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2)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2화(2/203)
002
지끈!
잊고 있던 두통이 머릿속을 들쑤셨다.
잠에서 깨어나듯 현실로 돌아왔다. 우주 한복판에 내던져졌던 의식을 육체가 불러들인 느낌이었다.
잠시 꿈을 꾸었던 건 아닌지 주변을 살폈다.
일단 유령손은 평소 그대로. 허공에서 자기 혼자 손가락 관절을 풀고 있었다.
하지만 평생을 따라다녔던 로그인 창은 온데간데없었다. 언제나 손 닿을 거리에 있던 것이 보이지 않아 굉장히 낯설었다.
‘뭐가 달라진 거지?’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입력하고 [Login]을 누르는 순간, 분명 뭔가 변했을 터. 그런데 무엇이 바뀐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휙, 휙─
유령손을 이리저리 움직여봤다. 유령손으로 침대 옆 탁자에 놓인 화분을 건드는 순간.
‘변화’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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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늑한 악몽]등급 : 희귀
일부 마경에서 드물게 발견되는 꽃.
엘프의 숲에 자생하는 [고요한 밤]과 비슷한 생김새와 향기 탓에 오인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정신을 맑게 해주는 향기를 풍기지만, 오랜 시간 노출되면 불면증과 악몽에 시달리며 점차 쇠약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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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생긴 설명창.
리오넬 왕국 북서쪽에 위치한, 표의어를 사용하는 하믈 제국의 영향을 받은 단어들은 한자식으로 표현하는 센스까지 보여줬다.
차분히 읽어본 후 우측 상단의 ×를 유령손으로 톡 건드렸다. 반투명했던 창이 점차 희미해지다 이내 사라졌다.
‘어쩐지 잠을 좀 설친다 했어.’
전생이었다면, 현실과 다를 바 없는 VR 게임을 하는 것 같다고 신기해했을지도 모르겠다.
눈살을 찌푸리며 탁자 앞으로 다가갔다. [아늑한 악몽]의 줄기를 반으로 꺾어 화분 채로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이게 언제부터 여기 있었더라······.
– 알폰소. 저 못 보던 꽃은······.
– 아, 이번에 아르야 왕국의 사절이 선물로 가져온 꽃이라고 들었어요. 숙면에 도움을 주고 악귀를 쫓아주는 효과가 있다고 하던데요. 못 받을 줄 알았는데 어떻게 하나가 남았나 봐요. 잠자는 밤? 꿈꾸는 밤? 그런 이름이었는데······.
중간에 누가 바꿔치기한 건가?
설마 모든 왕실 식구의 침상 한편을 차지한 [고요한 밤]이 [아늑한 악몽]일 리는 없다. 그건 발각이라도 되는 순간, 국가 간 분쟁을 일으킬만한 일.
‘누구지?’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미약한 가능성을 지녔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거슬릴 인간은 쌔고 쌨다.
“쯧.”
특정할 수 없는 범인의 얼굴에 혀를 찼다. 조금 더 생산적인 일을 하기로 마음먹고 유령손으로 탁자를 톡톡 두들겨봤다.
‘왜 탁자의 정보는 알려주지 않지?’
잠시 고민해보다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내가 전생에 죽기 직전 스마트폰에 설치했던 로스트 사가. 분명 현생의 내가 지닌 능력과 큰 연관이 있을 게 분명하다.
만약 내가 주인공이고, 주변이 게임 속 화면이라 생각하면, 저 유령손은 화면을 터치하는 손가락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을 거다.
최소한 나는 터치하는 모든 물건마다 정보창을 띄워주는 게임은 플레이해본 적이 없다. 그러면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답은 금방 나왔다.
일반적인 사물이 아닌 것들.
‘아이템.’
확인을 위해 아이템으로 인식될 만한 물건들에 유령손을 갖다 대보기로 했다.
먼저 목에 걸고 있는 펜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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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 : 희귀
순도 100%의 미스릴 펜던트. 악령과 저주로부터 착용자를 보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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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보석, 금화가 담긴 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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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 주머니]등급 : 고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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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서랍장에 구석에 있는 단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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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제단검]등급 :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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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확인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것들이 아이템 취급당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신기한 건, 등급별로 설명창에서 보이는 아이템명의 색이 달랐다.
일반은 흰색.
고급은 녹색.
희귀는 파란색.
펜던트보다 가치 있는 물건이 주변에 없어 더 이상의 확인은 불가능했다.
대충 희귀 이후로는 역사, 전설, 신화 같은 등급이 있을 거로 예상되었다. 색은 보라, 노랑, 무지개 정도려나?
천천히 알아보면 될 일. 그런 것보다 보다 더욱 궁금한 게 생겼다.
바로 나의 상태창.
‘될까?’
유령손을 눈앞으로 불러들였다.
심호흡을 한 번 내뱉은 후, 내 이마를 톡 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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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 리오넬
성별 : 남
나이 : 13
종족 : 인간
[스탯] [스킬] [?] [?].
.
.
RP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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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이 무색하게, 전방에 생겨난 나의 상태창이 눈을 어지럽혔다.
이름을 풀네임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기본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유령손을 갖다 대 보니 풀네임이 떴다.
이건 넘어가고······.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쑥 훑어봤다.
‘물음표가 왜 이리 많아.’
[?]들은 색깔부터가 검회색인 게 잠겨있는 것 같은 메뉴들. 유령손의 검지를 갖다 대도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안되는 건 그만두고 [스탯]를 콕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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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 : E+
근력 : E
근지구력 : E
심폐지구력 : E
민첩성 : D
유연성 : C-
.
.
.
마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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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세분화 시켜놓은 스탯들. 마력을 제외하면 전부 신체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대부분의 수치가 E 언저리, 간간이 알파벳 D가 보였고, C로 시작하는 건 딱 하나가 있었다.
‘유연성이 C-라······.’
객관적으로 내 유연성은 뛰어난 편이다.
체조 선수 정도는 아니더라도 180도 다리 찢기 같은, 보통 사람들은 하기 힘든 동작이 가능했다.
성장기인 내 나이와 유연성이 받은 평가를 고려해보면 D 정도가 성인 남성의 평균치이지 아닐까 추측되었다.
후에 다른 사람의 스탯창도 확인해보고 표본이 늘어나면 더 정확히 알 수 있는 문제.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다음으로 스킬창을 펼쳐봤다.
[숨쉬기], [걷기], [달리기], [던지기] 같은 시시콜콜한 것들부터, [침착], [인내]와 같은 기질들도 스킬로 취급되어 주르륵 나열되어 있었다.일반적인 게임에서 취급하는 것들보다 조금 더 광범위한 영역을 [스킬]이란 카테고리로 묶어놓은 것 같았다.
가나다순도 아니고, 뒤죽박죽으로 나열될 스킬들. 무엇을 기준으로 나열된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크게 중요한 건 아니니 깊게 생각하지는 않기로 했다.
[미남]을 마지막으로 검회색 스킬명이 화면을 채우기 시작했다.‘여기까지가 내가 보유한 스킬이란 건가?’
살짝 진이 빠졌다.
스탯창을 펼쳤을 때도 느꼈지만, 이게 로스트 사가의 스킬창과 똑같다면 망겜이 확실하다.
시작부터 이런 과도한 정보를 들이밀면 어지간한 사람은 바로 게임을 삭제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내겐 현실이야.’
침대에 걸터앉은 나는 눈 앞에 펼쳐진 정보의 바다로 뛰어들었다. 쭉쭉 화면을 내리며 스킬들을 살피던 중 눈에 띄는 게 하나 있었다.
‘리오넬 제식검술?’
왕국의 군인이라면 누구나 숙지하고 있는 기본 검술. 궁금해서 유령손의 검지를 가져다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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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RP를 소모해 [리오넬 제식검술]을 익히시겠습니까?
[확인] [취소]━━━━━━━━━━━━
눈살을 찌푸렸다.
아까 초기 상태창을 훑었을 때 분명 보유 RP가 0이었다. 입대만 하면 공짜로 가르쳐주는 건데······.
‘무슨 스킬인지 정보도 안 주는 건가?’
또 어떤 것들이 있나 쓱쓱 화면을 내려봤다.
「가가멜식 리오넬 제식검술」 같은 듣도 보도 못한 이의 것을 시작으로.
‘혈랑창술! 진짜로?’
유서 깊은 창술 명가의 것까지.
헤아릴 수 없는 검술, 창술, 마법······. 화면을 내리고 내려도 스킬창 옆의 스크롤바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응, 잠깐?’
규칙을 하나 찾아냈다.
오직 리오넬 왕국 내, 전투와 관련된 익힐 수 있는 것들만 존재했다.
[약초학], [목공] 같은 일상생활과 관련된 것과 [천재], [병약] 등의 기질에 가까운 스킬 찾아볼 수 없었다.‘여기까지만 보자.’
끝이 없는 것 같은 스킬창을 잠시 옆으로 치우고 초기 상태창의 RP 보유량을 노려봤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0.
R은 무엇의 약자인지 모르겠는데, P는 짐작되는 게 있었다.
Point 말고 또 있겠는가.
‘RP는 뭘 해야 얻을 수 있는 거지?’
도움말은 없나 여기저기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대신 스킬창 상단에서 검색하는 데 쓰일 것 같은 [⌕]를 발견했다.
한번 눌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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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가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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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쇼핑할 때 많이 본 것 같은 UI. 검색 옵션을 설정하는 건 사용이 막혀있었다. 결제를 해야 모든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무료 버전의 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았다.
‘검색도 안 되나?’
유령손으로 가상 키보드를 아무렇게나 두들겨봤다.
━━━━━━━━━━━━━━×
ㄴㄹㅈㄷㄱ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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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 자체는 가능한 모양.
스킬창에는 정말 리오넬 지역 내의 것만 존재하는지 확인해보기 위해, 악명 높은 하믈 제국 흑기사단의 창술 ‘흑염창’을 검색했다.
「접근권한이 없습니다.」
접근권한이 생기면 흑염창도 익힐 수 있는 건가? 접근권한은 어떻게 하면 생기는 걸까?
문득, 전생의 무술들도 스킬창에 있을지 궁금해졌다.
태권도를 검색해봤다.
「접근권한이 없습니다.」
“어?”
예상치 못한 알림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혹시나 해 상상 속 세계에서나 존재하던 무공들을 검색해봤다.
‘천마신공.’
「접근권한이 없습니다.」
‘금강불괴.’
「접근권한이 없습니다.」
‘매화검법.’
「접근권한이 없습니다.」
마찬가지 결과들.
무공을 검색해보는 건 그만두고 그 어디에도 없을 게 확실한 걸 검색해봤다.
‘에반 리오넬식 용살검.’
어린 시절, 용사 놀이할 때 만들었던 검술.
「검색된 결과가 없습니다.」
여태까지와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아예 존재하지 않는 스킬은 검색 결과가 없다는 메시지를 띄우는 것 같았다.
이어서 생긴 의문은 검색해본 스킬들이 내가 머릿속에 떠올렸던 것들과 일치하는지.
접근권한이 없다고 한 태권도가 발차기 한 번에 바다를 가르고 산을 무너트리는 만화 속 태권도이면?
천마신공, 금강불괴, 매화검법 전부 이름만 같은 것일 수도 있었다. 표의어를 사용하는 하믈 제국과 그 영향을 받은 국가들에는 그렇게 번역될 무술이 있을지도 몰랐다.
‘근데 매화가 현생에도 있나?’
······.
전부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정확히 콕 짚어서 알림창을 띄운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찝찝하네.’
누군가 나의 일거수일투족, 심지어 생각까지도 읽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괜히 주변을 한차례 둘러보았다.
이후, 계속 스킬창을 탐색했다.
리오넬 왕국에 속한 가문이나 마탑의 비전들은 모두 검색으로 찾을 수 있었다. 오직 왕세자에게만 계승되는 [리오넬 제왕검술]을 봤을 때는 저걸 진짜로 익힐 수 있는 건지 다시 한번 의심이 솟구쳤다.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RP가 없었다.
‘RP는 대체 어떻게 얻는 거지?’
고민의 시간이 길어졌다.
똑똑, 똑똑.
그러던 중 들려온 노크 소리.
누가 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무의식적으로 눈앞의 모든 창을 서둘러 닫았다.
“에반 왕자님! 저녁 식······.”
“안 먹어.”
“하하, 그러실 줄 알고 제가 방에서 드실 수 있도록 가지고 왔습니다.”
“······ 들어와.”
내 허락에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알폰소. 녀석이 왼손으로 받쳐 든 쟁반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수프 접시가 올려져 있었다.
고소한 냄새에 입에 침이 고일 만도 하건만, 식욕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주방장에게 고기를 듬뿍 넣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하, 고마워하지 않으셔도 돼요.”
넉살 좋게 웃고 있는 알폰소.
어디, 나 말고 다른 이들의 정보도 볼 수 있는지 한번 볼까?
유령손의 검지로 녀석의 이마를 푹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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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소 아인베르크
성별 : 남
나이 : 18
종족 : 인간
[스탯] [스킬] [관계 : 경계]━━━━━━━━━━━━━
매우 간략해진 상태창.
내 것에는 없는 [관계 : 경계]가 눈에 확 띄었다. 온통 하얀 글자 중 저것만 연한 빨간색이니 그럴 수밖에.
‘경계라······.’
알폰소가 평소 나를 대하던 모습만 보면 호의적인 걸 넘어 존경의 수준이었는데. 겉과 속이 다른 녀석 같으니라고.
녀석이 탁자 위에 쟁반을 내려놓는 모습을 씁쓸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근데 뭐지, 뭔가 이상한데?
다시 한번 녀석의 상태창을 자세히 살폈다.
‘아!’
금방 이질감의 원인을 찾았다.
이름.
내가 기억해냈었던 것과 상태창이 알려주는 녀석의 성이 달랐다.
‘하임델이 아니라 아인베르크?’
머리가 깨지고 전생을 자각하는 과정에서 기억이 잘못되었던 걸까? 그런데 아인베르크라는 성 낯설지 않았다.
‘어디지? 어디서 들어봤지?’
지끈.
깨질 것 같은 두통 속에서도 뒤죽박죽인 머릿속을 뒤졌다. 결국 한 중년 여인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제는 만날 수 없는, 나의 유모.
누명을 써서 단두대로 끌려간, 최소한 나는 그렇게 믿고 있는 그녀의 이름이 분명 올리비아 아인베르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