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3)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3화(3/203)
003
“왕자님? 인상을 있는 대로 찡그리시면서 뭘 그렇게 뚫어지게 보세요?”
“아무것도 아니야.”
“가끔 그러실 때마다 제가 얼마나 섬뜩한지 아세요? 무슨 유령이라도 보는 사람 같습니다.”
“머리가 아파서 그래. 알아서 먹을 테니까 나가 있어.”
안 그래도 가늘던 알폰소의 실눈이 더 가늘어졌다.
“······ 왕자님. 진짜 에반 왕자님 맞죠?”
의심이 깃든 녀석의 물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생의 나는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리며 말을 흐리는 버릇이 있었다.
소심한 말투의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이 희미했던 왕자. 그런 내게 붙여졌던 멸칭이 에메랄드궁의 유령왕자였다.
“정말······ 사람이 변하신 거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말투가 180도 변해버렸다. 아마도 질풍노도의 시기가 아직 오지 않은 현생에 인격이 완성되었었던 전생을 자각한 탓.
사실 그대로 알폰소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저 녀석도 속으로는 나를 ‘경계’하는 놈이다. 바로 어디 가서 유령왕자가 드디어 미쳤다는 소문을 나불댈지 몰랐다.
뭐라고 답해줘야 할지 고민하며 턱에 손을 가져가다 멈칫했다. 생각에 잠길 때면 까슬한 턱수염을 매만지던 것 역시 전생의 버릇이었다.
현생의 에반 리오넬보다 두 배가 넘는 시간을 살았던······ 어라? 왜 전생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거지?
지끈지끈.
전생의 이름을 떠올리려고 할수록 두통이 강해졌다.
– ······씨는 참 좋은 사람 같아요.
– ······군. 안타깝게 되었네.
– ······아. 우리는 왜······.
푸욱─!
“크악!”
뇌에 칼이 박힌 듯한 충격에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끔찍한 고통. 머리를 감싸고 새우처럼 몸을 웅크린 채 침대를 굴렀다.
“끄으으으······.”
이를 악물었음에도 신음이 흘러나왔다.
“왕자님! 금방 치료사를 모셔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뿌옇게 변해가는 시야로 알폰소가 부리나케 뛰쳐나가는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녀석에게 변명을 늘어놓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위안 삼으며 의식의 끈을 놓았다.
***
찌르르르, 어디선가 들려오는 풀 벌레 소리에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의식을 잃기 전 보고 있던 알폰소의 상태창이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서 유령손이 이제 일어났냐는 듯 반갑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저런 광경을 볼 때마다 혹시 ‘자아’가 있는 건 아닐까 의심스럽다.
유령손을 이용해 상태창의 크기를 최대한 작게 만들어 시야 구석에 박아 놓은 후 창밖을 살폈다.
하늘에 걸려있는 달의 위치를 보니 야심한 새벽이었다. 별이 쏟아질 것 같은 밤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다 전생과 현생이 뒤섞여 어지러운 머릿속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은은한 두통은 있어도 의식을 잃기 전처럼 끔찍한 통증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잠시 뒤.
전생의 기억 여기저기에 구멍 나 있는 걸 깨달았다. 그중 가장 커다란 것이 이름. 도무지 전생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됐어. 이미 지나간 삶이야.’
어차피 일가친척 하나 없던 몸.
기억나지 않는 전생의 이름은 더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현생에 집중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딱 한 가지만 굳게 다짐했다.
‘후회 없는 삶을 살자.’
생각을 정리한 나는 힐끔 탁자를 바라봤다.
[아늑한 악몽]이 있던 자리를 달빛을 닮은 푸른 꽃이 대신하고 있었다. 3왕녀 아네트 리오넬. 나보다 세 살 많은 동복 누님이 좋아하는 꽃이었다.‘언제 왔다 갔지?’
최근 얼굴 보기도 힘들었는데, 내가 다쳤다는 소식은 또 어떻게 알고 다녀갔는지 의문이었다.
엄선된 교사들의 수업으로 일정이 빡빡할 터였다. 에메랄드궁에 틀어박혀 혼자 책이나 읽는 나와는 다르다.
이유야 별거 없다.
정략적인 쓸모의 차이.
누님은 타국의 왕족이나 제국의 고위 귀족, 잘하면 황족에 눈에 들 정도로 빼어난 미모를 지녔다.
왕국의 외교관들은 회의 때마다 국익에 가장 도움이 될 누님의 혼처가 어디인지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을 거다.
반면에 애물단지 그 이상도 아닌 5왕자는 적당한 시기에 죽기 딱 좋은 국경지대로 보내버릴 계획을 옛적에 세워놨을 테고.
‘아마도 5년 전에.’
왕국의 북방 국경을 책임지고 있던 나의 외가, 베이른 후작가가 몰락한 그때쯤 말이다.
눈을 살짝 감았다.
외가의 몰락 후 불과 한 달 사이에 벌어졌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 올리비아 님! 누군가 3왕녀께서 드실 음식에 독을······ 앗! 에반 왕자님! 어째서 여기에······.
처음은 누군가 누님을 독살하려 했다는 소식을 들고 온 시녀.
– 올리비아 아인베르크. 너를 왕족 독살 미수 혐의로 체포한다.
그다음은 불시에 들이닥친 왕실기무대.
유모를 비롯해 호위기사, 전속 시종들도 전부 끌고 갔었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유모의 모습이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하다.
– 왕자님, 쥐 죽은 듯이 사십시오.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그러면 목숨 정도는 건사하실 수 있을 겁니다. 아마도요. 훗.
쥐새끼를 닮은 기무대 장교가 비죽 웃으며 혼자 남은 내 귓가에 속삭였었던 말이 다시 들려오는 듯했다.
‘그 자식······.’
나도 모르게 입술을 잘근 씹었다.
목을 넘기는 침에서 비릿한 맛이 느껴졌다. 엄지로 입가에 흐르는 피를 쓱 닦고 거울을 바라봤다.
겁에 질린 얼굴을 한 당시의 내가 보였다.
비유 따위가 아니라, 진짜 하루아침에 주변 사람들의 목이 날아가 버렸다. 불과 8살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당연히 무리. 그렇게 나는 에메랄드궁의 유령왕자가 되었었다.
“쥐 죽은 듯이 살면 목숨은 건질 거라고? 그 말을 믿었냐, 등신아.”
비수 덧지듯 내뱉은 말에 상처받은 표정의 거울 속 아이. 이내 어쩔 수 없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사실은 믿지 않았다.
믿고 싶었을 뿐이지.
후계 구도가 명확해지는 시점, 그게 아니더라도 성인식을 치른 직후, 나는 살아남기 힘든 곳으로 내쳐질 확률이 매우 높다.
그래도 유령왕자로 살아온 덕에 아직은 숨을 쉬고 있다. 만약 조금이라 나댔었다면, 「고요한 밤」을 「아늑한 악몽」으로 바꿔치기하는 장난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거다.
‘진작에 비명횡사했겠지.’
지끈.
참을만했던 두통이 다시 도졌다. 인상을 찌푸리며 양손으로 관자놀이를 지압했다. 한참을 그러고 있자 서서히 괜찮아졌다.
서둘러 미래를 대비하라는 의미로 느껴졌다. 그에 부응하기 위해 시야 구석에 처박아놨던 알폰소의 상태창을 눈앞으로 끌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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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소 아인베르크
성별 : 남
나이 : 18
종족 : 인간
[스탯] [스킬] [관계 : 경계]━━━━━━━━━━━━━
‘아인베르크······.’
5년 전, 리오넬 왕국의 북부 지방에서 최악의 역병이 창궐했었다.
치사율 80%가 넘는 최악의 전염병.
온몸에 검은 반점이 꽃처럼 피어나고 뇌가 녹아버리는 고열을 동반하기에 ‘어둠꽃열병’이란 이름이 붙여졌었다.
북부를 초토화한 어둠꽃열병은 석 달이 지나고 나서야 잠잠해졌고, 역병 창궐의 중심지였던 베이른 후작령이 쑥대밭이 된 건 당연지사.
그때 하믈 제국의 군대가 남하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들려온 베이른 후작의 부고. 북부의 검이라 불렸던 외할아버지는 그렇게 허망하게 가셨다.
아인베르크는 베이른 후작가를 따르던 기사 가문. 남자 중에는 생존자가 없다고 알고 있었다.
‘살아남은 아인베르크가 있었을 줄이야.’
출신을 감춘 건 이해가 갔다.
왕족 독살 혐의로 목이 잘린 이가 올리비아 아인베르크. 대서특필되어 왕국 전역에서 떠들썩했던 일이었다.
형식상 적는 여관 방명록에조차 본인의 ‘이름’을 쓰기 전에 망설였을 거다. 그러다 결국 다른 이름을 적었을 테고.
‘왜 왕궁으로 온 거지?’
알폰소의 본래 성이 하임델이 아니라 아인베르크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목숨을 건사하기가 쉽지 않을 거다.
아니, 그전에.
어떻게 안 들키고 왕실의 사용인이 된 거지?
녀석은 하인에서 시종으로 승격한 케이스.
하인으로 뽑힐 때 한 번, 시종으로 승격할 때 또 한 번 해서 총 두 번의 검증을 거쳤을 거다. 하인으로 뽑힐 때야 썩어빠진 놈들이 워낙 많으니 돈만 많다면 가능했겠지만······.
‘시종으로 승격할 때는 달랐을 텐데.’
설마 내게 배정될 거라고 출신성분도 대충 조사한 건가?
‘유모랑은 또 무슨 사이지?’
잠시 알폰소와 유모의 관계를 고민해봤다.
아들은 아니다.
닮지도 않았거니와 유모는 어떤 사고로 남편과 아이를 동시에 잃었다고 들었었다. 그녀는 일 년에 한 번씩, 먼저 간 가족을 기리기 위해 자리를 비웠었다.
‘모르겠네.’
같은 아인베르크이니 못해도 먼 친척이겠지.
혹시라도 내게 경계를 넘어선 부정적 감정, 적의라든가 살의 등을 보이면 왕실기무대에 슬쩍 흘리면 될 일이다.
대충 그 정도 선에서 생각을 마치고 알폰소의 스탯창을 펼쳐봤다.
━━━━━━━━━━×
체력 : ?
근력 : D+
근지구력 : ?
심폐지구력 : D-
민첩성 : ?
유연성 : ?
.
.
.
마력 : ?
━━━━━━━━━━
보이는 것보다 물음표로 표시되어 알 수 없는 스탯이 더 많았다. 보여주려면 보여주고 말려면 말······.
아니다. 일부라도 확인할 수 있는 게 어딘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유령손의 검지로 물음표인 스탯들을 꾹꾹 눌러봤다.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RP를 소모해 확인하시겠습니까?’ 따위의 메시지라도 뜰 줄 알았는데.
패스.
지금은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보이는 것들에나 집중하기로 했다.
‘근력이 D+? 나랑 비슷하게 E 전후일 줄 알았는데.’
시종들 사이에서 약골 취급당하던 알폰소. 거기다 하인에서 시종으로 승격한 탓인지 자주 시비에 휘말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실눈을 실실 쪼개며 굽신거렸던 녀석. 그게 전부 연기일 줄이야.
‘혹시 일반인 평균이 D가 아니라 C인가?’
문득 떠오른 생각,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다.
‘마력’을 다루지 못하는 인간의 신체 능력은 전생이나 현생이나 매한가지. 체조 꿈나무 정도의 스트레칭이 가능한 내 유연성이 C-다.
가끔 스트레칭을 할 때면, 알폰소가 옆에서 ‘연체인간’ 같다며 촐싹대곤 했던 게 떠올랐다.
‘의뭉스러운 녀석.’
실눈을 호선으로 그리며 웃는 알폰소의 얼굴을 머릿속에서 지우며 녀석의 스탯창을 닫았다.
‘스킬창도 확인해보자.’
숨쉬기, 걷기, 달리기, 던지기······.
시시콜콜한 것들까지 스킬로 등록된 첫 화면은 내 것과 별로 다를 게 없었다.
어떤 대단한 스킬을 가지고 있으신지 확인하기 위해 유령손의 검지로 화면을 쓱 밀어 올렸다.
[?] [?] [?].
.
.
[?]의 향연에 인상이 절로 찡그려졌다.확 꺼버리고 싶은 욕구를 겨우 참았다.
그래도 열악한 정보 속에서도 알아낸 건 있었다. 우선 내 스킬창과는 달리 보유한 스킬만 보여준다는 것.
그리고.
‘많아.’
내가 보유한 스킬량의 2배는 되는 것 같았다. 아무리 숨쉬기 같은 것들까지 스킬창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있다지만, 분명 일반적인 범주를 넘어섰다.
‘분명히 특별한 뭔가를 익히고 있는 거야.’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기사 가문인 아인베르크.
알폰소도 역시 기사 수업을 받은 걸까?
그렇다기에는 확인된 근력이 좀 부실한 것 같기도 하고. 눈앞의 상태창을 가득 채운 [?]를 확인하는 순간에야 정확히 알 수 있는 문제 같았다.
‘저걸 어떻게 확인하지?’
가뜩이나 나를 둘러싼 주변 상황도 썩 좋지 않은데, 속이 시커먼 녀석까지 옆에 있다.
달이 기울어지는 새벽.
고민의 시간이 깊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