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98)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198화(198/203)
198
<198>
샤를이라면 반드시 전투 개시와 동시에 내게 달려들리라 예상했었다. 그리고 그런 내 생각은 여지없이 들어맞았다.
전쟁 개시와 동시에 하믈 제국 황제의 목을 벤다? 그로 인해 왕국이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측정 불가다.
하믈 제국의 수호룡 아우렐리스의 힘이 닿지 않는 아국의 영토에서 샤를을 상대하는 건 앞으로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기회였다.
‘반드시 죽인다.’
까가가강─! 쨍그랑!
마검술의 오의가 깃든 미카엘의 검이 샤를 전용기의 창을 부수고,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갔다.
“크아아아아!! 에반 리오네에에엘!!!”
괴성을 내지르는 샤를.
할 말이 많아 보이는데 그다지 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나는 샤를이 탑승한 저거트의 조종석을 향해 정확히 검을 찔러 넣었······.
파앗─!
눈부신 황금빛이 샤를의 전용기를 감싸고.
쇄애애액- 콰앙!!
미카엘의 검은 애꿎은 땅바닥에 깊숙이 박혔다.
공간이동마법.
마법진도 없이 타이탄만 한 거체를 이렇게 순식간에 다른 곳으로 전송해버리는 건 8성 마법사 수준에서도 불가능한 일이다.
범인이 누군지는 명확했다.
나는 제국 진영 하늘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아우렐리스! 망할 도마뱀이!”
***
은은한 빛이 감도는 공간.
천하절색의 여인이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샤를의 전용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믈 제국의 시작과 함께해온 수호룡, 아우렐리스가 인간으로 분한 모습이었다. 황금빛의 긴 금발로 나체를 가린 그녀가 손가락을 튕겼다.
와그작!
조종석의 문이 종잇장처럼 뜯기며 입가에 피를 흘린 채 의식 잃은 샤를이 모습을 드러났다.
초장거리 공간이동마법을 견뎌낸 여파였다.
만약 그가 8성 기사가 아니었다면, 이동 중 육체가 산산이 조각나 여기저기 흩뿌려졌을 거다.
“쯧, 나약해 가지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아우렐리스가 샤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내 그녀의 고운 얼굴이 일그러졌다. 기억하기 싫은 인간이 떠오른 탓.
‘하믈 제국의 시조와 판박이야.’
아우렐리스는 승천의 자격을 얻었음에도 아주 오래전 한 인간과 맺은 계약 탓에 지상에 얽매여 있다.
제국을 수호하겠다는 약속.
그건 아우렐리스가 신성을 얻게 된 바탕임과 동시에 지상을 벗어날 수 없게 만든 족쇄였다.
수많은 신학자, 심지어 에반까지도 아우렐리스에 대해 오해하는 것이 있다.
그녀는 하믈 제국을 아끼지 않는다.
오히려 증오하는 쪽이다.
결코 원해서 제국을 수호하겠다는 계약을 했던 것이 아니었다. 비열한 인간의 말장난에 놀아났던 것.
인간들에게 퍼져있는 전래동화, 『청년에게 속은 어리석은 마족』에 등장하는 마족의 모티브가 사실은 아우렐리스였다.
아우렐리스는 숙원인 승천의 문이 바로 코앞에 있음에도 하믈 제국의 수호라는 족쇄 탓에 단 한 발자국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녀는 제국을 수호해야 한다는 계약을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한데 하믈 제국이 천년만년 존속하게 된다면 미래가 어떨지 뻔히 보였다.
미쳐버릴 거다.
웃긴 건 미쳐버린 상태에서도 하믈 제국의 시조와 한 계약을 지키기 위해 애쓸 거라는 점.
그 정도면 계약이라기보단 저주라고 표현하는 게 옳았다.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릴 방법은 있어.’
아우렐리스는 고심했다.
하믈 제국의 수호를 위해서라는 핑계로 그녀의 모든 것을 황제인 샤를에게 떠넘긴다면,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다.
하믈 제국 시조는 황금룡 아우렐리스와 계약한 것이지, 이름 없는 강가의 물뱀과 계약한 것이 아니었다.
단, 지금의 ‘지성’은 사라질 터였다.
그녀는 키득 웃었다.
‘나, 이미 반쯤 미쳐있을지도.’
다시 지성을 얻어도 지금 그녀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무엇보다 강가의 물뱀이 인간들의 숭배를 받아 지성을 획득하는 기적을 다시 한번 맞이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시대가 변한 탓.
아우렐리스의 시선이 샤를이 탑승한 타이탄을 향했다. 과거와 달리 인간은 강가의 거대한 물뱀보다는 저런 고철덩이를 더 숭배할 터였다.
그런데도 아우렐리스는 결심을 굳혔다.
에반 때문이었다.
반신의 영역에 도달한 그는 그녀가 개입할 수 없는 한계선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가 놓친 게 있다면 그녀는 하믈 제국 시조와의 계약 탓에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힘을 사용할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는 것.
지금만 해도 그렇다.
내전을 끝내고 어제 황제로 즉위한 샤를이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죽는다? 하믈 제국의 몰락이다. 아우렐리스를 옮아 매고 있는 족쇄는 그녀의 영락보다도 하믈 제국의 존속을 우선시한다.
계속 고심만 하다가는 언젠가 에반에 의해 영락한 자신은 에트림과 똑같은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 뻔했다.
아우렐리스는 눈을 감았다.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샤를을 살린 아우렐리스. 그녀는 승천의 통로가 닫히는 것이 느껴졌다.
평생을 염원했던 승천으로의 문이 닫히는 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천둥처럼 들려왔다.
한동안 석상처럼 미동이 없던 아우렐리스가 눈을 뜨고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샤를의 전용기 앞으로 천천히 걸어간 그녀가 입에 손가락을 넣어 뭔가를 빼냈다.
그녀의 끈적한 타액이 야릇하게 늘어지며 황금빛을 뿌리는 구슬이 은은했던 공간을 환하게 밝혔다.
여의주.
아우렐리스의 모든 것이 담긴 힘의 결정체.
그것이 두둥실 떠오르더니 의식을 잃은 샤를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샤를의 목청이 크게 꿈틀거렸다.
여의주를 삼킨 것.
아우렐리스는 그 광경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그녀의 모든 것을 하믈 제국을 위해 내놨다. 샤를에게 건넨 여의주를 그가 얼마나 소화할지는 그녀도 알 수 없었다.
반신의 경지인 9성의 경지에 오를 수도, 감당할 수 없는 힘에 바보천치가 될 수도 있었다. 어쩌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지도 모르고.
‘뭐, 이제 나랑은 상관없는 일인가.’
이제 하믈 제국이라면 지긋지긋했다. 떠올리기도 싫었다.
이성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을 떠올린 아우렐리스는 후련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혼자 남은 샤를의 몸에서 울긋불긋 혈관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
계산 밖의 상황에 조금 당황했었다.
아우렐리스가 전장을 주시하고 있다는 건 며칠 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개입할 가능성은 없다고 판단했었다.
본인의 영역 내에서 인간의 일에 관여하는 것도 막대한 신성을 깎아 먹는 행위.
그런데 하믈 제국 영토 내도 아닌 리오넬 왕국의 영역 내에서 죽을 게 확실한 황제를 살려낸다?
어마어마한 인과를 비트는 일.
신의 위상이 격하될만한 짓이다.
그런데 놓친 샤를과 아우렐리스에 관한 생각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나는 곧 정신을 차리고 전투를 속행했다.
샤를이 전장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 사정을 알 리 없는 제국군 대부분은 그가 마도구를 이용해 긴급하게 도망간 것으로 판단했다.
자연 제국군의 사기는 곤두박질쳤다.
그건 제국의 타이탄, 저거트를 타고 있던 오너들도 마찬가지. 나는 왕국의 타이탄들과 합류해 놈들을 상대했다.
어른과 아이의 싸움이나 마찬가지였다.
놈들의 타이탄 12기 중 8척을 포획했다.
후방으로 보내면 프란과 길루드가 아주 좋아하며 금방 왕국의 기사들이 탈 수 있게 개조해줄 거다.
왕국의 타이탄이 압승하자 제국군의 후퇴가 시작되었다.
서북부를 탈환할 당시에는 놈들의 국경을 넘는 일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왕국군은 거침없이 하믈 제국의 국경을 넘기 시작했다.
제국이 자랑하던 천하장성이 오히려 제국군의 후퇴를 방해했다.
쾅! 콰앙! 콰아아앙!!
비공정과 천둥의 포격을 이용해 우리도 손쉽게 지나갈 수 있는 큰 통로를 뚫어줬다.
최대의 쾌거는 하믈 제국의 내전 기간 전장의 악마라는 별명을 얻은 클라우 로비츠를 사로잡은 일이었다.
황탑주가 공간이동마법을 이용해 도주를 감행할 때 그 대신 8성 기사를 택했기 때문.
조금 의아스러운 일이지만 이해 못 할 건 없었다.
샤를 곁에서 입만 나불댄다며 그를 경원시하는 이들이 꽤 많은 건 파악하고 있었다. 젊은 나이에 재상에 오른 그를 시기하는 이들 역시 만만치 않았을 테고.
황탑주도 그중 하나였으리라.
어쨌든.
“만나서 반갑네.”
“저는 전혀 반갑지 않습니다.”
덕분에 이렇게 클라우와 전쟁 개시 하루 만에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게 되었다.
“리오넬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줄 알다니 의외로군.”
“그래야 이렇게 사로잡혔을 때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부탁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적진에 잡혀 온 것 같지 않게 여유만만한 표정인 클라우.
“그래서, 내게 살려달라 말할 참인가?”
“그러려고 했는데······ 관뒀습니다. 최대한 안 아프게만 보내주시죠.”
“황제에 대한 충심 때문인가?”
그가 큭큭 웃었다.
“충심이라 하니 닭살이 돋는군요. 상대의 역량을 똑바로 알아보지 못한 멍청한 모사가 느끼는 미안한 감정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안타깝군. 샤를보다 먼저 자네를 만났으면 재미있었을 텐데.”
“글쎄요······ 저는 재미없었을 것 같은데요? 혼자서도 지금 여기까지 오신 것 아닙니까? 제가 없으면 황제에 자리에 오르지도 못했을 샤를과 다르게 말입니다.”
클라우가 잠시 입을 닫았다 다시 열었다.
“재상가의 사생아로 태어나 마력미각성자라 핍박받던 아이가 결국 재상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히 멋진 삶 아니겠습니까? 제국을 세계 최강국으로 만든 재상까지 갔으면 조금 더 멋졌을 텐데, 뭐 여기서 만족하렵니다.”
그의 표정에 삶에 미련은 없어 보였다.
나는 알폰소를 바라봤다.
“데려가. 먹고 싶은 게 있다고 하면 챙겨주고.”
“알겠습니다.”
다음 날.
전장의 악마라 불렸던, 클라우 로비츠의 이름은 내 [인명록]에서 자취를 감췄다.
***
하믈 제국과 리오넬 왕국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 것은 기정화되었던 사실. 자연 각국의 이목이 양국의 전쟁에 쏠려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드러냈을 때,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속보] 하믈 제국의 충격적인 대패!』
『긴급 도주한 하믈 제국의 황제, 과연 그 행방은?』
『전장의 악마, 클라우 로비츠. 단 한 번의 패전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다』
세 배가 넘는 전력을 투입한 걸로 알려졌던 하믈 제국이 처참하게 패한 사실, 그리고 타이탄의 등장 때문이었다.
『신병기, 타이탄을 분석하다』
『익명의 관계자, 아국도 타이탄을 개발 중이라고 밝혀. 하지만 리오넬 왕국의 것은 규격 외. 최소 2세대는 앞서있다며 탄식』
『침묵에 잠긴 브리센 연합. 타이탄과 전차의 비교분석』
그렇게 세계가 떠들썩한 상황.
왕국민들이 왕국의 대승에 환호성을 질렀다는 보고에도 나는 승리의 기쁨에 취해있을 수 없었다.
샤를을 놓친 것이 뼈아팠다.
조기에 끝낼 수 있었던 전쟁이 장기화하게 생긴 것이었다.
하믈 제국은 넓다.
정말 더럽게 넓다.
인구는 말할 것도 없다.
아무리 아국의 비공정과 타이탄을 앞세워 진격해나가도 그 넓은 전선을 모두 커버할 수 없다.
전투에서는 이기는데 전쟁에서는 지고 있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전쟁이 장기화해도 결국엔 왕국의 승리로 돌아갈 거라 자신한다. 다만, 그 와중에 왕국의 병사들과 민간인들은 어마어마한 피해를 보겠지.
‘아우렐리스!’
다시 한번 상황을 꼬이게 만든 그 망할 도마뱀의 이름을 속으로 되뇌었다.
‘어디로 사라진 거지? 정말로 사라진 건가?’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믈 제국 전역을 장악하고 있어야 할 아우렐리스의 기운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샤를도 아직 행방불명이고······.’
나는 까슬해진 턱수염을 매만지며 하믈 제국의 더럽게 넓은 땅이 그려진 지도를 노려보았다.
타닥, 타다닥.
누군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만 들어도 안다. 알폰소였다.
“폐하! 황제 놈이 황도에 모습을 나타냈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최단 시간에 전쟁을 끝내는 방법은 샤를을 사로잡는 거였다.
나는 지도에서 하믈 제국의 황도를 찾았다. 참 멀다. 지상군으로 밀고 가려면 두세 달은 걸릴 것 같다.
시선을 조금 내렸다.
과거 불멸을 꿈꾸었던 하믈 제국의 미친 황제가 불태워버린 엘프의 숲. 지금은 저주받은 숲이라 불리는 그곳이 눈에 들어왔다.
아끼고 아껴온 엘프의 뿌릿길.
드디어 사용할 순간이 왔나?
이런 때 아니면 또 언제 사용하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