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201)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201화 (외전)(201/203)
201. <외전 – 제국의 새벽(1)>
제국력 2년 1월 1일.
신년을 맞아 보름간의 축제가 시작되었다.
저녁 시간, 연회가 열리는 황성으로 향하는 길이 화려한 마차들로 즐비했다.
“엄마! 아빠! 반짝반짝한 마차가 엄청 많아요!”
흔치 않은 광경에 부모님과 함께 길을 걷던 꼬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차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로디! 귀족가의 마차에 삿대질하면 안 돼!”
아이의 어머니가 잽싸게 아이를 품으로 끌어당겼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귀족과 눈을 마주쳤다는 이유만으로 죽기 직전까지 얻어맞는 광경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에반이 왕으로 즉위한 뒤, 명예귀족법을 포함한 각종 법적 장치가 마련되며 지금은 그런 일이 거의 발생하지 않지만,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떨어지는 나뭇잎도 아이에게 해가 될까 두려운 법이다.
아이는 어머니의 품에서 궁전으로 향하는 마차들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그런 아이의 눈에 유독 커다란 마차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 마차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거리를 바라보는 소녀가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와! 엄청 이쁜 누나다!’
클리앙과 밀로아의 장녀, 올해 14살로 화려하게 꽃피기 시작한 클로아였다. 그녀는 눈이 마주친 꼬마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는 걸 바라보다 옆으로 시선을 옮겼다.
바스락, 바스락.
신문지를 넘기는 소리가 계속 신경 쓰였었다. 클로아는 힐끔 남동생, 밀리아노가 보고 있는 신문을 훔쳐보았다.
『브리센 연합과 라비아 제국의 신경전,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이제 10살밖에 안 된 아이의 관심사치고는 상당히 고차원적이었다. 클로아의 시선을 느낀 밀리아노가 고개를 돌렸다.
“누나는 어때? 연합과 제국의 신경전이 조만간 끝날 것 같아?”
“아니.”
“누나 생각도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인 밀리아노가 다시 신문에 집중했다. 클로아는 시선을 돌려 부모님이 앉은 정면을 바라보았다.
아버지 클리앙은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있었고, 어머니 밀로아 역시 그런 클리앙의 어깨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었다.
온 가족이 마차로 이동할 때마다 보는 익숙한 광경이었다.
리하전쟁에서 본토의 7배가 넘는 지역을 점령한 리오넬 제국. 갑자기 불어난 영토에 관료들이 처리해야 할 업무량은 상상을 초월했다.
클리앙과 밀로아는 그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해온 영웅들이었다.
그러니까······ 훤해진 클리앙의 이마나 자잘한 주름이 더는 화장으로 가려지지 않는 밀로아의 피부는 그 영광의 흔적일 뿐이었다.
‘조만간 숨통이 좀 트이시려나?’
리하전쟁 직후 대거 증원 모집했던 왕실사관학교 행정학부의 인원들이 올해 졸업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사정은 나아질 터였다.
‘아, 이제 황실 아카데미지.’
작년에 리오넬 제국 선포에 발맞춰 왕실사관학교가 황실 아카데미로 그 명칭이 바뀌었었다.
클로아는 황실 아카데미에 관심이 많았다.
올해부터 지원요건 중 ‘나이’에 관한 조건이 사라진다. 능력만 있다면 코흘리개 꼬마도 황실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녀는 최연소 입학을 노리고 있었다.
‘최연소 입학자가 되면 좋아하시겠지?’
겉으로는 감정 표현을 거의 하지 않는 클로아. 하지만 알고 보면 속으로는 부모를 지극히 생각하는 효녀였다.
그녀는 고롱고롱 작게 코를 골며 자는 부모를 바라보다 옆에 내려놓았던 황실 아카데미 수험서를 다시 손에 들었다.
신문을 읽던 밀리아노가 그런 그녀를 힐끔 쳐다보았다.
‘올해는 그냥 넘겨야겠지?’
그는 올해 있을 황실 아카데미 입학시험에 응시하지 않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누나를 생각할 줄 아는 의좋은 동생이었다.
***
“클리앙 와이트 공작 각하와 밀로아 크리스티 공작 각하께서 입장하십니다!”
리오넬 제국에서 클리앙과 밀로아의 입지는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크다.
당연히 둘에게 얼굴을 비추고 싶어 하는 이들이 무척 많았다. 하지만 섣불리 발걸음을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 둘에게 다가가는 한 일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두 분, 오랜만이에요! 클로아, 밀리아노도 안녕.”
“줄리앙! 아이라! 올해 중순에 본국으로 완전히 돌아온다는 소식은 들었어요.”
“10년 만인가? 참 오래도 있었군.”
“그래도 생각보다 일찍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아르야에서 생활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나저나 자네가 이제 돌아온다는 이야기는······.”
“맞습니다. 이제 아르야에서 제가 할 일은 더는 없다는 이야기지요.”
밀리아노는 어른들의 대화를 들으며 아르야 왕국이라는 이름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짐작했다.
‘시기는 아마······ 1황자님이 성인이 되는 때?’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줄리앙의 장남 테오와 눈이 마주쳤다.
동갑내기인 둘은 꽤 친한 사이였다.
-밖으로 나갈까?
-좋아!
눈빛으로 의기투합한 그들은 슬쩍 정원으로 빠져나갔다. 밀리아노가 벤치에 쌓인 눈을 대충 털어내고 손수건으로 물기를 닦았다.
깔끔떠는 누나와 다르게 그의 성격은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
벤치에 앉은 두 사람.
밀리아노가 테오에게 물었다.
“아이라 공작님과 함께 브리센 연합의 다이치 왕국에 갔었다고 들었는데, 거긴 어땠어?”
테오는 에이치 상회의 최고 경영자인 아이라와 함께 세계 여러 곳을 자주 다녔다.
아직 한 번도 리오넬 본토를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밀리아노는 테오가 들려주는 이국의 이야기를 좋아했다. 책에서 보는 것과는 다른 생생한 현장감이 있었다.
“그럭저럭 괜찮았어.”
“혹시 다이치 왕국이 이번에 공개한다던 타이탄도 봤어?”
“물론이지.”
“진짜? 진짜? 어떻게 생겼어?”
리하전쟁에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타이탄은 순식간에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밀리아노와 테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이제 대다수 남자아이의 꿈은 ‘기사’에서 ‘타이탄 오너’로 바뀌었을 정도.
테오가 품에서 수첩을 꺼내 쓱싹쓱싹 그림을 그려 나갔다. 10살의 어린아이가 그린 것 치고는 꽤 사실적인 그림이 그려졌다.
“이렇게 생겼어.”
“우리 리오넬 왕국, 아니, 제국의 쿠베르보다 둔탁하게 생겼네.”
“그래도 매력이 있지 않아? 특히 이 뿔부분.”
“그건 그렇네. 이름은 뭐야?”
“팬저라고 하더라. 여기 관절 부위에 사용된 마력초전도체는 그들이 자체 개발한······.”
둘은 정원의 벤치에 앉아 한참 다이치 왕국의 타이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지식이 황실 아카데미 마공학부 입시를 준비하는 이들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이야기를 벤치 뒤 풀숲에서 몰래 엿듣고 있는 이가 있었다. 어딘가 이국적인, 별빛을 담은 것 같은 눈동자를 지닌 소녀.
1황녀 루아 리오넬이었다.
길들지 않은 구두가 발이 아파 정원에서 몰래 신발을 벗고 쉬고 있던 루아는 갑자기 등장한 두 불청객 때문에 다급히 숲 덤불에 몸을 숨긴 상태였다.
안 그래도 칸족 출신이라 뒷말이 많은 2황비 라누아다. 자신이 이렇게 구두를 벗고 돌아다닌 걸 들켰다간 역시 야만인의 핏줄이라는 뒷담화가 그녀의 가슴을 아프게 할지 몰랐다.
‘그래도 발이 너무 아팠는걸······.’
갑자기 스스로가 한없이 미워졌다.
1황자 이안은 모두가 인정하는 검술 천재였고, 태어난 지 이제 1년 좀 넘은 2황녀는 얼마 전 돌잡이에서 엄청난 마나 감응력을 지닌 걸로 밝혀졌다.
그런데 자신은 그저 건강한 게 다였다.
1황자 이안은 손에 찢어져도 검을 놓지 않는다는데, 자신은 발이 조금 아픈 것도 참지 못한다.
루아의 큰 눈에 글썽글썽 이슬이 맺히기 시작했다.
“테오, 나 화장실 좀 가고 싶은데.”
“그래? 같이 가자.”
닭똥 같은 눈물이 흘러내리려는 찰나, 밀리아노와 테오가 자리에서 일어나 사라졌다.
루아는 눈가를 훔치고 풀숲에서 나왔다.
어깨에 묻은 눈을 툭툭 털어낸 그녀는 벤치에 앉아 구두부터 다시 신었다.
다시 연회장으로 가서 우두커니 서 있을 생각을 하니 좀처럼 움직이기가 싫었다. 그런 그녀의 눈에 테오의 수첩이 눈에 들어왔다.
“이게 다이치 왕국의 타이탄이라고?”
루아는 수첩을 한 장씩 넘기며 테오가 그린 타이탄을 눈에 담았다. 이내 쪼그리고 앉아 조물조물 작은 손으로 눈을 뭉쳤다.
중간에 손이 시려 입김으로 손을 데우는 루아.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나뭇가지를 하나 주워들고 그걸로 눈덩이를 조각하기 시작했다.
루아는 눈덩이 속에서 대지를 굳건히 딛고 선 타이탄을 보았다. 루아가 나뭇가지가 툭툭 눈더이를 깎아나갈수록 조금씩 조금씩 타이탄의 형체가 드러났다.
“다했다!”
당장이라도 움직일 것 같이 생동감 넘치는 타이탄이 완성되었다.
짝짝짝. 짝짝짝.
갑자기 들려온 박수 소리. 루아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우와!”
“내가 본 거랑 진짜 똑같아!”
화장실을 갔던 밀리아노와 테오였다.
어찌나 집중했었는지 루아는 그 둘이 돌아와 조용히 자신의 작업을 지켜보고 있는 것도 몰랐다.
‘수첩을 찾으러 왔구나!’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루아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테오가 눈을 반짝거리며 입을 열었다.
“황녀님! 황녀님! 원래 이렇게 조각을 잘하셨어요? 진짜 대단하세요.”
“그, 그냥 소소한 취미로······.”
1황자나 2황녀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재주였다. 루아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왔다.
“소소한 취미라고요?”
테오가 보기엔 아니었다.
에이츠 상회의 최고 경영자인 어머니와 함께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고가의 미술품을 수없이 본 테오였다. 루아가 눈 뭉치로 만든 타이탄 모형의 가치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눈이 아닌 제대로 된 재료로 만들었다면!’
갖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를 느끼는 게 그 증거였다.
테오는 저 타이탄이 눈이 아닌 대리석, 하다못해 목재로 만들어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짙게 느꼈다.
테오는 슬쩍 옆을 돌아보았다.
밀리아노가 홀린 듯한 표정으로 루아가 만든 타이탄을 바라보고 있었다. 생전 장난감 같은 것에 관심 없던 녀석이······.
‘아!’
테오의 머릿속에 번뜩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이거, 돈이 된다!’
아이라를 따라 세계 각국의 거상들을 만나보며 자연스레 익힌 그의 상재가 루아가 만든 타이탄 모형의 가치를 알아봤다.
훗날 타이탄 제조 분야에서 최고의 큰손이 될 루테노 상회의 시작이었다.
***
일주일에 한 번.
에반은 아무리 바쁘더라도 가족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함께한다.
오늘도 황실 식구가 자리에 모였다.
1황비 레이나, 1황자 이안과 2황녀 엘.
2황비 라누아와 1황녀 루아.
그들은 황실 요리사가 준비한 저녁을 음미했다. 어느 정도 배가 찬 에반이 냅킨으로 입술을 닦은 후 루아를 바라봤다.
“루아, 루테노 상회의 타이탄 모형이 아이멘 제국에서 엄청난 흥행을 일으켰단 소식을 들었다. 축하한다.”
“가, 감사합니다.”
루아가 얼굴을 붉히며 웃었다.
클리앙과 줄리앙의 자식들과 친해진 뒤 상회를 창립하고 싶은데 가능하냐며 에반에게 허락을 구했었다. 타이탄 모형의 가치를 알아본 에반은 허락 정도가 아니라 대대적인 투자를 해줬었다.
어딘가 항상 주눅 들어있는 표정이었는데, 그 뒤로 급격하게 밝아졌다.
에반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손을 쓰기 전에 스스로 일어선 루아를 보니 미안하면서도 대견했다.
에반은 왕으로 즉위한 지 10여 년 만에 대제라고 불릴 정도로 커다란 위업을 쌓았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자식들과 정서적 교류를 쌓는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그런 점이 마음 한편의 짐이었다.
눈 깜박할 사이에 1황자 이안은 키가 자신과 엇비슷해졌고, 루아도 소녀에서 여인이 되기 시작했다.
에반의 시선이 1황자 이안을 향했다.
키는 크지만, 아직 얼굴에 앳된 티가 남아있었다. 언제 저렇게 컸나 싶었다.
조만간 장가보내도 될 것 같았다.
“이안, 당분간 아르야 왕국에서 지냈으면 한다.”
비유가 아니라 진심으로.
줄리앙도 본토로 돌아왔고, 슬슬 준비할 때가 되었다.
마음의 짐은 마음의 짐이고, 황제로서 해야 할 일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그는 단순한 세 아이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만백성의 어버이였다.
“알겠습니다.”
이안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황족의 의무와 권리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아르야의 여왕, 유리아가 자신의 배우자가 될 것임을 어려서부터 알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누나, 누나’ 하며 졸졸 따라다닌 기억이 조금 낯 뜨겁긴 하다만······ 크게 불만은 없었다.
무엇보다.
유리아 아르야는 이안의 첫사랑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의 이야기.
유리아에게 “나는 누냐랑 결혼할꼬야.”라며 혀 짧은 목소리로 고백했던 게 떠오른 이안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
제국력 6년 8월 15일.
이안은 스르륵 눈이 저절로 떠진 꼭두새벽부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온종일 시종, 시녀들에게 끌려다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나르 대신전이었다.
심지어 눈앞에는 인자한 미소를 띠고 있는다나르 교단의 교황 리코가 있었다.
빰빠빠빰- 빰빠빠빰─
익숙한 반주가 들려왔다.
이안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뒤로 돌렸다.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상기된 얼굴로 조심스럽게 걸어오고 있었다.
아르야 왕국의 여왕, 유리아였다.
‘아!’
그제야 이안이 정신을 차렸다.
오늘은 그의 결혼식 날이자, 리오넬과 아르야가 하나가 되는 날이었다.
언제까지 얼빠진 표정으로 있을 수 없었다. 이안은 어깨를 펴고 걸어오는 유리아를 향해 빙긋 웃어주었다.
“그오오오오오!!”
“크릉 크릉!!”
지드래곤과 해리가 가장 먼저 축하의 말을 전했다. 뒤이어 황도 주민들이 합류했다.
“황태자님 멋지세요!”
“황태자비님도 아름다우세요!”
“두 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세요!”
이안은 눈앞에 다가와 쑥스럽게 손을 내미는 유리아의 손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