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22)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22화(22/203)
022
5년 전.
– 올리비아 아인베르크, 너를 왕족 독살 미수 혐의로 체포한다.
왕실기무대가 유모를 시작으로 호위기사와 에메랄드궁의 사용인들을 줄줄이 포박할 때, 나는 공포의 질린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전생으로 치면 갓 유치원을 졸업한 나이. 그 사건이 있던 날도 이불에 실례한 탓에 의기소침해 있던 그런 어린아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의 내가 아니다.
“무슨 일이시죠, 왕자님?”
왕실기무대 감찰부의 장교가 날카로운 눈으로 물었다.
솔직히, 알폰소의 혐의를 없는 일로 만드는 건 불가능. 내게 1왕자나 2왕자 만큼의 힘이 있더라도 상당한 손해를 감수해야 가능한 일일 거다. 어쩌면 안될 수도 있고.
“알폰소는 내 수족과 같은 녀석이야. 누구 마음대로 데려가겠다는 거지?”
장교가 코끝을 찡그려졌다.
“아끼던 시종이 북부해방군의 간자로 판명되어서 잠시 혼란스러우신 거, 충분히 이해합니다. 이제 저희가 데려가서 철저히 조사하겠습니다. 만약 오해가 있었다면 멀쩡히 돌아올 테니 걱정하지 마시죠.”
묻는 말에 꼬박꼬박 대답하는 장교.
4왕자의 시종이었던 조지 놈이 앞에서 침을 뱉으며 날 무시하던 걸 생각하면, 왕실 재판 이후 변한 내 위상이 새삼 체감되었다.
“혹시 북부해방군이 뭔지 모르시는 건 아니시겠죠?”
뭐, 그렇다고 나를 지극히 공손히 대하는 건 아니었다. 중간중간 은연중 비꼬는 말투가 신경에 거슬렸다.
나는 미간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모를 리가 있나. 내가 직접 북부해방군으로 보냈는데.”
“······ 네?”
장교뿐 아니라 자리에 있는 모두가 내가 무슨 말을 한 것인지 못 알아먹은 표정이었다.
알폰소 녀석도 실눈을 부릅떠서 평소엔 잘 안 보이는 푸른 동공이 보일 정도였다. 마비가 안 된 걸 들키려고 저러나?
“내가 보냈었다고. 북부해방군의 간자로. 거기서 여기로 온 게 아니라. 여기서 거기로 갔다가 돌아온 거야.”
“그,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왜 말이 안 되지?”
“왕자님과 저놈은 불과 1년 전에 만났을 뿐입니다!”
“나랑 알폰소에 대해 꽤 자세히 아나 봐? 누가 우리에 대해 그렇게 궁금했을까. 정보부에서 조사했나? 아니면 첩보부?”
정보부면 1왕자, 첩보부면 2왕자 쪽이다.
“그것도 아니면 감찰부 자체로?”
“기밀입니다!”
쯧, 혹시나 해서 찔러봤는데.
내게 왕실기무대 감찰부라는 폭탄을 던진 놈이 누군지, 나중에라도 알게 되면 꼭 갚아 주겠다고 다짐했다.
은혜는 갚고, 원수는 100배로.
누가 했는지 몰라도 참 마음에 드는 격언이다.
“그런데 말이야. 잘못 알고 있어. 1년 전이 아니야. 알폰소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어.”
“그럴 리가 없습니다!”
“베이른 후작가의 봉신 가문인 아인베르크 사람을 내가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는 게 왜 그럴 리가 없지?”
“네? 아, 아인베르크?”
“저 녀석. 알폰소 하임델이 아니라 알폰소 아인베르크거든.”
어차피 파고들어 조사하다 보면 드러날 사실이다. 먼저 선수 쳐서 알뜰하게 사용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설마 왕실기무대 감찰부 장교씩이나 돼서 아인베르크 가문을 모르는 건 아니겠지?”
“올리비아 아인베르크······.”
그래, 다들 잊지 않았구나.
“왕자님의 주장이 말이 안 됩니다. 왕자님은 궁을 거의 나가신 적이 없고, 왕궁을 드나드는 이들은 엄격한 출입 관리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편지 친구였지, 편지 친구. 모르나? 왜 요즘도 많이들 하던데.”
“······ 편지들은······.”
“어디 있나 모르겠네. 버린 거 같기도 하고, 한번 찾아는 보지.”
장교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 왕자님의 말씀이 ‘사실’이라 해도 저 녀석이 북부해방군에서 활동해왔던 건 변하지 않습니다. 북부해방군은 아직 그 실체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은 집단. 혹여 그사이 변심해 왕궁에서 어떤 흉계를 꾸미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희가 모르는 북부해방군의 정보를 알고 있을 수도 있죠. 연행은 불가피합니다.”
아, 결국 이렇게 되나.
‘끌려가면 끝이야.’
기무대원이 기침만 해도 놀라서 심장이 멎는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
“······.”
잠시간의 침묵.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게 말해면 내가 데려가라 할 줄 알았나?”
“서, 설마. 끝까지 가시겠다는······!”
5년 전에는 몰랐다.
내가 ‘왕족’이라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힘인지.
“불체포특권을 행사하겠어.”
“큿.”
불체포특권.
왕족이 가진 특권 중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강력한 특권.
– 왕족은 자신과 자신의 가신을 대상으로 한 체포, 구금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이를 불체포특권이라 칭한다. 불체포특권을 발휘한 왕족과 그 가신을 체포, 구금하기 위해선 왕실위원회 의결정족수 과반의 찬성이 이루어져야 한다.
서로를 물고 뜯다 피투성이가 되었던, 선대 왕위 계승 싸움을 했던 이들이 만들어낸 결과물.
5년 전, 이걸 알고 있었더라면 시간을 조금 벌었을 텐데······.
“이제 가봐.”
“······ 다시 뵙겠습니다.”
입술을 꾹 깨물다 말문을 연 장교의 눈에서 왕실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오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그는 힐끔 알폰소를 바라보다 품에서 작은 약병을 책상에 올렸다.
“저 녀석, 해독약입니다.”
손을 휘휘 저으며 빨리 나가라고 재촉했다.
왕실기무대가 나간 후, 해독약에 유령손을 가져가 혹시 몹쓸 장난을 쳐 놓은 건 아닌지 확인했다.
‘이상 없네.’
해독약을 챙긴 뒤 창가로 다가가 왕실기무대 인원들이 에메랄드궁을 벗어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바닥에 내팽개쳐져 있는 알폰소를 바라봤다.
마비 안 된 거 아니었나?
“왜 아직도 자빠져 있어?
“······ 느그 므음드르 즈그 으즈님 그슨입느가?”
얼굴 근육만 조금 움직일 수 있나 보다.
뭐라는 거야?
누구 마음대로 제가 왕자님 가신입니까? 라고 한 건가? 물에 빠진 놈 건져 배 위로 올려줬더니 고맙다고 하지는 못할망정.
다시 발로 차서 빠트리고 싶어졌지만, 늦었다. 이미 한 배를 타버렸다.
“해독약은 없어도 된다고?”
“······ 금스흡느다.”
나는 피식 웃으며 알폰소에게 해독약을 먹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녀석이 손가락부터 꼼지락거리기 시작했다.
알폰소가 마비가 풀릴 때까지 소파에 앉아 쌓여있는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했다.
[하일리 오핀과의 관계가 나빠졌습니다.」 [리얀 로이드와의 관계가 나빠졌습니다.」.
.
.
[인명록]이 개방된 초기에는 몰랐던 기능이 하나 있다. 직접 유령손을 갖다 대지 않아도 나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정보가 등록된다는 것.편할 땐 편한데 이렇게 잔뜩 쌓인 걸 볼 때면 스팸 메일을 보는 기분이다.
‘RP라도 주면 몰라.’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죄다 닫아버렸다.
「알폰소 아인베르크와의 관계를 개선하였습니다.」
「5,000RP를 획득하였습니다.」
「업적, ‘가족 같은 사이’를 달성하였습니다.」
「5,000RP를 획득하였습니다.」
‘오.’
알폰소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그래, 내가 이 정도 해줬는데 여전히 ‘우호’ 관계면 섭섭하지.
내친김에 스탯, 스킬창도 확인해보려 하는데 알폰소의 마비가 거의 풀린 것 같았다.
“아아, 아에이오우, 아에이오우.”
입을 푼 녀석이 나를 바라봤다.
“왜 그러신 거죠?”
“어쩌다 보니.”
“근데······ 그 불체포특권을 발휘해도 다시 잡혀갈 수 있는 거였나요?”
알폰소가 몰라서 민망하다는 듯한 어투로 물었다.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 중앙 정치에서 소외된 귀족들은 대부분 모를 테니까. 왕족이 불체포특권을 사용하면 절대 기무대나 치안대에 못 끌고 간다고 아는 인간이 태반일 거야.”
“그럼, 저 다시 잡혀가나요?”
불체포특권을 무효화 하려면 왕실위원회 의결정족수인 과반이 출석하고 그 출석한 이들 중 반이 찬성표를 던져야 한다.
즉 이론적으로 1/4만 있어도 무효화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대충 왕실위원회의 40% 정도가 1왕자를. 35% 정도가 2왕자를 지지할 거다. 어느 쪽이든 나를 엿 먹이는 게 가능하다.
‘그리고 쉽지.’
나를 엿 먹이려는 쪽의 반대편이 나를 도와줄 이유는 딱히 없으니까. 아마 귀찮아서 출석도 안 할 거다.
그런 사실들을 자세히 설명해줬다.
“······ 시간을 번 거네요.”
“왜, 불만이야?”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 근데 진짜 왜 도와주셨습니까?”
“나도 몰라, 묻지 마.”
“······ 이제 어쩌죠?”
“지금부터 생각해 볼 거야.”
잠시 멀뚱히 서로를 바라봤다.
그러다 알폰소의 입이 먼저 열렸다.
“딱 하나, 진짜 딱 하나만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뭘?”
“저번에도 한 번 물어봤던 건데······ 제가 아인베르크인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 유모랑··· 닮았어.”
말해놓고도 빈약한 답변에 녀석의 시선을 피했다.
“알고 있습니다. 하나도 안 닮은 거.”
“유모랑은 정확히 무슨 관계인데?”
알려면 알 수 있었다.
RP를 사용할 가치를 못 느껴서 확인을 안 해봤을 뿐. 오늘 같은 폭탄이 떨어지기 전에 RP를 사용하는 건 최대한 피해야 한다.
선제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수련할 스킬을 익힐 때. 가까우면 사촌, 멀면 육촌 동생이겠지. 그 정도 생각하고 말았었다.
“제가 아인베르크인 건 아시면서 그건 또 모르시네요? 첫째 누님이셨습니다.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출가하셔서 얼굴은 초상화로만 뵙네요. 제가 가문의 막내였거든요.”
알폰소, 막둥이였구나.
근데 유모랑 나이 차가······ 아인베르크의 가주, 강한 남자였었구나.
근데 남매인데 어떻게 저렇게 닮은 구석이 없을 수 있지? 있다면······ 눈동자가 푸른색인 것 정도? 참고로 왕국민 다섯 중 하나가 푸른 눈일 거다.
내 생각이 보였는지 알폰소가 답을 해줬다.
“저는 아버지가 그······ 이혼 후 새장가 가신 뒤 얻은 아들입니다.”
외탁했구나. 아카드처······ 아니다, 재수 없으니까 그 녀석의 이름은 이제 언급하지도 말자.
알폰소가 숨겼던 이야기를 꺼내니 나도 입 싹 닫고 있기가 좀 그랬다. 자세히는 그렇고, 녀석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만 알려주기로 마음먹었다.
“4왕자한테 머리통 깨지던 날. 성자, 성녀들이 받는 성흔 비슷한 걸 받았다고 생각하면 돼.”
제한적이라지만 미래를 볼 수 있고, 사지가 떨어져 나간 인간의 몸도 회복시키는 등의 불가사의한 이적을 일으키는 이들.
“성흔이요? 성흔을 받으면 마나를 사용하지 못하는 몸이 되는 걸로 아는데요. 그리고 능력을 사용한 뒤에는 엄청난 대가가 필요한 걸로······.”
그런 능력을 펑펑 써대는 건 당연히 말이 안 된다.
“그러니까 비슷한 거라고 했잖아.”
“그리고 성흔은 보통 손등이나 이마에······.”
“가슴골과 허벅다리에 생긴 성흔도 있었어. 네가 내 엉덩이까지 본 건 아니잖아?”
“서, 설마 마······ 아닙니다. 다시 왕실기무대에 끌려가도 입 닫고 있겠습니다.”
저 자식, 내가 마족과 계약했다고 생각한 게 틀림없었다.
“어쨌든 마족과 계약한 거 절대 아니니 안심해도 좋아.”
나의 단언에 녀석이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후······ 이거 나중에 진짜 엉덩이에 문신 새기는 일이라도 생기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분위기도 어느 정도 유해졌겠다, 이제 잡소리 말고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눌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도치 않게 북부해방군과 엮여버렸어. 알고 있는 거 다 말해. 그리고 너에 대한 것도. 어차피 알려고만 마음먹으면 다 알 수 있으니까 숨기지 말고.”
“그럼 왕자님 능력으로는 알아내면 되시지 않습니까?”
“그렇게 편리한 능력이 아니야. 성흔이랑 비슷하다고 했잖아. 나도 대가가 필요해. ”
“대가요?”
“있어, 그런 거.”
예를 들면 너와 친해져야 한다는 얘기는 좀 하기가 그랬다.
“······.”
근데, 녀석이 갑자기 상념에 잠겼다.
무슨 생각하는 거야.
설마!
“마족 아니라고. 그것들은 대부분 인간, 특히 어린 애들과 처녀의 피를 탐하는 걸 모르진 않겠지? 내가 그럴 시간이 없었던 거 지켜봤을 거 아냐.”
“아, 그런 생각 안 했습니다. 왕자님 옆에 딱 붙어 있었으니 잘 압니다. 물어보신 거에 대해 이야기하죠. 어디까지 알고 계시죠?”
“일단 너에 대해선 조지 따위는 우습게 때려눕힐 수 있었는데, 실실거리면서 처맞았다는 것. 독에 조예가 있다는 것. 분명 내 침실에 머리맡에 [아늑한 악몽] 같은 독화가 있는 걸 알고 있었을 텐데도 방치했다는 것. 아인베르크 가문의 막내였다는 것과 북부해방군 소속이라는 건 방금 네 입을 통해 알았네.”
“······ 북부해방군 소속이란 걸 모르고 계셨단 건 의외네요. 몰락한 북부 귀족 가문의 생존자 중 절반 이상이 북부해방군 소속인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북부해방군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다면. 더 나아가 몰락한 북부의 세력을 다시 끌어모을 수 있다면.
1왕자, 2왕자 어느 쪽에 붙느냐에 따라 누가 왕이 될지 결정하는 킹메이커 정도의 위상은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유령왕자에서 킹메이커라······.’
이무기. 아니, 실지렁이가 용으로 승천하는 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