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203)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203화 (외전 완)(203/203)
203. <외전 – 제국의 새벽(3)>
세계 제일의 부자는 누구인가?
과거에는 그 물음에 대한 답이 사람마다 분분했다.
-당연히 아이멘 제국의 황제지! 세계 최대 규모의 비공정 공방이 그의 소유라고!
-무슨 소리! 세계 최대의 마정석 광산을 소유한 라비아 제국의 여제가 세계 제일의 부자라고!
-다들 아무것도 모르는구먼. 세계 금융의 큰손 차일드로슨 가문을 모른단 말인가?
최근에는 경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사람을 뽑는다.
-세계 제일의 부자? 당연히 리오넬 제국의 황제, 에반 리오넬이지.
바이오.
마력초전도체.
스텔라.
타이탄.
각각이 세계 경제를 쥐었다 펼 수 있는 최첨단 산업에서 모두 압도적인 선두를 달리는 리오넬 제국.
에이츠 상회를 비롯해 그 산업에 관련된 이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런 이들의 꼭대기에 있는 것이 바로 리오넬 제국의 황제 에반이었다.
-황제 폐하가 대단한 게 뭔지 알아? 손을 대고 실패한 사업이 하나도 없으셔.
-진짜? ······ 어! 그러네? 정말 손대시는 일마다 성공하셨네.
리오넬 왕국 시절, 상인들은 상행을 떠나기 전 황금의 신 미다스에게 상행의 성공을 기원했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변화가 일어났다.
리오넬 제국의 상인 일부가 상행을 떠나기 전, 미다스 대신 황제인 에반에게 기도하기 시작한 것.
루테노 상회의 해외 영업부장 알리드 역시 그런 이들 중 하나였다.
‘이번 상행에도 황제 폐하의 가호가 있기를.’
그는 머나먼 서대륙에 기원을 둔 황금의 신 미다스보다는 에반에게 기도하는 것에서 더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알리드는 선원들에 배에 화물을 싣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번 상품은 분명 대박이 날 거야.’
타이탄 모형 사업으로 전세계에 이름을 알리게 된 루테노 상회. 이번에 새로운 장난감을 만들었다.
아이들이 직접 부품을 조립해 완성품을 만들 수 있는 조립식 장난감. 루테노 상회의 최대 주주인 에반이 소재로 활용된 프라스티오에서 이름을 따 ‘프라모델’이라 이름 지어줬다.
알리드는 그 시제품을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을 되새겼다.
부품을 펼쳐놓고 완성품을 상상하는 설렘. 작은 부품들이 합쳐져 완성품이 만들어질 때의 짜릿함. 도색할 때의 손 떨리던 긴장감.
‘프라모델은 도저히 실패할 수 없어.’
알리드는 에반이 머무는 황성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다시 한번 상행의 성공을 기원했다.
***
리오넬 제국의 황성.
에반은 집무실에서 홍차를 즐기고 있었다.
똑똑, 똑똑.
휴식을 방해하는 노크 소리가 울려 퍼졌다.
“폐하, 알폰소입니다.”
“들어와.”
문이 열리고 싱글벙글 표정의 알폰소가 나타났다. 아직 신혼의 재미에 푹 빠져있는 것이 얼굴에 그대로 보였다.
“방금 슈이츠 백작이 2황비님을 진료하고 갔습니다.”
“결과는?”
“회임하셨다고 합니다.”
황태자 이안과 나이 차이가 20살 가까이 나는 막둥이 소식. 에반은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잔을 매만졌다.
‘넷째······ 인가?’
에반은 1황녀 루아 이후 의도적으로 자녀를 갖지 않았다. 황비들과 동침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여담이지만 에이츠 상회의 매출에서 한 축을 차지하는 것이 피임 도구다.
후계 구도를 안정화하려는 마음이 컸다.
에반은 이안이 어렸을 때부터 그에게서 성군의 자질을 보았다. 그가 없어도 격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제국을 훌륭히 이끌어나갈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그래서 일찌감치 이안을 황태자로 낙점하고 힘을 실어준 것.
셋째와 넷째가 1황자 이안, 1황녀 루아와 나이 차가 큰 것은 그런 연유였다.
“황태자 소식은 아직 없나?”
“무소식이 희소식 아니겠습니까.”
알폰소의 말에 에반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태자 이안은 오랜 기간 에반을 호위했던 세 기사와 함께 황탑이 위치한, (구)황원주에 가 있었다.
하믈 제국의 상황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
천년이 가까운 세월을 패권국으로 지내 온 하믈 제국은 리하전쟁을 계기로 급격히 몰락. 현재는 조각조각 찢겨 덩치가 기존 반의반도 안 되게 쪼그라들었다.
그런 하믈 제국에 미친놈이 하나 나타났다.
자신들이 리오넬에게 패배하고 쇠락하게 된 것은 순수해야 할 황실의 피에 다른 민족의 더러운 피가 섞인 탓이라 주장하며 순수한 하믈인만의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극단적인 민족주의자.
황실기무대의 조사에 의하면 하믈 제국의 공민회 숙청 당시 살아남은 생존자일 확률이 높았다.
놀랍게도 그 미친놈이 패배감에 찌들어있던 하믈 제국인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광기에 휩싸인 하믈 제국인의 손에 하믈 제국의 황족과 소수 민족이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 하믈 제국의 불똥이 언제 리오넬 제국 쪽으로 튈지 모르는 상황. 이안과 세 기사는 불안한 국경 지대를 살피기 위해 그곳으로 간 것이었다.
황태자 이안은 리오넬 본토를 처음 벗어나는 거였다.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그의 입지는 더욱 공고해질 터.
‘그 세 사람이 있으니 별일 없겠지.’
10년 전, 리하전쟁에서 맹활약했던 아돌, 버논, 베록은 이제 베테랑 7성 기사였다. 타이탄 조종 실력도 최상급.
객관적으로 황태자 이안의 검술 성취는 훌륭했다.
19살에 6성.
20살이 되기 전에 오러를 다룬다는 것은 분명 ‘천재’의 카테고리에 속한다. 하지만 언제 사건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최전방이기에 에반은 이안에게 그들을 붙여주었다.
“이제 가서 볼일 봐. 더 할 보고 없으면 일찍 집에 가고.”
“하핫, 알겠습니다.”
축객령에 알폰소가 좋다고 나갔다.
아직 신혼은 신혼이었다. 그가 나간 걸 확인한 에반은 피식 웃으며 식은 홍차를 입에 털어 넣었다.
빈 찻잔을 책상 위에 올려둔 에반은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로 갔다.
구름 하나 없이 맑은 하늘.
전생을 자각했던 이후 정말 정신없이 달려왔다. 이제야 제국이 조금 안정화되려는 데 세계정세가 뒤숭숭했다.
하믈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널려 있었다.
에반의 시선이 힐끔 창틀을 향했다.
그의 기억이 시작될 때부터 함께했던 유령손이 창틀을 툭툭 건드리고 있었다. 고심이 가득한 사람의 그것과 같았다.
‘눈에 띄게 흐려졌어.’
최근 에반은 남들에겐 말할 수 없는 일을 겪고 있었다. 유령손과 마찬가지로 상태창이 흐릿해지기 시작한 것.
어렴풋이 짐작되는 건 있었다.
반신에 가까운 존재가 되고 신성을 얻게 되면서, 기존 받았던 누군가의 은총, 아마도 다나르의 힘이 옅어지는 게 아닐까?
-이번 상행에도 황제 폐하의 가호가 있기를.
-황제 폐하, 우리 아들의 사업이 번창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폐하, 부디 오늘 하루도 손님이 가득하도록 부탁드립니다.
1~2년 전부터 가끔 아무 생각 없이 머리를 비우고 휴식을 취할 때면 그런 소리가 들려온다. 처음에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들려오는 환청인 줄 알았다.
>환청이 아닙니다. 에반 님을 숭배하는 이들의 ‘기도’입니다.
다나르의 교단의 교세가 커질수록 잊힌 기억이 돌아오는 지니를 통해 그 소리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신성이 쌓이고 있다는 느낌이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는 것도.
이러다 생각지도 못한 이른 시점에 승천의 문이 열리게 될지도 몰랐다.
‘승천이라······.’
신계에 들어선다는 것.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아직 잘 와닿지 않았다. 직접 경험해봐야 알 것 같았다.
에반은 고개를 털었다.
아무리 신성이 쌓이는 속도가 빨라졌다지만, 한참 뒤의 일이었다. 지금은 리오넬 제국의 황제로서 주어진 사명을 다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바리사다는 알겠지?’
승천이란 주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녀의 부재가 아쉬웠다.
바리사다는 이제 없다.
황태자 이안의 결혼식 날, 에반은 그녀가 [바리사다]에서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에반은 다소 섭섭한 마음이었다.
인사도 없이 떠난 건 줄 알았다.
하지만, 근래 신성이 빠른 속도로 쌓이며 [바리사다]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된 에반은 그녀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바리사다가 치우지 못하고 남겨놓은 그녀의 비밀 취미 생활을 발견한 것.
그 많은 자작 소설이라니.
에반이 [바리사다] 속에 갇혀 있었던 때 절대 들키지 않으려 했던 것들이다. 그렇게 방치해놓고 훅 떠났을 리 없다.
절대다수는 로맨스 소설이었지만, 간혹 그녀의 고뇌를 담은 자전적 수필 같은 것도 있었다.
여행을 떠난 반마족 여주인공이 자아를 찾아가는 소설 『거울』은 에반도 정말 감명 깊게 읽었다. 그래서 얼마 전에 바리사다라는 필명으로 출판도 했다.
원래 감명 깊은 소설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하는 것이 독자의 마음이었다.
조금씩 입소문을 타며 판매 부수가 꾸준히 늘고 있다는 게 에반이 알고 있는 근황이었다.
‘알면 화내려나?’
에반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녀도 분명 누군가 자기 소설을 읽어주길 바랄 게 분명했다. 혼자 보기 위해 소설을 쓰는 작가는 없다.
바리사다가 사라지고 평범한 검이 되어버린 [바리사다]는 이안이 세 기사와 국경으로 이동할 때 같이 건네줬다. 황태자 이안에게 권위를 실어주기 위함이었다.
비록 평범한 검이 된 [바리사다]였지만, 그 상징성이 어디 가지는 않는다.
에반은 이안이 다시 황성으로 돌아오면 틈틈이 바리사다의 소설을 더 출판할 생각이었다.
나이와 종족을 초월한 친우로서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에반의 선물이었다.
에반은 먼 훗날 자신은 ‘재물의 신’으로 바리사다는 ‘문학의 신’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숭배될지도 모른다 생각하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
-황제 폐하 만세!
-황태자님 만세!
-황태자비님도 만세!
황태자의 결혼식 날.
바리사다는 깊고 깊었던 잠에서 깨어났었다.
몽롱한 잠결에 침대에서 일어나 비틀비틀 일어난 그녀는 거실로 나가기 위해 문을 열었었고, 환한 빛이 덮쳐오는 것에 그것이 거실문이 아닌 승천의 문임을 뒤늦게 깨달았었다.
에반에게 인사도 없이 떠나야 했던, 어디 가서 말하기 민망한 이야기였다.
신계에 들어서며 바리사다는 잊고 있던 기억을 되찾았고, 알지 못했던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가령 그녀의 모친이 아르카나라는 것.
아르카나와 다나르가 쌍둥이라는 것.
그들은 사실 세쌍둥이라는 것.
그리고 어째서 에반이 세계의 법칙으로부터 그렇게 자유로울 수 있었는가 등등.
‘언젠가는 그 녀석도 알게 되겠지?’
에반도 승천의 문을 건너 신계에 오게 되면 자연스레 알게 될 일들이다. 머리가 좋은 그이니 어쩌면 혼자서도 추론해낼지도 모른다.
바리사다가 보기엔 이미 에반 주변에 상당한 퍼즐 조각이 뿌려져 있었다. 그곳들만 잘 조합해도 그럴듯한 그림이 그려진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바리사다는 고개를 털고 에반에 관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지금 그녀에게는 중요한 고민이 있었다.
승천해 신계로 온 것까지는 좋은데, 신계가 하계의 존재들이 생각하는 그런 지상낙원이 아니었다.
신성을 잃지 않기 위해 그녀의 이름을 하계에 알려야 했다.
최근 에반이 그녀의 허락도 안 받고 부끄러운 소설을 출판한 덕에 이름이 아름아름 알려졌긴 하지만, 사람들은 그게 자신이라는 걸 모른다.
‘역시 리오넬 제국의 수호신을 노리는 게 가장 효율이 높아.’
그녀가 잠들기 전보다 10배 가까이 커진 리오넬 제국이다. 다나르에 이어 두 번째 수호신이 나타나도 하등 문제없다.
거기에 그동안 자신이 해준 게 있다.
황제인 에반이 분명 수호신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밀어줄 것이다.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반마족 바리사다나 작가 바리사다가 아니라 신 바리사다의 존재를 리오넬 제국인들에게 알릴 것인가.
이제 갓 신계에 발을 디딘 그녀의 신력으로는 하계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한두 번이다.
에반이 타이탄을 이용해 다나르의 이름을 리오넬 왕국인들의 뇌리에 박아넣었던 것처럼 극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래서!
그녀는 [바리사다]를 소지한 이안의 주변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육체를 녹여 만들어진 [바리사다]를 통한다면 더욱더 많은 영향력을 지상에 행사할 수 있다.
잠깐이지만 강림도 가능했다.
조금 걱정이 있다면 이안이 버틸 수 있을까인데······ 에반과 레이나의 아들이니 아마 죽지는 않을 거다.
목숨이 위험한 황태자를 구한 수호신 바리사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신성이 쌓이는 기분이었다.
매의 눈을 한 바리사다의 눈에 국경 순찰 중 정체를 숨긴 괴뢰군의 습격을 받는 황태자 이안이 포착되었다.
절호의 기회.
‘근데 간도 큰 녀석들이네. 리오넬 제국의 황태자를 노려?’
큰 전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도화선이 될 수도 있었다.
바리사다는 그동안 내부 단속에 힘썼던 리오넬 제국이 이제는 웅크리고 있던 몸을 일으킬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제국의 새벽이 끝나고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