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69)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169화(169/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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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아카샤궁.
나의 동복누이, 아네트 리오넬의 거처다. 그곳에서 가족끼리 모여 누님과 마지막 다과회를 즐겼다.
왜 마지막이냐면.
“누님이 칸트라로 떠나실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군요.”
“그동안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폐하.”
22살, 왕족의 여인치고는 늦은 나이에 누님이 드디어 혼인을 올리게 되었다.
상대는 슈르갈.
2왕비 라누아와 자르얀의 삼촌, 올해 초 건국을 선포한 칸족의 국가 칸트라의 국왕인 누르갈의 동생이다.
내가 칸족과의 동맹을 위해 은밀히 누르갈과 접선했을 때, 인솔을 책임졌던 그 슈르갈 맞다.
나와 라누아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왔던 그가 누님과 눈이 맞았다.
정치적으로도 나쁘지 않았다. 나와 누르갈 둘 다 찬성했고, 다시 한번 양국의 동맹을 공공이 하는 결혼이 성사되었다.
“곧 왕도의 유명 극단에서 아네트 님과 오라버니의 사랑 이야기가 공연될 거라고 하던데, 못 보고 가시겠군요.”
“호호호, 꼭 보고 싶었는데 정말 안타깝네요.”
라누아의 말에 누님이 입을 가리며 웃었다.
전혀 안타까운 표정이 아니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소재로 만들어진 연극 보는 건 꽤 곤욕이다. 나도 몇 번 본 적 있어서 잘 안다. 내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연극도 꽤 많은 탓.
『역전의 왕실 재판』
『비상하는 왕자』
『바다의 제왕』
.
.
.
최근에 나온 서부 원정 편까지 생각하면 벌써 7부작이다.
“둘째 조카도 보고 갔으면 참 좋았을 텐데······.”
누님이 라누아의 동그란 배를 바라보며 아쉬운 눈빛을 띄웠다.
허니문 베이비다.
날짜를 계산해보면 정확히 내가 라누아와 결혼식을 올린 날에 생겼다. 개인적으로 딸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찻잔을 입에 가져가며 정원에서 놀고 있는 아들을 바라봤다.
“해이! 해이!”
뒤뚱뒤뚱 걷기 시작한 내 아들, 리오넬 왕국의 1왕자 이안이 혀 짧은 소리로 해리를 부르며 맹렬히 따라가고 있었다.
“크릉, 크릉.”
해리가 귀찮다는 듯 나무를 타고 휙 올라가 버렸다.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손바닥에 올릴 수 있을 만큼 작았던 녀석이 이제는 대형 늑대보다 커졌다.
구름이 휘감고 있는 듯한 갈기도 나기 시작했다. 이제 신수라고 말하고 다닐 수 있을 정도의 외향은 되었다.
해리와 지드래곤은 땅굴을 통해 왕궁과 신전을 자유자재로 오간다. 오늘은 해리만 왕궁에 놀러 왔다.
놀러 왔다?
최근 녀석들을 관찰하면 신전을 찾은 아이들을 피해 잠시 휴식하러 오는 쪽이 좀 더 맞는 것 같다.
“해이! 해이! 으아아앙!”
닭 쫓던 개 신세가 된 이안이 나무 위 해리를 부르며 엉엉 울었다.
“해리! 잠시만 이안이랑 좀 놀아주렴.”
“크릉······.”
레이나의 부탁에 해리가 마지못해 나무에서 내려와 이안 앞에서 털썩 앉았다.
“해이! 해이! 꺄아!”
해리의 등 위로 기어오르는 이안이 다시 신이 났다.
“크릉······.”
해탈한 표정의 해리. 녀석도 신전에서 아이들에게 한창 시달리다 왕궁으로 쉬러 온 걸 텐데, 조금 미안해졌다.
찻잔을 내려놓은 나는 하늘을 바라봤다.
정말 오랜만에 갖는 여유였다.
“아, 그 소식 들으셨어요? 줄리앙 자작과 아이라 자작이 식을 올릴 날을 잡았다고 하더라고요.”
“정말인가요?”
“후후, 며칠 전 찾아온 아이라 백작이 직접 알려주었답니다.”
누님과 왕비들의 이야기 소리를 배경음 삼아 서부 원정 이후 정신없이 달려왔던 날들을 회상했다.
에이츠상회의 최고 경영자로 앉아있는 아이라는 마력초전도체 라크K의 수출을 위해 세계를 돌아다니며 바쁜 나날을 보냈었다.
그 결과.
서북부 탈환 이후 비어가던 왕실의 곳간에 여유가 생겼다. 그 공로로 그녀는 올해 초 백작으로 승작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폐하, 승작은 저와 줄리앙 자작이 결혼식을 올린 이후에 가능할까요?
애인을 배려하는 그녀의 부탁에 잠시 미뤄둔 상태다.
아무래도 여자 쪽이 남자보다 작위, 재력 등이 월등히 앞서면 뒤에서 말이 많이 나오기 마련이었다.
줄리앙의 경우 세간의 평가에 별생각이 없어 보였다.
올해 초, 왕실기무대 정보부 수석 서기로 승진한 그의 머릿속은 99%가 업무, 1%가 아이라로 채워져 있을 게 분명했다.
-공민회에 동조하는 지역민들의 기세가 남다릅니다. 조만간 민중봉기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엊그제 그가 한 보고가 떠올랐다.
건국 1년차인 칸트라와 왕국의 북부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인 엘렌베이라 지역에서 ‘공화정’이라는 독을 풀고 있는 공민회.
루카스를 통해 왕국의 은밀한 지원을 받는 그들이 자신들의 이념을 열심히 전달하고 있었다.
설마 진짜 이종족 연합 에덴처럼 새로운 공화국이 탄생하려나?
엘렌베이라 지역은 내가 추후 왕국으로의 편입을 노리는 지역이었다. 그곳에 하믈 제국이 아닌 공화국이 들어선다라······.
솔직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만약 그들이 공화정 국가를 주창하며 독립을 선언하면, 지금도 치열하게 국지전을 벌이고 있는 7황자와 11황녀가 일시 휴전하고 그들부터 처리하고 볼 거다.
여러모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사안이었다.
***
아침에 누님이 떠났다.
칸트라 왕국의 기념비적인 첫 비공정을 타고 온 슈르갈. 그가 칸족의 전통 혼례복을 곱게 차려입은 누님을 데리고 갔다.
집무실에서 보고 있던 마지막 서류에 결재 사인을 한 나는 펜을 놓고 누님이 떠나간 하늘을 바라봤다.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누님과 슈르갈은 둘을 소재로 왕도에서 공연될 연극처럼, 서로 한눈에 반하지는 않았을 거다.
한순간 불타올랐다 확 꺼져버릴 수 있는 그런 변덕스러운 감정에 휩쓸릴 두 사람이 아니었다.
‘많은 계산을 했겠지.’
아국과 칸트라의 관계, 슈르갈의 입지, 그 외 기타 등등. 그것들 속에 누님의 행복도 있길 바란다.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생각보다 일찍 업무를 끝냈다.
뒤에 프란과의 약속이 있는데, 시간이 조금 남았다.
오랜만에 왕도도 둘러볼 겸 일찍 나서기로 했다. 알폰소와 오늘의 당번인 버논을 동반해 궁을 나섰다.
왕궁의 정문으로 가는 마차 안.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알폰소와 달리 버논의 얼굴은 살이 오르고 윤기가 좌르르 흘렀다.
“버논, 부인이 잘 챙겨주나 봐?”
“네? 하하, 아내가 요리를 어찌나 잘하는지 모릅니다.”
누님이 왕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맺어준 커플이 버논과 그의 부인이었다. 그는 장가간 지 한 달이 채 안 되는 새신랑이었다.
요리부터 시작해 그의 아내 자랑이 계속되었다.
아돌과 베록도 신혼 때 저랬다.
“알폰소 자작은 결혼 안 하십니까?”
“저 말입니까?”
영혼이 없는 눈을 하고 있던 알폰소가 버논의 질문에 콧잔등을 긁었다.
“아직은 별로 생각 없습니다.”
“이상형도 없으십니까?”
“이상형이야 있죠.”
“어떤?”
“일단 이 정도 넉넉한 마음에 허리는 요만큼······.”
알폰소가 손짓을 이용해 커다란 가슴과 잘록한 개미허리를 만들었다.
존재할 수 없는 인체 비율.
현생에서는 독신으로 늙어 죽을 팔자인 모양이었다.
‘······ 현생에서는?’
‘미래’에서는 독신이 아니었나?
분명히 얼마 전까지도 알고 있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누님의 ‘미래’는 어땠더라?’
그것 역시 떠오르지 않았다.
“아, 그리고 저는 무조건 금발이어야 합니다.”
“금발이요?”
“그냥 금발이 아닙니다. 살짝······.”
알폰소가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이상형에 관해 신나게 떠드는 동안 ‘미래’의 기억을 점검해봤다.
굵직굵직한 뼈대만 남아있었다. 그것도 이제는 너무나 뒤바뀐 역사 탓에 정보 가치가 거의 없는.
‘뭐, 상관없나.’
정말 잊지 말아야 할 내용은 [도서관]의 하부 기능인 [메모장]에 적어놨다.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훑어보면 될 일이었다.
일부러 빙빙 돌아서 왕실사관학교로 향했다.
왕도에 사는 왕국민들을 관찰하기 위함. 그들의 표정이 곧 내 성적표나 마찬가지였다.
대부분 밝은 얼굴이었다.
그런데 간혹 표정이 좋지 않은 이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더 시선이 갔다.
무슨 사연인지 유령손을 이용해 바로 이름을 확인 후 [도서관]의 지니에게 정보를 구했다.
>잭 다니엘은 고백에 대한 답변을 일주일째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울리 코노스는 이틀 전부터 언니와 크게 다툰 후 화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카사노 도슨은 어제 첫사랑을 몰래 만나고 온 것을 아내에게 들키고 말았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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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각별히 신경 쓸 만한 일은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민생 파악보다는 개인의 사생활을 캐고 있는 사설탐정의 기분이 들어 그만두었다.
가는 길에 다나르 대신전이 보였다.
다른 거대 교단의 일반 신전보다도 조금 작은 감이 있지만, 하나뿐이면 그게 대신전이지 뭐.
추후 교세가 커질 것을 고려해서 터를 잡았기에 확장 공사는 무리 없다.
거대화한 지드래곤이 몸을 이리저리 꼬아 정글짐처럼 만든 공간에 아이들이 바글바글한 것이 보였다.
‘녀석, 고생이네······.’
멀리서나마 응원해줬다.
문득 다나르 교단의 세가 어느 정도 올라왔는지 궁금해졌다. 생각난 김에 [신앙]창을 열었다.
‘왕도가 88. 서부 지역이 대략 50 안팎. 다른 지역은 20 아래군.’
이적을 실제로 접한 서부, 왕도와 나머지 지역의 차이가 심했다. 꽤 많이 올라왔지만, 국교로 삼기에는 턱없이 낮은 수치였다.
단기간에 끌어올리면 역시 큰 한방이 필요할 것 같았다.
‘국가 간 전쟁 같은······.’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
앞으로 최소 두 번의 큰 전쟁이 있으리라 예상한다.
전쟁이 일어나면, 왕국민들의 표정에는 시름이 깃들게 된다. 한데 나의 [지지도]는 오를 것이다.
서북부 탈환 때 경험했었다.
한창 하믈 제국을 몰아붙이고 있을 때는 대부분 지역의 지지도가 90을 넘어섰었다. 아, 물론 연전연승이라 그런 것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승리한다는 전제하에 전쟁을 일으켜도 나에 대한 왕국민의 지지가 떨어질 일은 없다.
다른 왕국들도 마찬가지일 터.
‘미래’에서 아르야 국왕이 귀족파를 숙청하고 리오넬 왕국에 쳐들어온 것이나, 샤를이 하믈 제국의 새로운 황제로 등극 후 전쟁광이 된 것도 같은 이유일 거다.
어려운 문제다.
창밖에 목적지인 왕실사관학교가 보였다.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전쟁에 관한 생각을 그만두었다.
다그닥, 다그닥.
왕실사관학교를 들어선 마차가 마공학부의 메인 건물에 멈췄다.
비공식적 방문이었기에 나를 마중 나온 사람은 없었다. 망토의 후드로 얼굴을 뒤집어쓰고 마차에서 내렸다.
“저 사람들 누구야?”
“범죄자는 아니겠지?”
“에이, 설마. 여기 왕실사관학교의 경비가 얼마나 철저한데.”
마공학부에 어울리지 않는, 후드를 뒤집어쓴 덩치 큰 세 남자의 등장에 학생들이 수군거렸다.
사람들의 관심이 더 쏠리기 전에 서둘러 마공학부장실로 이동했다.
똑똑, 똑똑.
“프란, 접니다.”
“들어와.”
알폰소와 버논은 대기시키고 혼자 문을 열고 들어갔다.
프란 혼자였다.
“앨리스는 어디 가고 혼자 계세요?”
“몰라. 요즘 머리가 컸다고 말도 안 듣고 미쳐버리겠어, 진짜.”
질풍노도의 시기가 온 제자와 트러블이 많은지 그녀의 인상이 잔뜩 찡그려졌다.
나는 어색하게 웃어준 뒤, 용건을 꺼냈다.
“상급 마정석의 효율을 내는 스텔라, 정말 완성된 건가요?”
“봐봐.”
그녀가 내게 스텔라를 내밀었다.
주워드는 순간, 측정기로 확인해보지 않아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중급 마정석이 품을 수 있는 마나량이 아니었다.
“예전에 상급 마정석의 효율을 내려면 최소 5년은 걸릴 것 같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어떻게 불과 1년 만에······.”
“앨리스의 남자친구 녀석에게 스텔라의 기초를 알려주는데, 자꾸 희한한 술식을 사용하는 거야. 그걸 적용해 봤어. 그 결과가 그거야.”
그런가, 자르얀이······.
나는 손바닥 위의 스텔라를 바라보았다. 냉병기 시대에 소총을 주운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