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68)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168화(168/203)
168
<168>
프란의 직전제자 앨리스.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기모습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주변에는 입고 벗었던 옷더미가 수북했다.
“으음······.”
거울 속 앨리스는 헐렁한 로브를 대충 쓰고 다니는 평소와는 딴판이었다.
새하얀 블라우스에 무릎 위를 살짝 올라오는 스커트, 거기에 늘씬하고 긴 다리를 돋보이게 만드는 까만 스타킹.
뭇 소년들의 마음을 뒤흔들만한 모습이지만 그녀의 표정이 탐탁지 않았다.
‘마음에 안 들어.’
토인족인 앨리스는 솜사탕같이 폭신폭신한 큰 귀를 가지고 있다.
그걸 당당하게 내놓고 다니는 다른 토인족과 달리, 그녀는 귀가 남들의 눈에 띄게 되면 끔찍한 공포심을 느낀다.
이유는 모른다.
스승인 프란은 아는 것 같은데 도통 말해주지를 않는다.
하여튼.
그런 이유로 모자를 꼭 써야 하는데······.
지금 패션에 어린 시절부터 함께했던 낡은 마녀 모자가 영 어울리지 않았다.
모자를 벗었다 썼다 반복하던 앨리스는 결국 모자를 푹 눌러썼다.
앨리스의 숙소는 왕실사관학교 마공학부 기숙사의 1인실. 그녀는 슬쩍 문을 열고 복도를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없었다.
‘하긴, 기말고사 기간이니까.’
다들 책상 앞에서 정신없이 공부하느라 바쁠 때였다. 씩 웃은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건물을 빠져나가···.
“앨리스 조교님! 완전 이쁘다!”
“데이트하시는구나!”
“누구랑? 헤, 혹시······”
···려다 마공학부의 말괄량이 3인방을 마주치고 말았다.
“아, 아니야. 그런 거!”
사실 맞다.
자르얀에게 마공학 기본기를 다져주던 과외수업이 이번 주에 끝났다. 그걸 기념하기 위해 나가는 중이었다.
밥 먹고, 카페 갔다가, 산책 좀 하면 그게 데이트 아니겠는가.
“맞네, 맞아!”
“데이트네!”
“부럽다! 우리는 주말 동안 꼼짝없이 시험공부로 밤을 홀딱 새울 것 같은데!”
“지, 진짜 그런 거 아니야!”
얼굴이 빨개진 앨리스가 빽 소리 지르고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토인족인 그녀는 다리 힘이 좋았다. 겉보기에는 여리여리하지만, 인간과는 근육의 밀도가 달랐다.
모자가 안 날아가게 두 손으로 움켜쥔 그녀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3인방의 시야에서 멀어졌다.
“잘해봐요, 조교님!”
“응원할게요!”
“소문 안 낼게요!”
앨리스는 등 뒤에서 까르르 웃는 그녀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들켜도 하필이면 저 여자들한테!’
저렇게 몰려다니면서 공부하니 저번 학기도 낙제를 겨우 면한 거다. 원래 공부는 혼자 하는 거다.
소문 안 낼 거란 말은 전혀 믿을 수가 없다.
다음 주에 자신과 마주치는 학부생마다 데이트는 잘하고 왔냐고 물을 게 뻔했다. 그녀는 10분 일찍 나오지 못한 자기 자신을 원망했다.
왕실사관학교를 벗어난 그녀는 바로나 광장으로 향했다.
“줄을 똑바로 서셔야 합니다!”
“거기, 꼬마야! 새치기하면 국물도 없을 줄 알아!”
가는 길에 신관과 신자들이 빈민가 사람들에게 무료 배식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율리아 교단과 다나르 교단이었다.
어느 교단인지 한눈에 알아봤다. 10살도 안 된 것 같은 꼬마 숙녀가 신관복을 입은 채 헌금함을 들고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나르 교단의 성녀, 마리였다.
넉 달 전에 그녀가 시장 한복판에서 다 죽어가던 어린아이를 살렸던 일로 떠들썩했었다.
서부 원정에서 등장했던 사도와 신수로 이름을 알린 신, 다나르를 믿는 왕도의 주민이 그 사건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앨리스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지폐를 꺼내 헌금함을 든 마리에게 다가갔다.
“고생하시네요. 마리 성녀님.”
“감사합니다! 다나르 님이 언니를 항상 지켜보실 거예요! 노력하시는 일이 있다면 근사한······ 근사한······ 뭐였더라······.”
외우고 있던 말이 기억 안 나는지 울상이 된 마리. 앨리스는 얼른 입을 열었다.
“네. 꼭 근사한 결실을 볼게요.”
“아! 맞다. 결실, 결실, 결실······.”
단어를 까먹지 않으려고 작게 되뇌는 마리. 앨리스는 어쩐지 그녀의 볼을 꼬집어주고 싶어졌다.
그때.
“와! 거기서라!”
“그쪽으로 간다!”
“꼼짝 마라!”
갑자기 골목에서 우르르 튀어나온 아이들.
“냐앙! 냐앙! 냐앙!”
도망가고 있는 고양이가 앨리스의 눈에 띄었다.
평범한 고양이가 아니었다.
덩치가 두 배 정도 컸고, 다리가 여섯 개였다.
‘신수 해리온.’
앨리스는 그 정체를 바로 떠올렸다.
두 달쯤 전에 완공된 다나르 신전에는 두 마리의 신수가 살고 있다.
해리온과 지룡.
지룡은 아이들을 위해 자기 몸으로 신나는 놀이 시설을 만들어주고, 해리온은 귀엽다고 소문났다.
그 둘과 놀기 위해 방문하는 아이들로 다나르 신전의 정원은 항상 북적거리는 걸로 유명하다.
무료급식소에는 해리온만 함께 온 모양이었다.
“냐앙!”
“언니들! 오빠들! 해리를 괴롭히면 안 돼요!”
살려달라는 해리온의 외침에 마리가 서둘러 달려갔다. 앨리스는 그 모습을 미소 띤 얼굴로 지켜보았다.
댕~ 댕~ 댕~
정오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
앨리스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약속 시간에 늦어버렸다. 그녀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바로나 광장에 도착한 앨리스는 약속 장소인 분수대로 다가갔다.
찾고 있던 소년이 보였다.
자르얀.
얼마 전, 결혼식을 올린 2왕비의 동생.
앨리스는 그의 삼촌인 슈르갈과 에반의 누나인 아네트 리오넬이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프란과 에반이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들었다.
어디 가서 떠들고 다니지 말라고 프란이 신신당부했었다. 그 정도는 눈치껏 입 다물 자신인데도 말이다.
‘스승님은 아직도 날 너무 어린애 취급해.’
프란의 엄한 얼굴을 상상했던 앨리스는 도리도리 고개를 저어 그녀를 지우고 자르얀을 바라봤다.
두꺼운 책을 읽으며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었다. 자신이 두세 시간 늦었어도 전혀 문제가 없었을 것 같은 모습에 앨리스는 괜히 심통이 났다.
하지만 그게 또 자르얀의 매력이었다.
‘자르얀은 천재야.’
앨리스는 천재를 많이 안다.
에반, 프란, 적탑주, 이자벨······.
앨리스는 인정 안 하지만 남들이 볼 때는 그녀도 천재다.
하여튼.
자르얀을 직접 가르쳐본 앨리스는 그가 그들을 뛰어넘는 천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저 녀석, 마나 감응도가 처참하지만 않았어도.’
만약 자르얀의 마나 감응도가 뛰어났다면, 마법의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야!”
앨리스는 자르얀의 등을 팍! 쳐서 그녀의 존재를 알렸다.
“앗! 왔어?”
“조금 늦었네. 미안.”
“그래?”
기다린 지도 모르는 것 같은 자르얀.
“아까 종소리 못 들었어?”
“아, 이것 좀 읽고 있느라고.”
앨리스는 그가 보고 있던 책의 표지를 살폈다.
『신소재학개론 – 이자벨 로넬리』
보름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일이 있었다.
세계마력초전도체협회 세미나에서 철에 준하는 마력초전도체, 라크K가 발표되었다.
앨리스는 왜 K가 붙었는지 이유를 알았다.
라크를 처음으로 만들었던 부친, 카메오를 기리기 위한 이자벨의 표식이었다.
어쨌든.
라크K의 활용성은 무궁무진했다.
열차만 해도 일부 부품을 라크K로 교체하면 최대속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비공정은 말할 것도 없다.
세미나에서 이자벨이 발표했던 라크K의 활용 예시 중 세계열강의 눈을 뒤집히게 만든 건 역시 마력포.
라크K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도 마력초전도체를 이용해 마력포를 사용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이 아니지만, 마력초전도체가 폭발을 견디지 못했었다.
그런데 라크K가 등장한 것이다.
세미나에서 시연된 마력포는 기존의 것보다 사거리와 폭발력 모두 두 배 가까이 향상되었다.
그게 전장, 특히 해전과 같이 기사들이 움직이기 힘든 상황에서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할지 마력포의 시연을 지켜보던 이들은 모두 알 수 있었다.
청동의 시대가 지고 철의 시대가 시작되었던 것처럼, 철의 시대가 지고 마력초전도체의 시대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었다.
“이자벨 님이 마공학부의 교수로 오시는 게 얼마 안 남았잖아. 마침 사용하실 교재를 어제 보내주셔서 미리 보고 있었어.”
“와······ 라크K를 연구하며 교재는 언제 만드신 거래?”
“그러게. 내가 이런 대단한 분 밑에서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네.”
“걱정하지 마! 잘 할 수 있어. 너를 가르쳤던 내가 보장할게.”
“고마워, 앨리스.”
“배고파. 밥이나 먹으러 가자.”
“아, 그래.”
앨리스는 자르얀의 손을 잡아끌고 그와 같이 가려고 벼르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식사하면 반드시 맺어진다는 소문이 있었다.
‘미래’에서 뇌전의 마녀라 불리며 전장에서 쓰러졌던 앨리스.
리오넬 왕국의 왕자, 이안 리오넬이 뒤집기에 성공한 여름날, 그녀의 첫사랑도 시작되었다.
에반으로 인해 전혀 다른 운명을 살게 된 이들 중 한 명인 앨리스였다.
***
아르야 왕국의 남쪽.
깊은 바다, 거대한 동굴.
거대한 몸을 웅크리고 있던 놈이 눈을 떴다.
미래를 내다보는 힘을 지닌 에트림의 네 번째 머리였다.
끔뻑, 끔뻑.
놈은 몽롱한 정신 속에서 조금 전 꾸었던 꿈을 되새겼다.
피로 물든 바다와 인간의 비명으로 가득 찬 하늘. 사방에서는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었다. 그건······.
‘마력포인가.’
놈은 고개를 갸웃했다. 꿈속 마력포의 소리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컸던 탓.
‘얼마나 잠들었던 거지?’
잠들고 얼마나 지났는지 정도는 앉은 자리에서 알아낼 수 있었다. 닫혔다 열리기를 반복하던 네 번째 머리의 눈빛이 점점 맑아졌다.
‘4년 2개월만인가.’
신기한 일이었다.
미래를 내다보는 것은 에트림에게도 엄청나게 부담이 간다. 그렇기에 공물이 없으면 행하지 않는다.
그런 일을 무의식적으로 해버리고 말았다.
‘어째서?’
아무리 고민해도 이유를 모르겠다.
당장 무녀들의 피와 살을 받아먹고 꿈속에서 보았던 미래를 더 엿보고 싶어졌다.
네 번째 머리는 눈을 감고 자는 일곱 머리를 한번 쓱 훑었다.
다들 곤히 자고 있었다.
‘미래를 엿본 대가인가.’
본래라면 동시에 일어났어야 할 머리들. 혼자만 깨어나 버리고 말았다.
섣불리 깨우면 공격할 게 뻔했다. 특히 포악한 두 번째 머리라면 잠결에 자신을 물어뜯어 버릴 터였다.
네 번째 머리의 기억으로 두 번이나 두 번째 머리에게 잡아먹혔었다. 아무리 재생된다지만, 새로 솟아나는 머리를 똑같은 자신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놈은 다른 머리들을 깨우는 걸 포기하고 눈을 감았다. 자는 동안 일어난 일들을 파악하기로 했다.
가장 많이 신경이 쓰인 곳은 역시 리오넬 왕국.
잠들기 전, 서쪽에서 보석을 깨트리고 탄생한 샛별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똥별을 붙들고 아르야 왕국을 환하게 비추는 장면을 보았었다.
그건 아르야 왕국에게 있어 분명 흉물스러운 징조였다.
자신이 잠든 후 아르야 왕국이 자신의 계시를 듣고 어떻게 대처했나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다.
에반 리오넬.
아미카 아르야의 사망.
국왕파와 귀족파의 분열.
왕실 연쇄살인마의 등장.
놈의 머릿속으로 수많은 정보가 스며들었다. 네 번째 머리는 점점 치밀어오르는 화를 억누르기가 힘들었다.
아르야 왕국의 쇠퇴는 곧 자신의 힘이 감소함을 의미했다.
당장이라도 멍청한 아르야 국왕의 머리를 집어삼키고 싶어진 놈의 머릿속에 몇 가지 정보가 더 들어왔다.
운명과 시간의 신 다나르.
신수 해리온과 지룡.
흠칫.
네 번째 머리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왜지?’
어째서 자신이 ‘공포’라는 감정을 느꼈는지, 놈은 한참을 고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