시지 않는 데도 이 정도라니.’
신을 찾는다면 못 해도 대주교급 자질이 있다고 평가받았던 리코였다.
그런 그의 신성력이 반딧불처럼 느껴졌다.
‘성녀 급이야!’
리코의 마음 깊숙한 곳에 소녀에 대한 원망이 생겨났다.
이렇게 나선 걸 보면 분명 자신의 신성력을 알았을 터. 처음부터 나섰으면 아이를 살릴 수 있었을 텐데.
아이의 출혈이 서서히 멎었다.
마리가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신관님, 이제 아이는 안 죽는 거죠? 저, 이제 엄마를 볼 수 없겠지만, 후회하지 않아요!”
리코는 마리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마리가 선뜻 아이를 치료하러 나서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으리라 짐작은 갔다.
“신관님?”
“신관님! 우리 에디는 이제 괜찮은 건가요? 신관님?”
리코는 자신을 부르는 마리와 아이어머니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아이의 상태를 확인했다.
출혈은 멎었지만, 숨이 끊어질 듯 가늘었다.
그와 소녀가 신성력을 거두는 순간 바로 아이는 숨을 거두리라. 차마 그걸 마리와 아이어머니에게 설명할 수가 없었다.
“다나르시여, 부디 이 어린아이를 구원해주소서.”
리코는 대답 대신 그저 진심으로, 진심으로 시간과 운명의 신 다나르의 이름을 되뇌었다.
“다나르······?”
뭔가 심각한 분위기에 우물쭈물하던 마리.
리코가 내뱉은 신의 이름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다나르시여. 동생을 살려주세요.”
마리는 그가 한 말을 따라 하며 속으로 덧붙였다.
동생이 엄마랑 행복하게 살게 해주세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저도 엄마랑 헤어지지 않게 해주세요.
파아아앗!!
“으앗!”
“뭐야!”
엄청난 빛이 다친 아이를 중심으로 뿜어져 나오고, 백지장처럼 새하얗던 아이의 얼굴에 핏기가 돌았다.
신이, 둘의 부름에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