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20)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20화(20/203)
020
왕실기무대.
정보부 수석 서기실 앞.
기무대 정복을 입은 남자가 조심스럽게 문을 노크했다.
똑똑.
“밀로아 백작님. 급보입니다.”
“들어와.”
리오넬 왕국의 최고정보기관인 왕실기무대에서 하는 일은 다양하며 또한 중요하다.
왕실 재판의 보조와 같은 자잘한 것부터 적국의 정보 수집, 방첩, 국내외 여론 감지와 조작, 감찰과 같은 굵직한 것까지.
– 왕실기무대를 장악하는 자가 옥좌에 앉으리라.
그 말에 이견을 다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런 정치적 중요성 탓에 왕실기무대의 장은 오히려 허수아비나 마찬가지인 전대 왕당파 출신이 꿰차고 있는 게 현실.
최근 왕실기무대 정보부의 수석 서기로 1왕자의 친우인 밀로아 백작이 취임한 것은 기무대 장악에 있어 1왕자가 한발 앞서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짙푸른 단발머리에 하얀 피부. 이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그녀는 보고 있던 서류철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보고해.”
“4왕자가 암살되었습니다.”
“······.”
수하의 보고를 받은 밀로아는 멈칫, 보고 있던 서류철을 내려놓고 가슴팍에서 담배곽을 꺼냈다.
“언제?”
“왕도를 벗어난 직후입니다.”
“범인은?”
“······ 쫓고 있습니다.”
놓쳤다는 말.
“사인은?”
“심장에 화살을 맞고, 즉사입니다. 화살촉과 깃대가 현재 하믈 제국에 편입된 북부 지방에서 주로 사용하던 양식이라고 합니다. 벌써 북부해방군의 짓이라는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밀로아는 북부해방군이라는 단어에 코웃음을 쳤다.
그녀는 진짜 흉수가 누구인지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왕실 재판에서의 결과로 2왕자가 4왕자를 버렸다고 떠들썩한 판국. 2왕자와 그 주변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의 그림자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심상치 않은 동향을 보이는 것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밀로아는 창문을 열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스읍, 폐부 깊숙이 연기를 들이켰다 토해낸 그녀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씨발······.”
4왕자를 아끼는 2왕비가 눈을 부릅뜨고 있는데 2왕자가 암살을 결단할 줄이야.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다.
밀로아는 왼손으로 그녀의 짙푸른 단발머리를 거칠게 헝클었다.
– 아무래도 네가 왕이 될 운명인가 보다. 왕이 되면 날 대공으로 만들어주겠다는 말, 지켜야 할 거야.
– 뭐야, 갑자기? 그리고 왕궁에서 볼 땐 말 좀 신경 써. 아무리 우리가 어릴 때부터 허물없이 지냈다지만 내 위상도 생각 좀 해주면 안 될까?
– 둘밖에 없는데 무슨.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이 누님이 엄청난 건수를 물었어. 망나니 새끼, 아무래도 뻐꾸기 새끼가 맞는 것 같아. 기대해봐. 이게 사실로 드러나면 2왕비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정말 기대돼.
친우인 1왕자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머리가 아파졌다.
‘너무 신중했어.’
수집한 증거로도 충분히 2왕비를 끌어내릴 수 있는 일이었다.
4왕자가 국왕의 핏줄이 아니라는 그 결정적 물증만 찾아내면 될 일이었다. 모든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 단번에 숨통을 찢어 갈기려 했는데!
‘그냥 바리사다를 이용할걸.’
[바리사다].‘바리사다’라는 이름의 반마족을 토벌한 리오넬 건국왕이 그 시신과 본인의 피를 재료로 만든 반마검.
오직 왕가의 피가 흐르는 이들만이 검집에서 검을 뽑을 수 있다.
문제는, 강제로 바리사다의 시련이 부여된다는 것.
통과하지 못한 이들은 온몸의 마나가 폭주해 두 번 다시 마력을 다룰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린다.
[바리사다]가 반마검이라 불리며, 의전용으로나 사용되고 있는 이유였다.‘그 망나니 새끼, 분명 검을 뽑지 못했을 텐데.’
밀로아는 4왕자가 뻐꾸기 새끼라고 99% 확신하고 있었다.
만약, 아주 만약 4왕자가 바리사다 때문에 병신이라도 되어버리면 1왕자 진영에 몰아칠 정치적 역풍은 어마어마했다.
그 1%의 미약한 가능성 때문에 그녀는 바리사다를 이용한 계획은 후 순위로 밀어놓았었다.
그게 지금, 이 순간 미치도록 후회스러웠다.
이제는 끝난 일.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올 4왕자의 손에 바리사다를 쥐여본들, 1왕자 진영은 무뢰배 집단이 될 뿐이다.
‘2왕비와 내연남의 편지를 공개하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아니다.
이미 4왕자 암살이라는 결단을 한 2왕자다. 반쪽짜리라지만, 이미 천륜을 끊어버렸다는 말. 그런 독사 같은 놈이라면 제 어미를 잡아먹을 수도 있다.
그리고 공표하겠지.
어머니는 저 잔혹한 1왕자 무리의 모함에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결백을 증명하셨습니다!
“2왕자의 그림자들, 생각보다 제법이네.”
아르야 왕국의 비전을 익혀온 녀석들이랬나? 과감하게 4왕자를 암살했다는 이야기는 곧 자신들이 2왕비를 후벼팔 정보를 캐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는 의미.
‘항상 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니길래 방심했더니 한 방 먹어 버렸네.’
어떻게 눈치챘을까?
분명 보안에 만전을 기했는데.
거기다 에메랄드궁의 유령왕자를 이용하는 깜찍함까지.
‘5왕자, 에반 리오넬······.’
최근 그에 대한 이런저런 보고가 올라오긴 했었다.
4왕자의 출생에 관한 비밀을 캐는데 전력을 기울이느라 세심한 부분에 소홀했던 것이 패착이었다.
그 대가가 이리 뼈아플 줄이야.
‘그나마 건진 건 2왕자와 2왕비 사이에 균열이 생긴 정도인가.’
스읍- 하-
밀로아는 꽁지까지 피운 담배를 재떨이에 거칠게 문댄 후 보고를 올렸던 수하를 바라봤다.
“아르야 왕국에서 삽질하고 있는 녀석들 전부 철수시켜.”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5왕자와 그 주변에 털 거 없나 한 번 찾아봐.”
***
누님이 에메랄드궁을 방문했다.
알폰소가 내온 맛없는 차, 그리고 달콤한 쿠키와 함께 담소의 시간을 가졌다.
“혼절한 2왕비가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더구나.”
“애지중지하던 막내가 그리 갔으니, 그럴 만도 하죠.”
해적들의 감옥, 동부의 석함도로 유배 가던 4왕자 아카드는 싸늘한 시신이 되어 왕궁으로 돌아왔다.
어제, 장례식이 치러졌다.
어쩐지 놈의 마지막을 봐야 할 것 같아 2왕비의 눈에 띄지 않는 먼발치에서 장례식을 지켜보았었다.
“기무대와 2기사단에서 범인을 추적하고 있다고 하던데, 한동안 시끄럽겠구나.”
“그렇겠죠.”
2기사단이라는 단어에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올 뻔했다.
범인의 가족이 범인을 추적하는 꼴인가?
아니지, 범인 당사자일 수도 있지.
“흉수가 ‘북부해방군’이라는 소문이 돌던데,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구나.”
나를 바라보는 누님의 눈빛이 묘했다. 이내 시선이 내 목에 걸린 펜던트를 향했다.
[찬란한 이아나], 악령과 각종 저주로부터 착용자를 보호하는 어머니의 유품.저런 시선, 이제 익숙하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이게 아니었다면 이미 신관들에게 잡혀가 모진 고초를 받았을 겁니다.
나는 쓰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에반 리오넬.”
“······ 미안하구나. 갑자기 키도 훌쩍 크고, 이래저래 내가 알던 에반이 아닌 것 같아 영 낯설었던 모양이야.”
“자주 못 본 탓이죠. 참, 누님이 다도에도 취미가 있으셨죠?”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화제를 전환했다.
어떻게 하면 알폰소가 맛있는 차를 끓여오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해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금방 시간이 흘렀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구나. 다음에 또 오마.”
“살펴 가십시오.”
누님이 떠나고 알폰소가 다과상을 치우며 작게 투덜거렸다.
“아니, 제가 끓인 차가 어때서 그래요? 맛만 있는데.”
“먹어보고 내오는 거였어?”
“당연하죠!”
차를 못 끓이는 게 아니었다. 미각이 독특한 거였다. 함께 식사하는 일이 거의 없어 그동안 눈치채지 못했다.
“참, 새로 온 주방 보조는 어때?”
[독이 든 우유]를 제조했던 하녀를 에메랄드궁에서 내쫓자마자 왕실 재판 건이 터졌었다.일손이 부족한 주방 사람들의 불만이 하늘을 치솟아 관계가 하락하는 이들까지 나올 정도.
다행히 재판이 끝난 다음 날, 새로운 하녀가 배정되었다.
“아주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그래? 다행이네.”
나의 유일한 시종인 알폰소는 에메랄드궁의 인사에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내가 우유에 독이 든 걸 알아챘던 날, 범인이었던 주방 보조를 곧바로 에메랄드궁에서 퇴출한 것만 봐도 그렇다.
알아서 눈치껏 처리하더라. 그래서 굳이 관여하지는 않고 있다.
‘시종이 된 지 이제 일 년인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20년은 빠르다.
역시 사람은 끈을 잘 타야 한다.
뭐······ 5왕자의 유일한 시종이라는 끈이 얼마나 부실한지는 알폰소도 알고 나도 알고있다. 다만 그걸 모르는 다른 왕궁 사람들이 보기에 녀석은 황금 동아줄을 잡은 것과 다름없다.
– 2왕자가 5왕자를 품에 안았다.
최근 왕궁에 돌고 있는 소문이다.
왕실 재판의 진행 과정을 모르는 이들이 보기에는 당연히 그래 보일 거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러려고 하고 있고.’
나는 주머니에서 2왕자 쪽에서 보내온 선물을 꺼냈다. 한 손에 크기의 작은 물체.
유령손으로 톡 건드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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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리스톤]등급 : 희귀
마력 코드를 이용해 다른 텔리스톤과 교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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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전기 같은 거다.
마력을 다루지 못하는 이도 사용법만 알면 어렵지 않게 다룰 수 있다. 교신 가능 거리는 제작자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전해 듣기로 내가 받은 건 왕궁 내는 충분히 커버한다고.
‘선물이면서 족쇄인가.’
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텔리스톤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웃긴 게, 2왕자가 망나니 4왕자를 팽하고 나의 누명을 벗겨준 사건은 귀족들 사이에서 그의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물론, 유배가던 아카드가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옴으로써 2왕자를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던 이들도 있다.
문득, 장례식 당시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담담해 보이던 얼굴, 그 와중에 또르륵 흘러내린 한줄기 악어의 눈물. 만약 지구에서 태어났으면 명배우로 이름을 날렸을 거다. 나조차도 아주 잠깐 진짜 슬픈 건 아닐까 의심이 갈 정도였으니.
백 마디 말보다 그 눈물 하나로 4왕자의 암살 배후로 2왕자를 지목하는 소문이 쏙 들어갔다.
일단 표면적으로는.
나는 머리 아픈 고민은 그만하기로 하고 [인명록]을 열었다. ‘관계’ 순으로 정렬해 녹색 이름들 흐뭇하게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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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네트 리오넬] [알폰소 아인베르크] [레이나 잔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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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가 친 보유 주식 차트를 보는 기분이다.
알폰소와 레이나의 이름 색은 다른 ‘우호’ 관계인 이들과 비교해 확연히 진하다. 거의 ‘신뢰’ 관계인 누님과 비슷.
내가 아카드의 수작질에 말려든 덕에 덤터기 쓸뻔했던 레이나는 대체 왜 내게 호감을 보이는 건지 모르겠다.
반하기라도 한 건가?
말도 안 되는 생각인 건 안다. 나는 이제야 목젖이 굵어지는 13살이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가니 그런 것뿐이 생각이 안 났다.
‘알폰소가 레이나를 제쳤어.’
또 하나 의문인 건 알폰소.
왕실 재판을 거치는 과정에서 급격하게 우호도가 증가하기 시작. 어느새 2위 자리를 쟁취했다.
‘뭐, 관계 좋아져서 나쁠 건 없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로 갔다.
그리고.
‘저 녀석들.’
알폰소가 열심히 쓸고 닦은 정원길을 위풍당당하게 걸어오는 기무대원들을 발견하고 인상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본디 세 개의 눈을 가진 황금사자가 포효하는 것이 왕실기무대의 상징. 저들의 견장에 메인 황금사자들은 모두 눈을 감고 있었다.
왕실기무대 감찰부.
같은 왕궁 식구들에게도 거리낌 없이 송곳니를 쑤셔 넣을 수 있는 자들.
‘왜 갑자기 감찰부가?’
똑똑, 똑똑.
“왕자님, 다녀왔습니다.”
알폰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