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29)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29화(29/203)
029
그녀는 이름이 없다.
정확히는 북부의 몰락과 함께 쓰러진 가문을 재건하기 전에는 본래의 이름을 잊고 살아가자 다짐했었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지칭할 이름은 필요하기에 그녀가 이쁘다고 생각하는 가명인 루나라고 불러달라 부탁하곤······.
“오, 제인인가. 알폰소랑 같이 왕궁에 잠입했다고 들었었는데, 언제 돌아온 거냐?”
그녀는 시골 남작령의 마을마다 한두 명씩 있는 노파의 이름으로 자신을 부른 산적을 찌릿 째려보았다.
“응? 제인이 아니었나? 뭐였지?”
“루나. 원래는 케이트였는데, 뭔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왕궁으로 잠입하기 전에 바꿨었잖아.”
“아! 그랬지. 미안하다.”
여마법사의 말에 산적이 이마를 탁, 쳤다
“다음부터는 주의해주세요.”
새초롬한 표정으로 산적에게 부탁한 루나는 여우가면을 힐끔 바라봤다.
북부해방군의 리더였던 스승의 혈육.
새턴 자작가의 유일한 계승자.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스승 밑에서 함께 수련한 알폰소와 그녀도 정확히 모른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저 가면을 쓰고 있었다. 얼굴을 크게 다쳤다나?
그녀와 눈이 마주친 여우가면이 말했다.
“루나, 비록 네가 에메랄드궁에서 오래 근무하진 않았지만, 왕궁에 잠입한 것 자체는 알폰소와 함께였었지. 네가 보고 들은 5왕자에 관한 걸 모두에게 들려줘.”
“어, 음. 선배가 부탁하니 못할 건 없는데, 무슨 상황인지 정도는 알려주시면 안 돼요?”
루나는 자신이 왜 간부들의 회의에 자신이 불려왔는지 알지 못했다.
왕실기무대가 알폰소를 잡아가려 한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왕궁에서 도망쳐 북부해방군의 본진으로 오는 중이었다.
도중에 국경지대에서 하믈 제국의 정찰대와 마주쳐 고전 중인 상황에서 갑자기 나타난 여우가면. 마침 잘 만났다며 정찰대를 쓸어버리고 그녀를 이곳으로 끌고 온 것이었다.
“차라리 잘 되었군.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 녀석이 말하는 게 더 신빙성이 있겠어.”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냥 네가 알고 있는 5왕자에 대한 걸 알려줘.”
산적과 안대녀는 오히려 그 상황을 반겼다. 흑의남과 여마법사도 동의하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루나가 콧잔등을 긁으며 입을 열었다.
“그, 아까 5왕자를 가까이에서 봤다고 그러던데, 멀리서 얼굴 본 게 전부예요. 변변한 소속도 없이 빨래만 주구장창 하다가 알폰소가 에메랄드궁으로 꽂아 준대서 좋다고 갔더니 거기서 설거지만······ 개새끼! 하여튼 설거지만 하다 온 게 전부라고요.”
“루나, 너도 알다시피 왕궁 안까지 잠입해있던 건 너와 알폰소가 전부야. 우리가 근래 5왕자에 대해 들은 건 왕궁의 사용인들이 외출 중 떠든 것들이 와전되고 와전된 경우가 태반이고. 네가 현장에서 들은 생생한 정보를 알려줘.”
여마법사의 부탁에 루나가 미간을 모았다.
“알폰소 녀석의 보고, 안 올라왔었어요?”
“두 달 정도 전에 ‘5왕자가 이상해졌음. 지속 관찰하겠음’이라고 올라온 게 마지막이야.”
“하여간, 게을러서는······.”
작게 투덜거린 루나.
“뭐, 좋아요. 궁금한 걸 물어보세요. 대답할 수 있는 거면 답해드릴게요.”
그녀의 말에 간부들이 질문거리를 생각하느라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산적이 가장 먼저 물었다.
“5왕자가 진짜로 4왕자를 때려눕혔나?”
“당시엔 쉬쉬하기는 했는데, 사실인 것 같아요. 알고 지내던 하녀가 두들겨 맞아서 피떡이 된 망나니 새끼가 고래고래 소리치면서 3기사단의 연무장 쪽에서 실려 오는 걸 봤다고 했었어요.”
“당시 4왕자의 성취는?”
“2성 기사였죠. 이건 확실해요. 2왕비가 성취를 축하한다며 연회를 열었었거든요.”
“으음, 궁에 틀어박혀 유령처럼 지낸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2성 기사를 일방적으로 때려눕혔다? 5왕자가 13살이었지? 검술을 등한시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소문이 거짓이었나?”
“그건, 저도 의문이에요. 궁에 잠입하고 거의 1년 동안 5왕자가 검을 수련한다는 이야기, 진짜로 한 번도 듣지 못했었거든요? 망나니한테 처맞는단 말은 몇 번 들었지만. 근데 검술을 익히고 있다는 걸 드러낸 지 한 달도 안 돼서 그 망나니 자식을 때려눕혔어요. 대체 그동안 어떻게 참고 있었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뭔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흑의남이 입을 열었다.
“자신을 감추고 있었던 거로군. 유령왕자라는 허물을 뒤집어쓴 채 말이야. 아무도, 심지어 알폰소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그게 가능한가?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 쳐도 왜 갑자기 본인을 드러낸 거지?”
안대녀의 의문점을 여마법사가 받았다.
“알폰소가 5왕자가 이상해졌다는 보고를 올렸던 그때, 허물을 벗을 순간이 되었다고 판단했던 게 아닐까? 이후 왕실 재판에서 2왕자와 손잡고 망나니 4왕자를 처리한 걸 보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5왕자만의 기준이 있었겠지.”
“그게 사실이라면······.”
“와 씨, 나 소름 돋았어. 5왕자, 알고 보니 겁나 무서운 사람이었네. 5년 전에는 8살 아니야? 그때부터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거라고?”
“설마 우리와 접촉을 시도하는 것도 어린 시절부터 다 계산하고 있었던 건가······.”
안대녀는 팔에 돋은 닭살 털어냈고 흑의남은 깊은 상념에 잠겼다.
“다른 건 몰라도 방구석 샌님은 아니었다는 건 확실하겠군. 13살에 2성 기사를 일방적으로 때렸다······ 3성에 근접했다는 얘기겠지. 뛰어난 성취야. 역시 그 피가 어디로 사라진 게 아니었나.”
산적은 잠시 눈을 감으며 거대했던 북부의 검, 리처드 베이른 후작의 등을 떠올렸다.
곧, 눈을 뜬 그가 입을 열었다.
“루나, 5왕자는 믿을 만한 사람인가.”
“어, 네? 그게 그러니까······ 아까도 말했다시피 먼발치에서······.”
“그냥 네 생각을 말해봐라.”
루나는 에메랄드궁에서 주방 보조를 하는 잠깐 사이 5왕자에 대해 들었던 이야기들을 떠올려봤다.
– 그거 들었어? 저번에 로이스가 지인이 추천해준 땅을 좀 사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한창 고민하고 있었잖아? 지나가다 들으신 왕자님이 절대 사지 말라고 했거든. 알고 보니 그거 사기였잖아. 왕자님이 사람 한 명 살리셨어.
– 저번에 우리 막내가 왕실행정학교에 입학한 거 알지? 에반 왕자님이 꼭 풀어봐야 한다고 알려준 책 있거든? 글쎄 거기서 똑같은 문제가 나왔다잖아. 그거 틀렸으면 탈락이었던 걸 생각하면 어휴.
– 대박 소식! 대박 소식! 에반 왕자님······.
– 에반 왕자님이······.
.
.
.
주방을 오가던 하인, 하녀들이 떠들던 이야기들. 기억을 더듬던 루나는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 이건 믿느냐 안 믿느냐와는 별개인데요······.”
“뭐냐? 말해봐라.”
“맞아, 뜸 들이지 말고.”
“그러니까 5왕자의 말을 듣고 손해 본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믿을만한 사람인가, 아닌가.
그것보다도 훨씬 더 북부해방군 간부들의 마음을 결정짓는 말이었다.
***
나는 알폰소와 함께 오랜만에 3기사단의 연무장을 방문했다.
내가 모습을 보이자 나를 발견한 몇몇 기사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대답으로 고개를 까딱해주고 연무장을 살폈다.
처음 왔을 때와 많이 달라졌다.
기사들의 반응도 반응이지만, 가장 달라진 건······.
“하나.”
“동기이이이이!”
“둘.”
“사라아아아앙!”
처음 3기사단 연무장을 찾았을 때 대련하고 있던 더벅머리와 대검을 사용하던 기사. 둘이 어깨동무한 채 구령에 맞춰 악을 쓰며 오리걸음으로 연무장을 돌고 있었다.
‘이야, 저 둘이 어깨동무를 다 하고 있네.’
둘 외에도 다수의 예비단원이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사이좋게 평민 출신 귀족 출신끼리 어깨동무를 한 게 싸우다 걸려 기합이라도 받는 것 같았다.
“소리가 작다! 하나!”
“동기이이이이이이!”
나는 그들을 지켜보며 눈을 부라리고 있는 기사를 바라봤다.
“둘!”
“사라아아아아아앙!”
‘선임 기사.’
왕실기무대 감찰부라는 폭탄이 에메랄드궁에 배달되기 얼마 전, 서부 지역으로 원정 갔었던 기사단장 이하 선임 기사들이 돌아온 것이었다.
“왕자님, 단장님은 안 보이는데요?”
“그러게, 네가 분명히 이 시간에는 단원들과 함께 연무장에 있을 거라고 했잖아.”
“큭, 진짜였어요. 어제도, 그제도 그랬답니다.”
“일단 기다려보자.”
나는 팔짱을 끼고 연무장을 바라보며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되새겼다.
‘베르트 리온.’
국왕의 직계를 제외한 리오넬 왕국의 왕족은 ‘리온’이란 성을 사용한다. 베르트 리온은 선대 왕의 동복동생, 나에게는 숙조(작은할아버지)라 할 수 있다.
전 3기사단의 단장이었던 그가 왕실위원회 의원 중 중립을 표방하는 6인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다.
내가 그를 직접 찾아가면, 1왕자 진영에서 눈을 부라리며 그 이유를 파헤치려 할 터. 어떻게 하면 그와 은밀히 접촉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3기사단의 연무장을 찾았다.
‘게르트 리온, 현 3기사단장이 바로 그의 아들이니까.’
그를 통해 베르트 의원과의 은밀한 접촉을 시도해보자, 그게 내 생각이었다.
‘듣던 것과 같은 인물일까?’
선대 왕을 따르던 왕당파 의원이 숙청되지 않은 경우는 크게 두 가지.
하나, 숙청하기엔 그 능력이 아까워서.
둘, 파벌싸움에 관심이 없어서.
베르트 의원은 그 둘 다에 해당한다고 알고 있다. 그는 오직 국가를 위해 움직이는 인물이라는 평이 대다수.
‘직접 보면 알겠지. 그러려면 우선 3기사단장을 만나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누군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뵙고 싶었습니다. 에반 왕자님. 한동안 안 보이시더니 드디어 오셨군요.”
“레이나 경?”
이 여자가 왜 여기에 있지?
“왕자님 덕에 기사 작위를 반납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군사재판 받을뻔했던 걸 말하는 건가?
아카드가 자작극을 벌인 게 드러나면서 소리소문없이 취소되었다고 알고 있었다.
“아닙니다. 저 때문에 레이나 경이 말려든 것뿐입니다. 사과해도 모자랄 판에 감사라니, 민망하네요”
그녀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내 위아래를 훑었다.
“수련하러 오신 겁니까?”
“아, 오늘은 아닙니다. 누굴 좀 만나려고······ 그런데, 레이나 경이 대체 왜 여기 있는 겁니까?”
“기사단 교류를 위해 파견 나왔습니다.”
그런 게 있었나?
내 눈빛에 서린 의문을 읽었는지 그녀가 답을 내줬다.
“아, 이번에 새로 생겼습니다.”
“그렇군요. 언제 돌아갑니까?”
“음······ 모릅니다. 때가 되면 부른다고 하더군요.”
뭐, 내가 알지 못하는 뒷이야기가 있을 것 같았다. 궁금하긴 하지만 굳이 따로 알아볼 정도로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그럼, 파견 나와서는 뭘 합니까?”
“2기사단에 있을 때랑 똑같습니다. 밥 먹고, 수련하고. 아! 대련도 했었습니다.”
“대련요?”
“네. 첫날 이후는 아무도 하자고 안 해서 조금 심심합니다.”
해맑게 웃으며 말한 레이나.
대련의 결과가 궁금해졌다.
“실례가 안 된다면 결과가······.”
“몇몇 분들에 고전하긴 했지만, 운이 좋아 전부 이길 수 있었습니다.”
어째서 3기사단 인원들이 레이나가 다가온 뒤로는 이쪽으로 눈길도 안 주는지 알 것 같았다.
“혹시 3기사단장님 하고도 대련 해봤습니까?”
“······ 졌습니다. 깔끔하게요.”
레이나의 얼굴에 분하다는 감정이 그대로 읽혔다.
그녀와 대화하면서 사람이 순수하다고 할까? 그런 게 느껴졌다. 때 묻지 않은 아이와 이야기하는 기분이었다.
왕실사관학교에서, 그리고 근위기사가 된 뒤에도 괴물이라 불린다기에 어떤 성격일지 궁금했는데 신선하게 다가왔다.
“음······ 수련하러 오신 거면 제가 좀 봐 드릴 수 있었을 텐데.”
귀가 번쩍 뜨였다.
내게 이런 제의를 해준 건 레이나가 처음이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시기가 좋지 않았다.
나는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요즘 좀 머리 아픈 일이 있는데, 그것만 처분하면 꼭 부탁드립니다. 꼭!”
“기대되네요. 아, 그런데 누굴 보러 오신 건가요?”
“3기사단장님입니다.”
“아, 단장님이요.”
“혹시 어디 계신 줄 아시나요?”
“아까부터 저기 계셨는데요.”
나는 레이나의 눈이 향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단단한 방패가 생각나는 중년 기사가 팔짱을 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으음······.’
어쩐지 [에반식 아가리술]을 전심전력으로 펼쳐도 흠집 하나 나지 않을 분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