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92)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192화(192/203)
192
<192>
에이츠상회에서 개발 중이던 남부의 고급 온천 리조트가 가오픈했다.
아돌, 버논, 베록.
에이츠상회의 최고경영자인 아이라에게 리조트 이용권을 선물 받은 세 사람은 휴가를 맞아 가족과 함께 리조트를 찾았다.
부인들에게 아이들을 맡긴 셋은 탈의실로 달려가 바로 옷을 벗어 던지고 노천 온탕으로 뛰쳐나갔다.
휘잉- 휘이잉─
아직 가을이지만, 바람이 부는 탓에 꽤 쌀쌀한 날씨.
“으~ 추워.”
“나 먼저 들어간다!”
“같이 가!
첨벙, 첨벙, 첨벙.
셋은 서로 경쟁하듯 모락모락 김이 나는 탕으로 뛰어들었다.
“으어~ 살 것 같다. 피로가 확 풀리네. 역시 사람은 인맥이 좋아야 해. 아이라 님 덕분에 이런 근사한 리조트도 와보잖아.”
최근 자신을 똑 닮은 아들을 얻은 버논이 뜨뜻한 온천수에 녹아내릴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네가 뭐가 피곤하다고 그래. 육아도 제수씨랑 유모가 다 할 거 아니야.”
“아돌. 너도 애들이 신생아일 때는 피곤하다는 소리를 달고 살았잖아.”
“전혀 기억 안 나는데?”
버논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더 말해봤자 자신만 약 오를 게 뻔했다. 그는 화제를 전환했다.
“근데 너희들 숙소에 있는 가구들 봤어? 전부 서대륙에서 수입한 케이아상회의 것이더라? 그거 하나만 팔아도 우리 집 가구 전부 다 바꿀 수 있겠던데.”
명품을 좋아하는 베록의 눈이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그 정도로 비싼 소파는 아니야. 내가 케이아상회의 소파들을 좀 잘 알고 있지. 숙소에 있던 것들은 말이야······.”
소파를 시작으로 베록이 리조트에 있던 가구들에 관한 제원, 가격들을 전부 줄줄 읊었다.
그에 질린 아돌이 베록에게 한마디 했다.
“가끔 보면 넌 기사가 아니라 상인을 하는 게 맞았을 것 같아.”
“근위기사가 되지 못했으면 정말 그렇게 되었을지도 몰라.”
베록이 아련한 눈으로 과거를 회상했다.
근위기사단에 막 합격했을 때가 떠올랐다.
벌써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참 정신적으로 어렸었다.
자신도 귀족가의 사생아라는 반쪽짜리면서 아돌과 버논 등의 평민 출신 기사들을 업신여겼었다.
전장에서 믿고 등을 맡겨야 하는 것이 기사다. 그런데 그런 기사단 내에서 앞장서서 편을 갈라댔으니······.
베록은 부끄러운 흑역사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옛날 생각나네. 베록이 너랑 나한테 같은 공기를 마시면 불쾌하다고 손수건으로 코를 막고 막 그랬는데.”
“맞아, 맞아. 폐하를 처음 뵐 때도 내가 저 녀석 때문에 기절했었잖아. 그때 대련을 왜 했더라?”
“음······ 땡볕 아래 그늘에서 쉴 수 있는 건 귀족 출신만 가능하다고 해서 싸우지 않았었나?”
“아, 맞다. 기억났어. 그때 베록이 참 대단했었지.”
버논과 아돌의 키득거림.
안 그래도 화끈거리던 베록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그만해라.”
낮게 깔리는 그의 목소리도 버논과 아돌의 놀림은 계속되었고, 듣기가 괴로워진 베록은 온천수 안으로 잠수를 택했다.
“오! 베록~ 오래 참는데? 아돌, 잠수 내기 어때?”
“좋지, 진 사람이 오늘 저녁 사는 거다.”
세 사람은 서로 놀리고, 잠수하고, 물싸움도 하며 아이들처럼 놀았다.
왕국의 꿈나무들이 그들 셋의 지금 모습을 본다면 상당히 놀랄 터였다.
셋을 동경하는 아이들이 참 많았다.
국왕인 에반이 유령왕자라는 허물을 막 벗어 던졌던 순간부터 그를 호위했던데다 각자의 수준도 국가의 핵심 전력으로 평가받는 6성 기사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중 인지도가 가장 높은 것은 아돌.
에반의 왕세자 즉위식 때 하믈 제국과의 친선 대항전에서 세 명의 흑기사를 연거푸 쓰러트리며 차기 7성 기사로 주목받았었기 때문이다.
“진짜, 그때 내가 뽑은 제비를 바꾸지만 않았어도 그렇게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여주진 않았을 텐데.”
“그만해. 부끄러우니까. 그냥 대전 운이 좋았을 뿐이야. 너희들이 나갔어도 결과는 똑같았을 거야.”
“잘 아니 다행이군.”
이번 타깃은 나인가? 그런 생각이 든 아돌은 서둘러 말을 돌렸다.
“그나저나 이번에 브리센 연합에서 엄청난 신무기를 선보였다는 거, 다들 들었어?”
두 달 전.
라비아 제국의 철의 여제가 앙트완 퀴리의 폴라니아 왕국 바로 밑에 있는 요크라 왕국을 침략했다.
그에 브리센 연합의 열강이 라비아 제국을 견제하기 위해 요크라 왕국에 지원을 시작. 처음 세상에 나타난 신무기가 있었다.
“아, 나도 그 소식 들었어. 사방을 철판으로 보호한 이동마력포였다지?”
“두꺼운 철판으로 둘둘 감싸여서 검사를 다루는 4성 기사가 아니면 흠집도 내지 못한다고 들었다.”
원시적인 탱크.
아직 속도도 느리고 방향 전환이 힘들다는 등의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 장점은 명확했다.
일반 병사 수준에선 상대할 방법이 없다는 것.
비공정, 철갑선 등의 등장으로 안 그래도 좁아진 기사의 가치를 더 떨어트리는 신무기이기에 셋의 마음이 무거웠다.
물론 그들도 안다.
당장 기사가 사라지지는 않을 거다.
2년 전, 아르야 왕국과의 전쟁에서 에반과 레이나가 보인 활약만 봐도 최고위 기사는 그 어떤 무기로도 대체할 수 없다.
하지만 미래는?
평범한 인간이 십여 년간 검만 휘둘러도 도달할까 말까 한 것이 3성 기사. 그런 기사가 지금도 요크라와 라비아의 전장에선 이동하는 마력포에 깔려 아무것도 못 하고 죽어 나가고 있다.
1성 기사만 되어도 일반 병사 열은 거뜬히 상대할 수 있던 과거와 현재는 다르다. 기사의 꿈을 키워나가는 어린아이들이 점차 사라질 터.
언젠가는 최고위 마력 각성자는 마법사들만의 전유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세 사람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잠시 생각이 많아진 시간이 지나고, 주먹코를 매만지고 있던 버논이 문득 뭔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근데 우리 왕국도 신무기를 만들고 있는 것 같지 않아? 폐하가 가끔 프란 님을 뵈러 가면 꼭 혼자 가시잖아. 난 그게 신무기 때문일 것 같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과연 얼마나 대단한 걸 만드시길래 우리에게까지 비밀이신지. 베록, 넌 들은 거 없어?”
“저번에 알폰소 시종장에게 슬쩍 물어보니까 자기도 잘 모른다더라.”
“내가 생각하기에는 말이야······.”
세 사람은 리오넬 왕국이 개발 중인 신무기에 관해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기사의 신체 능력으로 화살을 피할 수 없는 활. 앉은 자리에서 행군으로 며칠 걸리는 거리의 적군을 타격할 수 있는 마력포 등등.
말은 안 하지만 그들은 큰 전쟁을 직감하고 있었다.
작년, 두 개의 전국새가 세상에 나타나며 극심한 혼란에 빠진 하믈 제국.
언젠가는 진정될 터였다.
세 사람은 왕국이 개발 중인 신무기가 하믈 제국 놈들을 박살 낼 수 있는 것이길 소망했다.
“슬슬 나가볼까? 부인들이 기다리겠어.”
“그러게. 귀가 간지러운 게 애들이랑 안 놀아주고 우리끼리 논다고 욕하고 있는 거 같네.”
손가락을 비롯해 피부가 잔뜩 쪼글쪼글해진 세 사람은 탕에서 나와 탈의실로 향했다.
그들이 신무기의 정체를 알게 되는 것은 그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
아르야와의 전쟁 직후, 리오넬 왕국의 왕도와 엎어지면 코 닿는 부지에서 대규모 공사가 진행되었다.
하늘을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간 탑.
프란이 초대 마탑주를 역임할 마탑이었다.
그 탑이 99% 완공되었다.
길루드, 프란, 그리고 프란의 제자 앨리스가 탑을 둘러보고 있었다.
“이제 외벽 도색만 완료하면 끝이야.”
길루드가 말했다.
그는 타이탄 관련해서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임에도 마탑의 설계도 그렸고, 중간중간 공사 과정을 검사하는 성의를 보였다.
“정말 고마웠어, 길루드.”
“내가 뭘 했다고. 그냥 설계도 좀 그리고 열심히들 하고 있나 쓱 둘러보고 간 게 전부인데.”
“길루드 아저씨 올 때마다 완공 시기가 한 달씩 늘어났었는데요?”
“큼, 큼.”
앨리스의 말에 길루드가 쑥스러워하며 크게 헛기침했다.
셋은 탑의 최상층으로 이동했다.
“우와! 왕도 전체가 내려다보여요. 이거 안 무너지겠죠?”
“껄껄껄, 아무렴. 누가 설계했는데.”
프란의 마탑은 현재로선 전 세계에 건설된 마탑 중 가장 높았다.
앨리스와 길루드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프란은 창밖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었다.
‘드디어 마탑주······.’
줄곧 꿈꿔왔던 목표를 달성했다.
기쁘다, 분명 기쁜데 생각보다 덤덤했다.
프란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하프인간, 하프엘프이라 불리며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영향 탓인지 그녀는 마법사로서의 자신에 과도한 집착을 하게 되었다.
근데 어느 순간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이 자신을 8성 마법사 프란이 아니라 프란 미네르바 공작님이라 부르고 있었다.
잠시 볼일을 보러 외출하면 왕국인들이 그녀를 경외의 시선으로 인사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들에게 그녀의 뾰족하다 만 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가랑잎에 옷이 젖듯, 그렇게 리오넬 왕국의 공작이 되어버렸다.
‘이게 다 그 녀석 때문에······.’
프란은 에반을 떠올리며 혀를 찼다.
솔직히 그렇게 기분 나쁘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꽤 좋았다.
아쉬운 게 있다면 전쟁이 일어나도 나 몰라라 하고 휙 떠날 수 없다는 것.
생각해보니 조금 웃겼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었기에 누릴 수 있던 자유였는데, 그게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또 아쉬웠다.
‘전쟁이라······.’
장기화한 하믈 제국의 내전.
얼마 전 있었던 황도 부근에서 이뤄진 큰 전투에서 19황자가 7황자의 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뒀다. 비등비등하던 두 세력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
“프란, 마탑의 이름은 아직도 안 정한 거냐?”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프란은 상념에서 깨어나 고개를 돌렸다. 길루드와 앨리스가 기대되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고민한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탑이니 천탑이라고 하면 어떨까 싶은데.”
“천탑이라······ 뭐,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근데 꼭 한 글자로 해야 하는 거냐?”
“그게 관례니까.”
“그나저나 이제 슬슬 돌아가는 게 어떠냐? 국왕이 선발한 오너들이 우리의 작품을 구경하러 올 날이 바로 내일이다.”
프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에반 같은 괴물 말고도 ‘평범한’ 기사가 실전에서 운영 가능한 타이탄이 완성되었다.
탑승에 꽤 제약이 있긴 했다.
6성 기사는 되어야 1시간 정도의 기동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생산비와 유지비 또한 엄청 비쌌다.
단 3기만 제작되었는데, 그것만으로도 대형 비공정 생산에 맞먹는 생산비가 들어갔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건 역시 엔진에 최상급 마정석을 생으로 사용해야 했기 때문.
최상급 스텔라 개발이 막혀 있는 상태라 어쩔 수 없었다.
장기적인 목표는 5성 기사가 3시간 이상 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게 가능해지면 전장의 판도가 달라질 터였다.
일 년 전 브리센 연합이 선보인 철갑을 덧댄 이동마력포 따위는 타이탄에 비하면 장난감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 그런 타이탄의 양산은 불가능했다. 최상급 스텔라가 완성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언제쯤에나 될지 모르겠네.’
최상급 스텔라가 완성되어도 그걸 타이탄에 적용하는 것과 양산을 시작하는 건 또 별개였다.
가능하면 하믈 제국의 내전이 끝나기 전에 완성하고 싶은 게 그녀의 마음이었다.
‘뭐, 그 녀석이라면 조금 늦어져도 별문제 없겠지.’
어떤 최악의 상황도 극복해온 에반이었다. 조금 늦어져도 하믈 제국에게 패망하거나 하는 일은 없을 터였다.
마음 편히 먹은 프란은 앞서가는 길루드와 앨리스를 따라 천천히 탑을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