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76)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176화(176/203)
176
<176>
어지간한 국가에는 [바리사다]와 같은 국보급 무구가 하나씩은 있다. 그리고 그런 것들에는 믿기 힘든 전설이 함께 전해져온다.
두 개였던 태양 중 하나를 떨어트렸다든가, 마룡의 목을 베었다든가, 마족이 마계로 들고 가기 무거워 지상에 두고 갔다든가 등등.
그런 이야기를 철석같이 믿던 아이가 전설에 상당한 과장이 섞여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아이는 어른이 된다.
[바리사다]의 전설 또한 마찬가지.학자 중 상당수가 [바리사다]에 관한 전설에는 허구가 가득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하믈 제국 측의 학자들이 그런 의견을 많이 내놓는다.
그중에는 리오넬의 학자들의 입을 꾹 다물게 하는 의견도 있다.
대표적으로 바리사다는 마족이 지상에서 사라지기 전인 태고의 시대부터 살아온 반마족이라던데, 리오넬의 건국왕이 그런 강대한 존재를 어찌 토벌했겠냐는 것.
바리사다의 유일한 말동무인 에반은 그에 대한 진실은 들은 적이 없지만, 짐작 정도는 하고 있다.
그녀가 토벌당한 것이 아니라 토벌당해준 것이 아닐까 하고.
그런 에반의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바리사다는 실제로 모종의 ‘계약’으로 건국왕의 검에 그녀 스스로 심장을 찔러 넣었다.
복잡한 전후 사정은 이상하리만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모친의 정체가 생각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머릿속에 안개가 낀 듯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선택을 했던 이유만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승천.
태고 시절부터 벨카스 산맥 서쪽에 터를 잡고 살아온 바리사다는 그 지역 사람들에게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런 그녀가 한낱 머리 여덟 개 달린 돌연변이 뱀조차 얻은 신성을 못 얻었을 리 없다.
하지만.
신성을 얻은 모든 존재가 승천할 순 없다. 실패하고 실패해 영락에 영락을 거듭하다, 결국 이성을 잃고 미쳐 날뛰다 토벌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바리사다와 친분이 있던 자애로웠던 불사조, 현명했던 용, 부끄럼 많던 거인이 모두 그런 결과를 맞이했었다.
애완 마수를 잡아먹히고 이성을 잃은 바리사다는 얼굴 없는 용이란 종 전체를 멸종시키겠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했었고, 그걸 실제로 실천했었다.
이성을 되찾은 후에야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에게도 때가 왔다는 것을.
바리사다는 자신이 쉽사리 승천을 이룰 수 없는 이유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지닌 마기 때문.
천상의 신이 추락해 마계에 처박힌 예는 있어도, 마계의 피가 흐르는 존재가 승천을 이룬 경우는 단언컨대 없었다.
흰색은 검은색이 되기 쉽지만, 검은색은 흰색이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바리사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천에 도전하든지, 아니면 오로지 사람들의 공포만을 먹는 존재가 되어 마계로 처박히든지.
그녀는 어둠보다는 빛이 되고 싶었다.
그렇기에 스스로 리오넬 건국왕의 검에 심장을 박아넣었다.
[바리사다]를 손에 쥔 건국왕의 후손들이 그녀가 전달해주는 마기를 모두 소모하기를 바라며.만약 그렇게 되지 못한다면?
영겁의 시간을 검속에 갇히게 될 뿐이었다.
바리사다는 그 위험한 도박을 실천했다. 그가 만났던 리오넬 건국왕의 후손들이라면 언젠가 자신이 품었던 마기를 모두 사라지게 할 것이라는 판단이 섰었다.
한데······.
건국왕 이후 후손들의 상태가 영 좋지 않아 하루에도 수십 번 어리석었던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던 그녀였다.
-역사는 승자의 편이다.
바리사다는 검에 봉인되고 500년 동안 그 사실을 실감했다.
그사이 하믈 제국 중앙에 자리 잡았던 탐욕스러운 용 아우렐리스는 승천의 문에 한 발자국 발을 들이밀었고, 그녀에게 쫓겨 열도로 도망쳤던 에트림마저 승천을 꿈꾸는 경지에 이르렀다.
불과 500년 만에 자신을 신으로 모시던 부족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기록조차 남지 않았다.
물론 그렇게 된 데에는, 그녀가 검에 봉인되며 남긴 신성의 찌끄러기를 조금이라도 더 받아먹기 위한, 아우렐리스와 에트림이라는 존재의 개입이 컸다.
바리사다가 에반에게 미주알고주알 떠들지 않았던 이야기들. 특별히 물어보지도 않았거니와 중간계의 존재가 알아서 좋을 일이 없다.
“블랙와이번! 곧 미드라 삼각지대에 돌입합니다! 곧 아군 비공정들과의 모든 통신이 두절됩니다!”
후웅- 덜컹! 덜컹!
갑자기 요동치기 시작하는 블랙와이번의 선체. 드디어 리오넬 왕국의 비공정들이 종잡을 수 없는 난기류가 휘몰아치는 미드라 삼각지대에 돌입했다.
바리사다는 그와 동시에 머릿속 한편을 꽉 채우고 있던 짙은 안개들이 조금씩 걷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 그랬어. 그래서 내가 여기로 오라했구나.’
미드라 삼각지대.
신조차 잡아먹는 탐욕스러운 ‘공허’가 봉인된 장소. 세계의 눈이 흐려지고 법칙이 뒤엉키는 곳.
그녀를 옭아매고 있던 것들이 한없이 느슨해지며 스리슬쩍 어겨도 되는 유일한 사각지대였다.
한편.
아르야의 기함의 갑판에선 승무원들의 입을 떡 벌리게 만드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짜악!
“머저리 같은 녀석.”
리히드의 부관으로 알고 있던 사내가 갑판으로 나와 리히드의 뺨을 인정사정없이 후려친 것이었다.
“하아··· 하아······ 죄송합니다.”
마나 탈진 직전 상태인 리히드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무릎을 꿇었다.
퍼억!
고개를 조아리는 리히드 머리통을 인정사정없이 걷어찬 사피안은 시선을 돌려 리오넬 왕국이 진입한 미드라 삼각지대를 바라봤다.
이제 자신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미드라 삼각지대는 기류만큼이나 마나의 흐름이 불규칙했다.
‘저 머저리가 제대로 된 마법을 구사하지 못하겠지.’
사피안은 힐끔 리히드를 바라봤다. 숨을 헐떡거리고 있는 걸 보니 미드라 삼각지대가 아니더라도 더는 마법을 사용할 마나가 없어 보였다.
다시 한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사피안은 입술을 꾹 깨물며 리히드에게서 시선을 뗐다.
지금은 저 머저리를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저놈들은 반드시 잡아야 해. 특히 국왕은 반드시.’
겨우겨우 손에 넣은 신성이었다.
직접 나서서라도 리오넬 왕국의 부흥을 막아야 한다. 신성을 얻은 존재가 타락하는 과정을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피안은 그렇게 판단했다.
설사 제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어도 승천은커녕 영락할 뿐이란 건 당연히 몰랐다.
사피안의 시선이 리오넬 왕국의 비공정 너머, 미드라 삼각지대의 중심을 향했다.
‘저곳엔 ‘공허’가 잠들어 있어.’
그건 신성을 얻은 직후 각인 된 근원적 지식.
사피안은 ‘공허’의 미세한 편린마저도 막 승천을 바라보는 자신을 충분히 잡아먹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피안은 오랜만에 섬뜩한 공포를 느꼈다.
‘괜찮아. 입구 주변에서 조금 날뛰어도 ‘공허’가 깨어날 일은 없어.’
사피안이 리히드의 지지부진한 지휘에도 나서지 않고 기다린 이유는 리오넬 비공정들이 미드라 삼각지대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
그 역시 바리사다처럼 미드라 삼각지대가 세계의 법칙이 느슨한 곳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직접 나서서 리오넬 왕국의 비공정들을 집어삼켜도 그 후폭풍이 상당히 적을 거란 것도.
“네, 네 이놈! 이 무슨 하극상이냐!”
사피안은 눈치 없는 기사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리히드 프로스의 호위였다.
이 와중에 리히드에게 충성심을 보여주려는 용기가 가상했지만, 지금은 그저 짜증이 날 뿐이었다.
-크크크, 미드라 삼각지대에 돌입하면 다음은 내가 알아서 하지.
포악한 두 번째 머리의 속삭임.
사피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
미드라 삼각지대에 진입 후, 내게 주어진 과제는 불규칙한 난기류의 법칙을 알아내 안전하게 아르야의 비공정 선단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런 내 생각은 아르야 선단의 기함에서 벌어진 일에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크아아아아아아!!
크아아아아아!!
크아아아아!
“뭐야!”
“저, 저건!”
“에트림! 에트림이다!”
머리가 여덟 개, 아니 왜인지 모르지만 하나는 없어서 일곱 개인 용, 에트림이 거대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우, 우린 다 죽었어!”
“오, 신이시여.”
경악한 아군의 표정은 곧 절망으로 물들었다.
나 역시 잠시 마음이 꺾였다.
저건 반칙이었다.
애들 싸움에 기사가 끼어든 것과 마찬가지.
‘이길 수 없어.’
입에 아르야 기사 하나를 물고 기분 좋게 포효하는 에트림을 보며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그 생각뿐이 안 났다.
「뭐야, 표정이 왜 그래? 포기하는 거야?」
그때 여태껏 침묵을 지키고 있던 바리사다가 내게 말을 건네왔다. 나는 입술을 한 번 꾹 깨물었다 입을 열었다.
“포기 안 합니다.”
「싸우려고?」
나는 대답 대신 [바리사다]를 움켜쥐었다.
심호흡을 한 번 한 후 그녀에게 물었다.
“제가 9성에 오른다면, 에트림을 상대할 수 있을까요?”
「글쎄······ 저 녀석은 신성을 얻은 지 200년 겨우 넘었을 테니 어쩌면 가능할지도?」
9성.
중간계의 존재가 오를 수 있는 한계로 알려진 영역.
역사상 그 경지에 오른 이는 한 손에 꼽았다. 그리고 9성의 경지에 오른 이들은 모두 신이 되었다.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사후 신으로 추앙받았다.
대표적으로 기사의 신, 하르트.
그가 현세를 살았던 하르트와 같은 존재인지는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일이다.
본론으로 돌아와.
9성이란 경지는 신성을 획득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지고의 경지다.
신성을 획득한 에트림이다. 놈을 상대하려면 나 역시 한계를 깨부수는 방법뿐이 없다.
문제는······.
「강마를 생각하는 거라면 안 돼. 9번째 별이 채 만들어지기도 전에 터져 죽을걸?」
바리사다의 냉정한 판단.
8성 마검사의 무력을 되찾은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앞의 경지는 나도 가보지 않은 길. 앞으로 평생 수련에만 매진해도 9성의 경지를 밟을 수 있을지 솔직히 의문이었다.
그만큼 9성의 경지는 종을 초월하는 것 이상의 무엇이었다. 솔직히 감도 잡히지 않았다.
크아아아아아아!
크아아아아아!
거대한 몸체를 비틀며 접근하는 에트림.
바리사다와 느긋하게 대화를 나눌 여유가 더는 없어 보였다.
강마에 성공해 9성의 경지를 엿볼 확률이 한없이 0에 가까운 건 잘 알고 있다. 설혹 그렇다 하더라도 에트림을 상대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거기다 에트림을 잘 막아낸다 해도······.
‘죽겠지.’
하지만 지금 방법은 그것뿐이다.
“부탁드립니다.”
최소한 지금 내 등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은 지켜야 한다.
***
바리사다는 미소 지었다.
에반 리오넬, 마음에 드는 녀석이다.
그녀가 만난 건국왕의 후손 중, 아니 어떤 인간 중에서도.
부러질 줄 뻔히 알면서도 에트림과 맞부딪치겠다는 그의 영혼에서 마족의 피가 흐르는 그녀만 볼 수 있는 빛이 뿜어져 나왔다.
부숴버리고 싶을 만큼 눈이 부셨다.
승천을 바라는 그녀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인간의 영혼을 수집하는 마족들의 저열한 취미가 이해가 갔다.
‘놀리는 건 여기까지 할까.’
그녀는 슬쩍 ‘공허’가 있는 곳을 바라본 후, 다시 미드라 삼각지대를 뚫어보려는 세계의 눈을 살폈다.
이래저래 신경 쓸 게 많았다.
‘길어야 1분인가?’
그 시간에 머리 여덟 개 달린 돌연변이 뱀의 머리를 모두 뜯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잘 견뎌. 평소랑 다를 거니까.」
“네?”
쩌적-
[바리사다]의 검신에 작은 균열이 생긴 것을 느낀 에반이 눈을 크게 떴다. 곧, 어마어마한 기운이 그를 잠식하기 시작했다.‘이, 이건!’
검을 쥔 손을 당장이라도 놓고 싶은 통증이 느껴졌다.
「가만히 있어!」
바리사다의 말이 아니더라도 에반은 본능적으로 참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이빨이 부서지도록 이를 악물었다.
강마와는 전혀 다른 감각.
에반은 곧 육체가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느낌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의 심장에는 있어선 안 될 9개의 별이 빛나고 있었다.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빛을 뿌리는 찬란한 별들의 주인이 누구인지 에반은 바로 눈치챘다.
‘이건······ 바리사다의!’
그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이해했다. 바리사다가 그의 육체를 빌려 현세에 잠시 모습을 드러내려는 것.
「잘 느껴 봐. 9성의 경지를 몸으로 직접 겪을 수 있는 단 한 번뿐인 기회니까.」
스읍─
바리사다는 에반의 육체를 빌어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오랜만에 느끼는 중간계의 상쾌한 공기에 자기도 모르게 기분 좋은 콧소리가 나왔다.
「흐흥.」
반마족 바리사다.
태고의 존재지만 인간에게 토벌당했다는 기록만이 짤막하게 남아있는 그녀가 현세에 강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