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99)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199화(199/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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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
뿌릿길.
세계수의 뿌리를 통해 가지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는 이면 세계의 통로다.
붉은별열병으로 인해 엘프들이 겪은 치명적인 부작용인 노화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얻어낸 비장의 무기.
정말 아끼고 아꼈다.
얼마나 아꼈으면 서북부 탈환이나 아르야의 수도를 공략할 때도 사용하지 않았겠는가. 솔직히 너무 아끼다 결국 못 쓰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이 기회에 속 시원하게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밀로아 공작에게 연락해 뿌릿길의 사용을 준비하라고 해.”
“드디어 사용하시는군요! 아끼다 똥 될 줄 알았습니다.”
표현하고는.
그런데 어딘지 입에 착 달라붙었다. 이제는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 ‘전생’이나 ‘미래’에 들었던 말 같은데······.
뭐, 중요한 건 아니니 넘어가자.
“그런데 아까부터 황도를 뚫어지게 보고 계시던데 뿌릿길을 이용해 황도를 기습하실 생각이신 게 맞죠?”
나는 알폰소의 질문에 고개를 까딱 끄덕여줬다.
“그거 엘프들에게는 꽤 심각한 사안 아닌가요? 분명 후에 우리를 들먹이면서 그들의 뿌릿길을 이용하려는 열강들과 마찰이 생길 텐데······ 엘프들이 거짓말을 안 한다고 유명하긴 한데 혹시라도 엘프들이 뿌릿길 사용을 거부하면 어쩌죠?”
“웬일로 그런 생각을 다 했대?”
“하핫, 저도 폐하를 오래 모시다 보니 이래저래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깨우친 거죠.”
“걱정 안 해도 돼. 엘프 여왕의 약속이니까.”
“엘프 여왕의 약속은 뭐 다른가요?”
다르다.
여왕은 엘프들의 신이나 다름없는 세계수를 관리하는 정원사.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세계수에 영향을 준다.
“그녀가 약속을 깨면 세계수가 좀 많이 아프다고 생각하면 돼. 설명하면 길어지니까 나중에 한가할 때 들어.”
“넵. 그럼 전 밀로아 공작에게 전보 치러 가겠습니다.”
빨리 가라고 손을 휘휘 저어주었다.
***
작전명 루트.
작전의 개요는 간단하다.
뿌릿길을 통해 하믈 제국 황도 턱밑에 있는 저주받은 숲으로 최정예 부대가 이동.
현재 제국군의 주력은 왕국군과 대치하는 상황이다. 황도는 평상시와 비교하면 빈집과 마찬가지. 무리 없이 기습을 성공할 터였다.
그다음 황성인 대천궁에 진입 후 샤를을 잡아내면 작전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변수가 있다면 아우렐리스인데······.
‘왜 여전히 놈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지?’
저주받은 숲은 아우렐리스의 거처가 있다고 알려진 황도를 관통하는 강과 인접했다. 그런데 뿌릿길을 통해 그곳에 도착한 지금도 놈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전혀 안 느껴지는 건 아니었다.
흔적 정도는 느껴졌다.
짐승이 잠시 둥지를 비워도 그 근처에서 냄새가 나는 것처럼 말이다.
‘잠들었나?’
충분히 가능한 일.
샤를을 구한 아우렐리스의 행동이 내 생각 이상으로 인과를 비틀었다면 그 반작용으로 놈이 깊은 잠에 빠졌을 수도 있었다.
“폐하, 괜찮으십니까? 혹시 병사들처럼 멀미라도······?”
아돌의 조심스러운 물음.
내 표정이 조금 심각해 보였던 모양이었다. 근데 나를 걱정하기엔 그의 표정이 더 안 좋아 보였다.
“아, 별거 아니야.”
나는 걱정하지 말라며 손사래 친 후 뿌릿길을 빠져나오고 있는 병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뿌릿길을 통해 이동하는 건 폭풍우로 파도가 넘실거리는 곳에서 조각배를 탄 기분이었다.
그 여파로 여기저기서 구토하고 난리가 아니었다. 그나마 5성급 기사는 되어야 입을 틀어막고 구토를 참는 정도.
인원은 계획했던 것의 반 정도밖에 데려오지 못했다.
우리를 안내한 7번째 가지의 숲지기 말로는 저주받은 숲과 이어진 뿌리가 많이 상했기 때문이라나?
그래서 고르고 고른 최정예만 데리고 왔다. 병사들도 전원 3성 이상의 마력 각성자다. 핵심 전력만 따져보면 나, 베르트, 그리고 아돌, 버논, 베록.
레이나는 하믈 제국과의 전선을 지켜야 하기에 함께하지 못했다.
‘대형 비공정을 끌고 오지 못한 게 아쉽네.’
뿌릿길은 땅에서 발을 떼면 안 되는 곳이었다. 숲지기 말로는 자칫 잘못하면 이면세계의 미아가 되어버린다고······.
그런 이유로 비공정은 끌고 와야 했다.
어떻게? 손으로!
그나마 타이탄이 있어 중형 비공정을 몇 척 더 끌고 올 수 있었다.
어쩌면 이번 작전에 투입되는 인원들은 추후 전쟁이 끝난 후, 황도를 공격하는 것보다 구토가 절로 치밀어오르는 뿌릿길에서 비공정을 끈 것이 더 기억에 남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서부터 황도까지는 금방이야.’
본격적인 작전 개시는 뿌릿길을 빠져나온 인원들이 조금 진정이 된 후에 할 생각이었다.
나는 속을 게워내며 나무에 양분을 공급하느라 바쁜 병사들부터 시선을 떼고 저주받은 숲을 둘러보았다.
절반 이상의 나무가 썩은 고목이었고, 그나마 살아있는 나무들도 상태가 영 시원치 않았다.
숲이 죽어가고 있는 게 확연히 느껴졌다.
불로불사를 꿈꿨던 미친 황제가 불태운 게 거의 200여 년 전인데, 아직도 완전히 죽지 않은 게 조금 신기한 일이다.
-이곳까지 연결된 뿌리가 아직도 남아있는 기적에 가깝습니다. 어쩌면 선조들이 원한이 지금 같은 때를 기다렸는지도 모르겠군요.
우리를 이곳으로 안내했던 숲지기의 말이 떠올랐다.
그 말대로 과거 제국군의 검과 창에 피를 흘린 엘프들의 피를 양분으로 아직도 숲이 죽지 않은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오랜만에 [인명록]을 펼쳐 하믈 제국의 고위 인사를 살필 때였다.
‘어?’
이름 하나가 실시간으로 지워졌다.
로디우스 한 하이스.
황탑주의 이름이었다. 이게 의미하는 건 하나뿐이었다. 그가 죽었다.
‘대체 왜?’
전장에서 공간이동마법으로 클라우를 내팽개치고 도망친 그가 죽을 일이 대체 어디있단 말인가?
샤를이 클라우를 버리고 왔다고 목을 치기라도 했나?
제정신이면 그럴 수가 없다.
***
하믈 제국의 황성, 대천궁.
제국의 대신들은 눈앞에 벌어진 일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황제가 황탑주의 목을 잘랐다!
눈동자에 혈관이 다 터져 벌게진 눈에 머리는 다 풀어 헤친 광인의 몰골로 황궁으로 돌아왔던 황제 샤를.
궁에 오자마자 연공실에 틀어박혔던 그가 사흘 만에 다시 모습을 보이며 고관대작을 불러 모았었다.
다들 그가 리오넬 왕국과의 첫 패배에서의 충격을 추스른 것으로 생각했었다.
-클라우가 죽었다?
그런 샤를이 재상 클라우의 죽음을 듣고 나서 한 일은 황탑주에게 자세한 사정을 듣는 것이었다.
-그렇군.
클라우까지 함께 도망치는 건 힘들었다는 황탑주에 말에 수긍하는 듯했던 샤를. 다들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였다.
서걱─
황탑주의 목이 툭 떨어져 버렸다.
‘미, 미쳤어!’
미친 것이 틀림없었다.
그가 클라우를 아낀 건 이해한다만, 황탑주가 이렇게 즉결처분당할 정도의 죄를 지은 건 아니라는 게 그 자리에 있는 이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제국의 정치판에서 고관대작의 자리까지 오른 이들이었다.
지금 주둥이를 잘못 놀렸다가는 황탑주와 같이 목이 잘려 나갈 거라는 경고음이 그들의 머릿속에서 요란하게 울려대고 있었다.
“배가 고프군.”
자기가 왜 죽어야 했는지 물어보는 듯한 표정을 한 황탑주의 머리를 보며 샤를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여, 여봐라! 당장 먹을 것을 내와라!!”
눈치 빠른 시종장이 서둘러 요리를 내올 것을 지시했다.
시종들이 요리를 가지러 간 사이 샤를은 눈을 감곤 명상에 잠겼다. 제국의 귀족들에게는 시종들이 요리를 내올 때까지의 시간이 정말 억겁과 같이 느껴졌다.
“요, 요리를 가져왔습니다!”
눈을 뜬 샤를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기를 보곤 말했다.
“덜 익힌 것을 가져오도록.”
잠시 후, 시종이 설익은 고기를 가져왔다.
“덜 익힌 것으로.”
이번엔 겉만 익힌 고기가 나왔다.
“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생것에 가까운 고기가 도착해서야 샤를이 손을 가져갔다. 그는 그걸 게걸스럽게 뜯으며 기괴하게 웃었다.
표정 관리에 온 힘을 기울이며 자리를 지키는 고관대작들은 당장이라도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샤를의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그들의 바람이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콰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앙!!
애애애앵-
애애애앵─
황도에서 울려선 안 되는 포격 소리와 전시상황임을 알리는 비상음이 시끄럽게 울렸다.
“리, 리오넬 왕국군이! 리오넬 왕국군이 나타났다!!”
제국 선포 이래 단 한 번도 공격받은 적이 없는 황도에 처음으로 타국의 군대가 발을 디딘 것이었다.
***
다섯 기의 타이탄이 발사한 천둥으로 인해 황도의 외성에 큰 벽을 뚫렸다.
“전원 천둥을 해제하고 진격!”
나의 명령에 타이탄들이 먼저 황도로 진입했다.
“황제를 잡으러 가자!”
“리오넬 왕국을 위하여!”
“국왕 폐하를 위하여!”
기사와 병사들이 그 뒤를 따라붙었다.
“바로 대천궁으로 진입한다!”
“쓸데없는 데 시간 쓰지 마!”
그렇게 달려가는데 황성 대천궁 쪽에서 제국의 비공정이 떠올랐다. 주력 비공정이 대부분 전장에 나가 있음에도 꽤 많은 수였다.
문제없다.
그걸 고려해 힘들게 비공정을 넉넉히 끌고 왔다. 뿌릿길까지 이용해 황도를 기습했는데 비공정을 타고 탈출하는 고위 귀족이나 황족을 놓치지 않아야 할 것 아닌가.
특히 샤를을 놓치면 대참사였다.
내가 파악한 그의 성격이라면 차라리 나와 싸우다 죽을지언정 도망가지 않겠지만, 혹시 모른다.
“단 한 척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
아군의 비공정이 대공망을 형성했다.
이제 하늘은 저들에게 맡기고 대천궁을 향해 질주하는 일만 남았다.
쿵! 쿵! 쿵! 콰직! 콰직! 쾅!
내가 탑승한 미카엘을 선두로 타이탄들은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모두 부수며 질주했다.
기사가 탑승한 타이탄이 전력 질주하는 속도는 열차 정도는 가볍게 따라잡을 수 있는 정도. 금방 대천궁에 도달했다.
각종 마법진이 새겨진 정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나는 미카엘의 검을 들어 올렸다.
에반식 리오넬 제왕검술, 1초식 파천.
부웅- 콰아아아아앙!!!
하믈 제국을 부수겠다는 다짐으로 창안했던 초식으로 인해 산산이 조각나는 대천궁의 정문을 보니 등줄기가 짜릿했다.
조금 더 그 쾌감을 즐기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막아! 반드시 막아라!”
“다, 단장님! 저런 걸 어떻게 막는단 말입니까!”
“닥치고 막아!!”
대천궁을 지키는 기사들이 몰려와 우리를 가로막았다.
“하하하! 여긴 제가 맡겠습니다! 어서 가시지요.”
호탕한 베르트의 목소리.
그에게 정문으로 몰려든 기사들의 처리를 맡기고 대천궁의 중앙으로 달렸다.
샤를은 그곳에 있었다.
본인의 애창을 축 늘어트린 채 혈관이 다 터진 시뻘건 눈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를 보자마자 어째서 아우렐리스의 흔적이 사라졌는지도 이해되었다. 바리사다가 내 몸에 강림했을 때, 나를 보는 에트림이 꼭 지금 이런 심정이었으리라.
‘아니야. 조금 달라.’
샤를은 아우렐리스의 힘에 잡아 먹혔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듯했다.
“기다렸다. 에반 리오넬.”
히죽 웃는 샤를.
그의 몸에서 혈관이 두드러지기 시작하고.
뿌득, 뿌드득.
근육이 끊어지는 불쾌한 소리와 함께 그의 살이 부풀어 올랐다. 피부에서는 금빛 용 비늘이 돋아났다.
팔에서 삐져나온 뼈가 그의 애창에 달라붙으며 거대하면서도 기괴한 창을 만들었다.
드라고니아.
용과 인간의 혼혈이라는 이야기꾼들이 상상해낸 존재가 딱 저런 모습일 듯했다.
기분 좋게 입꼬리를 올리는 샤를.
놈이 풍기는 흉포한 기운에 주변 온도가 서리처럼 차가워졌다. 오랜만에 느끼는 긴장감에 내 등이 식은땀으로 축축해졌다.
“저, 저게······.”
“폐, 폐하! 저희가 먼저 놈과 싸우겠습니다!”
기사들 본능적인 두려움을 이겨내고 각자의 무기를 움켜쥐었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돌, 버논, 베록. 각자 병력을 이끌고 도망치려는 제국의 귀족들을 막아.”
그들에게 샤를과 싸우라는 건 죽으라는 말과 똑같았다. 샤를을 상대하는 건, 상대할 수 있는 건 오직 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