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81)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181화(181/203)
181
<181>
석함도를 향해 위풍당당하게 물살을 가르는 아르야의 함선들.
그 기함은 최신예 철갑선인 크라켄.
표준 배수량이 3만 톤에 육박하는, 전 세계에서 한 손에 꼽히는 거대한 전함이었다.
총사령관은 아르야 왕국의 8성 마법사이자 총리인 리히드 프로스.
“리오넬의 함대가 가시권에 들어왔습니다. 화면 띄우겠습니다.”
관측병이 띄운 화면에 리오넬 함선들이 보였다. 길게 늘어서 언제라도 포를 발사할 수 있도록 진을 치고 있었다.
바다에 떠 있을 수 있는지 의문일 정도의 구형 목제 군함부터 건조된 지 얼마 안 된 철갑선들까지.
리오넬의 철갑선을 쓱 훑어본 리히드의 인상이 잔뜩 찌푸려졌다.
그 외형이 아르야 철갑선과 닮아있던 탓.
리오넬 왕국의 문장을 지우고, 아르야 왕국의 문장으로 다시 도색하면 어떠한 위화감도 없을 터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리오넬 왕국의 신형 철갑선들은 아르야 왕국에 납치되어 강제 노역을 하던 리오넬 왕국 출신 조선공들이 그동안 곁눈질로 훔쳐 배운 지식과 조 베이리 해적단의 철갑선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었다.
“관측병, 놈들의 기함을 확대해보도록.”
“알겠습니다!”
리히드의 지시에 관측병의 손이 분주해졌다.
금방 화면에 리오넬의 기함, 묠리스가 잡혔다. 아르야의 기함 크라켄보다 확연히 작지만, 분명 순양함급을 넘어선 전함급 군함이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구축함급 철갑선 건조도 쩔쩔매던 리오넬 왕국. 그런데 벌써 군함의 최상위 단계인 전함급 함선을 건조해냈다.
그 발전 속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이번 기회에 반드시 리오넬 왕국을 점령한다.’
화면이 점점 확대되더니 갑판 위에 서 있는 8성 마법사 프란이 보였다. 그녀를 본 리히드의 오른팔이 잘게 경련했다.
그는 황급히 왼손으로 오른팔의 떨림을 막았다.
불과 삼 일 전, 프란의 전격 마법에서 발생한 전류가 그가 사용한 냉기 마법을 타고 그의 오른팔에 닿았었다.
반응이 조금만 늦었으면 팔을 잘라냈어야 할지도 몰랐던 상황. 화상을 깔끔하게 치유한 지금도 그때의 통증이 선명히 기억났다.
‘저년도 반드시 죽인다.’
리히드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 그에게 함장이 다가왔다.
“리히드 공작님, 놈들에게 항복 권고를 하겠습니다.”
“함장은 저놈들이 항복할 것 같은가?”
“······.”
“행여나 항복해서 아국으로 끌고 간다고 해도 노예로 못 부려 먹을 놈들이야. 조선공들이 우리 아르야 왕국의 기술을 훔쳐 만들어낸 저 철갑선들이 안 보이나? 사정거리에 들어오면 바로 포격하도록. 단 한 명의 포로도 필요 없으니 모조리 수장시킨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
쾅! 콰광! 콰과과광!
아르야 함대의 선두에서 물살을 가르던 초계함을 향해 리오넬 함대의 마력포가 불을 뿜었다. 전쟁의 승패가 달린 중요한 전투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
석함도에서 진을 치고 아르야의 함선들을 기다렸던 리오넬의 함선들.
먼저 포성을 울린 쪽은 리오넬 왕국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 큰 포성을 울리는 쪽은 아르야 왕국이었다.
당당히 진을 짜고 아르야의 함선들을 기다렸던 리오넬 왕국군은 석함도 육지에서 쏘아대는 마력포의 지원 덕분에 겨우겨우 전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구축함의 함장인 로이르.
“이세르함이 격침되었습니다!”
그는 관측병의 다급한 목소리에 화면에 띄워진 반파된 함선을 바라보았다.
이세르함이 바다로 가라앉는 와중, 한 병사가 마지막까지 마력포의 조종간을 움켜쥔 채 아르야의 초계함을 향해 마력포를 발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콰아아아앙!
병사가 발사한 마력포가 아르야 초계함의 상황실을 정확히 때렸다. 그걸 본 병사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 외에도 구명조끼를 입은 이세르함의 병사들이 하나둘 바다로 뛰어들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지금 석함도 부근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에 왕국의 사활이 걸려있다고 믿고 있다.
로이르는 안다.
저들 중 살아남는 이는 극소수. 때를 맞춰 리오넬 왕국의 함선들은 저들을 버리고 월돌목으로 후퇴할 거다.
작전회의에 참가했던 장성과 일부 영관만이 알고 있는 기밀. 절대 새어 나가서는 안 된다.
그런 사실을 아는 탓에 침몰한 함선의 병사들을 지켜보는 그의 가슴 한편이 불편했다.
대부분 시체조차 찾기 힘들 터였다.
‘이번 고비만 넘기면······.’
로이르가 느끼기에도 눈부신 속도로 발전하는 리오넬 왕국이었다.
석함도에 부임했을 때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전함급 철갑선이 아르야 함선을 향해 마력포를 퍼붓고 있었다.
시간, 시간만 조금 더 주어진다면 분명 아르야와 해군력을 뛰어넘을 수 있으리라. 그걸 알기에 놈들도 이번 전쟁을 시작한 것이 분명했다.
로이르는 시간을 확인했다.
슬슬 기함인 묠리스 쪽에서 신호를 줄 때가 되었다.
묠리스의 갑판에서는 프란이 아르야 함대를 향해 전격 마법을 난사하고 있었다. 며칠 전, 그녀와의 대결에서 완패한 리히드는 방어에만 전념하는 상황.
변화는 갑자기 일어났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아르야의 기함인 크라켄에서 발사된 주포가 묠리스의 갑판을 때렸다. 동시에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아!”
“안돼!”
로이르가 지휘하는 구축함의 승무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마법을 구사하던 프란이 실수로 포탄을 방어하는 데 실수한 것으로 보였다.
한순간 로이르도 심정이 철렁했을 정도.
잠시 뒤.
“묠리스에서의 통신입니다! 프란 미네르바 공작님의 생사가 위독. 전 함대, 묠리스를 보호하며 후퇴하라는 1왕비님의 명령입니다!”
통신병이 다급히 외쳤다.
“아······.”
“프란 님이······.”
탄식하는 상황실의 승무원들.
오직 로이르의 눈에서만 날카로운 빛이 번뜩였다.
***
프란과 대치하던 리히드.
크라켄의 주포가 묠리스의 갑판을 명중시키는 순간, 그는 잠깐 현실을 의심했다.
이렇게 어이없게?
대체 얼마나 대단한 마법을 발현하려 했길래 주포를 방어하지도 못한 걸까? 혹시 기만은 아닐까?
그는 방심하지 않았다. 언제라도 프란의 마법을 방어할 수 있게 대비한 상태로 뭉게뭉게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묠리스의 갑판을 바라보았다.
연기가 조금 옅어졌다.
마법으로 인해 독수리의 시력만큼 좋아진 그의 시야로 들것에 실려 가는 프란이 보였다.
‘죽었나?’
리히드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어이없게 그녀가 사망할 리는 없었다. 자신 만해도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보호 아티펙트가 여럿 있었다.
그래도 마법전을 속행하지 못할 정도의 부상을 당한 것은 확실해 보였다.
리히드는 상황실로 향했다.
그를 기다렸다는 듯, 함장이 경례를 올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공작 각하가 리오넬의 마녀를 상대해주신 덕분에 크라켄의 주포로 적 기함의 갑판을 명중시킬 수 있었······.”
콰앙! 콰아아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음이 함장의 말을 끊었다.
전장에서 여태까지 울렸던 포성들을 모두 잠재울 만큼 어마어마한 굉음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향했다. 철판으로 가려져 아무것도 안 보일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리, 리오넬 놈들이 석함도와 육지를 잇는 다리를 폭파했습니다!!”
관측병이 다급히 화면을 띄웠다.
완공하는 데만 5년 넘게 걸린 다리의 가운데가 휑했다.
그걸 바라보는 모두의 머릿속에 아깝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석함도의 가치가 2할 정도 내려가는 순간이었다.
“적 기함 묠리스! 퇴각합니다! 리오넬의 전 함선이 일제히 후퇴하기 시작했습니다!”
리히드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깊은 생각을 할 틈도 주지 않고 상황이 급변하고 있었다. 빠른 판단이 필요한 때였다.
‘놈들이 석함도의 다리를 파괴할 줄이야!’
마지막 발악이 분명하다. 그는 그렇게 판단했다.
“전 함선! 후퇴하는 놈들을 끝까지 추격한다!”
“알겠습니다! 통신병!”
“즉시 하달하겠습니다!”
함장을 비롯한 크라켄 승무원들의 표정이 밝았다.
모두 승리를 확신한 것이었다.
그렇게 후퇴하는 리오넬 함선을 쫓던 리히드의 가슴 한구석에서 미약한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도주하던 골드드래곤을 쫓다 된통 당했던 경험 때문. 머리가 하나 남은 채 괴성을 지르며 도망치던 에트림을 봤던 충격이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었다.
‘쓸데없는 불안이야.’
리히드는 손으로 입가를 만지며 표정을 다듬었다.
아르야의 최고사령관인 자신이 불안한 기색을 내비치면 두고두고 ‘겁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을 터였다.
사실 지레 겁먹고 비공정 선단을 후퇴시킨 이후에 은밀히 자신을 그리 부르는 이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속에서 천불이 올라왔다. 이번에도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순 없었다.
리오넬의 함선을 모조리 침몰시키고, 놈들의 1왕비와 프란을 병사들의 노리개 거리로 던져주리라.
리히드에게 경종을 울리려던 본능은 그렇게 복수심이란 감정에 갈가리 찢겨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카이카닉.
에반이 조 베이리 해적단을 침몰시킬 때 함께 했던 구형 구축함.
“아르야의 함선이 점점 따라붙고 있습니다!”
“이대로는 무리입니다!”
카이카닉의 함장은 손을 쥐었다 폈다 반복하며 관측병이 띄운 화면을 바라봤다.
‘코앞까지 접근했다.’
이대로 가다간 5분도 안 되어 놈들의 철갑선에 들이받혀 카이카닉이 이등분될 게 뻔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대부분의 구형 전함들이 그렇듯 카이카닉에 탑재된 마력 엔진은 최신의 것들과는 비교하는 게 민망할 정도로 출력이 약했다.
전속력으로 달리는 최신예 철갑선들을 피해 도주하는 건 처음부터 무리였다는 말이다.
은밀히 내려왔던 임무를 수행할 때가 왔다.
“전원 진정하도록!”
혼란스럽던 상황실의 승무원들이 함장의 호통에 입을 닫고 그를 바라봤다.
“카이카닉함은 여기서 도주를 포기한다.”
“하, 함장님!”
“그런······.”
카이카닉 승무원들이 잠시 말을 잊지 못했다.
함장의 말을 이해한 탓.
싸우다 이 자리에서 죽자는 말이었다.
그들은 후퇴하는 기함, 묠리스를 바라보았다. 왕국의 1왕비, 그리고 프란이 저곳에 타고 있었다.
지켜야 한다.
비록 지금은 아르야 왕국에게 패해 도주하고 있지만, 저들이 살아있으면 반드시 역전의 기회는 온다.
그들의 표정이 결연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본 함정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전황이 이리되었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을 것 같았다.
믿음이 없었던 탓.
리오넬 왕국을 위해 한목숨 바치는 것은 개죽음이 따로 없던 시기였다. 한데, 지금은 희한하게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
함장은 해적 소탕 당시 만났던 에반의 얼굴을 떠올랐다.
아, 그가 이렇게 바꿔놓았다.
나라를 위해 한목숨 바치면, 자신들은 보상을 못 받더라도 후손들은 그 보상을 넘치도록 받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주었다.
함장은 목숨을 거는 표정의 승무원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는 반드시 살아남을 것이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우렁찬 함성과 함께 후퇴하던 카이카닉함이 90도로 방향을 틀었다.
그와 동시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속도가 처졌던 구형 함선들이 줄줄이 선회하기 시작했다.
‘리오넬 왕국, 그리고 국왕 폐하의 영광을 위하여.’
서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구형 함선의 함장들은 같은 말을 머릿속에 되뇌며 접근하는 아르야의 함선을 맞이했다.
쾅! 콰아아앙-! 콰아아아아앙─!!!
그렇게 카이카닉을 비롯해 구형 함선들이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리오넬의 기함 묠리스는 무사히 목적지인 월돌목에 도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