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27)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27화(27/203)
027
에메랄드궁으로 돌아온 에반과 알폰소.
둘은 서재로 직행했다.
“피곤해.”
에반은 프란과의 대화에 기력을 전부 소진한 탓에 머릿속이 안개가 낀 것처럼 몽롱했다. 그는 털썩, 쓰러지듯 소파에 몸을 던졌다.
축 늘어진 고양이 같은 자세로 멍하니 있던 에반은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
“알폰소, 거기 책상 서랍에서 초콜릿 좀 줘.”
“넵.”
알폰소는 서랍을 열어 초콜릿을 한 움큼 손에 쥐었다. 책상 한편에 가지런히 쌓여있는 마법서가 그의 시선을 끌었다.
‘설마 마법을 익히고 계실 줄이야.’
마법사가 아님에도 마법을 공부하는 이들은 있다.
마공학자.
지적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저 이해할 수 없는 마법서를 공부하며 희열을 느끼는, 가끔 말도 안 되는 문명의 이기를 탄생시키는 괴짜들.
에반도 그런 부류인 줄 알았다.
‘또 뭘 숨기고 계십니까?’
왕실기무대 감찰부가 들이닥쳤던 그 날, 알폰소는 에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다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북부해방군과 관련된 것들이 주요한 화제. 두 사람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낄 틈은 많이 없었다.
‘그래도 그렇지, 마법을 사용하시는 것 정도는 말해주지.’
정말 까도 까도 끝이 없는 양파 같은 왕자님. 알폰소는 약간의 섭섭함을 숨기며, 에반에게 초콜릿을 건넸다.
“고마워.”
초콜릿을 입에 털어 넣고 오물거리는 에반의 눈동자에 점차 생기가 깃들었다.
“이제 좀 살겠네.”
에반이 기운을 좀 차린 것 같다고 느낀 알폰소는 마차를 몰고 오는 동안 계속 궁금했던 질문을 입 밖으로 꺼냈다.
“왕자님, 아까 꼬맹이한테 왜 그런 질문을 하신 건가요? 미녀 마법사? 9번 절하기? 무슨 및······ 아니, 하여튼 왕자님을 이상하게 쳐다봐서 조금 민망했습니다.”
“네가 가져온 마법서. 뭐였더라······ 그래, [발화]를 다루던 마법서 『불의 근원』. 거기에 숨겨져 있던 메시지의 주소가 아까 그 저택이고, 아까 내가 물어본 대로 하면 제자로 받아줄 뉘앙스였어. 프란 님의 제자가 있길래 정말 그걸 했는지 궁금해져서 물어본 거야.”
“······.”
마법사들이 진흙 속 진주 같은 인재를 발견하기 위해 기초 마법서에 숨겨놓는다는 메시지. 그걸 발견했었을 뿐이라고 담백하게 고하는 에반의 말에 알폰소는 잠시 입을 뗄 수 없었다.
과거, 알폰소는 특유의 광기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에반은 천재라는 부류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는 그때 자신의 안목을 저주했다.
천재들이 모이면 그중에서도 유별난 천재가 있을 테지. 광기를 가진 이들 사이에서 유별나다면?
‘오히려 정상인 같아 보일지도······.’
그렇게 이해한 알폰소는 왜 ‘코어’를 만들어 스스로 족쇄를 채웠냐는 질문은 하지 않기로 했다.
본디 ‘코어’를 익힌다는 것은 검술, 마법사 둘 전부에 재능이 없는 자들이 하는 선택. ······ 아니면 돌팔이한테 속았거나.
검술의 재능, 마법사의 재능.
둘 다 천부적인 자질을 가진 에반의 결정이니 분명 옳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알폰소는 조용히 지켜보기로 마음먹었다.
변화무쌍한 알폰소의 표정을 본 에반은 그가 뭔가 심각한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나는 ‘코어’를 이미 만든 상태였기에 마법서에 숨겨진 메시지를 볼 수 있었던 거야. 그게 무슨 의미냐면 본래는 2차원으로 표현된 술식을 머릿속에서 설계······.”
알폰소는 이해할 수 없는 용어들로 변명하는 에반을 보며 싱긋 웃었다.
“괜찮습니다. 앞으로 또 어떤 일로 놀라게 될지 기대됩니다.”
“그러니까 이미 마력을 다루는 상태로······ 하··· 아니다. 네 맘대로 생각해라.”
에반이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알폰소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프란이 마법서에 숨겨놓은 메시지. 마력을 깨우치고 있는 것과 별개로 풀 수 없는 게 정상이었다.
적탑에서 마법을 수학한 프란.
그녀는 과거 모종의 이유로 억지로 억지로 등 떠밀려 적탑의 기초 마법서 몇을 수정, 재발간하는 일을 맡은 적이 있었다.
그 분풀이로 『불의 근원』과 같은 기초 마법서에 말도 안 되는 난이도의 문제들을 몇 개 집어넣었었다.
그리고 초본이 만들어진 후,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슬그머니 삭제했었다.
그 초본을 알폰소가 에반에게 전달했었던 거다. 공짜로 가져올 수 있다는 이유로.
에반은 토네이도가 휩쓸고 지나가 폐허가 된 오두막집을 원래 모습을 본 적도 없는 상태에서 똑같이 복원해 낸 것과 마찬가지였다.
아직 마법에 입문한 지 얼마 안 된 에반. 『불의 근원』에 있던 메시지를 발견한 후 문제 풀이 흥미를 잃었던 그가 그 사실을 모르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
“······ 2차원의 술식을 3차원으로 만드는 구축이 가능하다면, 누구든 문제를 풀었을 거라는 이야기야.”
“괜찮습니다. 앞으로 또 어떤 일로 놀라게 될지 기대됩니다.”
“그러니까 이미 마력을 다루는 상태로······ 하··· 아니다. 네 맘대로 생각해라.”
나는 설득을 포기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도 피곤했을 텐데 좀 앉아있어.”
부담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알폰소에게 자리에 앉기를 권했다.
“전 서 있는 게 편합니다. 진짜로요. 어디서 암기가 날아와도 바로 대응하기 편하거든요.”
“뭐, 마음대로 해.”
나는 그렇게 말하며 알폰소의 상태창을 힐끔 살폈다.
곧 있으면 불체포특권 무효화를 위한 청문회라는 대형 폭탄이 머리 위에서 떨어지고 있는 판이라 녀석의 과거를 자세히 물을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상태창에 보이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알폰소 아인베르크.
한 달만 지나면 19살.
스킬창 한가득한 암살자의 기술.
심지어 익히고 있는 마나연공법은 독초를 이용해 속성으로 성취를 늘리는 부류. 아, 이건 본인에게 들었다.
‘누가 누구보고 코어를 생성했냐고 기겁해.’
나는 프란의 저택에서 보였던 알폰소의 반응을 기억하며 혀를 찼다.
독초를 이용한 것 말고도 속성으로 성취를 늘리려는 마나연공법의 공통점이 있다. 뒤로 갈수록 성취를 이루기가 기하급수적으로 힘들어진다는 것.
거기서 끝이 아니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의 연료가 몇 배는 빨리 다는 것처럼, 수명을 갉아먹는다.
나는 품에서 프란이 건네준 베이른 마나연공법을 꺼냈다. 이것의 가치는 [스킬창]에서 검색하면 바로 확인해 볼 수 있다.
[베이른 마나 연공법] – 100,000RP [베이른 마나 연공법] – 500,000RP같은 이름의 두 가지 [베이른 마나 연공법].
전자가 기존 베이른 가문의 것.
후자가 지금 내가 들고 있는, 외조부가 개량한 것의 가치라고 짐작한다.
예전에 저게 왜 두 개로 나누어져 있을까 고민만 해보고 답을 못 찾았었다. 프란에게서 마나연공법을 받고 나서야 드디어 답을 알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전생의 가치로 50억에 가까운 마나연공법을 외조부의 핏줄인 내게 쾌히 돌려준 그녀의 도량에 놀랍기도 하다.
문제는······.
‘계륵이네.’
내가 익힐 수는 없다.
파는 건 당연히 안 된다.
알폰소에게 익혀보라고 할 수도 없다.
속성으로 익히는 마나연공법들은 몸 안에 자리 잡은 폭탄과 마찬가지라서 정도를 걷는 마나연공법으로 바꾸려 하면 터져버린다. 비유가 아니라 실제라 심장이 펑!
“지금 뭔가 갑자기 기분이 나빴습니다. 갑자기 심장이 저릿한 것 같기도 하고.”
눈치는 빨라 가지고.
나는 장난삼아 녀석에게 베이른 마나연공법을 내밀었다.
“익혀볼래?”
“죽으라는 말을 너무 돌려서 말씀하시네요. 1, 2성 정도라면 모를까 4성의 성취를 이룬 제가 익히면 즉사입니다. 분명히.”
“쯧, 아인베르크 마나연공법을 진득이 수련하지 왜 바꿔서.”
“저도 아쉽네요. 하지만 저에게도 사정이 있었습니다.”
하긴, 사연 없는 무덤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일단 잘 보관해두기로 하고 베이른 마나연공법을 다시 품에 넣었다. 언젠가 다시 꺼낼 날이 오겠지.
“저한테 맡기시죠. 안 잃어버리고 잘 보관하겠습니다.”
“행여나. 마법서 사라고 줬던 활동비나 다시 가져와.”
“쩝, 생각해보니 제가 보관하기에는 너무 가치 있는 물건 같습니다. 잘 보관해두시죠.”
입맛을 다시며 나의 시선을 피하는 알폰소.
프란과의 대담 이후 가출했었던 기력이 돌아왔고, 이제 다시 머리 아픈 이야기를 할 때가 된 것 같았다.
“대화가 생각보다 잘 풀린 거 같아 다행이야.”
“다 북부의 검 덕분이죠. 프란 님이 말을 전달해주는 것만으로도 왕자님의 계획이 탐탁지 않을 간부들한테 한 번 더 생각할 기회를 줄 겁니다.”
“그래.”
시작부터 프란과의 관계가 ‘우호’였기에 자신감을 가지고 거침없이 나불댈 수 있었다. 속으로 그녀를 친우로 두었었던 외조부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럼 다음은 이제 북부해방군의 연락을 기다리면 되는 건가요?”
나는 알폰소의 말에 한심스럽다는 듯이 녀석을 바라봤다.
“청문회는 이르면 다음 주에 열리게 될지도 몰라. 그전까지 멍하니 연락만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어.”
“그럼 뭘 하고 있나요?”
“이것저것 미리 준비해 놔야지.”
“이것저것요? 그런데 채 준비가 끝나기 전에 청문회가 열리면 어떻게 하죠? 시간이 너무 촉박한 거 아닙니까?”
“드러누워야지.”
“네?”
“죽기 일보 직전인 인간보고 나오라곤 안 할 거 아니야. 꾀병은 어림도 없으니까 조금 위험한 독약이라도 마셔서 시간을 벌어야지.”
전생이든 현생이든 많이들 써먹는 수법.
단, 전생과 달리 현생은 인간의 치유력을 터무니없이 끌어올릴 수 있는 신관들의 존재 탓에 어설픈 꾀병은 통하지도 않는다.
“그래, 유명한 칠보초의 독 정도면 되겠어.”
칠보초.
하믈 제국의 한 마경에서 자생하는 독초.
물리면 일곱 번 걷기 전에 죽는다는 극독을 지녀 칠보초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 정도 독 때문에 쓰러지면 청문회를 연 1왕자 쪽도 인정할 거다.
알폰소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 죽을 수도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 그럴 거라는 말이야. 혹시 그런 상황 올지 모르니까 죽지 않을 정도로 해독약을 미리 준비해둬야지.”
“살아나도 후유증이 심하게 남습니다. 예를 들어······ 미각을 상실하는 것처럼요.”
“······ 너, 먹어봤구나.”
“해독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미 가지고 있거든요.”
프란과의 대담 때, 북부해방군의 능력이 뒤떨어지면 어쩌나 했던 건 쓸모없는 걱정이었던 것 같다.
수련을 위해 칠보초를 거리낌 없이 먹여대고 먹는 인간이 있는 집단을 향해 그런 걱정을 한 건 실례였다.
“잘못 주워 먹었습니다. 스승님이 기겁하셨었죠.”
······ 저 자식이 사람을 가지고 노나.
아, 그러고 보니 잘못 주워 먹어서 미각을 잃었다고 했던 게 기억나긴 했다. 하도 연기를 잘해서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은 잘 안 되지만.
“그 이야긴 됐고, 언제 올지도 모를 연락을 기다리면서 손 놓고 있을 순 없어. 미리미리 준비해 놔야지.”
“근데, 뭐부터 준비해야 하죠?”
나는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다가갔다. 서럽을 열고 처박아뒀던 텔리스톤을 꺼내 들었다.
“어디랑 교신하시려고요?”
“클리앙 백작.”
2왕자의 왼팔, 왕실재정부의 수석 서기관.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고요?”
“지금 몇 시지?”
“어······ 5시 50분. 좀 있으면 저녁 식사 시간이네요.”
칼 같은 인간이라 업무 시간 외에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들었다. 알폰소에게 대답해줄 여유는 없었다. 나는 서둘러 클리앙 백작과의 교신을 시도했다.
「클리앙 백작입니다. 무슨 일이시죠? 분명 당분간 자중해주십사 부탁드렸었는데 말이죠. 퇴근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 10분 안에 본론만 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인간은 영 인간미가 없다.
“1왕자 형님을 지지하는 왕실위원회 의원을 끌어내려 드리죠. 관심 없으시면 끊으셔도 좋습니다. 부탁한 대로 자중하고 있죠.”
「······ 왕자님이 무슨 힘이 있어서 왕실위원희 의원을 끌어내리신다는 거죠?」
“제가 북부해방군과 긴밀한 사이라는 거 모르셨습니까? 그럼 대체 제가 왕실 재판 때의 정보를 어디서 가져온 거로 생각하셨던 겁니까?”
「······.」
침묵하는 클리앙 백작.
대화를 듣고 있던 알폰소의 눈이 뜨였다. 동공이 보일 정도면 정말 크게 놀란 눈치.
– 북부해방군과 언제 그렇게 긴밀한 사이셨죠? 약속도 안 잡았는데요?
마치 그렇게 묻고 있는 것 같았다.
곧 그렇게 될 거니 상관없어, 라는 의미의 눈빛을 보내줬다.
– 만약 북부해방군이 왕자님의 계획에 동참하지 않으면 뒷감당을 어떻게 하시려고!
그런 의미인지 동공이 거칠게 흔들리는 알폰소.
아, 귀찮은 녀석.
북부해방군이 나의 계획에 동참을 거부하는 순간 이미 속된 말로 X된 거다.
‘이미 호랑이 등을 타고 있는 거지.’
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프란은 합격점을 준 [에반식 아가리술]. 클리앙 백작, 당신은 어떨까?
「하필이면 지금 시간에. 후······ 말씀해보시죠.」
일단 합을 맞춰볼 의향은 있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