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83)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183화(183/203)
183
<183>
시간의 흐름을 잊고 코어 속 소우주를 한없이 관조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항상 멀리서 빛나기만 했던 별이 나를 끌어당겼다. 그렇게 나는 여덟 개의 별을 여행하는 여행자가 되었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별무리 아래서 하얀 백사장 같은 곳을 걸었다. 그러다 지치면 기약 없이 쉬기도 하고, 다시 힘이 나면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발걸음을 옮겼다.
신기롭고 경이로운, 그리고 지독하게도 고독한 경험이었다.
며칠, 몇 달, 몇 년?
어쩌면 몇십 년이 지났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별들을 여행하고 있는 이유가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을 무렵, 나는 작은 불씨를 발견했다.
찾았다.
······ 무엇을?
작은 불씨가 행여라도 꺼질까 두려워 양손을 포개 바람을 막고, 내면 깊숙한 곳에서 들려왔던 질문의 답을 찾았다.
‘아, 그랬지.’
이건 가능성이었다.
소우주 속 별들이 생명의 별이 될지도 모를 위대한 가능성!
나는 땅을 파기 시작했다.
의식해서 한 행동은 아니었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본능이 나를 이끌었다. 적당히 파진 땅에 불씨를 심었다.
그걸 마치는 순간, 나의 여행은 끝났다.
나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불씨를 심은 별은 지켜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하얗던 별이 조금씩 달궈지기 시작하고, 주변 별들이 그 주위로 몰려들었다.
태양의 탄생이었다.
그 주변을 공전하기 시작하는 7개의 별.
점점 그 속도가 눈으로 따라잡기기 힘들어지고, 별들이 품고 있는 마나가 점점 농밀해졌다.
스스로 마나를 만들어낸다는 의미!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얼마 안 가 각각의 고향별을 가득 채운 마나가 흘러넘치고, 이내 한 점을 중심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아홉 번째 별의 탄생.
새로 탄생한 그 별이 조심스럽게 태양 주변을 도는 별들 무리에 합류했다.
나는 태양을 포함한 별들의 수를 세었다.
하나, 둘, 셋······ 아홉.
그걸 확인한 직후, 나는 눈을 떴다.
“페, 폐하?”
“폐하! 정신이 드십니까!”
창문 너머가 아닌 눈앞에서 직접 알폰소와 슈이츠의 얼굴을 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
바리사다에게 처참하게 짓밟히고 도망쳤던 에트림.
아르야 군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 그건 상처 입은 짐승이 목숨줄을 부여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모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세계 언론에 퍼진 에트림의 패퇴와 그 소식을 접한 아르야인들.
그렇게 에트림은 신성을 잃었다.
지성이란 것은 거의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영락한 에트림은 바닷속 동굴에서 상처 입은 몸을 회복하기 위해 잠들었었다.
쾅! 콰광! 콰과과광!!!
마력포의 굉음과 바닷속에 퍼지는 피비린내가 그런 에트림을 깨웠다.
지성이 흐릿해진 에트림이지만, 자신을 상처입힌 적들이 누군지는 잊지 않았다.
은신처를 빠져나온 이후 에트림의 시선은 리오넬 왕국의 함선, 그중에서도 기함 묠리스에 고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섣불리 다가가지는 못했다.
바리사다가 근처에 있을지도 몰랐다. 한번 상처 입은 짐승이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경계심이었다.
만약, 에트림의 지성이 조금만 더 강했다면 놈은 물러났을지도 모르지만, 리오넬 왕국군에게는 안타깝게도 에트림의 살심이 경계심을 이겼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
그게 에트림이 리오넬 함선대의 기함 묠리스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게 된 배경이었다.
“저 새끼가 여기서 왜 나와!!”
리히드의 심상영역 구축을 억제하던 프란이 분노어린 외침을 토해냈다.
“크아아아아아아!!!”
우지끈- 콰광!
에트림은 그녀를 비웃듯 아르야 함선들을 밀쳐내며 기함 묠리스를 향해 빠르게 접근했다.
갑판에 서서 수호검진을 유지 중이던 레이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다 이겼다고 생각했었다.
승리하고 왕도로 돌아가 에반에게 당신 없이도 내가 왕국을 지켜냈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생각이었다.
‘안돼. 끝까지 포기할 수 없어.’
레이나는 무너지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크아아아아아아─!!!”
그녀는 날뛰는 에트림을 자세히 관찰했다.
눈알은 뒤집혀 흰자밖에 보이지 않는 데다,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머리가 없이 촉수처럼 움직이는 7개의 목이 그렇게 기이할 수 없었다.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한때 승천을 바라던 존재가 영락해 괴수로 전락했을 뿐이다.
······ 조금 많이 강하겠지만.
레이나는 검을 움켜쥐었다.
그녀가 구축한 영역에 놈이 발을 들이밀려 하고 있었다.
“와라!! 영락한 괴물아!!”
콰아아아아아앙-!!!
빛의 검으로 이루어진 방패가 에트림의 돌진을 막아냈다. 단순한 몸통 박치기였음에도 일순간 붕괴할뻔한 수호검진.
레이나의 입가에서 피가 주륵 흘러내렸다.
그녀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란 걸 모두가 느꼈다.
“왕비님!!”
“뭣들 하나! 하나라도 더 많은 섬나라 놈들의 함선을 침몰시킨다! 발포!!”
“발포오오오오오─!!”
석함도에서 진을 치고 아르야 함선을 맞이할 때부터 이번 전투에서 패배할 것을 각오하고 있던 병사들이었다.
잠시 ‘승리’라는 달콤한 꿈을 꾸었을 뿐이다. 최후의 최후까지 물고 늘어지면 본토에서 놈들을 대비할 시간을 벌어줄 수 있을 터.
그렇다면 할 일은 하나.
지금 이곳에서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적군을 길동무로 데려가는 것이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
지성을 잃은 에트림은 머리가 없는 7개의 긴 목을 채찍처럼 활용해 수호검진을 두드렸다.
쇄액- 콰앙!
쇄애액─ 콰아앙!!
어찌나 악에 받쳐 휘두르는지 살짝 아물었던 절단면에서 피가 솟구치는 모가지도 있었다.
흥분한 에트림은 자신의 마구잡이 공격으로 인해 막 형성되고 있던 네 번째 머리의 뇌가 터진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쨍강!!
기어코 놈이 레이나의 수호검진을 깨트렸다.
“레이나!!”
피를 토하며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그녀를 프란이 다급히 부축했다.
“크아아아아아아!!!”
기분 좋은 포효를 내지르는 에트림.
촉수 같은 놈의 목 중에서 가장 두꺼운 것이 갑판을 후려칠 준비를 했다. 그걸 바라보는 프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젠장, 전장에 나서면 언젠가 이렇게 될 것 같더라니.’
이게 다 에반 때문이었다.
쇄애애액─
기함을 두 동강 낼 기세로 에트림의 목이 채찍처럼 떨어져 내렸다.
프란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서걱─ 풍덩!
‘?’
‘콰앙!’ 이라던가 ‘쩌억’ 같은, 예상했던 소리가 아니었다.
프란은 살며시 눈을 떴다.
순백의 날개를 펄럭이는 미형의 거인이 보였다.
“미카엘!!”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저게 여기 있다는 얘기는······.’
에반이다.
녀석이 깨어나자마자 자신들에게 달려온 것이 분명했다.
***
‘안 늦어서 다행이군.’
나는 식은땀을 훔쳤다.
깨어나자마자 석함도에서 대패한 해군이 후퇴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몸의 회복이고 뭐고 만사를 제쳐두고 곧바로 날아왔다.
직접 날개를 움직여서 말이다.
골든드래곤이나 블랙와이번을 이용하면 좋았겠지만, 미드라 삼각지대를 통과했었던 비공정들은 원인을 파악하기 힘든 자잘한 고장으로 전부 수리 중이었다.
본래는 장식용으로 달았던 날개지만, 서북부에서 그림자숲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가능성을 봤었다.
타이탄을 통제하는 동시에 날개에 마력을 부여하고 그걸 조종할 여력이 있다면 비행이 가능할 것 같다는 판단이 섰었다.
그 결과, ‘미래’에도 없던 하늘을 나는 타이탄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아쉬운 건 미카엘 이후 생산될 타이탄에는 날개가 달릴 일이 없다는 것.
날개를 조종해 하늘 날 수 있는 건 마검사 중에서도 극소수일 테고 마나 소모 또한 무시무시했다. 나 말고는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끄아아아아아아아!!!”
촉수처럼 사용하던 목 하나가 두 동강 난 에트림이 비명을 질러댔다.
‘처참하게 영락했구나.’
놈의 상태가 뻔히 보였다.
지금 저놈은 무식하게 힘만 센 괴물에 불과했다. 조금 더 자세히 표현해보면 무엇이든 벨 수 있는 명검을 손에 쥔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는 상태였다.
“크아아아아아!!”
쇄애애액-
놈의 목 하나가 채찍처럼 휘둘러졌다. 목표는 내가 탑승한 조종석.
알고서 노린 건가?
‘우연이겠지.’
펄럭, 간단한 날갯짓 한 번으로 피해내며 미카엘의 검을 휘둘렀다.
서걱─ 풍덩!
허수아비를 베는 것처럼 손쉽게 또다시 놈의 모가지를 두 동강 냈다. 내가 생각해도 이 정도로 쉽게 잘릴 수 있나 싶을 정도.
놈이 본신의 힘을 제대로 다뤘거나, 내가 9성의 경지에 발을 디디지 못했거나, 둘 중 하나라도 해당하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의 소우주에 태양계를 품고 있는 것이 9성. 스스로 하나의 세계인 것과 마찬가지인 존재였다.
“크아아아아아아!!!”
뭐, 이제 에트림은 해당 사항이 아니다.
영락한 놈이 품었던 태양계는 지금 엉망진창인 상태일 터.
태양은 차갑게 식고, 그 주변을 공전하던 별들은 운석군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처참할 게 눈에 선했다.
“크, 크아아아아아!”
에트림이 바닷속으로 숨으려 했다.
이제야 상대가 안 되는 걸 깨닫고 도주하려는 심산.
어림도 없었다.
저놈 때문에 왕국이 위기에 처한 것이 벌써 두 번이다.
미카엘의 검을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파앗-!
심상영역, 승리의 전장.
샤를의 흑염창마옥처럼 불지옥이 현세를 뒤덮거나, 레이나의 수호검진처럼 빛의 검이 공간을 장악하지도 않았다.
단지, 모든 것이 아군에게 한없이 유리해졌을 뿐이다.
***
프란은 거센 조류 탓에 균형을 잡기 힘들 정도로 흔들리던 배가 고요해진 것을 느꼈다.
단순히 느낌만은 아니었다.
정말 주변 물결이 호수처럼 잔잔했다. 리오넬 왕국의 함선들이 위치한 곳은 전부 그러했다.
하지만, 아르야 함선들 쪽은 상황이 달랐다.
콰광! 우지끈! 쩌저적-
자연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린 놈들의 군함이 종이배처럼 구겨지고 있었다.
쾅! 콰광! 콰과과광!!!
분명 역풍이던 바람은 순풍이 되었다.
리오넬의 함선들이 쏘아대는 마력포들은 평소보다 훨씬 더 멀리, 그리고 빠르게 날아가 아르야의 함선을 강타했다.
쾅! 콰앙! 콰아아아앙!!
빗나가야 할 포탄도 바람과 조류의 도움으로 아르야의 함선에 명중된다.
‘이게 저 녀석의 심상영역.’
직접 경험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녀는 심상영역이 구축자의 숙원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안다. 에반이 이런 심상영역을 구축해낸 것은 그만큼 아군의 승리를 갈구했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조금은 이해가 안 갔다.
숙원은 결핍에서 온다.
부족하기에 극도로 바라게 되고, 그게 곧 심상영역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한데 그녀가 아는 에반은 크고 작은 전장에서 패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됐다.’
프란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에반을 이해하는 걸 옛적에 포기했건만, 또다시 이해하려 애썼다. 의미 없는 걸 뻔히 아는데도 말이다.
‘지금 중요한 건 저 새끼지.’
바닷속으로 숨어 도주하려던 에트림. 몸을 숨기려 할 때마다 놈조차 몸을 가누기 힘든 소용돌이가 일었다.
“크아아아아아아!!”
당황한 녀석을 향해 미카엘의 검이 쇄도했다. 그 목표가 하나 남은 머리라는 것을 깨달은 놈이 촉수 같은 목들을 휘두르며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쿵!!
별안간 거센 조류에 휩쓸려온 아르야의 기함, 크라켄이 에트림을 들이박았고, 그 바람에 놈의 거체가 휘청거렸다.
우연이되 우연이 아니었다.
에반의 심상영역, 승리의 전장은 그런 말도 안 되는 ‘우연’이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곳이었다.
서걱─
에트림의 마지막 남은 머리가 떨어졌다.
쿵!
그것도 크라켄의 상황실 바로 위에.
치익- 치이이익─
신성을 잃고 영락해 치명적인 독기를 품게 된 에트림의 산성 피가 상황실을 가득 메웠다.
리히드는 그곳에 있었다.
거센 소용돌이에 의자에서 튕겨 나가는 바람에 함장이 머리를 박았던 각진 모서리에 똑같이 머리를 박고 혼절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