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67)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167화(167/203)
167
<167>
동이 트기 전인 새벽 4시.
나의 일과는 그때부터 시작된다.
“냐앙! 냐앙!”
곤히 자고 있던 내 얼굴을 양발로 꾹꾹 누르는 왕궁의 무법자, 해리의 기상 알림과 함께 말이다.
“······ 일어났어, 이 녀석아.”
“냐앙! 냐앙!”
해리를 옆으로 치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단하게 씻고 수련복으로 갈아입은 나는 침대를 뒹굴고 있는 해리를 바라봤다.
“가자.”
“냥!”
벌떡 일어나 쫓아오는 해리.
“편히 주무셨습니까, 폐하.”
침실 문 앞에서 호위 중이던 기사들의 인사.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주고 그들을 인솔하는 베록을 바라봤다.
자연스럽게 그 홀로 내 뒤에 따라붙었다.
그렇게 내가 베록과 해리만 대동한 채 이동한 곳은 에메랄드궁.
“그오?”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지드래곤이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녀석이 한번 가출했던 이후, 나는 가능한 한 새벽 수련 시간마다 녀석을 찾았다.
“냐앙!”
“그오!”
신나서 달려든 해리를 목에 태운 지드래곤이 직각에 가까운 스릴넘치는 미끄럼틀을 만들어줬다.
슈웅─
보기 만해도 섬뜩한 높이에서 쏜살같은 속도로 미끄러져 내려오는 해리.
“냐앙! 냐앙!”
무슨 놀이공원 롤러코스터 타듯 신나 했다. 신수씩이나 되는데 떨어진다고 큰일 나진 않겠지.
둘을 방목하곤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마나 연공을 시작하기 전, 베록을 바라봤다.
“잘 부탁해.”
“맡겨만 주십시오.”
베록 바이든.
내가 왕세자가 되기 전, 내 직속 호위로 막차를 탔던 그는 서부 원정 직후 결혼식을 올렸다. 건방진 반항아 이미지였던 그가 최근 많이 유해진 느낌이다.
가정이 생긴 탓일까?
‘이제 버논만 장가가면 되나.’
나와 어려운 시절을 함께했던 호위기사 중에 주먹코 버논만 혼자였다. 얼핏 듣기로는 만나는 사람은 있다고 들었으니 조만간 식을 올리지 않을까 한다.
아돌, 버논, 베록.
모두 ‘미래’에서 왕국을 위해 싸우다 전장에서 쓰러진 이들.
그들의 삶의 끝이 그때와 같아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건 내가 앞으로 왕국을 어떻게 운영해나가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어깨가 조금 무거워졌다.
‘그러니까 아무리 바쁘더라도 수련을 쉴 순 없지.’
나는 베록의 호위를 받으며 마나 연공을 시작했다. 마나홀의 마나를 싹 비워내고 새로운 마나를 받아들였다.
마나홀 속 소우주를 관조했다.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6개의 별.
그리고······.
‘조만간이야.’
새로운 별의 탄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 사실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그렇게 새벽 수련으로 땀을 쫙 빼며 상쾌한 하루를 시작한 나는 간단히 샤워 후, 바로 집무실로 향했다.
책상 서랍의 봉인을 풀고 두꺼운 서류철을 꺼냈다.
프로젝트 라크K.
라크K는 이자벨이 막바지 스퍼트를 올리고 있는 마력초전도체다. 철의 성질을 가짐과 동시에 마력 손실률 20%를 목표로 하고 있다.
어제도 잠들기 전까지 이걸 붙들고 있었다.
알폰소가 오기 전까지 다시 들여다보았다.
‘삼 개월 남았어.’
세계마력초전도체협회, 일명 세마협.
세계 각국의 관계자가 모여 마력초전도체의 국제표준규격을 정하고, 기술 교류, 심포지엄 등의 활동을 한다.
삼 개월 후, 아이멘 제국에서 세마협의 세미나가 열린다. 거기서 그동안 준비한 라크K를 공개하는 게 목표였다.
서류를 한 장 한 장 넘기는 내 심정은 썩 편치 않았다.
‘어렵네······.’
내가 마력초전도체 연구에서 손을 뗀 이후 이자벨과의 수준 차이가 크게 벌어졌다.
연구자료를 백날 들여다본다고 현재 그녀가 막혀있는 부분을 뚫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기한을 못 맞출 수도 있겠어.’
정 안되면 미카엘의 외갑으로 사용되었던 마력초전도체를 들고 갈 수밖에. 철을 뛰어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청동보다는 낫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투자를 끌어모을 수 있을 거다.
당장 리오넬 왕국이 부도나는 상황은 막을 수 있으리라.
‘그래도 최고는 라크K를 완성하는 거야.’
나는 눈을 부릅뜨고 연구자료를 살폈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사이.
똑똑, 똑똑.
“폐하, 알폰소입니다.”
항상 같은 시간에 아침과 신문을 가지고 등장하는 녀석이 왔다. 나는 보고 있던 자료를 다시 서랍에 넣으며 문을 바라봤다.
“들어와.”
시종, 시녀들이 책상 위에 식사와 신문을 놓고 사라지고, 알폰소와 둘만 남았다.
“보고 사항은?”
“저희 시간으로 새벽 6시, 로렌스 신관이 율리아 교단의 대신전이 있는 피렌체 왕국에 도착했다는 소식입니다.”
“그래?”
나는 샌드위치를 하나 입에 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단심문관 로렌스는 악연을 선연으로 바꾸자며 내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거부할 거라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았다. 머리가 달린 사람이라면 손해 볼 일이 전혀 없는 나의 제안을 거부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 왜 굳이 율리아 교단을 택하신 건가요? 대지모신이라든가, 물의 여신이라든가, 더 큰 교단도 많지 않습니까? 폐하가 정말 로렌스 신관에게 미안하셔서 그럴 분은 아니시지 않습니까?”
알폰소가 질문할 만했다.
율리아 교단의 위치가 조금 애매한 면이 있었다. 상회로 치면 대상회와 중견상회 그사이에 있다고 해야 할까?
“그들은 이미 돈독한 관계를 맺은 신생 교단이 있잖아. 그리고 정말 로렌스에게 미안한 마음도 한몫하긴 했어.”
“아, 율리아 교단이라면 그들보다 다나르 교단을 더욱 신경 써 줄 거다 그 말씀이시죠?”
“그렇지.”
이유가 더 있었다.
율리아 교단의 교리들이 내가 왕국을 운용하는 데 있어 ‘법치’를 행하기에 꽤 도움이 되는 면이 있다.
-죄를 지은 자는 그에 합당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
율리아 교단 성서 첫 장에 있는 그 교리.
얼마나 마음을 울리는 소리인가. 그녀의 심판 앞에서는 왕족도 귀족도 평민도 모두 한낱 인간일 뿐이다.
뭐, 그게 율리아 교단이 초거대 교단으로 성장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만.
하여튼.
그런 것들 말고도 율리아 교단을 고른 이유로 가장 큰 게 하나 있었다.
-자, 해리. 이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신상을 골라볼래?
-냐앙!
-정말? 정말 심판의 신 율리아야?
-냐앙!
내가 다나르 교단과 자매교단을 구축할 후보로 뽑은 교단 중에서 해리가 율리아 교단을 골랐던 것.
신계에서 다나르와 율리아가 친했나?
문득 떠오른 실없는 생각에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리코 신관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
“네. 벌써 사흘째네요.”
과도한 신성력 사용으로 기력을 잃었던 리코와 마리.
마리는 금방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리코는 단순한 탈진이 아니었다.
나는 슈이츠의 보고를 떠올렸다.
-신병 같습니다.
-신병? 내가 아는 그 신병?
-네. 리코 신관은 신을 접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신관들이 의식 세계에서 신과 만나면, 그에 과부하 된 육체가 심하게 앓는다. 그걸 신병이라 한다.
쉽게 말하면 리코가 다나르와 만났다는 말.
나도 겪어본 적은 없기에 그가 다나르와 뭘 했을지는 모르겠다.
내가 다나르의 유적에서 의식만 쏙 빠져나가 ‘미래’의 한 장면을 보았던 것과 비슷하려나?
확실한 건, 신병에서 깨어난 이들은 교단 역사에 길이 남을 무엇인가를 얻어온다는 것이었다.
대게 각 교단의 시작을 알렸던 이들의 경우에는······.
‘성서였지?’
과연 왕국의 국교가 될 다나르 교단 성서 첫 장에는 어떤 교리가 적혀있을지 궁금해졌다.
‘때가 되면 일어나겠지.’
나는 리코에 관한 생각을 접고 신문을 펼쳤다.
『포위된 하믈 제국의 황도, 과연 1황자의 선택은?』
쯧, 헤드라인에 바로 혀를 찼다.
내가 뒤통수를 조심하라고 은근히 정보를 풀었음에도, 1황자 진영이 7황자와 11황녀에게 농락당해버렸다.
‘너무 빠른데.’
기왕이면 삼파전이 오래오래 갔으면 했는데, 생각보다 이른 시일에 1황자가 몰락하고 7황자와 11황녀의 이파전이 될 기세였다.
당분간은 왕국도 되찾은 서북부를 안정화하고 내실을 다지는 데 집중해야 하기에 개입은 불가능하다.
당장 올겨울 칸족에게 보낼 식량부터 마련해야 한다.
칸족을 떠올리니 자연스레 라누아와의 결혼식도 생각났다.
날이 잡혔다.
그녀는 두 달 후, 8월의 신부가 될 예정이었다.
일정이 빽빽하다.
한 달 뒤 레이나의 출산.
두 달 뒤 라누아와의 결혼식.
석 달 뒤 이자벨과 세마협 세미나.
하······ 몸을 쪼개는 분신 마법을 익힐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눈 깜짝할 사이에 한 달이 흘렀다.
그동안 굵직한 사건들이 몇 있었다.
대외적으론 역시 하믈 제국 1황자의 실종.
7황자와 11황녀의 병력에 포위되어 황도에 갇혔던 1황자가 비공정을 타고 탈출을 시도. 그리고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나는 [도서관]을 통해 얻은 정보로 그가 죽었다고 판단했다.
1황자가 도망치는 방향으로 19황자 샤를의 비공정, 흑염룡이 움직였었다.
멀쩡히 도망가던 1황자 비공정의 항로와 흑염룡의 항로가 겹치더니 이후로 1황자 비공정의 항해일지가 더는 작성되지 않았다.
샤를이 1황자를 사로잡아 살려뒀을 수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한다. 별다른 이득이 없다.
뭐, 세상일에 절대라는 건 없으니 가능성은 조금 열어두기로 하자.
왕국 내로 시선을 돌리면 역시 다나르 교단의 창설이 가장 큰 뉴스다.
정신을 잃고 일주일째 되던 날, 리코가 깨어났고, 나는 그가 기력을 찾을 때를 기다려 병원을 찾았었다.
맑은 성자의 눈을 한 그가 내게 노트 한 권을 보여주었다.
-폐하께 가장 먼저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가 깨어난 직후부터 미친놈처럼 적었다던 다나르 교단의 성서였다.
첫 장에 펼치자마자 보였던 한 문구가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하다.
-너희의 모든 순간이 운명의 등대를 밝히리라. 그러니 시간을 경배하며 허송하지 말라.
인간의 운명은 개척하기 나름이란 소리겠지? 그러니 알차게 시간을 보내라는.
가끔 업무를 보다 지칠 때면 하늘을 보며 다나르에 질문을 던졌었다.
혹시 인간의 운명은 정해져 있는 거냐고.
내가 어떻게 발버둥 치든, 미래는 ‘미래’와 마찬가지로 결말을 맞이하는 것 아니냐고.
그에 대한 답변을 들은 기분이었다.
성서는 아주 얇았다.
십계명처럼 간략한 교리들만이 적혀있을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세가 커질수록 성서는 다나르와 만난 성인들과 그들의 업적이 추가되며 점점 두꺼워질 터였다.
다른 교단의 성서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는 리코에게 궁금한 것을 물었었다.
-혹시 마리에 관해선 뭔가 들은 것 없나?
-바른길로 인도하라 하셨습니다.
-나에 대해선?
-없었습니다.
국왕이 국교로 삼은 교단에서 감투 하나씩 받는 일은 흔했다. 그래서 나도 그러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왕권과 교권은 분리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나였기에 별다른 섭섭함은 없었다.
······ 진짜로.
어쨌든.
다나르의 첫 번째 종이 된 리코는 다나르 교단을 맡을 책임자가 되었다.
그는 왕도 바로나의 시장 근처에 건축 중인 신전과 보육원을 오가며 포교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아! 리코와 함께 아이를 살렸던 마리도 꼼짝없이 다나르 교단의 수습 신관이 되어 그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다고 한다.
율리아 교단과 자매교단을 맺는 건 아주 잘 풀렸다. 그들 내부에서 반대가 없던 건 아닌데, 율리아 교단 성녀의 말 한마디에 끝났다.
그녀가 했던 말이 아마······.
-간밤에 여신께서 친구를 소중히 맞이하라 하셨습니다.
정말 신계에서 둘이 친구인가?
어쨌든.
그래서 자매교단이 된 두 교단. 다나르의 신전이 완성되고 적당한 시기에 율리아 교단의 교황이 왕국을 한 번 방문하기로 했다.
덕분에 로렌스에게 가졌던 마음의 빚은 깔끔하게 청산이다.
“응애! 응애! 응애!”
내가 지난 한 달을 되새기는 사이, 드디어 기다리던 소리가 왕궁에 울려 퍼졌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폐하! 왕자 전하이십니다!”
“경축드리옵니다!”
“경축드리옵니다!”
아들······.
“응애! 응애! 응애!”
우렁차게 우는 아기가 두 주먹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세상을 다 가질 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