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23)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23화(23/203)
023
리오넬 왕국의 북부.
사람이 살기 좋은 땅이라곤 할 수 없다. 아껴먹지 않으면 굶어 죽을지도 모를 만큼의 작물 소출량, 겨울만 되면 그걸 노리고 침략해오는 야만인들. 그렇다고 천연자원이 많은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의문이다.
‘왜 하믈 제국이 북부를 침공했을까?’
그것도 역병이 휩쓸고 지나간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땅을 말이다. 가뜩이나 땅덩어리가 넓어 제대로 관리도 안 되는 놈들이.
┕ 하믈 제국이 5년 전에 리오넬 왕국의 북부를 침공한 이유는?
「보유하신 RP로는······.」
당연히 [도서관]의 사서인 지니에게 물어봤었다. 얼마나 대단한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 더 궁금해질 뿐.
여유가 되면 천천히 알아볼 생각이다.
북부 전역이 하믈 제국에 병합된 것은 아니다. 그건 북서부. 아직도 북동부지역은 건재······ 는 아니고 겨우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기존 전력 대비 한 20% 정도?
그래도.
‘그 정도만 돼도 고춧가루 뿌리기는 충분하지.’
“왕자님? 대화하다 말고 갑자기 왜 웃으세요?”
이런,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서둘러 표정을 바로 하고 알폰소에게 물었다.
“잠깐 생각할 게 있었어. 궁금한 게 있는데, 북부인들이 1왕자나 2왕자에 갖는 감정은 어때?”
대충 짐작은 하지만, 현지 출신에게 듣는 생생한 정보가 궁금했다.
“최악이죠. 당연한 거 아니에요? 하믈 제국이 침공할 때 동부와 남부가 합심해서 중앙군의 파병을 반대했는데.”
동부는 2왕자,
남부는 1왕자의 지지 기반이다.
서부?
서부는 동부, 남부처럼 정치싸움을 할 여력이 없다. 북부 못지않게 팍팍한 영지가 많다.
거대한 산맥들이 서부에서 대륙으로 가는 이동길을 요소요소 틀어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 서식하는 몬스터, 마수들이 수시로 내려온다. 매년 붉은 달이 뜨는 시기에는 몬스터 웨이브라는 연례 행사도 있다.
그나마 산맥 사이사이 뚫려있는 육로가 있긴 한데, 그곳에는 이종족들이 자리 잡고 있어 그들과의 분쟁도 잦은 편이다.
그런 탓에 리오넬 왕국은 사실상 반도 국가나 마찬가지다.
풍비박산 난 북부, 그리고 저주받은 입지의 서부. 두곳과 달리 곡창 지대인 남부와 해상 무역이 발달한 동부는 상황이 좋은 편이다.
하긴, 그러니까 서로 1왕자네, 2왕자네 하며 정치싸움이나 하고 앉아있는 거겠지. 당장 먹고살기 바빴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나는 알폰소에게 가장 궁금한 걸 물었다.
“북부인들은 나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
“왕자님이요? 으음··· 보통은 자기를 길러준 유모도 건사하지 못한······.”
말을 흐리는 알폰소.
“유약한 왕자라고 생각하죠.”
순화해서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다.
북부인들은 말이 험하기로 유명하니까 아마 애시끼, 병신 뭐 그렇게 칭하지 않았을까?
“사실 언급 자체가 별로 없어요. 어떤 기대도 없다는 게 정확하죠. 5년 전 숙청 때 왕자님이 죽은 줄 아는 사람이 반일걸요? 그리고 솔직히 북부의 검이었던 베이른 후작의 피가 흐른다지만, 마경 같은 왕궁에서 살아남기도 힘든 왕자님한테 뭘 바라면 그게 미친놈이죠.”
관심보다 무관심이 더 무섭다던데. 그 말이 체감되었다.
내 표정이 씁쓸해 보였는지 알폰소가 위안이랍시고 한 마디 더했다.
“아! 정신이 좀 오락가락하는 할망구가 베이른 후작가의 피가 흐르는 왕자님을 모셔와 북부의 공왕으로 옹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게 기억나긴 하네요.”
“정신이 온전치 않다는 얘기를 뺏으면 좀 더 좋았을 텐데.”
“아, 상태가 안 좋을 때 한 얘기입니다.”
나는 미간을 찡그렸다 입을 열었다.
“그 이야긴 이제 그만하고, 북부해방군에 대해 말해봐. 어떻게 가입했고, 거기서 뭘 했는지.”
내 물음에 알폰소가 콧등을 긁으며 살짝 망설였다.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금방 눈치챘다.
“북부해방군이 흑마법사나 마족의 계약자들이 하는 짓거리를 한 게 아니라면 최대한 피해가 안 가는 방향으로 사태를 해결해 봐야지. 그리고 아까도 말했다시피 알려고 하면 알 수 있어.”
RP만 충분하다면, 이란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최대한이요?”
“내 목숨이 걸리면 장담은 못 한다는 말이야. 왜, 알폰소 너에게는 목숨보다 북부해방군의 존속이 더 중요한가?”
“그래야 제가 죽어도 저희가 받은 고통을 원수 놈들에게 똑같이 돌려줄 수 있을 테니까요.”
실눈 사이로 보이는 알폰소의 푸른 눈이 지극히 차가웠다.
“걱정하지 마. 북부해방군이 못하면 내가 해줄 테니까.”
“······ 왕자님이요?”
나와 알폰소는 한동안 말없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녀석의 눈동자에 유모가 처형되었단 소식을 전해 듣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벌벌 떨며 복수를 다짐하는 어린 유령왕자가 비쳤다.
알폰소는 내게서 무엇을 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복수를 다짐하는 과거의 자신을 보고 있을까?
갑자기 녀석이 픽 웃었다.
“약속하신 겁니다.”
“왜, 혈서라도 써줄까?”
“그럼 좋죠.”
「알폰소 아인베르크가 당신을 주군으로 인정하였습니다.」
「10,000RP를 획득하였습니다.」
「업적, ‘군주의 첫걸음’을 달성하였습니다.」
「10,000RP를 획득하였습니다.」
팡파르가 터지는 듯한 연출과 함께 떠오른 알림창들. 사람과 마주할 땐 최대한 대화에 집중하지만, 이건 시선이 절로 갈 수밖에 없었다.
이왕 본 거 알폰소의 상태창도.
[관계 : 가신]진한 녹색의 글씨. 역시 내가 예상했던 대로 ‘신뢰’ 다음은 군신과 관련된 관계가 맞았다.
‘첫 가신이 알폰소라니······.’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확실한 건,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나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혈서는 네가 써. 지장 정도는 찍어줄 테니까.”
“읔, 제가 피를 얼마나 무서워하는지 모르셔서 그러십니다.”
나는 슬쩍 유령손을 움직여 녀석의 스킬창을 열어봤다.
━━━━━━━━━━×
.
.
.
[독초학] [해부학] [은신] [고문].
.
.
━━━━━━━━━━
감춰왔던 [?]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드러났다. [해부학], [고문]이 눈에 띄었다.
피가 무서워?
‘입에 침이나 바르고 말하는 건지.’
다른 것들도 쓱 보니 북부해방군에서 뭘 배웠는지 굳이 안 들어도 될 것 같았다. 북부해방군이 후에 암살자 길드로 업종 전환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
녀석이 마음만 먹었으면 눈치채지도 못한 사이에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시 목 주변이 서늘해졌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웃기지도 않은 연극은 그만하고, 북부해방군 이야기나 해봐. 내가 제일 궁금한 건 지도자가 누구인지야.”
“제 스승님이셨습니다. 베이른 후작가의 눈과 귀였던, 새턴 자작가의 생존자셨죠.”
“이셨다?”
“제가 왕궁에 잠입하기 직전에 돌아가셨습니다. 북부를 휩쓸었던 그 저주받을 역병, 어둠꽃열병의 후유증으로요.”
“그럼 현재는······.”
“공석입니다.”
“공석이라고?”
“네, 지금은 간부회의를 통해 북부해방군의 대소사를 결정하고 있습니다.”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하나였다.
‘개판이겠네.’
원래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법이다.
***
왕실기무대 정보부 수석 서기, 밀로아 백작은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외투를 챙겨 바삐 발걸음을 놀렸다.
목적지는 토파즈궁, 1왕자의 거처였다.
“어서 오십시오, 밀로아 백작님.”
“왕자님은?”
“기다리고 계십니다.”
밀로아는 시종의 안내를 받아 접객실로 향했다. 리오넬 왕국의 1왕자, 루카스 리오넬이 초코 쿠키를 씹으며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 밀로아. 어서 와. 다들, 둘이 편하게 이야기 좀 하게 나가 있어.”
“넵, 왕자님.”
토파즈궁의 사용인들, 그리고 그의 호위기사가 일언반구 없이 자리를 비켰다. 익숙한 표정들이었다.
루카스 앞에 앉은 밀로아는 다리를 꼬고 앉아 그를 바라봤다.
짧게 친 흑발에 떡 벌어진 어깨.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인데도 호탕하게 웃고 있는 것 같은 얼굴. 피부만 까맸다면 처음 본 사람은 농사짓는 순박하고 시골 청년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많이 잘생긴.
“5왕자가 불체포특권을 행사했어.”
“오! 나도, 다미안 녀석도 못 써본 걸 막내가 썼다고? 그것도 시종 때문에? 그렇게 막 쓰라고 있는 게 아닌데 말이야.”
루카스가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밀로아에게 되물었다.
“누구는 짜증 나 죽겠는데, 누구는 아주 신나 보이네.”
밀로아의 히스테릭한 말투에 그는 서둘러 표정을 바로했다.
“미안, 미안. 근데 막내 녀석한테 적당히 까불라고 경고한다며 희희낙락하더니 제대로 물 먹었네?”
“안 그랬거든!”
버럭 외친 밀로아는 오른손으로 가슴팍을 뒤졌다. 루카스는 그녀가 꺼낸 담배곽을 냉큼 낚아챘다.
“여긴 금연이야.”
“아, 미안. 습관적으로. 돌려줘.”
“쯧, 이걸 대체 왜 피는 건지. 그렇게 좋아?”
“피지 마. 나도 곧 끊을 거야.”
금연이란 말에 루카스는 코웃음을 쳤다. 10년 가까이 듣고 있는 말이었다.
“그럼 지금 끊으면 되겠네. 이건 압수.”
“아, 돗대인데······.”
루카스는 울적해진 밀로아를 바라보며 건치를 드러내고 웃었다.
“그나저나 요즘 막내 녀석 소식이 꽤 자주 들리네. 얼마나 변했길래 그러지? 듣기로는 기사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검술에 재능이 있다며? 찾아가서 지도 대련을 한번 해보고 싶어지네.”
“하지 마. 안 그래도 망나니 새끼 암살당한 일로 뒤숭숭하니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얌전히, 일정표대로만 움직여.”
“것 참, 막내 지도 대련 한 번 마음대로 못 가나. 그거 우리가 한 짓도 아니잖아. 아니면······ 혹시 나 몰래 한 거야?”
웃고 있는 루카스의 눈에 날카로운 빛이 번뜩였다.
“아니야! 그러니까 분위기 잡지 마.”
“아, 혹시나 해서 말이야. 그거 역시 다미안 짓인 거 맞지? 나중에 이 형님이 혼을 내줘야겠어. 어떻게 친동생에게, 어우.”
“형님은 무슨. 겨우 한 달 일찍 태어났으면서. 그것도 왕비님이 조산해서 그렇게 된 거잖아. 어쩌면 네가 2왕자였을지도 몰라. 예전에 그것 때문에 왕비님이 지저분한 소문에 휩싸였던 거 생각하면 진짜. 정작 불타는 사랑을 한 건 2왕비인데 말이야.”
“그럴 수 없어서 내가 힘 좀 썼지, 하하하.”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신생아처럼 머리를 징그럽게 꿈틀대는 루카스. 밀로아는 그 모습에 오만 정이 다 떨어질 것 같았다.
“하지 마. 토할 거 같으니까.”
본인이 생각해도 조금 과했다고 생각한 루카스는 헛기침하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잡담은 그만하고, 그래서 5왕자가 행사한 불체포특권을 무효화시켜달라고 찾아온 거야?”
“설마 일개 시종에게 불체포특권을 행사할 줄은 상상도 못 했어.”
“일개 시종을 위해 행사한 불체포특권을 무효화시키려고 왕실위원회 의원들을 소집하는 건 꼴이 좀 그런데? 엉덩이가 무거운 양반들인 거 잘 알잖아.”
“가만히 있어도 꼴이 우스운 건 마찬가지야. 시간이 지나면 유령왕자가 4왕자에 이어 1왕자를 엿 먹였다는 소문이 쫙 퍼질걸?”
말하는 도중 무의식적으로 엄지를 이빨로 잘근 깨무는 밀로아. 그걸 본 루카스는 피식 웃었다.
분해 죽을 것 같을 때 하는 버릇이었다.
“좋아, 알았어. 왕실위원회 양반들에게 연락을 돌려줄게. 밀로아, 너. 나한테 빚지는 거다.”
“고마워. 우리가 2왕자 쪽보다 조금 앞서는 게 사실이지만,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는 작은 차이야. 변수가 될지도 모르는 것들은 미리미리 다신 까불지 못하도록 콱 눌러놔야 해.”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주저리 떠들던 밀로아는 불현듯 열이 치솟아 올랐다.
“아, 생각해보니 왜 내가 빚지는 거야? 이게 다 너를 위해서지 나를 위해서야? 응? 응?”
“됐어, 이미 고맙다고 했어. 무르기 없어.”
키득거리며 웃는 루카스.
문득,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막내 녀석이 이번에도 무사히 넘어간다면 어떻게 할 거야?”
“흥. 절대로 그럴 리 없어. 내가 그렇게 만들 거야.”
단언하는 밀로아에겐 미안하지만, 루카스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꽤 재미있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