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90)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190화(190/203)
190
<190>
나는 조금 전 [만물상]에서 구매해 이리저리 살피던 전국새를 책상에 올려놓았다.
희귀한 재료를 녹여 만든 도장일 뿐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정말 별다를 게 없었다.
그나마 인주 없이 사용 가능하다는 것과 찍힌 인장이 살아있는 듯이 꿈틀거리며 고유의 마력 파장을 발산하기에 위조는 불가능하다는 정도?
신의 신물을 녹여 얻은 아만티움으로 만들어진 보물이라기엔 조금 그렇다.
“이게 뭐라고······.”
이 주먹만 한 도장이 하믈 제국의 내전을 조기에 끝낼 수도, 한없이 장기화시킬 수도 있다는 것에 생각이 많아졌다.
똑똑, 똑똑.
“폐하, 알폰소입니다.”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온 녀석이 책상 위의 전국새를 보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문에서 보던 전국새랑 똑같이 생겼군요. 언제 모조품을 만드셨습니까?”
“진품이야.”
내 말에 알폰소가 피식 웃었다.
“폐하도 참 그런 농담을······.”
무표정한 내 얼굴에 녀석의 말이 점점 흐려졌다.
“······ 저 놀리신 거 맞죠?”
“내가 언제 거짓말하는 거 봤어?”
알폰소가 실눈을 살짝 뜨며 내 눈을 지그시 바라봤다.
말해놓고도 좀 그렇긴 했다.
에메랄드궁의 유령왕자라 불리며 어려웠던 시절,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내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녀석이었다.
나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진품이라고 믿기 싫으면 진품과 구분할 수 없는 모조품이라고 믿든가.”
“만져봐도 됩니까?”
“얼마든지.”
알폰소가 전국새를 들고 요모조모 살폈다.
“으음······ 전국새는 아만티움으로 만들어졌는데 왜 구분을 못 합니까? 그냥 오러로 쓱 그어보면 바로 아는 거 아닙니까?”
알폰소는 내가 [만물상]에서 구매한 전국새를 모조품이라 판단한 모양이었다.
하긴, 그게 상식적으로 바른 판단이다.
신의 금속 아만티움은 구하고 싶다고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신의 유물을 녹여야 한다.
설혹 녹일 신의 유물이 있다고 해도 그걸 녹여 전국새의 모조품을 만드는 게 가능한 대장장이는 세계에서 손에 꼽을 터. 어쩌면 현세대에는 없을 수도 있다.
“궁금하면 오러로 그어봐.”
“어······ 진심이시죠?”
나는 손으로 어서 해보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망가트렸다고 화내시면 안 됩니다.”
알폰소가 품에서 단검을 꺼냈다. 곧, 독기가 넘실거리는 자색 오러가 단검을 휘감았다.
내 눈치를 슥 본 녀석이 손에 힘을 주었다.
끼기긱─
전국새를 긋는 단검에서 불똥이 튀었다.
“어?”
자연스레 알폰소가 실눈을 부릅떴다.
전국새는 멀쩡했다. 미스릴이라도 지금 같은 상황에선 흠집이 나야 정상이었다.
“이, 이거 진짜 아만티움으로 만드신 겁니까?”
“말했잖아. 진품이라고. 다시 올려놔.”
책상 위에 전국새를 올려놓은 알폰소는 유령에 홀린 표정으로 그것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 그럼 지금 하믈 제국에 나타난 전국새는······.”
“그것도 진품이겠지. 그러니 연금술의 최고 권위자, 앙트완 퀴리를 초빙해 진품 여부를 가린다고 하지 않았겠어?”
실눈 속 알폰소의 눈동자가 거침없이 흔들렸다. 이해가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그러다 곧 해답을 찾은 표정으로 손뼉을 짝 쳤다.
“예전에 다나르 님의 유적에서 얻었던 망가진 유물! 그 모래시계를 녹이신 거군요! 그 작업을 한 건······ 아마도 검은 모루 부족의 길루드 족장!”
모래시계는 지드래곤이 꿀꺽하며 마신수로 거듭났고, 길루드는 타이탄 연구에 매진하고 있었다.
뭐, 저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야, 저걸 샤를과 대치 중인 7황자가 손에 넣으면 아주 재밌어지겠군요.”
“뭐, 그렇겠지. 근데 무슨 일로 찾아온 거야?”
시종장이 된 후부터는 잡무를 담당하는 부하 시종을 항상 대동하고 다니는 알폰소였다.
녀석이 지금처럼 혼자 올 때는 대게 리오넬수호군 해체 이후 결성된 왕의 직속 첩보 조직 암천의 일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하믈 제국 쪽 요원들의 활동 자금을 지금의 두 배로 올려달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루카스의 요청이었다.
엘렌베이라 지역에서 공민회를 지원하다 흑기사단의 습격으로 목숨만 겨우 건졌던 그는 삼 개월 전부터 하믈 제국에 침투한 암천 요원들의 책임자로 발령된 상태였다.
“왜?”
“11황녀와 19황자의 결합 이후 첩보 활동을 하기가 서너 배는 힘들어졌다고 합니다. 기존의 자금으로는 턱도 없다고······ 지금 활동 자금을 늘리지 않으면, 아마도 요원들의 사망 보상금으로 더 많은 지출이 있을 거랍니다.”
암천의 활동 자금은 국고와 별개다.
설립 때부터 오로지 왕의 주머니에서 그 활동 자금을 충당하게 만들어졌다.
“흐음······.”
나는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들기며 잠시 계산을 해봤다.
왕국을 위해 타국에서 목숨 걸고 첩보 활동을 펼치고 있는 요원들이었다. 마음이야 두 배가 아니라 세 배도 지원해주고 싶지만, 나의 품위 유지비 정도는 남겨놔야 하지 않겠나.
‘가능하겠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알았다고 해.”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알폰소의 표정이 급격하게 밝아졌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그래, 오늘 짐 챙겨서 내일 출발해.”
“네?”
“저걸 전달해줘야지.”
나는 턱짓으로 책상 구석에 올려둔 전국새를 가리키자 화색이 돌던 알폰소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제가요? 저걸?”
“저 중요한 걸 네가 아니면 누가 전달해.”
“저보고 7황자를 만나라고요?”
큰일 날 소리를 한다.
알폰소가 그와 만났다가 행여라도 정체가 들통나면 큰일이었다.
“새로 등장한 전국새와 리오넬 왕국이 관계가 있다는 건 결코 드러나서는 안 돼. 현지에서 활동하는 요원들과 머리를 맞대서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7황자가 전국새를 손에 넣을 수 있을지 고민해봐.”
알폰소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어려운 과제인가?
정 안되면 7황자가 자주 이동하는 동선에 발견되기 좋게 슬쩍 갖다 놓기만 해도 될 일 아니겠는가.
***
클라우 로비츠.
그는 집무실에서 차를 홀짝이며 천금 같은 휴식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클라우는 요즘 기분이 좋았다.
모든 것이 그의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11황녀와 19황자의 혼인 역시 그가 심혈을 기울인 작품.
클라우는 찻잔을 탁자에 놓으며 조금 전까지 보고 있던 신문들에 힐끔 시선을 주었다.
『전 세계가 인정한 최고의 연금술사, 앙트완 퀴리. 19황자 샤를 한 하이스가 손에 넣은 전국새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진품이라고 단언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거세게 반발한 7황자』
‘이제 7부 능선은 넘었어.’
클라우의 머릿속에 샤를이 황제 즉위식을 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앙트완 퀴리가 본인의 이름을 걸고 전국새가 진품임을 공표했어. 중립 세력들이 움직이기 시작할 거야.’
그동안 7황자와 11황녀 사이를 갈팡질팡하던 중립 세력이 있었다.
실종된 1황자를 따르던 이들.
물론, 그들도 1황자가 죽었으리란 건 다 알고 있다. 표면적으로 명분을 중시하는 척하지만, 대부분은 어느 편에 붙어야 자신들의 안위를 지킬 수 있을지 고심하느라 선택을 못 하고 있었을 뿐.
‘박쥐 같은 인간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다.
클라우는 황제를 택하는 신물이라는 전국새를 이용해 중립 세력이 그토록 외쳐대던 명분을 만천하에 선보인 것이었다.
1황자를 따르던 이들 중에는 소수지만 황제가 남겼던 유서가 그를 차기 황제로 지목했기 때문에 1황자를 지지했던 이들도 있었다.
그들이 먼저 움직일 터였다.
그러면 명분을 방패로 샤를과 7황자를 저울질하던 나머지도 움직일 수밖에 없다.
필요한 건 비등비등했던 두 세력 사이에 세워진 방파제에 작은 균열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전국새는 그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는 신물이었다.
‘그 외에는 쓸데가 없어서 문제지.’
클라우는 언제가 전국새를 다시 녹여 단검이라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만약 계획대로 된다면······ 늦어도 일 년이야.’
한번 균열이 생긴 방파제는 다음날이면 구멍이 나고, 이틀이면 와르르 무너지는 법이다. 클라우는 그 정도 시간이면 샤를이 황위에 오를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래도 앞당길 수 있으면 앞당기는 게 좋아.’
클라우는 고개를 살짝 돌려 동쪽을 바라봤다.
‘리오넬 왕국······.’
그는 리오넬 왕국만 생각하면 목에 가시가 걸린 것 같은 찝찝함을 느꼈다.
정보, 정보의 부재 때문이었다.
리오넬 왕국에 관한 첩보를 입수하는 것이 극히 어려웠다.
클라우는 근래 세계 첩보 기관 요원들이 리오넬 왕국을 돌아올 수 없는 무덤이라 부른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만큼 리오넬 왕국에서 첩보 활동을 하는 것은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는 의미.
‘라크K와 스텔라 때문이겠지?’
방첩에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붓고 있는 게 분명했다.
‘동목만 움직일 수 있었어도······.’
하믈 제국에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첩보 조직인 동목이 있지만, 그들은 중립을 표방하며 외세의 개입을 막는 데만 주력하고 있었다.
클라우가 박쥐 취급한 세력들과는 다르게 그들은 오직 황좌에 앉은 이만이 부릴 수 있는 진정한 중립 세력이었다.
리오넬 왕국과 관련된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의 머리가 지끈거렸다.
‘오랜만의 휴식인데 일 생각은 그만하자.’
클라우는 머릿속을 비우고 창밖의 풍경을 감상하며 다도의 즐거움에 취했다.
똑똑, 똑똑.
“클라우 님. 각 부서에서 올라온 보고서 취합이 완료되었습니다.”
“가져오라고 해.”
휴식 시간이 끝났다.
클라우는 부하들이 가져온 산더미 같은 서류를 보고 한숨을 쉬다 다시 업무에 돌입했다.
먼저 정보부의 보고부터 살폈다.
그는 최근 주변에서 서성거리는 쥐새끼들을 색출하는 데 전념하고 있었다. 계속 신경을 거스르게 만드는 놈들이 있었다.
동목의 눈이 닿지 않은 걸 보면 7황자 쪽 첩자들 같기는 한데······ 확신할 수는 없었다.
‘꼬리 자르기만 열심히 했다고?’
그 간단한 말을 비비 꼬아서 길게 늘여 쓴 보고서에 클라우의 인상이 팍 찡그려졌다.
마음 같아서는 그가 직접 나서서 쥐새끼들을 색출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과로로 쓰러져 죽을 것이 분명했다.
‘인재가 부족해, 인재가.’
샤를은 원체 잘나신 몸이라 평범한 인재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소수의 엘리트 위주로 샤를의 진영은 굴러가고 있었다.
클라우는 지금 같이 소수가 과다한 업무를 맡게 되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 분명 큰 사고가 날 거라 확신했다.
앞으로가 중요했다.
11황녀의 세력에는 샤를의 성에 차진 않아도 시키는 일은 그럭저럭해낼 수 있는 인사가 꽤 많았다.
그들이 등을 돌리게 해서는 안 된다.
정보부의 장 역시 마찬가지.
11황녀를 따르는 평범한 관료의 대표 격이었다.
‘조금은 더 기회를 줘야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클라우는 정보부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치웠다.
그리고 일주일 뒤.
쥐새끼들이 철수한 것 같다는 정보부의 보고서를 받은 클라우. 그는 자신의 믿음의 정치가 통한 것 같다는 생각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쥐새끼들이 7황자의 진영으로 몰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고 말이다.
타다다닥- 우당탕당!
누군가 집무실로 뛰어오는 요란한 소리에 클라우의 마음이 불안해졌다.
“클라우 님! 크, 큰일났습니다!! 7황자가, 7황자가 진짜 전국새는 자기가 가지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
클라우는 손으로 귀를 후볐다.
환청을 들은 게 틀림없었다. 전국새를 훔친 게 그였다. 그게 7황자의 손에 있을 리 없었다.
“다시 말해보겠나?”
“7황자, 7황자가 우리가 가진 전국새는 가짜고 자신이 진짜 전국새를 가지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제대로 들은 게 맞았다.
아! 가짜다.
모조품을 만든 게 분명했다.
‘7황자가 급하긴 급했나 보군. 그게 모조가 가능한 물건인 줄 아나.’
클라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