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72)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172화(172/203)
172
<172>
아르야 왕국.
국왕 오토 아르야는 다도실을 찾았다.
“내가 나올 때까지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도록.”
“알겠습니다, 폐하.”
그는 홀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야외 정원을 축소해 옮겨 놓은 듯한 다도실. 중앙에 있는 작은 연못에는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입을 뻐끔거리고 있었다.
쟁반 위에 뜨거운 물이 담긴 도자기와 찻잔 등을 챙기며 다도를 위한 준비를 마친 오토는 연못가 앞으로 다가갔다.
수면이 얕아 보이는 연못.
기껏해야 하반신이 겨우 잠길 정도였다. 오토가 그런 연못에 망설임 없이 발을 올렸다.
찰방, 물이 튀는 소리에 물고기들이 몰려들었다. 하녀가 먹이를 던진 줄 안 것. 하지만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분명 연못에 들어갔던 오토조차도.
영문을 모르는 잉어들은 그저 한없이 입을 뻐끔거렸다.
아르야의 왕성에는 오직 국왕에게만 전해지는 내밀한 장소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다도실의 연못 또한 그런 곳 중 하나.
오토는 비릿한 물비린내가 나고 축축한 습기가 느껴지는 지하로 이동한 상태였다.
어두컴컴한 공간 속에서 그는 희미하게 보이는 한 줄기 빛을 등대 삼아 발걸음을 옮겼다.
철벅, 철벅.
신발 위부터 무릎까지 다 젖은 탓에 걸을 때마다 진흙을 밟는 소리가 났다. 인상을 찡그릴 법도 하건만, 오토는 어떠한 표정도 얼굴에 띄우지 않았다.
그가 좁고 어두운 길을 지나 빛의 근원지였던 커다란 공동에 도착했다.
“······ 왜?”
아무도 없는 것에 당황했다.
오토는 쟁반을 잠시 내려놓고 주변을 돌아다녔다.
그러길 얼마나 지났을까?
“오토인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오토는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하늘에서 떨어지기라도 한 듯, 조금 전만 해도 아무것도 없던 자리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아르야 왕국의 전통 문사복을 입은 지독하리만큼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오토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사피안이 깨어났군.’
청년은 에트림이 의태한 모습이었다.
8개의 머리를 지닌 팔두룡 에트림. 의태한 모습을 보면 현재 육체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머리가 몇 번째인지 바로 알 수 있다.
최근 오토가 자주 봤던 건 눈을 감은 노인의 모습으로 의태하는 네 번째 머리. 오늘도 그와 약속이 있었기에 다도실 연못에 발을 담갔던 것이었다.
에트림의 여덞 머리는 이름도 따로 존재했다. 문사복을 입은 청년은 사피안. 가장 방대한 지식을 보유한 세 번째 머리였다.
“사피안 님을 뵙습니다.”
“오랜만이군. 비던은 어디 갔는지 안 궁금한가?”
비던은 오토와 약속되어 있던 네 번째 머리의 이름이었다.
“어찌 제가 위대하신 분들의 뜻을 알겠습니까.”
“크크크, 그 녀석, 내가 일어나다 잠결에 먹어버렸거든.”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기괴한 목소리.
죽음의 냄새가 짙게 묻어있었다. 오토는 자신도 모르게 공포에 몸을 떨었다.
‘두 번째 머리까지 깨어났군.’
가장 포악하고 게으른 두 번째 머리까지 깨어났다면 사실상 머리들이 전부 기상했다고 봐도 좋았다.
인상을 잔뜩 찡그리며 눈을 감는 사피안.
머리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그가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뜨고 오토를 바라봤다.
“못 볼 꼴을 보였군.”
“······.”
오토는 말없이 고개를 조아렸다.
“사정은 이해했겠지? 비던을 다시 보려면 시간이 좀 필요해.”
이른 시일 내에 네 번째 머리를 수복하고 싶으면 공물을 바치면 된다는 말이기도 했다.
“우리가 잠들었던 사이, 왕국이 개판이 된 것 같던데?”
서늘한 사피안의 눈빛에 오토의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에트림은 신에 가까운 존재.
하지만 온전한 신은 아니다.
아르야 열도 사람들의 숭배, 공포, 증오, 원망······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힘을 키웠던 에트림.
그것은 에트림이 빠르게 힘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을 주었었지만, 결국 신계로 승천하는 데 크나큰 걸림돌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지상에 지나치게 얽매여버린 것이다.
승천하기 위해 하늘을 날아오르던 순간, 발목을 강하게 움켜쥐었던 ‘인과’을 떠올린 사피안이 다시 눈을 감으며 분노를 달랬다.
아르야의 국왕인 오토를 ‘직접’ 죽이는 건 어마어마한 ‘인과’가 쌓이는 일. 몇백, 몇천 년은 은둔해 있어야 할 정도다. 그리고 그 정도면 잊힌 존재가 되어 기껏 얻었던 신성도 산산이 조각날 것이 분명했다.
전신을 압박하던 감각에서 해방된 오토.
“하아, 하아······.”
그는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사피안이 그런 그 모습을 한심하게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비던이 네게 무엇을 시켰었지?”
오토는 재빨리 입을 열었다.
“비, 비던 님이 급하게 저를 찾아 모든 기밀문서의 폐기를 명하셨습니다.”
“그런 걸 시켰다고? 왜?”
“그에 대한 말씀은 없으셨습니다. 그저, 왕국을 지켜보는 거대한 눈을 가려야 한다는 말만 하셨습니다.”
사피안의 물음에 답변하면서도 오토는 다시금 의문이 일었다.
대체 왜 기밀문서들을 파기해야 하지?
거대한 눈이란 게 무엇일지 도통 짐작이 안 갔다.
물어봐도 대답해줄 것 같지 않아 못 물어봤는데, 이제 답을 듣긴 틀린 것 같았다.
에트림은 하나이면서도 여덟인 존재.
네 번째 머리가 무엇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는 이제 영영 알 수 없게 되었다.
“······ 그래. 그랬던 거군. 나조차 잊고 있던 그가 이제야 자신의 조각 중 하나를 찾은 거야.”
잊어? 그? 조각?
사피안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는 오토는 머릿속에 의문만 가득 찰 뿐이었다. 혹시나 설명해주지 않을까 기대하며 그는 사피안의 표정을 살폈다.
사피안은 시선을 위로한 채 깊은 고민에 빠져있었다. 자신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은 그 모습에 오토는 기대를 접었다.
한참 뒤, 사피안이 입을 열었다.
“또 무엇을 시켰지?”
“기밀 문서를 파기 이후에는······.”
오토는 비던이 시켰던 일들을 사피안에게 상세히 보고하기 시작했다.
“······ 그리고 삼 일 전, 아이멘 제국에 주둔하는 대사를 통해 총리에게 손을 내밀었었고, 오늘 아침 그가 제가 내민 손을 잡았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에 뭘 하라는 이야기는 없었고?”
“딱히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그에 관한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했습니다.”
생각이 깊어진 사피안. 그는 눈을 감았다.
오토가 찾아오기 전부터 하고 있던 걸 다시 시작했다.
-스텔라라고? 이런 기술이 개발되면 우리 왕국은 조만간 리오넬 왕국에게 집어 삼켜질 거야.
-리오넬 왕국이 눈부시게 발전하는 동안 도대체 아국의 마법사들은 무엇을 한 거지?
-아르야 왕국은 이제 미래가 없어.
-그래! 기회의 땅, 아이멘 제국으로 이민을 가야겠어.
.
.
.
미래를 엿보는 네 번째 머리 비던처럼 사피안도 한 가지 권능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에트림을 숭배하는 이들의 생각을 엿듣는 것.
다른 머리들도 신도들의 기도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생각까지 엿들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사피안 뿐이었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하반신이 홀딱 젖어있던 오토는 추운 내색도 못 하고 으슬으슬 떨었다. 이러다 죽겠다 싶을 무렵 사피안의 입이 겨우 열렸다.
“리오넬 왕국의 프란 미네르바 공작. 가만히 내버려 두면 큰 우환이 되겠군.”
“그렇습니다.”
“어쩔 생각이었지?”
“그녀가 아이멘 제국에 있는 동안에는 섣불리 건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기회는 단 한 번, 그녀가 호라이즌에서 복귀하고 리오넬 왕국으로 돌아갈 때를 노릴 생각입니다.”
“그렇군. 하늘에서 덮칠 생각인가.”
사피안은 오토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오토는 그 눈빛이 미덥지 않은 신하를 바라볼 때의 자신과 똑같다는 걸 깨달았다.
“나도 동행하지.”
오토는 눈을 크게 떴다.
에트림이 직접 개입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언제나 말로만 지시를 내리며 한 걸음 물러나 있는 에트림이었다.
‘준비해야겠군.’
에반에 의해 아르야 왕국의 상황이 개판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오토는 상당히 유능한 왕이었다.
자신이 에트림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바로 떠올렸다.
자신의 동생, 전 리오넬 왕국의 2왕비.
그리고 패륜을 저지른 딸 얀데르시아.
둘을 공물로 바쳐야 한다.
고귀한 아르야 왕실의 피가 흐르는 둘이라면 에트림이 직접 개입해도, 그 반작용은 최소화할 수 있으리라.
만약 에트림이 현장에서 별다른 힘을 쓰지 않더라도 네 번째 머리가 수복될 일이다.
“곧, 위대하신 분들을 위해 봉사할 무녀를 보내드리겠습니다.”
“기다리겠다.”
오토를 만나고 처음으로 웃는 사피안.
그가 뱀처럼 얇은 혀로 입술을 훔쳤다. 아르야 왕실의 고귀한 피가 품고 있는 향과 맛이 떠오른 탓이었다.
***
스텔라의 발표 이후.
아이멘 제국의 철통같은 호위를 받으며 호텔에 틀어박혀 있던 프란이 오랜만에 외출을 했다.
호라이즌 메달을 목에 걸 사람을 선정하기 위한 수상식이 열리기 때문이었다.
“스승님, 긴장 안 되세요?”
“전혀.”
앨리스의 속삭임에 프란이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답했다.
5년 전의 ‘마그네트론’ 때는 솔직히 쟁쟁한 연구들이 많았지만, 올해는 ‘스텔라’의 독주였다.
물론 훌륭한 발표는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 기존의 것을 보완, 발전시킨 것이었다. 그에 반해 스텔라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
프란이 2연속 호라이즌 위너를 자신하는 이유였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호라이즌 메달을 수여 받을 주인공은! 바로! 바로! 리오넬 왕국의 공작, 8성 마법사 프란 미네르바 님입니다! 최초의 2연속 호라이즌 위너입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진행자의 입에서 프란의 이름이 나왔다.
짝짝짝!
우레와 같은 박수 속에 프란이 걸어 나갔다.
한번 받아본 적이 있어서 그런지 그녀는 능숙하게 메달을 목에 걸고 수상 소감을 말했다.
((······ 그리고 스텔라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막대한 지원을 해주신 리오넬 왕국의 국왕, 에반 리오넬 폐하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마지막에 에반의 이름도 살짝 언급했다.
그렇게 수상식이 끝난 뒤, 스텔라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각국의 고위 인사들은 부푼 마음을 안고 연회장을 찾았다.
그동안 호텔에서 두문불출했던 프란과 접촉해 투자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기다리고 기다려도 프란은 연회장에 나타나질 않았다.
“뭐라고?! 리오넬 왕국의 비공정이 벌써 떠났다고!”
“그걸 왜 이제야 보고하는 거야!”
“당장 본국에 연락해서 엉덩이가 무거운 양반들에게 리오넬 왕국으로 날아가라고 전달해!”
프란은 수상식을 마친 직후 은밀하게 리오넬 왕국으로 향하는 비공정에 올라탔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안 각국의 관계자들이 길길이 성내며 자국의 정보원들을 탓했다.
한편, 그때.
리오넬 왕국의 대형 비공정 골든드래곤의 갑판에는 앨리스가 자르얀을 붙들고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아~니~ 그래도 연회장에서 밥은 먹고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안 그래, 자르얀?”
“그래? 나는 선내식도 꽤 맛있어서······.”
“아, 진짜! 누가 선내식이 맛없대? 하여간 진짜 공감을 안 해줘요! 공감을!”
크게 쏘아붙이고 떠나는 앨리스.
자르얀은 머리를 긁었다. 여자의 마음은 정말 그 어떤 술식보다 해석하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한 커플의 작은 다툼이 있었지만, 골든드래곤은 빠른 속도로 리오넬 왕국을 향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다.
레이나는 선실에서 나와 갑판으로 향했다.
6성, 7성, 8성.
경지가 향상될수록 덜해졌지만, 그녀는 마차, 열차, 비공정 같이 탈것에 오래 있으면 식은땀이 나고 구토가 치밀어올랐다.
이유는 스스로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어렸을 때, 용병단을 따라다니는 창부 집단의 마차 안에서 몇 날 며칠을 굶다 죽을 뻔한 기억 때문이었다.
그것도 친구들의 싸늘한 시신들과 함께.
생각하기 싫은 기억이 떠오른 레이나는 얼른 고개를 저으며 허리춤의 검에 손을 가져갔다.
마음이 안정되고 멀미가 조금 가라앉았다.
옛날처럼 습격했던 이들의 눈을 피해 짐 속에 숨어 있던 어린 소녀가 아니었다. 단칼에 수십, 수백의 기사를 벨 수 있는 8성 기사였다.
흠칫.
그런 생각을 하던 레이나의 기감에 무엇인가 잡혔다. 아주 축축하고 음습한, 불쾌한 감각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인간을 초월한 그녀의 시야에 골든드래곤만한, 아니, 더 큰 비공정을 필두로 비공정 선단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아르야 왕국의 비공정 선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