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97)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197화(197/203)
197
<197>
샤를은 말없이 리오넬 왕국의 요새를 바라보았다.
“드디어 그토록 바라시던 순간이 왔네요.”
클라우의 말에 샤를의 손이 눈가의 흉터로 향했다.
에반에게 당한 상처.
세월이 흐르며 매우 옅어졌지만, 그와 반대로 그의 가슴 깊숙한 곳에 새겨졌던 상처는 곪아 터지기 직전이었다.
“혹시나 해서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기사전은 절대 안 됩니다. 아무리 폐하라도 에반 리오넬을 이길 거라곤 장담할 수 없습니다.”
자존심을 긁는 클라우의 말에 샤를의 흉터가 꿈틀거렸다. 다른 이 같았으면 바로 옆구리에 찬 검으로 목을 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샤를이 검에 손을 가져가는 일은 없었다. 클라우는 그에게 그런 직언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클라우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이는 누굴까?
호사가들의 술자리 안줏거리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주제 중 하나. 에반의 이름이 거기서 가장 많이 언급된다는 걸 샤를도 잘 알고 있다.
불과 6성 기사 시절일 때 그의 심상영역을 부수는 기행을 벌였던 에반. 아르야와의 전쟁에서 아르야의 검이라 불리던 남자를 베며 유일무이한 8성 마검사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렸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샤를은 에반을 기사전에서 제압할 자신이 없었다.
“다행히 저쪽도 기사전을 안 받아들일 걸 아는지 먼저 도발해오진 않는군요. 혹시라도 에반 리오넬이 걸어 나오면 바로 그냥 마력포를 발사하라고 지시했었는데······.”
클라우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샤를은 시선을 돌려 전열을 갖추는 병력을 바라보았다.
대형 비공정에서 가림막으로 은폐된 신병기, 타이탄이 지상의 땅을 밟고 있었다. 그 과정을 황탑주가 직접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저건 뭐지?
-사다리차인가?
-사다리차를 굳이 저렇게 가릴 필요가 있나?
-새로운 공성병기 아닐까?
그 정체를 모르는 병사들이 수군거렸다.
모든 타이탄이 대형 비공정에서 내리고, 샤를이 손을 들었다.
가림막을 제거하라는 수신호.
촤르륵, 가림막이 걷히고 13기의 강철 거인, 하믈 제국의 타이탄 저거트가 일시에 모습을 드러냈다.
-저, 저건!
-거인?
-타이탄! 타이탄이다! 멸망했다고 알려진 타이탄이야!
병사들은 금빛으로 도금된 하믈 제국의 타이탄, 저거트를 넋을 잃고 바라봤다.
개중 망토를 휘날리며 투구에 뿔이 달린, 유독 화려한 기체가 하나 있었다. 샤를의 전용 기였다.
샤를이 천천히 그 앞으로 다가갔다.
소란스럽던 병사들이 일시에 조용해졌다. 다들 말없이 그가 타이탄에 탑승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검을 치켜든 샤를의 전용기. 그 방향이 리오넬 왕국의 요새를 가리켰다.
“출진!”
병사들 한 명 한 명의 귀에 틀어박히는 샤를의 목소리와 함께 하믈 제국의 비공정이 일제히 하늘을 날아올랐다.
한편.
하믈 제국 진영에서 타이탄, 저거트가 모습을 드러낸 후부터 리오넬 왕국군의 시선은 타이탄에 집중되어 있었다.
-저, 저게······.
-거인족?
-저런 걸 무슨 수로 이겨.
제국의 비공정 전력이 왕국을 압도하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멀리서 봐도 위압적인 거대한 타이탄의 등장. 병사들의 사기가 꺾일 만도 했다.
-다들 정신 차려!
-국왕 폐하가 우리와 함께하신다!
중간 간부들이 그런 병사들을 다독이자 금장 소란이 잦아들었다.
여태껏 왕국군은 에반과 함께한 전투에서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믿음이 그들의 눈에 담겼다.
“놈들이 비공정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목청이 터지도록 외치는 감시병들.
그들의 보고가 아니더라도 하늘을 빼곡히 수놓은 제국의 비공정을 못 볼 사람은 전장에 아무도 없었다.
하믈 제국의 비공정들이 위풍당당하게 요새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요새를 폭격 후 지상군이 움직일 생각.
상대보다 우월한 비공정 전력을 보유한 측이 사용하는 지극히 정석적이면서도 강력한 전략이었다.
그에 하믈 제국의 비공정 선단에 대항하기 위해 리오넬 왕국의 비공정도 하나둘 떠올랐다.
비록 전력이 하믈 제국의 반도 안 되지만, 요새에 설치된 대구경 마력포의 지원을 받으면 무기력하게 격추되진 않을 터였다.
‘우리가 목숨을 걸고 싸운다면 말이야.’
비공정의 승무원들은 결연한 표정으로 접근하는 하믈 제국의 비공정을 바라봤다.
그리고.
하믈 제국의 비공정 선단이 국경을 넘는 순간, 그들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이변이 일어났다.
쿠쿵! 쿠궁! 쿠구궁!
거대한 진동과 함께 땅에서 솟아오른 리오넬 왕국의 타이탄, 쿠베르. 그리고 미카엘.
각각의 오른팔에는 거대한 마력포, 천둥이 연결되어있었다.
리오넬 왕국 쪽에서 등장한 타이탄에 하믈 제국의 비공정 선단이 멈칫했다. 그리고 그건 돌이킬 수 없는 잘못된 판단이었다.
고오오- 고오오오오─
강렬한 마력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그로 인해 리오넬 왕국의 타이탄들이 아지랑이에 일렁이는 것처럼 보였다.
하믈 제국 비공정의 함장들은 열에 아홉이 마법사 출신. 지금 일어난 현상이 최고위 마법이 발동될 때와 유사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회, 회피하라!”
“고도를 올려!”
요새를 폭격하기 위해 저공비행 중이던 하믈 제국의 비공정이 일제히 고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콰앙! 콰앙! 콰아아아아앙──!!!
대형 비공정을 노리고 일제히 발사된 쿠베르의 천둥. 엄청난 굉음이 전장에 울려 퍼졌다.
“마력 보호막 최대출력으······ 으아아악!”
“사, 살려!!”
퍼엉! 퍼엉! 퍼엉!!
기존 마력포와 그 위력을 달리하는 천둥이었다. 대형 비공정으로 도달하고 있던 길목의 소형, 중형 비공정은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그리고.
콰아아앙!!
근 백여 년, 전장을 지배했던 대형 비공정이 지상에서의 공격으로 격추되는 일이 일어났다.
콰아아앙!! 콰아아앙!! 콰과광!!
7척 중의 4척.
하믈 제국군이 보유한 대형 비공정의 3할이 넘는 수가 한순간에 증발하고 말았다.
“저, 저게······.”
그 광경을 지켜본 하믈 제국 측은 경악했다.
비공정에 대항하는 건 비공정 또는 초고위 마법사뿐이라는 현대전술의 기본이 와르르 무너져내렸으니 그럴 수밖에.
“리, 리오넬 왕국이, 타, 타이탄이라고?”
저거트의 개발을 주도했던 황탑주는 말을 심하게 더듬을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 그는 이 상황을 설명해줄 수 있을 것 같은 유일한 사람을 찾았다.
“이, 이보게 클라우!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저, 저도 잘······ 어떻게 리오넬 왕국이 타이탄을, 거기다 저런 타이탄 전용 무기까지······.”
전장의 악마라 불리며 하믈 제국의 내전 기간 단 한 번도 여유를 잃었던 적이 없는 클라우. 그도 이번만큼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클라우는 홀로 다른 외향을 지닌, 순백의 타이탄을 바라보았다. 저기에 누가 타고 있을 지 뻔히 짐작되었다.
‘에, 에반 리오넬!! 모든 게 준비되어 있었다는 거냐!’
언제나 능글능글한 미소가 걸려있던 클라우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지고, 곧 지독한 패배감과 함께 섬찟한 두려움이 몰려왔다. 에반의 손바닥 위에서 재롱을 부리는 미물이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와 유사한 기분인 사내가 한 명 더 있었다.
하믈 제국의 황제, 샤를 한 하믈.
전용기에서 제국의 비공정이 추락하는 모습을 지켜본 그의 표정은 흉신악살이 도망갈 정도였다.
“에반, 리오넬.”
에반의 이름을 부르는 그의 떨리는 목소리에서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느껴졌다.
샤를은 기본적으로 이성보다 본능에 몸을 맡기는 맹수 같은 사내였다. 클라우라는 조력자가 없었다면 어렸을 적 이빨을 잘못 드러내는 바람에 채 성장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꾹꾹 제어하고 있던 그의 본성이 깨어났다.
전쟁, 승리, 패배.
그런 것들은 이제 그의 머릿속에 없었다. 오로지 에반을 물어뜯고 그 심장을 씹어먹어야 한다는 생각만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전군 돌격!!”
샤를은 울부짖듯 외쳤다.
쿵, 쿵.
샤를의 전용기가 한 발, 한 발 대지를 울리며 리오넬 왕국군을 향해 움직였다.
“도, 돌격!”
“돌격하라!!”
“황제 폐하가 우리와 함께하신다!!”
제국의 타이탄 오너들이 그에 동조해 그 뒤를 따라붙었다.
샤를 또한 황제이기 이전에 내전에서 수많은 전장을 승리로 이끈 맹장. 제국군이 일제히 진격을 시작했다.
***
‘4척이라.’
땅굴 속에 숨어 있던 쿠베르들의 기습으로 격추한 하믈 제국의 대형 비공정 수가 조금 아쉬웠다.
최대 6척을 기대했었는데.
그래도 생각했던 최소의 결과는 이뤄냈으니 타이탄 오너들을 타박할 일은 아니었다.
단 한 번의 기습으로 인해 놈들과 아군의 비공정 전력이 동등해졌다. 아니, 아군이 훨씬 유리해졌다.
놈들의 비공정은 또다시 지상에서 날아올 천둥의 포격이 두려운 나머지 섣불리 고도를 낮추지 못하고 있었다.
곧 내려올 거다.
천둥은 어마어마한 위력을 내는 만큼 연달아 연사할 수 있는 그런 무기가 아니다. 6성 기사 수준이면 한 발 정도가 한계. 그 이상 사용하면 전장을 이탈해야 한다. 거기다 놈들의 타이탄, 저거트가 돌진해오고 있었다.
포격 전까지 에너지를 충전하는 천둥의 구조상 비공정과는 차원이 다른 기동력을 보이는 타이탄을 맞추는 건 지극히 힘든 일이다.
왕국의 타이탄이 일제히 천둥을 해제하고 각자의 무기를 장비했다.
나 역시 천둥을 해제하고 검을 장비했다. 종교적, 실용적인 측면에서 날개는 떼어놓고 온 미카엘. 날개가 없으니 날아갈 것 같이 움직임이 가벼웠다.
이제 하늘은 아군 비공정 선단이 감당해야 할 몫. 대형 비공정의 수는 오히려 아군이 우위가 되었으니 그들을 믿기로 했다.
“에반 리오넬!!”
지금은 샤를의 전용기를 포함해 눈앞에 들이닥친 하믈 제국의 타이탄을 상대하는 게 먼저였다.
어떤 기체에 누가 타고 있는지는 놈들이 전장에 나타나기 전에 미리 알고 있었다.
샤를을 포함해서 8성 기사 셋.
7성 기사가 열명이다.
그에 비해 아군은 나를 빼면 8성에 레이나 하나, 7성 기사 셋, 나머지는 6성 기사다. 타이탄 오너의 수준차가 많이 난다.
걱정하지 않는다.
쿠베르와 저거트의 스펙 차이는 그걸 충분히 메꿀 수 있다.
아군의 8성 기사와 7성 기사가 각각 두 명씩 맡고 6성 기사들이 합공을 펼치면 버틸 수 있다는 계산이 오래전에 끝난 상태였다.
그래도 불안한 건 사실.
최대한 내가 빨리 샤를을 정리하고 아군을 도와야 한다.
“에반 리오넬!! 오늘 반드시 네놈을 지옥에 처박아주마!”
샤를의 전용기가 거대한 창을 휘둘러왔다.
한두 해 타이탄을 다룬 것 같지 않은 부드러운 움직임.
이런 걸 보면 샤를도 보통 녀석은 아니었다.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재능. 순수한 기사로서의 재능은 나를 뛰어넘는 것 같다. 어쩌면 ‘미래’에서 나의 사후, 녀석은 9성의 경지에 진입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번 생은 여기까지만 하고 가라.’
그래도 황제까지 해 먹었으면 충분히 멋진 인생을 살지 않았나.
나는 덮쳐오는 창에 맞서 미카엘의 검을 휘둘렀다.
에반식 리오넬 제왕검술, 오의 개천.
쇄애애액- 콰아아아아앙!!!
공간을 찢어발기는 마검술이 샤를의 창과 부딪히며 엄청난 굉음이 전장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