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202)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202화(202/203)
202. <외전 – 제국의 새벽(2)>
알폰소 아인베르크.
황제 에반 리오넬이 밑바닥에 있었을 때부터 함께한 가신. 당연히 그의 입지는 제국 내에서 상당한 편이다.
그런 알폰소를 시기 질투하는 이들이 많다.
그가 별다른 능력도 없으면서 에반의 곁에 있었던 덕분에 출세했다며 수군거리곤 한다. 특히 리하전쟁 이후 편입된 하믈, 아르야 출신들이 자주 그런 뒷담화를 나누며 친분을 다진다.
리하전쟁 당시 빠른 투항으로 목숨과 직위를 보전한 전대 황탑주의 수제자, 글리트 역시 그런 인간 중 하나였다.
“흠······ 그러니까 이 설계도가 어째서 라비아 제국으로 흘러갈 뻔했는지 전혀 모르신다는 말씀이시군요?”
“그, 그렇소! 나는 모르는 일이오!”
알폰소의 손에서 펄럭이는 두꺼운 서류를 바라보는 글리트의 눈동자가 심하게 떨렸다.
‘어, 어떻게 저 인간이 저걸!’
모든 것이 완벽했었다.
타이탄의 설계도를 조각조각 내 외부로 반출, 라비아 제국의 요원에게 성공적으로 전달했었다.
한데 분명 라비아 제국으로 갔어야 할 설계도가 알폰소의 손에 있었다.
‘서, 설마!!’
알폰소에 관한 믿기 힘든 소문이 하나 있었다. 사실 그가 제국의 그림자들을 총괄하는 수장이라는 것.
리오넬 제국에는 우는 아이도 그치게 한다는 황실기무대가 있었다. 그런데 제국의 그림자가 또 있다고? 당연히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이라 생각했었다.
‘그게 진짜였단 말인가!’
알폰소의 실눈 사이로 보이는 차가운 푸른 눈동자. 글리트는 자기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었다.
글리트의 시선이 알폰소의 어깨 너머를 향했다. 얼굴의 반을 가리는 가면을 쓴 사내가 연구실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왼손의 새끼와 약지가 짧은 게 글리트의 눈에 들어왔다.
알폰소의 호위인 것으로 추측되었다.
글리트의 머릿속이 바빠졌다.
그는 7성 마법사였다. 그것도 타이탄 제작에 일가견이 있는. 지금 이 자리만 잘 빠져나가 망명을 신청하면 두 팔 벌려 환영할 국가가 많았다.
글리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알폰소와 호위 하나 제압 못 할 자신이 아니었다. 그는 마나를 관측하는 세 번째 눈을 ······.
서걱─ 투욱.
바닥을 구르는 그의 머리.
초점이 흐려지는 글리트의 눈에 검을 손에 쥔 가면의 사내가 보였다.
‘어, 언제······.’
그게 그의 마지막 생각이었다.
알폰소가 가면의 사내를 바라봤다.
“다짜고짜 죽여버리시면 어떡합니까.
“가만히 있었으면 내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을 텐데? 그리고 어차피 살려둘 생각도 없었잖아.”
그의 정체는 루카스.
“뭐, 그렇긴 합니다.”
알폰소가 볼을 긁으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피 묻은 검을 툭툭 털어낸 루카스가 바닥에 굴러다니는 글리트의 머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놈이 마지막이었지?”
“고생하셨습니다. 아마 당분간 가족분들이랑 푹 쉬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마? 확답을 줘. 도통 믿을 수가 있어야지.”
에반에게 왕위를 넘기기 위해 죽음을 가장했던 루카스. 그는 그 이후로 음지에서 활동하며 죽음의 위기를 수없이 넘겨왔다.
하믈 제국에 전국새를 투척하고 도피하는 과정에서 7성 기사가 되었던 루카스.
그로부터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그는 제국의 숨겨진 8성 기사로서 여전히 음지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음지의 8성 기사?
그 대체할 수 없는 존재로 인해 조금 쉴만하면 위험한 임무에 투입되는 그였다.
“그게······ 아시다시피 네이브 님이 움직이실 때는 제 윗분이 관여하시는 거라 확답은 좀······.”
알폰소에게 지시를 내리는 이는 에반뿐이었다. 루카스는 작게 혀를 차며 검집에 검을 넣었다.
“그럼 나는 먼저 가볼 테니, 뒷정리 부탁해.”
“알겠습니다. 푹 쉬고 계세요! 금방 찾아뵙겠습니다!”
“찾아오지 마!”
알폰소는 그가 저리 서두르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황실 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딸이 방학을 맞아서 오랜만에 집에 온다나?
루카스가 1왕자 시절 아랫도리 간수를 못 해서 세상에 나오게 된 그 딸이 벌써 20살이 다 되어간다.
10년 가까이 몰래몰래 모녀를 후원하던 루카스. 우여곡절 끝에 제국력 1년, 루카스는 모녀와 재결합해 가정을 꾸렸다. 그리고 그는 가족을 끔찍이 아끼는 가장이 되었다.
소설 두 권 정도는 뚝딱 나올 수 있는 루카스와 모녀의 이야기. 알폰소는 그걸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가족이라······.’
루카스가 창문 밖으로 몸을 던져 바람같이 사라졌다. 알폰스는 멀어지는 그의 등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알폰소의 나이가 벌써 마흔을 넘었다.
언제까지나 자신과 함께 술친구로 남을 줄 알았던 루나는 작전 중 만난 아이멘 제국의 마공학자와 불같은 사랑을 나누더니 결혼에 골인, 다음 달이 벌써 산달이었다.
아기 때 기저귀를 갈아준 1황자 이안도 얼마 전 성혼했다. 시녀들 말로는 아주 뜨거운 신혼 생활을 보낸다더라. 옛날 에반과 레이나 못지않다고······.
당장 내일 황태자비가 회임했다는 소식을 듣게 될지도 몰랐다.
알폰소의 가슴 한편이 허해졌다.
‘오랜만에 선배랑 술이나 한잔할까?’
문득 오스틴이 세금 관련 문제로 황도를 방문한 것이 떠올랐다. 아직 영지로 돌아가지 않았을 거다.
전대 황탑주의 수제자 글리트의 시체를 처리하는 알폰소의 손길이 빨라졌다.
그날 저녁.
알폰소는 제국 최고의 호텔을 찾았다. 오스틴은 그곳 꼭대기 최고급 객실에 머물고 있었다.
“이 야밤에 무슨 일로 찾아온 거야?”
오스틴이 그를 맞이했다.
펑퍼짐한 편안한 차림과 오스틴의 여우가면이 대조를 이루었다. 약간 삐뚤어진 것이 편히 쉬던 중에 급하게 착용한 모양이었다.
알폰소가 손에 든 와인을 흔들며 씩 웃었다.
“간만에 선배랑 술 한잔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 들어와.”
오스틴이 잠시 고민하더니 문을 열어줬다. 방 안으로 들어간 알폰소가 객실 내부를 둘러보다 입을 열었다.
“황도에 꽤 자주 오시는데 그냥 저택 하나 구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됐어. 번거로워. 난 이게 더 편해.”
삐뚤어진 여우가면이 유독 알폰소의 눈에 밟혔다. 사용인들이 있으면 가면을 벗고 푹 쉬지 못하는 탓이 아닐까?
충분히 가능성 있었다.
알폰소는 소파에 앉아 와인을 땄다.
“마셔보세요. 비싼 겁니다.”
“흠······.”
오스틴이 여우가면을 살짝 들어 와인을 입에 가져갔다.
두 사람은 와인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다. 주로 북부해방군 시절 고생하며 훈련하던 시절이 주요 안줏거리였다.
오랜만의 과거 이야기에 둘의 대화가 끊기질 않았다.
그러길 한창.
얼굴이 불콰해진 알폰소가 조심스레 오스틴에게 물었다.
“그 여우가면, 그냥 벗으시면 안 됩니까?”
“안 돼.”
“왜요? 선배가 여자인 거 들킬까 봐 그런 겁니까?”
오스틴이 잠시 멈칫했다.
“설마 모를 거라고 생각하신 겁니까? 저희가 같이 지낸 세월이 얼마인데.”
“······ 여자란 걸 들키기 싫은 것도 있었지만, 그게 다는 아니야. 어머니가 내가 어릴 때 어떤 노파에게 받은 예언 때문이야.”
“예언이요?”
“여자인 걸 숨기고 또 숨겨야 행복한 여자의 삶을 살게 될 거라고 그랬다던데?”
“돌팔이군요.”
“그래, 돌팔이지.”
둘은 와인 잔을 짠 부딪히며 피식 웃었다.
.
.
.
그랬는데.
분명 그랬었는데!
‘어, 어째서 내가 아직도 여기에!’
창가로 새어 들어오는 아침 햇살에 눈을 뜬 알폰소. 무슨 연유로 자신이 오스틴의 침대에서 눈을 떴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것도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상태로!
옆에서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왔다. 알폰소는 옆으로 고개를 돌리기가 두려웠다. 그래도 확인해야만 할 일이었다.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유려한 곡선을 그리고 있는 새하얀 등이 보였다. 알폰소의 눈동자가 지진이 난 것처럼 떨렸다.
새까맣기만 했던 어제의 기억 중 일부가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아니, 그건 기억이라기보단 손에 남은 감각이라는 표현이 좋았다.
오스틴의 ‘마음’.
알폰소의 이상형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그래도.
따스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얼굴이 이뻤다.
그의 허했던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을 정도로 말이다.
알폰소의 시선이 침대 옆 탁상에 놓인 여우가면에 닿았다. 여자인 걸 숨기고 숨겨야 미래에 행복해진다고?
알폰소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그 예언을 남겼다는 노파가 정말 돌팔이일지, 아닐지는 이제 그에게 달려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하아······.”
리오넬 제국이 개발 중인 타이탄의 설계도를 검토하던 프란은 앨리스의 한숨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맡겨놓은 일은 안 하고 창밖을 바라보며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었다.
‘또 그 녀석 생각인가?’
이유를 알고 있는 프란은 혀를 작게 찼다.
몇 달 전, 늙어 죽을 때까지 황실 아카데미의 교수로 발이 묶여있을 줄 알았던 자르얀이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 과정에서 오랜 연인 관계였던 앨리스와 자르얀이 심각하게 다투었고, 그 결과 둘은 파국을 맞이했다.
앨리스는 자르얀이 그녀를 버리고 칸족을 선택했다며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렸었다.
이제 좀 괜찮다 싶었는데 다시 또 시작이다.
‘알폰소 녀석 때문인가?’
불과 일주일 전, 평생 혼자 살다 독거노인으로 늙어 죽을 거로 생각했던 알폰소가 결혼식을 올렸다.
배우자는 놀랍게도 오스틴 새턴 백작.
수많은 언론의 추적에도 남자일지 여자일지 밝혀지지 않았던 오스틴의 성별이 드디어 세상에 드러난 것이었다.
사람들은 오스틴의 여자인 것에 놀랐고, 왜 가면을 쓰고 있었는지 의아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용모에 또 놀랐다.
“하아······.”
다시 들려온 앨리스의 한숨에 프란은 방관을 택했다.
백에 구십구가 겪는 첫사랑의 실패였다. 자신도 경험해봐서 안다.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게 가장 도와주는 일이다.
‘시간이 약이지.’
프란은 조용히 일어나 연구실을 나섰다.
한숨을 푹푹 쉬는 제자와 있는 것보다는 타이탄 공방에 가 있는 것이 훨씬 편할 것 같았다.
“응? 이 시간엔 무슨 일로 왔냐?”
프란이 이중 삼중의 삼엄한 보안을 뚫고 공방에 모습을 보이자 길루드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한숨 푹푹 쉬는 제자 놈이랑 있는 것보다는 여기가 편해서 말이야.”
“아아······.”
앨리스와 자르얀의 이야기를 아는 길루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자르얀 놈의 선택도 이해가 간다. 워낙 뒤숭숭한 때 아니냐? 본국인 칸트라가 걱정되었겠지.”
라비아 제국의 동태가 심상치 않았다. 몇 년 전부터 그들과 브리센 연합 간의 국지전이 끊이질 않고 있었다.
아이멘 제국은 슬슬 동대륙을 벗어나 전 세계 패권을 쥐고 흔들고 싶은 야욕을 드러낸 상태.
라비아 제국과 신경전을 벌이는 브리센 연합은 단단히 단결해도 모자랄 판에 주축 국가 간의 갈등이 곪아서 터지기 직전이었다.
언제 전쟁의 화마가 전세계를 덮칠지 모르는 상태였다.
“황제가 생각보다 자르얀을 쉽게 풀어줬어. 솔직히 나는 평생 제국에서 부려 먹을 줄 알았거든.”
“자르얀 덕분에 최상급 스텔라를 이용한 엔진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지 않았나. 그 정도면 충분히 부려 먹었다. 그리고······ 지금 칸트라의 기술력이라면 녀석이 합류해도 리오넬 제국의 기술력을 따라오려면 평생을 바쳐야 할 거다. 그동안의 공도 있고 모든 걸 고려해서 칸트라로 가는 걸 허락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황제가 공에 대한 상은 확실한 편이니까.”
“몰라. 이미 떠나간 놈이랑 실연당한 제자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고, 저 녀석 상태는 어때?”
프란이 시선을 돌려 제국의 신형 타이탄을 바라봤다. 최상급 마정석이 아닌 최상급 스텔라를 이용해 만든 엔진을 바탕으로 개발 중이었다.
“조정을 더 해봐야겠지만, 아무래도 최상급 마정석을 사용한 엔진보다 최대출력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역시 그런가······.”
“언젠가 프란 네가 최상급 마정석을 이용해 더 상위의 스텔라를 만들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질지도?”
최상급 스텔라를 뛰어넘는 거면 초월급이라고 해야 하나? 잠깐 고민하던 프란이 갑자기 픽 웃었다.
스텔라 연구에 큰 도움을 주던 자르얀도 본국으로 돌아갔다. 살아생전에 이루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평생 심심하진 않겠네.’
죽는 순간까지 달성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목표가 있다는 것. 마법사에게 있어선 꽤 축복받은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