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79)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179화(179/203)
179
<179>
-폐하! 폐하! 괜찮으신 겁니까!
-알폰소! 어서 빨리 슈이츠 자작을 다시 불러오세요.
-아! 알겠습니다! 아직 왕궁을 벗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
바리사다와의 대화는 잠시 미뤄야 할 것 같았다.
“저쪽 상황부터 정리하고 이야기하죠.”
“아, 어··· 그래.”
그녀에게 양해를 구한 나는 레이나에게 신호를 보냈다. 마력 소모량이 확연히 차이 나는 세 종류의 마법을 이용했다.
전생의 모스 부호 같은, 세 개의 신호를 이용해 의사를 전달하는 전보 통신언어를 응용한 것.
‘나는 괜찮다’라는 의미의 신호를 반복적으로 보냈다.
미세한 마력의 사용을 느낄 정도로 기감이 예민했던 레이나라면 내가 보내는 신호를 해석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이건······ ! 폐하, 설마 제게 ‘나는 괜찮다’라고 하신 겁니까?
그리고 그녀는 내 믿음에 답해줬다.
나는 고개를 돌려 바리사다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좀 오래 걸릴 거 같은데, 밑에서 편히 기다리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레이나에게 들어야 할 이야기, 그리고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
밤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엔 조심스럽던 놈들이 어제를 기점으로 점점 과감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아무래도 폐하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 걸 눈치챈 모양이에요.
-사실 아군 측에도 폐하에게 무슨 변고가 생긴 건 아닌지 의심하는 이들이 생기고 있다고 합니다.
덕분에 현재 아르야 군과 아군의 상황을 일방적으로 듣기만 했을 때보다 훨씬 자세히 파악할 수 있었다.
-하믈 제국 서쪽의 소수 민족이 혼란을 틈타 독립운동을 일으켰어요. 그 일로 7황자와 11황녀가 잠시 휴전했어요.
신경 쓰였던 하믈 제국의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다 날이 밝고, 레이나가 동부로 떠날 시간이 되었다.
-금방 따라오시겠다는 그 말씀. 꼭 지키실 거라 믿습니다.
그렇게 상황 정리가 끝났다.
침실에는 알폰소와 슈이츠만 남게 되었다.
알폰소는 내가 전달하는 신호를 해석하기 위해, 슈이츠는 내 몸에 이상이 생기면 즉시 조치하기 위해서였다.
둘에게 잠시 쉬고 있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 다시 말씀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레이나와 달리 알폰소는 내가 보내는 신호를 해석하는 걸 상당히 힘들어했다.
‘톡, 톡톡’의 느낌으로 보내던 신호를 ‘쾅! 콰광!’ 정도의 강도로 보내야 겨우 알아먹었다.
-아! ‘쉬어’라고 하신 거 맞죠?
그래도 6성의 경지인 녀석이 이렇게 둔감해서야. 원혈목을 사용하는 편법으로 경지에 올라서 그런 걸까?
어쨌든 내 의사를 전달하는 데 성공한 나는 잠시 머리를 식히며 침상에 누워있는 내 육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다 문득, 내 육체와 정신이 분리된 이유로 그럴듯한 가정이 하나 떠올랐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바라봤다.
“바리사다, 저 내려가도 됩니까?”
대답이 없었다.
“바리사다?”
“······ 응? 아··· 잠깐만.”
잠들었었던 모양. 그녀의 목소리에서 졸음이 묻어났다.
“그냥 거기 있어. 내가 올라갈 테니까.”
곧 그녀가 올라왔다.
“네가 뭘 한 건지는 아래에서 구경하면서 대충 알았어. 이곳에서 마법을 사용하면 네 육체가 지닌 마나가 소모되는 것 맞지?”
“맞습니다.”
“역시······ 그런데 왜 다급한 목소리로 날 부른 거야?”
나는 잠시 할 말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어째서 저의 정신이 육체가 아닌 이곳에서 깨어났을까. 불현듯 한 가지 가정이 떠올랐습니다.”
“뜸 들이지 말고 핵심만.”
“제 육체가 심각한 착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착각? 어떤 착각?”
“자기가 9성급 강자의 육체라는 착각 말입니다.”
일시적이지만, 내 육체에 바리사다가 깃들었었다. 그녀의 통제하에서 놀라운 무력을 발휘하며 에트림의 머리통을 7개나 날려버렸다.
그러다 바리사다가 다시 검속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러고 다시 내가 주도권을 쥐려 하자······.
“아하! 그러니까 너의 육체가 나약한 네게 통제권을 넘기기 싫어서 쫓아냈다? 갈 곳 없어진 너의 정신은 예전에 머물렀던 내 집을 찾아온 거고?”
그녀의 비유가 좀 저렴했지만, 얼추 내가 떠올렸던 가정과 비슷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럴듯하다고 생각해.”
“만약 가정대로라면, 제가 이곳에서 나가 육체에서 깨어나는 방법은 하나입니다.”
“······ 네 정신이 육체가 만족할 정도로 성장하는 거?”
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 수준이 되어야 육체가 다시 정신을 받아들일지는 해봐야 아는 것.
“이곳의 시간을 최대한 늦춰주셨으면 합니다. 금방 레이나를 따라가겠다는 말, 지키고 싶거든요.”
“뭐, 좋아. 해보지 뭐.”
그렇게 육체로 돌아가기 위한 나의 수련이 시작되었다.
***
“하암······.”
하품하며 침대에서 일어난 바리사다는 창가로 다가가 커튼부터 열었다. 에반의 침실이 보였다.
바리사다는 침실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기지개를 쫙 켰다.
“얼마나 잔 거지?”
잠시 시간을 헤아려보는 그녀.
바깥으로 치면 사흘 정도였다.
바리사다는 잠이 많다.
마음만 먹으면 일주일 넘게 내리 잘 수도 있었다.
검속에 갇히기 전부터 그랬다.
천성이 조금 게으른 것도 있지만, 바리사다는 그렇게 잠으로 보내는 시간이 별로 아쉽지 않았다.
태고의 시대부터 살아온 그녀와 인간이 생각하는 시간의 가치는 엄청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일까?
바리사다는 일분일초를 치열하게 사는 에반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 녀석은 여전히 연무장인가?’
에반은 현실보다 한없이 느리게 시간을 흐르게 만든 근래에도 나태해지지 않고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검속에서의 일 년은 얼추 바깥에서의 하루. 시간의 흐름을 더 늦추는 것도 가능했지만, 그게 에반의 육체가 버틸 수 있는 마지노선이었다.
바리사다의 공간에서 하루에 한 번 마나 연공을 해도, 바깥에서 에반의 육체는 하루에 360번이 넘는 마나 연공을 하는 셈이었다.
한 번 하면 30분 정도 걸리는 마나 연공이다. 온종일 마나 연공에 매진해도 절대 달성할 수 없는 횟수였다.
거기다 에반은 검속에서 하루에서 서너 번, 마나 탈진이 오기 직전까지 마나를 사용하는 걸 반복한다.
아무리 [바리사다]에 의해 즉각 즉각 마나가 충전된다지만 육체에 무리가 안 가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
그녀는 솔직히 에반의 육체가 지금의 시간 배율을 견디는 것도 신기했다.
그가 8성의 경지에 오른 초월자가 아니었고, 특이하리만치 튼튼한 육체가 아니었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바리사다는 눈을 감고 에반을 찾았다.
생각대로 연무장에 있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것이 마나 연공 중인 것 같았다.
‘그럼 나는 자유시간을 보내볼까.’
바리사다는 룰루랄라 문을 찰칵 잠가 혹시 모를 불상사를 방지하고 책장 앞으로 다가갔다.
정확히는 천으로 가려놓은 책장으로.
그녀가 천을 걷었다.
『오빠, 이번 생의 황제는 나야』
『그 하녀의 이중생활』
『폭군의 여기사가 되었다』
.
.
.
자극적인 제목의 로맨스 소설들이 가득 차 있었다. 신기한 건 저자의 이름이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바리사다가 소설을 쓴 작가였기 때문.
“흐흥······.”
어떤 소설가가 그랬다.
독자의 끝은 작가가 되는 것이라고.
바리사다는 콧노래를 부르며 요즘 집필 중인 『폭군의 여기사가 되었다』를 빼내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고개를 올리고 전개를 구상하던 그녀의 얼굴이 갑자기 새빨갛게 붉어졌다. 이내 펜을 쥔 그녀의 손이 빠르게 휘날리기 시작했다.
***
자신 있었다.
여러 실험 끝에 내가 견딜 수 있는 시간 배율이 이곳에서의 일 년이 대충 바깥에서 하루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바리사다가 에트림을 상대하는 과정을 직접 몸으로 겪는 기연까지 얻었던 상태.
9성이라는 경지가 어떤 세계인지 경험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스스로 길을 찾아 헤매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만이었다.
한 달.
두 달.
석 달.
.
.
.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이곳에서 5년.
나는 여전히 8성에 머무르고 있었다.
아무런 성과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하루에도 수백 번 마나가 소모되고 채워지길 반복하던 육체는 그에 맞춰 한없이 단련되었다. 단조를 오래 할수록 단단해지는 성질이 있는 미스릴처럼.
바깥과 검속의 시간 배율이 점차 길어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이곳에서의 일 년이 바깥에서의 하루가 아니었다. 반나절이 채 안 된다.
덕분에 이곳에서 5년을 보낸 지금, 바깥은 아직 삼 일이 지나지 않았다.
덜컹.
바리사다가 노크도 안 하고 연무장에 들어왔다.
“또, 또 정신이 나가 있네. 나와, 차나 한잔하자.”
다행이라면 외롭지는 않다는 것.
연무장에 틀어박혀 정신적으로 몰릴 때가 되면 귀신같이 그녀가 찾아와서 나를 끌고 나갔다.
나는 못이기는 척 그녀에게 끌려 1층으로 갔다.
바리사다가 정원처럼 꾸며놓은 실내 테라스에 앉아 그녀가 타준 차를 입에 홀짝 털어 넣었다.
시큼하면서 달콤한 맛이 났다.
“뭡니까 이건?”
“이름은 까먹었어. 그냥 먹어.”
말없이 그녀와 차를 마셨다.
조급했던 마음이 조금은 진정되었다.
힐끔 바리사다의 얼굴을 살폈다. 테라스의 벽을 타고 자라는 덩굴줄기를 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녀의 버릇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끔 얼굴이 벌게지기도 하고, 갑자기 음흉한 미소를 짓곤 한다. 처음에는 좀 이상했는데, 지금은 적응이 됐다.
봐도 봐도 지독하게 아름다운 얼굴이다.
갑자기 그녀가 고개를 휙 돌렸다.
“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 반한 거야?”
“설마요.”
“재미없는 녀석.”
뭐랄까, 여신상을 보며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에 가까웠다.
이미 왕비가 둘에 책임질 식구가 많은 나다. 그녀가 지금보다 10배 아름다웠어도 내가 반하는 일은 없었을 거다.
“감사합니다.”
“뭐가?”
“이렇게 차 대접해주셔서 말입니다.”
나는 찻잔을 흔들며 씩 웃었다.
“실없는 녀석. 다 먹었으면 이제 가 봐. 나는 급히 할 게 생겼어.”
“그 취미생활 말입니까?”
“어. 이제 조만간 에필······, 앗, 방금 말은 잘 못 튀어나온 거니까 잊어도 돼. 어쨌든 이제 가서 마나 연공을 하든, 마법을 난사하든, 검으로 벽에 구멍을 내든, 네 볼일 봐.”
쫓겨나다시피 다시 연무장으로 돌아온 나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았다.
다시 수련의 시작이다.
검속을 빠져나간 의식이 육체의 코어를 들여봤다.
내가 만든 소우주.
8개의 별이 캄캄한 어둠 속에 빛을 발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몰랐다. 저 8개의 별이 뿜어내는 빛은 태양 앞의 반딧불에 불과했다는 것을.
‘태양, 별들의 중심.’
바리사다가 지니고 있던 그 태양을 기억하며 9번째 별을 만들려 시도해봤다.
몇 번째 시도인지는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럴듯한 형태를 갖춘 9번째 별이 생겨나다 이내 산산이 부서져 먼지로 화했다.
대체 뭐가 문제일까?
하루.
이틀.
사흘.
.
.
.
한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나는 새로 탄생하는 9번째 별이 태양이라고 생각한 거지? 기존에 존재하고 있던 8개의 별 중에서 하나가 태양이 될 순 없는 걸까?
깨달음은 그렇게 소리소문없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