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7)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17화(17/203)
017
이 세계는 지구가 아니다.
리오넬 왕국 사람들은 이 세계를 ‘테이라’라고 부른다. 신이 실존하고 마나가 존재하는 세상. 그런데 가끔 지구의 것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한 동식물을 목도하곤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게 인간.
그 밖에 돼지, 닭, 장미, 벚꽃 그리고 다른 새의 둥지에 탁란되어 키워주는 부모 새의 새끼를 전부 죽여버리고 성장하는 뻐꾸기 등이 있다.
리오넬 왕가의 피는 진하다.
적발인 아카드가 뻐꾸기 새끼일지도 모른다는 소문,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걸 떠든 이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면서 쉬쉬하게 되었을 뿐.
[도서관]이 막 개방된 직후, 나도 그 소문의 진위를 확인해본 적이 있었다.┕ 4왕자는 왕실의 피가 흐르지 않는다는 소문이 사실이야?
「보유하신 RP로는 해당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결과는 당연히 문전박대.
한동안 잊고 있었다.
레이나와의 극적인 관계 개선이 이루어지고 ‘나도 알고 보면 인기쟁이’ 업적을 달성 후 보유한 RP가 3만을 조금 넘었을 때도 지니의 답변은 같았다.
그런데 어제, 질문에 대한 답변이 변했다.
「해당 질문의 정보이용료는 30,000RP입니다.」
전생의 현금 가치로 약 3억 원.
정보를 구매하진 않았다.
RP를 몽땅 쏟아부어 진실을 알아내도 그다지 쓸모가 없었다. Yes라는 답변이 나왔다고 ‘4왕자는 뻐꾸기 새끼가 맞아요!’라고 소리치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다.
No라는 답변이 나오면 쓸모없는 호기심을 채우느라 [도서관]에 갖다버린 3만 RP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릴 게 뻔했다.
내가 주목한 건.
‘정보의 가격이 변했다는 거지.’
Yes 또는 No라는 답변을 들을 수조차 없던 질문의 가격이 변했다? 왜? 생각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정보의 가치가 떨어졌다.
어째서?
여러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정보가 풀리고 있는 거다.
만약 아카드가 뻐꾸기 새끼라는 사실을 개나 소나 안다면? 아는 사람이 많을수록 정보의 가치는 떨어지는 법이다.
그렇다면 왜 놈의 출생에 관한 비밀이 풀리고 있는 걸까? 어떤 이들이 그 비밀을 공유하기 시작한 걸까?
답은 금방 나왔다.
‘1왕자, 그리고 그의 지지자들.’
그걸 추론한 순간, 2왕자를 설득하기 위해 생각해뒀던 여러 계획안을 전부 폐기했다.
그리고 3만 RP라는 거금을 Yes 또는 No라는 대답을 듣기 위해 사용하는 대신 아카드의 출생 전 9개월에서 11개월 사이 2왕비의 행적을 추적했다.
그 결과.
당시 그녀의 모국인 아르야 왕국의 사절단이 리오넬 왕국을 방문했던 사실. 나아가 사절단에 그녀와 어린 시절을 함께한 사촌이 있었다는 사실. 더 나아가 과거 2왕비가 그 사촌과 연분 났다는 소문이 아르야 왕실에 돌았던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본인의 거처를 아르야의 궁처럼 꾸며놓을 정도로 향수병이 심한 2왕비. 그러던 중 오랜만에 만난 과거의 연인?
그 정도면 99.99%다.
“조금 이상해졌다더니, 그 정도가 아니야. 미쳤군. 그딴 소리를 떠들다가 모가지가 멀쩡한 인간이 없다는 건 알고 있겠지?”
사람 하나는 우습게 잡아먹을 것 같은 2왕자의 시선. 잠시 피하는 척하며 그의 상태창을 재빨리 살폈다.
[관계 : 경계]‘적의’에 가까울 정도로 빨간 ‘경계’라는 글자. 적의로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옅어진 것도 같았다.
2왕자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도, 바로 나를 내쫓지도 않았다.
조금 자신감이 생겼다.
“코펜스 미켄.”
“······.”
내가 언급한 이름에 2왕자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99.99%라는 생각이 100%로 변했다.
더불어 2왕자는 아카드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 그 이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당연한 물음이었다.
2왕비의 사촌은 성인이 된 후 개명하고, 데릴사위로 들어가 성마저 바뀌었기에 사절단으로 왔던 당시 이름은 코펜스 미켄이 아니었다.
“엊그제 아르야 왕국 쿠루스 백작의 서재에 도둑이 들었다고 하더군요, 알고 계십니까?”
“!!”
쿠루스 카노스. 그게 현재 그의 이름이다.
정보란 게 참으로 신기하다.
바다 건너 옆 왕국에서 한 백작가의 서재가 털렸다는 사실. 백작의 과거 이름. 그 백작과 이렇고 저렇고 한 소문이 있었던 여자들.
하나하나 놓고 보면 많은 RP를 요구하지 않는 작은 정보 조각들. 그것들을 잘 조립하다 보면, 한 왕국의 왕비를 찌를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완성할 수 있다.
“쿠루스 백작의 서재가 털렸다고? 내가 모르는 사실을 네가 어떻게 안 거지?”
“제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보다 그곳을 누가 털었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2왕자도 짐작할 거다.
1왕자 진영에서 털어갔을 거란 걸.
그들이 물증까지 잡았는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사실은 2왕비가 은밀히 감추어두었던 시한폭탄의 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
2왕자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하나다.
“이번 왕실 재판은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시한폭탄의 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했으면, 터지기 전에 제거해버리면 그만이다.
가능한 한 빨리.
그래야 폭사를 면하지 않겠나.
***
“약속된 30분을 다 써버렸군요.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다미안은 접객실을 나가는 에반을 더 붙잡으려다 그만두었다.
곧, 수석 시종이 외투를 들고 나타났다.
“왕자님, 다음 일정······.”
“취소해. 그리고 혼자 있고 싶으니까 아무도 들여보내지 마.”
“······ 알겠습니다.”
다시 혼자가 된 다미안은 소파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에반과 그의 시종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저 녀석······.”
5년 전, 다미안은 에반의 외가인 베이른 후작가가 무너지고, 그와 관련된 이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걸 지켜봤었다.
누가 봐도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짓밟힌 에반. 녀석에게 유령왕자라는 멸칭이 생긴 후로는 일말의 관심도 가지지 않았었다.
한데.
“이빨을 숨기고 있었을 줄이야.”
아카드가 뻐꾸기 자식이란 사실을 포함해 자신조차 모르는 정보들을 어떻게 알아냈을까? 다미안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베이른 후작가의 찌꺼기들인가.”
아마도······ 정보를 다루던 비밀부대. 그들과 에반이 유령왕자라는 허물 아래서 여태껏 숨죽이고 있던 게 분명했다.
왜 이제야 허물을 벗은 걸까?
아, 허물을 벗은 건 아닌가? 망나니 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드러내게 되었을지도.
“쿠루스 백작의 서재가 털린 사실, 알고 있었나?”
접객실에 홀로 있던 다미안이 누군가에 말을 걸었다.
“죄송합니다.”
놀랍게도 벽난로 근처에서 답변이 돌아왔다.
“모르고 있었군.”
“기만일지도 모릅니다.”
“기만 같았나?”
다미안의 직감은 에반은 사실을 전해줬다고 속삭이고 있었다.
“······ 1왕자 쪽 그림자 중 몇이 아르야 왕국으로 쪽으로 이동한 걸 파악하고 행방을 쫓는 중이었습니다.”
“무능하긴.”
“죄송합니다.”
그는 멀어지는 에반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 녀석, 그림자 한 명 붙여 둬.”
“······ 무의미한 희생이 될 겁니다.”
“뭐라고?”
“5왕자의 시종, 아까 저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평범한 시종이 아닌 게 분명합니다.”
“아르야 왕국의 비전을 익힌 그림자들이라고 어머니가 붙여줬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능력이 아주 출중해. 오늘 있었던 일도 어서 가서 일러바쳐야지?”
“저희는 오직 2왕자님에게만 충성합니다.”
“고맙군. 아주 고마워서 돌아버리겠어.”
“······.”
다미안은 에반의 시종과 그의 그림자를 맞교환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반 리오넬······.”
1왕자와 비등했던, 아니 솔직히 조금은 열세였던 대립 관계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변수. 다미안은 에반이 꽤 쓸만한 비수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망나니 자식보다는 훨씬 요긴한.
손잡이가 조금 날카로울 수도 있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다듬을 자신이 있었다. 거기에 찔려 피를 흘릴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이 기회에 그 망나니 자식을 정리하는 것도 괜찮긴 하겠군. 그리고 이제 어머니의 영향력도 좀 줄일 필요가 있어.’
***
오팔궁에서 에메랄드궁으로 돌아오는 길.
“왕자님, 2왕자님이랑 단둘이 무슨 이야기를 하셨나요? 쬐끔만, 아주 쬐끔만 들려주시면 안 될까요?”
알폰소가 옆에서 계속 질척거렸다.
무시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안 그래도 2왕자와의 기 싸움으로 정신이 노곤한 참이었다. 녀석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할 마음은 터럭만큼도 없었다.
“단둘이 아니었어.”
“네?”
허공을 제멋대로 배회하며 오팔궁의 접객실을 돌아다니던 유령손이 벽난로 부근에서 멈칫하는 순간 뜬금없이 상태창이 떠올랐었다.
‘이름이 무영이었나?’
소 뒷걸음질하다 쥐 잡은 격이었다.
마나를 보는 세 번째 눈을 뜨고 그 부분을 힐끔 살피니 약간의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도 같았었다.
“······.”
알폰소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마침 귀찮았던 터라 오히려 좋았다.
‘그나저나 아깝네.’
나는 힐끔 오팔궁 방향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1왕자고 누군가 내게 4왕자의 출생에 관한 비밀을 제보해왔다면, 나는 그를 귀인으로 대접했을 것 같다.
아무렴.
소문의 진위만 확인하려고 해도 3만 RP를 요구하는 정보인데. 그것도 가치가 떨어진 지금 말이다.
┕ 4왕자의 친부는 쿠루스 카노스인가?
「해당 정보의 이용료는 29,000RP입니다.」
정정, 그 사이에 아카드가 뻐꾸기 새끼라는 걸 안 사람이 늘어 29,000RP다. 이게 묘하게 아파트 시세 검색하듯 검색하게 된다.
하락장 아파트 시세만큼 쭉쭉 떨어지는 걸 보니 어차피 곧 터질 폭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장폐지 직전의 주식 쪼가리 같다고 할까?
그나마 이렇게라도 써먹어서 다행이다. 나는 그렇게 위안 삼았다.
‘생각보다 후폭풍이 거세네.’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아카드 자식을 두들겨 팼을 뿐인데 상상했던 것보다 손해가 훨씬 크다.
단순히 [독이 든 우유] 같은 장난질이 좀 늘어나는 걸로 예측했었는데······.
왕실 재판에 서게 된 것도 그렇지만 2왕자가 나라는 존재를 신경 쓰기 시작할 거라는 점이 특히 그랬다.
에메랄드궁에 처박혀있던 유령왕자가 뜬금없이 바다 건너 백작가에 도둑이 든 일을 알아왔다고 생각해봐라.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다행히 ‘경계’ 관계가 ‘적의’로 넘어가지는 않았지만······.
갑자기 뒤통수가 서늘해졌다.
아까 그 무영이란 놈이 따라오는 거 아냐?
앞으로는 잠들기 전 유령손으로 침실 구석구석을 스캔하는 작업까지 추가할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팠다.
‘그래도 후회는 하지 않아.’
대련 당시의 짜릿한 손맛을 되새겼다. 유령손도 그때를 추억하는지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반복했다.
예상보다 나를 둘러싼 상황이 급변하고 있었다. 믿고 등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절실했다.
생각나는 사람은 누님밖에 없었다.
······ 누님도 위태위태 자신을 건사하고 있을 뿐이다.
최대한 누님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오늘 찾아온다는 것도 바쁘다고 거절한 참이었다.
나도 모르게 알폰소를 힐끔 바라보고 말았다.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 실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읽기가 힘들었다.
저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인가.
하······.
「다미안 리오넬과의 관계를 개선하였습니다.」
「5,000RP를 획득하였습니다.」
어라?
나는 재빨리 상태창을 살폈다.
뜬금없이 30분의 대담 내내 변하지 않았던 2왕자와의 관계가 ‘경계’에서 ‘평상’으로 변했다.
이 짧은 사이 뭔가 심적인 변화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이러면 왕실 재판에서 내 편이 되어준다고 확답을 들었다고 생각해도 되는 건가.
우울했던 기분이 조금은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