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82)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182화(182/203)
182
<182>
월돌목 주변 바다는 고요했다.
마치 호수처럼.
리오넬의 기함 묠리스가 막 호리병의 입구처럼 좁은 월돌목의 입구를 통과했다.
줄리앙은 관측병이 띄운 화면을 통해 빠른 속도로 접근하고 있는 아르야의 함선들을 바라보았다.
‘여기까지는 계획대로야.’
목숨을 도외시하고 시간을 벌어준 함선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
두 배 가까이 차이 났던 함선의 수는 이제 세 배가 넘게 벌어졌다.
석함도에서 한 번, 후퇴하는 과정에서 또 한 번. 두 번의 큰 손실로 절반에 가까운 함선이 가라앉았다.
군사적으로 30%의 병력만 잃어도 전멸 판정을 내리는 국가가 많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리오넬 왕국은 이번 해전에서 대패했다고 볼 수 있었다.
‘전력은 최대한 보전했어.’
실상을 들여다보면 조금 달랐다.
침몰한 함선 대부분은 퇴역을 앞둔 구형 군함. 최근 몇 년 사이에 건조된 철갑선은 대부분 건재했다.
‘카이카닉, 트레지, 빅토리아······.’
줄리앙의 머릿속에서 그가 직접 선별했던 미끼 함선들의 함명이 차례로 스쳐 지나갔다.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다.
섬나라 놈들을 반드시 월돌목으로 유인해야 했다. 어설프게 유인하려다가 놈들이 위화감을 느끼기라도 한다면 그것보다 최악은 없었다.
무거운 책임감이 줄리앙을 짓눌렀다.
······ 정말 어쩔 수 없었을까?
필요 이상으로 과한 병력을 희생시킨 건 아닐까? 만약 폐하가 이곳에 있었다면, 어떠한 피해도 없이 놈들을 월돌목으로 유인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머릿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질문들을 털어냈다. 지금은 곧 있으면 벌어질 전투를 신경 써야 할 때였다.
‘반드시 이긴다.’
아르야의 함선을 유인하기 위해 본토와 석함도를 잇는 다리를 파괴했고, 수많은 해군이 희생되었다.
전멸도 부족했다. 놈들을 궤멸시켜야 그나마 수지타산이 맞았다.
줄리앙은 품속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딸깍 열었다.
곧이었다.
잠잠했던 바다가 깨어나 성난 분노를 토해낼 때가 머지않았다.
***
인생의 대부분을 바다에서 보낸 크라켄의 함장은 조금 전부터 느껴지는 미묘한 위화감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곧 이유를 알아냈다.
해류로 인해 요동치는 배는 그에게 있어 안락한 요람과도 같았다. 한데, 지금은 바다가 지나칠 정도로 고요했다.
‘정조기였군.’
별거 아니었다.
썰물과 밀물이 교차하며 조류의 흐름이 둔화하는 것은 해가 뜨고 지는 것같이 당연한 자연 현상이었다.
······ 이상했다.
이유를 알아냈음에도 함장은 목에 가시가 걸린 것 같은 불편함을 느꼈다.
“함장님! 리오넬 놈들이 줄지어 좁은 길목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관측병의 보고에 함장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화면을 바라보았다. 리오넬의 함선들이 줄줄이 좁은 해역을 통과하고 있었다.
‘설마 암초 지대로 유인하는 건가!’
함장은 서둘러 관측병을 찾았다.
“관측병! 주변의 암초는 파악했나!”
“있습니다! 리오넬 왕국 놈들 저희를 암초 지대로 끌어들이기 위해 저곳을 통과한 것이 확실합니다.”
관측병이 기다렸다는 듯 화면에 함선이 전복될만한 위험한 암초 위치를 표시했다.
“즉각 모든 함선과 암초의 위치를 공유하도록!”
“알겠습니다!”
함장은 비릿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목에 걸린 가시처럼 그의 신경을 거스르던 문제가 해결된 듯싶었다.
“놈들의 마지막 발악인가.”
함장은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리히드였다.
리오넬 함선들을 추격하던 동안 말이 없던 그가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함장은 얼른 그의 비위를 맞춰주었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았습니다. 아르야의 해군에 육안으로 보이는 암초에 걸릴 정도로 어리석은 함장은 없습니다. 놈들이 어지간히 다급한 모양입니다. 하하핫!”
“조금 더 늦어졌다면 위험했겠군.”
리히드는 리오넬 함선들을 후퇴시키기 위해 자신들의 발목을 잡았던 구형 군함들을 떠올렸다.
자폭 공격도 마다치 않던 지독했던 놈들. 기어코 아르야 함선 몇을 길동무로 데려갔다.
“공작 각하께서 손수 나서주신 덕분입니다.”
리히드는 함장의 아부에 피식 웃었다.
“됐고, 놈들의 추격이나 마무리하게. 곧 해가 질 것 같은데, 그전에 놈들이 물고기 밥이 되는 걸 보고 싶군. 아, 그리고 혹시라도 암초에 걸려 전장을 이탈하는 함선은 각오하는 게 좋을 거라고 전해주게.”
“알겠습니다! 통신병!”
“즉시 하달하겠습니다!”
기함의 명령을 하달받은 아르야의 함선들. 암초를 피하고자 길게 늘어서서 하나둘 월돌목의 좁은 길목을 통과하기 시작했다.
변화는 최후미의 크라켄이 막 길목을 들어섰을 때 일어났다.
촤아- 촤아아-
“조류의 방향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함장은 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조기가 끝나면 조류의 흐름이 바뀌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관측병의 보고에 함장의 안색은 곧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리오넬 함선들의 움직임이 이상합니다! 놈들이 산개하고 있습니다!”
콰아아- 콰아아아─
“뒤쪽에서 어마어마한 물살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키가! 키가 제대로 말을 듣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조류가 아닙니다!!”
폭풍우와 마주쳤을 때나 겪을 수 있는 거친 물살이었다. 함장은 자신도 모르게 창문 밖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 하나 없었다.
기우뚱! 와르르- 우당탕.
선체가 크게 흔들리는 바람에 서 있던 함장은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하마터면 각진 모서리에 머리를 찍을 뻔했다.
그는 벽면을 손으로 짚으며 일어선 후 관측병을 찾았다.
“리, 리오넬 함선들은!”
쾅! 콰광-!! 콰아아아아앙──!!!
전방에서 들려온 포성이 관측병의 대답을 대신했다.
이미 좁은 길목을 빠져나간 리오넬 함선들은 포격을 위한 진을 빠르게 갖춘 상태였다. 그 형태가 꼭 날개를 활짝 편 학과 닮아있었다.
‘당했다!’
뒤늦게 관측병이 띄운 화면으로 리오넬 함선들이 갖춘 포격진을 본 크라켄 함장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지금이라도 추격을 멈추라고 해!!”
“무, 무리입니다! 조류가 너무 거셉니다! 이 상태로 방향을 틀면 바로 암초에 부딪힐 겁니다!”
“그럼 놈들의 아가리에 머리를 집어넣자는 말이냐!”
“함장님! 본국에서의 통신입니다! 무슨 일이냐고 다그치고 있습니다!”
그렇게 월돌목의 좁은 길목에서 거센 조류에 휩쓸린 아르야의 함선들.
곧 일대는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콰앙! 우지끈!
기함의 명령을 따라 방향을 틀려던 함선 하나가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곧 선체가 요동치더니 옆에 있던 함선의 옆구리를 들이박았다.
옆구리를 들이박힌 쪽이 기우뚱 기울어지기 시작하고, 배에 타고 있던 아르야 해군들이 바다로 뛰어내렸다.
“크아아아아아아!!”
지금 같은 거센 조류에 살아남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바다가 순식간에 그들을 집어삼켰다.
좁은 길목을 겨우겨우 빠져나가도 딱히 상황이 좋아지는 건 아니었다.
조류가 시작되기 직전에 길목을 빠져나온 리오넬 함선들은 이미 포격진을 갖춘 상태.
쾅!
콰앙-!
콰아아아앙─!!
리오넬 측의 마력포가 불을 뿜었다.
거센 조류와 암초를 헤치고 나온 아르야의 함선을 맞이하는 수백 발의 마력포.
아무리 최신 철갑선에 마력 보호막까지 도입한 아르야 왕국이지만, 마력 보호막이 버틸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다.
콰아아아앙──!!!!
쩌적- 우지끈!
월돌목의 좁은 길목을 빠져나온 아르야 함선들은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그렇게 순차적으로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함자아아아아앙!!!”
의자 손잡이를 강하게 움켜쥐고 쓰러지지 않고 버티는 리히드. 그는 애꿎은 함장을 불러댔다.
“크악!”
크라켄의 함장은 대답 대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다시 선체가 기울어지며 넘어지는 바람에 기어코 날카로운 모서리에 머리가 찍힌 거였다.
쓰러진 그의 머리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그걸 지켜보는 리히드는 할 말을 잃었다.
그의 책임도 없지 않았다. 그가 앉은 자리가 원래는 함장석이었다.
‘진정해, 리히드 프로스.’
리히드는 속으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공황에 빠지려는 정신상태를 바로잡았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 자신의 책임은 전혀 없었다. 머저리 함장 때문이었다. 그가 리오넬 왕국군의 계략에 너무나 쉽게 빠져버렸다.
리히드는 머릿속은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을까 고민하느라 분주해졌다.
‘이런 상황에선 마법을 사용할 수 없어.’
거센 조류 탓에 크라켄의 선체가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마법은 매우 섬세한 작업.
지금 같은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선 일순간 바다를 얼려버릴 정도의 마법을 사용해야 하는데, 이렇게 정신을 집중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런 고위급 마법의 술식을 설계, 구축, 발현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최소한 그에게는.
“관측병! 길목을 빠져나가도 선체를 통제할 수 없는 수준인가!”
“아, 아닙니다! 이 좁은 길목만 통과하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통제가 가능할 겁니다! 지금 리오넬 왕국군이 포격진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통신병! 본국에서 온 연락은 없나!”
“조금 전부터 통신이 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리오넬 왕국 측에서 장난질한 것 같습니다!”
“젠장.”
리히드가 입술을 깨물며 고심했다.
어떻게 해야 이 난관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차라리 전속력으로 돌진해 적군의 중앙을 뚫어야 합니다!”
부함장의 외침에 리히드가 그를 바라봤다.
마법사 출신인 함장과 달리 사관학교 출신이라 리히드가 천대하던 이였다.
“짧고 간단하게 말해봐!”
“지금 리오넬 포격진은 중앙돌파에 취약합니다. 놈들의 중앙만 열어젖힌다면 오히려 놈들을 각개격파 할 수 있습니다!”
리히드는 황급히 리오넬의 포격진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보였다.
리오넬의 기함 묠리스가 위치한 가운데만 두껍게 이 열로 구성되어있었다. 놈들도 현재 이루고 있는 포격진의 취약점을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리히드의 입장에선 일방적으로 뚜들겨 맞는 상황에서 뚫느냐, 뚫지 못하느냐의 싸움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
쾅! 콰아아앙!!
“전진! 전진하라!”
“발포! 쉬지 않고 발포하라! 절대로 놈들에게 뚫리면 안 된다!”
리오넬 포격진의 중심.
기함 묠리스를 향해 아르야의 함선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조류를 타고 평소에는 낼 수 없는 속도로 돌격하는 그 기세가 사뭇 흉흉했다.
리히드는 금방 리오넬의 포격진을 붕괴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파앗-!
수호검진(守護劍陣), 레이나의 심상영역이 묠리스 일대를 장악했다. 금방이라도 포격진을 뚫을 것 같던 아르야의 함선들은 거대한 방패에 막혀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리오넬 함선들의 포격.
쾅! 콰아앙! 콰아아아아앙!!
쩌적! 우지끈!
“크아아아아아아!”
아르야의 해군들이 무더기로 불귀의 객이 되었다.
“염병!”
최후미에서 그걸 지켜보던 리히드는 서둘러 그의 심상영역을 발동하려 했다. 레이나의 심상영역을 무력화시키기 위함이었다.
파아······.
‘뭣!’
심상영역의 발동이 막혔다.
대체 누가?
곧 한 하프엘프의 얼굴이 떠올랐다.
“프란아아아아안-!!”
그제야 그는 프란이 멀쩡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무나 불리해진 정황에 계략의 시초가 그녀가 쓰러진 것부터였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리히드는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끝났······.’
그가 패배를 인정하려는 그 순간.
-크아아아아아아아아!!!!
크라켄의 후미에서 들려온 광포한 소리가 전장의 포성을 집어삼켰다.
리히드는 눈을 번쩍 떴다.
“에, 에트림입니다!!!”
단 하나뿐인 머리에 눈알이 흰자로 뒤덮이고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지만, 그건 분명 에트림이었다.
리히드는 미쳐버린 듯한 에트림의 모습에서 신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저건 한낱 괴수에 불과했다.
“오! 신이시여······.”
다만 그 분노는 명백히 리오넬 군을 향하고 있었다. 그걸 확인한 리히드의 입꼬리가 기이하게 비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