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89)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189화(189/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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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연회에 적당히 얼굴을 비춰준 것 같아 슬그머니 빠져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원래 윗사람이 사라져줘야 아랫사람들이 즐기는 법이다.
개인적으로 연회를 별로 즐기지 않는 이유도 있었다. 서재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만약 내가 태어난 시대가 태평성대였으면 아마 나는 연구실에 틀어박힌 학자가 되지 않았을까?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연회실을 조용히 빠져나가는데, 실실 웃으며 여인들과 대화를 나누던 알폰소가 서둘러 내 뒤를 따라붙었다.
“굳이 안 따라와도 돼.”
연회 기간에까지 나를 졸졸 따라다닐 정도로 알폰소의 지위가 낮진 않다. 이미 나의 수발을 드는 시종 셋이 뒤에 서 있기도 했고.
“하핫, 마침 어떻게 빠져나갈지 고민하던 중이었습니다.”
“왜, 좋아 보이던데.”
“연기입니다, 연기.”
“하긴 네가 연기를 좀 하지. 에메랄드궁에서도 네가······.”
“하하핫! 언제 적 이야기를 하십니까.”
당황한 알폰소가 내 말을 끊으며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시종들에게 손을 휘휘 저어 멀리 떨어지라 지시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다른 시종들을 물리고 알폰소와 함께 이동했다.
“알폰소 너도 슬슬 가정을 가지는 게 어때?”
녀석도 이제 20대 중반.
그만 촐싹거리고 진중해질 때가 되었다.
장가간다고 진중해질지는 조금 의문이긴 하다만. 그래도 대체로 아버지가 되면 지금이랑 똑같지는 않겠지.
“폐하, 저는 아직 25살밖에 안 됐습니다.”
“보통 그 나이면 애 둘 정도는 있어.”
“클리앙 공작도 30이 다 되어서 결혼하지 않았습니까?”
“클리앙 공작은 밀로아 공작만 바라봐서 그랬던 거고. 너는 그런 여자도 없잖아.”
“아닙니다. 저도······.”
“수박만 한 가슴에 개미 같은 허리를 가진 여자 이야기를 꺼내는 거면 확 정략결혼 시켜버리는 수가 있어.”
마음만 먹으면 백작 가문의 결혼식도 뜻대로 할 수 있을 정도로 왕국에서의 내 권력이 커졌다.
“농담도······ 진심이시군요. 끙··· 진지하게 고민해보겠습니다.”
노총각에게 결혼하라고 닦달하는 친척이 된 기분이 들어 여기까지 하기로 했다.
“강요하는 건 아니야. 네가 비명횡사라도 하면 그대로 아인베르크 가문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고. 유모를 볼 면목이 안 서서 그래.”
“하핫, 제가 여태까지 느낀바, 폐하 옆에만 딱 붙어 있으면 안전합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눈 앞에 나타난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었다.
그에 알폰소가 의문을 표했다.
“폐하? 이쪽은 에메랄드궁으로 가는 길입니다. 레온궁으로 가시는 게 아닙니까?”
“우리 귀염둥이들이랑 좀 놀아주려고.”
“아······.”
연회가 있던 라사유궁의 정원에서 아이들과 놀아주던 지드래곤과 해리가 어느 순간 스르륵 사라졌었다.
아이들을 피해 에메랄드궁의 정원으로 갔을 거다. 모처럼 생일 축하한다고 얼굴을 내밀었는데, 피곤하다고 그냥 보내면 또 삐질 게 분명했다.
“그오! 그오!”
“크릉!”
역시 내 생각대로 에메랄드궁 정원에 발을 디디자마자 녀석들이 튀어나왔다. 지드래곤은 내 몸을 뱀처럼 비비 꼬았고, 해리는 까슬까슬한 혀로 내 볼을 핥았다.
“알았어, 알았어. 그만. 계속 이러면 간식 안 준다.”
간식을 안 준다는 말에 그제야 진정한 녀석들이 차렷 자세로 내 앞에 대기했다.
지드래곤에게는 화끈한 불맛이 나는 화염루비를, 해리에게는 갓 도축한 신선한 쇠고기를 [만물상]에서 구매해 던져주었다.
“그오오오오!”
“크르릉.”
두 녀석이 행복한 표정으로 간식 먹는 모습을 벤치에 앉아 지켜보았다.
해리가 많이 컸다.
아르야와의 전쟁 과정 중 에트림을 몰아낸 것이 다나르라 알려지면서 왕국민 대다수가 다나르의 신도가 되었다. 그에 [신앙]이 기하급수적으로 오른 탓이리라.
의외인 건 아르야 쪽에도 다나르를 믿는 신도가 꽤 생겼다는 거다.
인신공양을 받던 에트림은 숭배의 대상이면서도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탓이다. 진실이야 어떻든 에트림을 다나르가 징벌했다고 알려졌으니 뭐 이해 못 할 정도는 아니다.
하여튼, 그런 이유로 작고 연약했던 모습의 해리는 이제 찾아볼 수 없다.
예전 유적에서 보았던 신수상과 외형이 거의 똑같아졌다. 덩치만 좀 작을 뿐. 그때 본 신수상은 코끼리만 했는데, 지금 해리는 다 자란 수사자 정도다.
‘저기서 체구만 더 커지는 건가? 아니면······.’
녀석도 거대화 능력을 지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해리, 혹시 지금보다 더 커질 수 있니?”
“크릉?”
고개를 갸웃거리는 해리.
“그오! 그오!”
지드래곤이 시범을 보여준다며 덩치를 키웠다 줄였다 반복했다.
“그오오오!”
“크, 크릉!”
그걸 부럽다는 듯이 바라보던 해리.
녀석이 갑자기 먹고 있던 쇠고기를 내팽개치고 네 발로 굳건히 서서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크릉! 크르릉!”
해리의 구름 같은 갈기가 바람에 휘날리며 녀석의 몸이 조금 떠올랐다.
비행 능력을 지녔다는 걸 처음 알았다.
혹시 거대화도?
기대하며 계속 지켜봤지만 그게 다였다. 용을 쓰던 해리가 곧 다시 땅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힘든지 헉헉거렸다.
지드래곤이 실망한 표정의 해리에게 다가갔다.
“크릉, 크릉······.”
“그오! 그오오오오!”
“크릉! 크릉!”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알 것 같았다.
자기는 안 될 것 같다는 해리에게 지드래곤이 조금만 더 정진하면 자유자재로 덩치를 조절할 수 있을 거라고 용기를 북돋운 게 분명했다.
다시 사이좋게 간식을 먹기 시작한 둘을 바라보며 먼 훗날을 상상해 봤다. 지상에선 지드래곤이, 하늘에선 해리가 왕국을 수호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너무 욕심인가?’
솔직히 왕국 입장에서는 녀석들의 존재 그 자체로 이득 보는 게 많다.
왕국을 지켜달라느니, 그런 부담은 지우지 말아야겠다. 자유의지가 있는 둘이니 하고 싶은 대로 하겠지.
나는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그오?”
“크릉?”
지드래곤과 해리가 벌써 가냐며 아쉬운 눈빛을 띄웠다.
“다음에는 더 많이 놀아줄게.”
“그오!!”
“크릉!!”
나는 녀석들에게 새끼손가락까지 내밀어 약속하고 에메랄드궁을 떠났다.
그렇게 레온궁으로 돌아와 간단히 씻고 드디어 서재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
「하암~ 잘 잤다.」
일주일을 내리 자고 있던 바리사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다시 주무시죠.”
「정 없는 녀석. 20년 넘게 공짜로 살게 해준 집주인을 반기지는 못할망정.」
20년.
그녀의 주장이다.
검속에 갇히고 7년 정도 후부터는 내면의 소우주를 탐험하느라 시간의 흐름을 잊었었기에 진실은 알 수 없다.
“그래서 원하시는 소설책 마음껏 읽게 해드리지 않았습니까.”
문학소녀인 바리사다의 부탁을 위해 특별한 임무를 맡은 어린 시종 한 명을 고용했다.
하는 일은 간단하다.
내가 업무 보는 시간에 구석에 볕 좋은 자리에서 로맨스 소설을 천천히 읽으면 된다. 그러면 검 주변 풍경을 볼 수 있는 바리사다가 책을 볼 수 있다.
진즉에 생각은 했었는데 왕궁에 나에 관한 이상한 소문이 돌까 봐 실행이 꺼려지던 방법이었다.
뭐······ 그녀 말대로면 20년 동안 얹혀살았는데 소문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겠나 싶었었다.
그나저나 원래 잠이 많았던 바리사다지만 요 한 달 사이 자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이번에는 일주일이나 주무셨습니다.”
「죽을 때가 됐나 보지.」
설렘이 가득한 바리사다의 목소리.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나는 바리사다가 말하는 죽음이 그녀에게 흐르는 마족의 피가 사라짐을 의미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검속에 갇힌 기간이 얼마인데 그 정도도 그녀에 관해 모르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바리사다에 의하면 내가 9성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그녀가 지니고 있던 마기의 9할이 사라졌다고 들었다.
만약 그녀의 마기가 완전히 사라진다면······.
“조만간 떠나시는 겁니까?”
어떤 형태로든 바리사다가 지금처럼 검속에 갇혀 유령처럼 지내는 상황은 끝날 것이 분명했다.
「그야 나도 경험해보지 않았으니 모르지. 왜 내가 없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섭섭해?」
“안 좋게 헤어지는 것도 아닌데 뭐가 섭섭하겠습니까. 그래도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던 상대가 사라지면 조금 허전할 것 같기는 하군요.”
「흥, 말 많다고 귀찮아할 때는 언제고. 너도 한 500년 검속에 갇혀서 멍하니 창밖만 보고 있어 봐. 나처럼 안 되나.」
“사양하겠습니다.”
바리사다가 자기 할 일이 생겼는지 조용해져서 소파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하늘엔 만월이 밝은 빛을 뿌리고 있었다. 달을 감상하며 전국새에 관한 고민을 다시 시작했다.
결정을 내렸다.
‘사자, 사는데······ 일단 샤를 측이 전국새를 세상에 드러내는 순간 사자.’
만약의 경우가 있었다.
전국새의 행방은 아무도 모른다. [도서관]으로도 파악이 불가능. 심적으론 샤를 측이 가지고 있을 게 확실하지만, 아닐 수도 있었다.
막말로 그냥 어디 똥통에 처박혀 있을 수도 있는 거였다. 여러모로 미리 사두는 건 아닌 것 같았다.
‘하믈 제국의 혼란은 지속되어야 해.’
내전으로 혼란스러웠던 국가가 상황이 정리된 후 내부 정리를 위해 타국을 침범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만약 샤를이 하믈 제국의 황제가 된다면, 이른 시일 내에 리오넬 왕국을 침략해올 거다.
나라도 그런다.
미래를 선도할, 세계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라크K, 스텔라 같은 기술을 보유한데다, 자기들의 황제가 죽었을 때 애도는 못 할망정 비공정을 띄우며 서북부를 탈환해간 리오넬 왕국을 가만히 놔둘 이유가 하나도 없다.
샤를과 대항하는 7황자에게 전국새를 전달하는 것만으로 지금의 지지부진한 제국의 혼란을 장기화시키는 데 충분했다.
······ 사실 더 좋은 방법이 하나 있다.
내가 비공정 타고 날아가서 샤를이든 7황자든 11황녀든 황탑자든 보이는 족족 암살해버리면 하믈 제국은 혼란이 극심해지지 않겠는가.
아쉽게도 실천할 수가 없다.
그런 짓을 벌이면 하믈 제국의 수호룡 아우렐리스가 나서는 게 가능해진다. 인간들의 전쟁이 아니게 된다.
내가 9성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신계의 문을 두드릴 수 있는 반신의 경지.
내가 아르야 왕국에서 날뛸 수 있었던 것도 에트림이 먼저 시비를 걸었었기 때문이었다.
딱 8성 수준이 내가 아무런 부담 없이 실력을 행사할 수 있는 마지노선.
전부 바리사다가 조언해준 내용들이다.
「하암······ 다시 졸리네. 잔다.」
때마침 그녀의 목소리에 졸음이 가득 묻어있었다.
“일어나신 지 얼마나 되셨다고요.”
바리사다는 잠들었는지 내 말에 답이 없었다. 창문을 관통한 달빛과 적막만이 서재를 가득 채웠다.
‘일주일을 내리 자고 또 잠이 든다라······.’
이번에는 바리사다가 조금 많이 잠들어 있을 것 같았다. 정말 그녀와의 작별을 준비하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11황녀와 19황자의 성대한 결혼식!』
『7황자, 근친혼은 황실에서 금지한 짐승들도 하지 않는 불결한 행위라 단언하다』
『황탑주, 황실은 근친혼을 공식적으로 금지한 적이 없었다. 7황자의 모친과 타계한 황제도 알고 보면 사촌 관계라고 비웃어』
하믈 제국과 관련된 소식은 언제나 세계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런 와중 대형 뉴스가 터져 나왔다.
『[속보] 19황자, 전국새를 발견했다고 밝혀! 과연 진품인가?』
『7황자 측 진영, 위조품이 분명하다고 코웃음 쳐』
『19황자, 브리센 연합의 연금술 최고 권위자를 초빙. 전국새가 진품임을 증명하겠다고 밝혀』
불과 주먹만 한 도장 하나에 전 세계인의 관심이 쏠렸다.
그리고 그때.
에반은 서재에서 신문에 그려진 전국새와 똑같은 모양의 도장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