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8)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18화(18/203)
018
왕실 법정.
나는 떨리는 심장으로 재판장의 입을 바라보았다.
“피고 에반 리오넬은 원고 아카드 리오넬에게 잔혹한 폭행을 가했음이 인정된다. 이는 왕실의 질서를 심각히 위협하는 행위이며 두 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될 행동이다. 따라서 본 재판장은 일벌백계의 본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 피고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저게 무슨 개소리지?
사형이라고?
재빨리 고개를 돌려 2왕자를 찾았다.
분명 도와주기로 약조했던 그가 재판 내내 모르쇠로 일관한 탓이다. 그는 아카드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주는 중이었다.
2왕비와 4왕녀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법정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감동적인 장면.
나는 허망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내 시선을 눈치챈 아카드가 비릿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뻐꾹.”
······?
.
.
.
번쩍 눈을 떴다.
이마에 식은땀이 한 바가지였다.
침대에서 일어나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4시.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났다.
오늘은 왕실 재판이 열리는 결전의 날. 그 심적 부담감 때문인지 별 거지 같은 꿈을 다 꾸었다.
더 자기엔 애매한 시간.
마나 연공으로 심신의 안정을 꾀하기로 했다. 스읍- 새벽 공기와 함께 받아들인 마나가 전신을 순환하기 시작한다. 곧 세상이 고요해지고 마음이 평안······
– 뻐꾹.
“염병.”
꿈속에서 아카드가 지저귀던 소리가 떠올라 마나가 역류할 뻔했다. 계획을 바꿔 목검을 들고 연무장으로 향했다.
달빛 아래서 미친놈처럼 검을 휘두르다 보니 정신이 조금 맑아졌다. 역시 머릿속이 복잡할 땐 칼질이 최고였다.
그렇게 땀과 함께 개꿈의 잔상을 흘려보낸 뒤 간단히 샤워를 마치고 침실로 돌아왔다.
창문을 열고 마나 연공을 시작했다.
하루 30분은 마나 연공에 투자해야 한다.
호흡으로 받아들인 마나가 전신을 순환하는 과정에서 육체의 활력을 높이는 효능 있다. 하루에 3시간 정도만 자도 생활에 전혀 무리가 없다.
아무리 못해도 6시간 정도는 자야 했던 걸 30분 투자로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니. 이런 남는 장사가 어디 있겠나.
과한 시간을 투자할 필요는 없다.
마나 연공은 근육의 단련과 비슷한 면이 있어서 주야장천 시간을 투자한다고 효율이 나오는 게 아니다.
하루 30분.
그 정도가 딱 알맞다.
“후우-”
연공을 마무리하고 눈을 떴다.
아직 [무극 마나연공법]의 특별함은 찾지 못했다. 분명히 히든 피스가 맞는데······. 뭐, 아직 1성 수준이니 열심히 수련하다 보면 뭐가 달라도 다를 거라 기대해본다.
‘잡생각은 여기까지.’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 마지막 정리를 해도 모자랄 판인데 싱숭생숭한 탓인지 생각의 방향이 자꾸 이상한 곳으로 흘렀다.
짝짝, 손뼉으로 볼을 치며 정신을 차린 나는 잠자기 전까지 읽고 있던 서류들을 챙겨 서재로 향했다.
***
왕실 재판이라고 모든 왕족이 모이진 않는다. 그들이 전부 모이는 건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다.
리오넬 왕국에서 왕족의 기준은 왕의 5대손까지. 건국 500주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왕족이 있겠는가.
또 생각보다 왕족 간의 분쟁은 잦은 편이다. 그때마다 참석이 강제된다면, 그것만큼 고역도 없을 것이다.
물론 몇 월 몇 시에 이러이러한 일로 재판이 열린다는 소식은 왕실의 인원 모두에게 통보된다.
나는 법정에 모인 이들을 살폈다.
정면 원고석에는 아카드 자식이 나를 바라보며 이죽거리고 있었다. 당장 달려가 두들겨 패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고개를 돌렸다.
방청석에는 얼굴도 모르는 왕족도 많았다.
1왕자를 비롯해 1왕비와 그녀 소생의 왕자, 왕녀는 모두 불참한 것 같았다.
2왕비와 나란히 앉아 있는 2왕자가 보였다. 아카드와 버금갈 정도로 성격이 더럽다 악명높은 4왕녀는 보이지 않았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는 누님이 보였다. 오지 말라니까······ 걱정 말라는 의미에서 싱긋 웃으며 고개를 꾸벅여줬다.
그 외에는 별다른······ 어?
‘3왕자?’
1왕자의 동복형제, 나보다 세 살 많은 3왕자가 앉아있었다. 오랜만에 본데다 원래 안 쓰던 안경을 착용하고 있어 못 알아봤다.
왜 온 거지?
이번 왕실 재판으로 유령왕자가 드디어 왕궁 밖으로 쫓겨날 거라는 소문이 파다한 판이었다. 그래도 피가 이어진 혈육, 떠나보내기 전에 얼굴이라도 볼 요량인가?
궁금했지만, 지금은 그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이중 가장 중요한 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바로 재판장.
왕실 재판의 판결은 보통 왕실 위원회에서 선출된 원로가 맡는다.
하지만.
‘이번엔 경우가 다르지.’
현 국왕의 직계 혈족 두 명이 연루된 재판이다. 평소와 같을 수는 없다.
나는 재판장석에 앉아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앙상하게 마른 몸.
푸석한 머리카락.
지루해 보이는 표정.
필리프 리오넬.
리오넬 왕국의 현 국왕, 나의 아버지다.
힐끔 그의 상태창을 살폈다.
[관계 : 평상]녹색도, 빨간색도 아닌 새하얀 글씨.
길을 걷다 우연이 열어본 일면식 없는 이의 상태창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런 관계였다.
국왕과 눈이 마주쳤다.
마약에 취한 듯 흐리멍덩한 눈동자. 나는 담담히 그 시선을 받아냈다. 그가 흥미를 잃은 듯 고개를 돌렸다.
만약 누군가 국왕을 보면 무엇이 떠오르냐 물으면 내 머릿속에는 한 단어만이 가득 찰 것 같다.
인형.
자유의지 없이 누군가의 손에 의해 이리저리 움직이는 존재. 그게 리오넬 왕국의 현 국왕이다.
전대 왕위 계승은 왕당파와 귀족파 간의 대결이었다.
그리고 그 승자는 귀족파.
귀족들 입맛대로 다루기 좋은 이로 ‘골라졌던’ 현 국왕이 왕좌에 앉게 되었다. 훗날 역사서에서는 그를 ‘행운아’라 부를지도 모르겠다.
현 국왕이 왕위에 오른 후 귀족파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를 하긴 했었다. 왕당파에 소속이던 베이른 후작가의 여식, 북부의 꽃, 나의 어머니와의 결혼이었다.
그 결과는 뭐······.
내가 괜히 이 꼴이 된 게 아니지.
“시간이 되었군. 재판을 시작하지.”
갈라진 목소리.
땅! 땅! 땅!
국왕이 개정을 선포했다.
그는 나의 반대편, 원고석에 서 있는 아카드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원고 아카드 리오넬은 피고 에반 리오넬에게 기습 폭행을 당해 씻을 수 없는 모욕감과 함께 주교급 신관의 치료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원고, 한 치의 거짓 없는 사실인가?”
“사실 그대로입니다! 자칫 잘못했으면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군.”
고개를 주억거린 국왕이 나를 바라봤다.
“피고, 반론 있나?”
“폭행을 가한 적 없습니다. 그건 정당한 결투였습니다.”
나의 진솔한 답변.
“거짓입니다!”
아카드가 바로 크게 외쳤다.
“저와 함께 대동했던 가비스 자작을 증인으로 요청합니다! 그가 저놈의 말이 새빨간 거짓임을 밝혀낼 것입니다!”
“인정한다. 증인 앞으로.”
흔히들 간신배 수염이라고 하는 볼품없는 콧수염을 한 가비스 자작이 증인석에 섰다.
“본 증인은 신성한······.”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기분이었다.
공정한 판결을 해야 할 재판장은 왕실기무대를 움직여 사건의 진실을 파헤칠 수 있음에도 그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이 재판을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할 뿐.
진실만을 말할 것을 선서한 증인 놈은 현장에 있지도 않았음에도 나를 왕실의 위계질서를 어지럽히는 희대의 망나니로 만들었다.
“······ 제가 그때 떨리는 마음으로 숨겼던 이 가검을 증거품으로 제출합니다! 아직도 여기에는 4왕자님의 피가 남아있습니다! 이 참혹한 흔적을 보십시오.”
내가 아카드를 두들겨 팼던 가검을 마치 전설의 성검처럼 들어 올렸을 때는 그 치밀한 준비성에 깜짝 놀랐다.
“피고, 반론은?”
“거듭 말씀드렸다시피. 정당한 결투였습니다.”
“거짓말입니다! 결투가 성립되기 위해선 장갑을 상대방에게 던지고 상대가 그에 응해야 합니다! 저는 어떠한 결투 신청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나는 앞으로는 꼭 장갑을 챙기고 다녀야겠다고 다짐하며 입을 열었다.
“장갑을 소지하고 있지 않아 손수건으로 대체했습니다. 바로 작년에 왕실 연회장에서 있었던 헤인리 리오넬과 아센트 리오넬 사이의 결투 때도 장갑이 없던 헤인리가 냅킨을 던져 결투가 성사되었습니다. 역대 기록에도 장갑 대신 다른 물품으로 대체하여 결투를 신청한 전례가 많습니다.”
“손수건은?”
“여기 있습니다.”
국왕은 내가 제출한 손수건을 심드렁한 표정으로 바로 볼 뿐이었다.
슬슬 이 연극에 동참하는 게 지루해졌다.
당사자인 내가 그런데 방청석에는 앉아 있는 이들은 오죽할까. 하품하다 옆 사람한테 옆구리를 찔리는 인간까지 있었다.
나는 정면 원고석에서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카드와 증인석에서 파리 새끼처럼 손을 비비고 있는 가비스 자작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이제 연극은 끝이라고.
“저의 누명을 벗겨줄 증인을 요청합니다.”
“증인?”
시종일관 심드렁한 표정이었던 국왕의 얼굴에 처음으로 변화가 생겼다. 의외? 놀람? 워낙 미약해서 정확히 무슨 감정인지는 모르겠다.
– 5왕자가 증인을?
– 3왕녀?
– 잊었어? 4촌 이내의 친족은 증인이 될 수 없어.
– 그럼 누가 5왕자를 변호해? 2왕비의 진노를 어떻게 견디려고.
– 왜 간혹 있을 수 있잖아. 혹시 알아? 예전 왕당파 중 하나일지도.
– 베이른 후작가도 한 방에 훅 가버린 걸 보고도 정신을 못 차렸을 리가 없잖아?
방청석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뭐라고 떠드는지는 잘 들리지 않았다. 뭐, 대충 어떤 미친놈이 나를 위해 증언하냐 뭐 그런 걸로 떠드는 거겠지.
땅! 땅! 땅!
“정숙!”
국왕이 두드린 법봉 소리에 그제야 방청석이 조용해졌다.
“피고, 증인을 사전에 신청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알다시피 여기 모인 이들은 한가한 사람들이 아니야. 증인은 대기하고 있나? 시간을 끌어보자는 의도면 기각하겠다.”
“대기하고 있습니다.”
국왕의 눈썹이 꿈틀했다.
“누구지?”
“클리앙 백작입니다.”
!!
2왕자의 왼팔, 왕실재정부의 수석 서기관을 증인으로 지명한다는 내 말에 법정이 침묵에 빠졌다.
정면의 아카드는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다미아아아아안!”
2왕비가 괴성이 울려 퍼졌다.
그녀는 2왕자가 왕실 재판을 기회로 4왕자를 처리하려 한다는 걸 짐작한 것 같았다. 괜히 왕궁에서 20년 넘게 구른 게 아닌지 상황 판단이 빨랐다.
“진정하시죠, 왕실 법정입니다.”
“네가! 네가 어떻게! 엌-”
“이런!”
얼굴이 새빨개졌던 2왕비가 갑자기 휘청 쓰러졌다. 2왕자가 재빨리 그녀를 잡아챘다.
2왕비, 겉보기는 20대 같아도 고혈압이 있었던 모양이다. 하긴 40대면 관리해야 할 나이다.
2왕자가 재판의 진행을 돕던 기무대원 중 하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차라리 잘 됐군. 거기, 어머니를 신관에게 모시도록.”
나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아직도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카드를 바라봤다.
‘오늘로써 더 이상 얼굴 보는 일 없을 거다.’
촉법소년 따위 우습게 목을 잘라버리는 이 세계에서 녀석에게 어떤 판결이 내려질지 조금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