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30)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30화(30/203)
030
3기사단장 게르트 리온.
오늘, 그는 얼마 전 있었던 서부 원정과 관련된 일을 처리하느라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연무장을 찾았다.
‘레이나?’
레이나를 발견한 게르트의 발걸음이 멈췄다.
– 단장님, 다시 한번 지도 대련을 부탁드립니다.
– 단장님, 대련 한 판만.
– 단장님······.
.
.
.
마주칠 때마다 안부 인사 대신 대련을 요청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돌아서 가야겠군.’
기사단장으로서 실력자와 검을 나누고 싶어 하는 레이나의 마음이 대견하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 귀찮았다.
그런데 누구와 대화하는 걸까?
그는 레이나가 저렇게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타인과 대련이 아닌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게르트는 레이나와 대화하는 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와 같은 흑발이 눈에 들어왔다.
‘누구지······ 5왕자?!’
못 알아볼 뻔했다.
그의 기억 속 5왕자의 마지막 모습은 웅크린 어깨와 썩은 생선 같은 눈을 한 살아있는 좀비와 마찬가지였다.
– 5왕자가 달라졌다.
원정에서 돌아온 게르트의 귀에 가장 많이 들려왔던 말. 얼마나 달라졌기에 그런 말이 떠도나 궁금했었다.
‘겉모습은 정말 많이 변했군.’
그는 잠시 에반을 자세히 관찰했다.
여자치고는 큰 편인 레이나와 거의 키가 비슷해져 있었다. 굽었던 등과 움츠려졌던 어깨는 곧게 펴진 상태.
상의의 드러난 부분에 보이는 근육들은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한창 뜨겁게 담금질 되는 중인 기사 생도들의 그것이 연상되었다.
‘수호검술을 눈으로 보고 따라했다지? 레이나를 능가하는 괴물 같다고?’
기사단에 복귀하기 전에는 듣지 못했던, 3기사단의 예비단원들이 들려준 믿지 못할 이야기들.
게르트는 그게 가장 궁금했다.
‘무슨 일로 찾아온 거지?’
하지만, 궁금한 건 궁금한 거고 그는 에반의 방문이 썩 달갑지 않았다.
5년 전, 에반의 호위를 맡고 있던 단원 셋이 3왕녀 독살 미수 사건에 휘말려 어처구니없이 목숨을 잃었다.
물론, 그때 그 사건이 에반의 잘못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래도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그렇게 쉽지 않았다.
‘그것 때문이겠군.’
게르트 본인은 3기사단장. 그의 부친인 베르트는 왕실위원회 의원이다. 그 정도의 위치면 에반이 행사한 불체포특권에 관한 청문회가 있을 예정이라고 것 정도는 귀에 들려오기 마련이다.
‘나를 통해 아버지에게 청탁이라도 하려는 건가?’
달갑지 않은 사람이 달갑지 않은 부탁을 할 것 같은 예감. 게르트는 오늘 하루 정도는 연무장을 찾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생각했다.
그 순간.
레이나와 대화하고 있던 에반이 고개를 휙 돌렸다. 둘의 눈이 마주치고, 잠시 서로를 탐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에반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3기사단장님.”
“아, 네, 뭐. 저도 오랜만입니다. 많이 크셨군요. 못 알아볼 뻔했습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제가 보기보다 바쁜 몸입니다.”
“아주 잠깐이면 됩니다.”
“······.”
입을 굳게 다물고 고민하는 게르트.
그와 에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레이나는 그녀가 낄 자리가 아닌 것 같아 조심스레 자리를 피했다.
레이나가 멀어지고 게르트의 입이 열렸다.
“······ 잠깐입니다. 말씀해보시죠.”
“베르트 의원님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직접 찾아가시면 되시지 않습니까?”
“저를 대상으로 청문회가 열릴 거라는 것 정도는 들으셨을 거로 압니다. 그 당사자가 왕실위원회 의원을 만나러 가는 건 남들 보기에 그리 좋아 보이진 않겠죠.”
“아시는 분이 그런 부탁을 하십니까?”
에반이 씩 웃었다.
“베르트 의원님. 저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으시던가요?”
게르트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어떻게 알았지?’
아닌 게 아니라 어제저녁, 부친과 그가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 그런 말이 나왔었다.
– 네가 서부 원정을 가 있던 사이, 5왕자가 많이 변했다. 아니, 감추고 있던 걸 드러낸 건가? 한번 만나보고 싶은데 시기가 좋지 않아. 유령왕자라는 허물을 벗어 던진 녀석의 진짜 모습을 보고 싶은데 말이야.
– 직접 만나보시면 되지 않습니까?
– 시기가 좋지 않아. 밀로아 고것이 5왕자를 탐탁지 않아 하고 있어. 그런 와중에 내가 5왕자를 만나면 지레 겁먹고 밟아 죽여버릴지도 모르지.
***
게르트와 눈이 마주쳤을 때 단단한 방패 같다고 느꼈다.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만약 진짜 칼로 나누는 대화라면.
“베르트 의원님. 저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으시던가요?”
그는 내가 떠보듯 던진 물음에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동공이 흔들렸다. 그리고 마치 어떻게 알았냐고 되묻는 듯한 눈빛을 보내왔다.
‘맞네.’
3기사단장.
아무리 봐도 천생 기사다.
하긴, 기사가 저래야지. 그들이 몹쓸 것만 배워서 정치 싸움을 벌이기 시작하면 그게 망국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아직 게르트 같은 기사들이 있어 리오넬 왕국이 돌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역시 베르트 의원도 나와 만나보고 싶어 할 줄 알았어.’
솔직히 확신까지는 못 하고 있었다.
1왕자, 2왕자라는 존재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귀족파의 두 파벌. 베르트 의원 이하 6인의 전대 왕당파 출신은 태생적으로 그 어느 쪽에도 속할 수 없다.
······ 사실 100% 장담은 못 한다.
원래 8인이었던 왕당파 출신. 그중 두 명이 사이좋게 1왕자, 2왕자 진영에 나눠서 투항했던 과거가 있으니까.
하여튼.
그런 와중에 갑자기 예전에 뿌리까지 짓밟힌 줄 알았던 5왕자가 불쑥 고개를 내미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을 거다.
최소한 어떤 인간인지 대화를 해보고 싶은 게 당연하다.
“······ 전 아버님의 생각은 알지 못합니다.”
게르트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슬며시 내 눈을 피했다. 굳게 다문 그의 입에서 절대로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느껴졌다.
‘안 되겠는데.’
이리저리 찔러보면 재밌는 반응을 더 보여줄 것 같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튼튼한 방패는 맞는 것 같다.
‘베르트 의원을 직접 만나는 건 포기해야겠어.’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안 되는 일을 붙잡고 사람을 들들 볶는 것도 못 할 짓이다.
“그럼, 안부만 전해주십시오. 조만간 제가 큰 선물을 들고 찾아갈 거라고요.”
“큰 선물, 말입니까?”
“그런 게 있습니다. 분명 아주 좋아하실 겁니다.”
“정말 이대로 가시는 겁니까?”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의 게르트.
나는 그런 그에게 꾸벅 고개를 숙인 후 알폰소와 함께 에메랄드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연무장에서 조금 멀어지자 알폰소가 입을 열었다.
“왕자님, 정말 베르트 의원을 만나보지 않아도 괜찮겠어요?”
“최소한 청문회에서 중립을 지킬 거란 확신이 들었어. 출석해서 기권표를 던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그걸 어떻게 확신하세요?”
“아까 3기사단장을 찔러봤을 때, 베르트 의원이 날 만나보고 싶어 하는 눈치였잖아. 못 느꼈어?”
“······ 느꼈죠. 표정 관리 진짜 못하던데요. 가르쳐주고 싶을 정도였어요. 제가 또 한 표정 관리하잖아요.”
“그건, 네가 실눈이라 그런거고. 베르트 의원이 소문대로의 인물이라면, 날 만나보고 싶단 얘기는 내가 왕국에 도움이 될 인물인지 아닌지 알고 싶다는 뜻일 거야. 최소한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는 이야기겠지.”
“그렇······ 겠죠?”
“청문회 때 내가 아까 말했던 그 선물을 받으면, 나를 지지하지는 못해도 기권표 정도는 던져줄 거야. 분명히.”
“그 선물이 대체 뭔데요? 아까도 궁금했는데 입 다물고 있느라 혼났습니다.”
“그건 북부해방군이 우리에게 협력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야. 그들이 있어야 가능한 선물이거든.”
“헉! 그럼 만약 북부해방군이 왕자님 계획에 동참하지 않으면······.”
하, 이 녀석.
저번에도 그럼 X된 거라고 눈빛으로 설명해 줬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러니까 빨리 북부해방군의 연락을 받아와.”
“그게 제 마음대로 됩니까.”
“늦으면 늦을수록 네 목이 몸과 붙어 있는 시간도 줄어들 거야.”
“······.”
내 재촉 때문이었을까?
자정이 가까워지는 밤. 서재에서 지끈거리는 머리를 지압하며 앞으로의 일을 계획하던 내게 알폰소가 헐레벌떡 찾아왔다.
“왕자님! 연락이 왔습니다. 일단 만나잡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지끈거리던 머리가 순식간에 싹 나았다.
‘북부해방군이 합류하면 일단 준비물은 다 모이는 건가.’
***
왕실기무대 정보부에 있는 이들은 말단이라 할지라도 소위 말하는 엘리트. 그들이 직접 현장에서 발로 뛰는 경우는 흔치 않다.
하물며 남부에서 새로운 마경이 생겨나고 있다는 급보가 올라온 마당이다.
이미 끝났다고 생각하는 5왕자를 미행하는 일에 심력을 낭비할 여력은 없었다.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
“5왕자가 나왔습니다.”
“잘 쫓아. 저번처럼 놓치지 말고.”
“넵!”
그 일은 내리고 내려와 왕실기무대 정보부를 지원하는 치안대로부터 하청받는 정보 조직에까지 내려오게 되었다.
“그런데, 왜 5왕자를 미행하는 겁니까?”
“미행 아니야. 호위라고 호위.”
“그랬어요?”
“사실 나도 잘 몰라. 우리가 언제 이유는 알고 일했냐? 그냥 시키니까 하는 거지.”
마차를 모는 이는 사수가 퍽 미덥지 않았다.
“뭐야, 그 눈빛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둘은 멀찍이 떨어져 5왕자가 타고 있는 마차를 쫓았다.
“그런데, 저번에 저희가 잠시 놓쳤던 거는 보고 올리셨어요?”
“우리가 언제 놓쳤어.”
“그 여왕삼거리에서 놓쳤었잖아요.”
“부리나케 주변을 뒤져서 옆에 있는 유흥가에 마차가 주차되어있는 거 확인했었잖아.”
“들어가는 건 못 봤잖아요.”
“뻔하지 뭐. 혈기 왕성한 나이인 5왕자가 왕실 마차를 굳이 일반 마차로 바꿔치기하면서까지 계집들이 헐벗고 있는 데 간 거면, 뻔한 거 아니야? 넌 그걸 굳이 봐야 아냐!”
사수가 쏘아붙이는 말에 마차를 몰던 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신이라도 제대로 정신 차리고 있어야 나중에 한 소리 안 듣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5왕자가 타고 있는 마차를 매의 눈으로 바라보며 말을 몰았다.
“어, 갑자기 방향을 꺾어서 골목으로 들어갔습니다!”
“빨리 쫓아가!”
“아! 다시 보이네요.”
“휴, 정신 차려 인마!”
그들은 몰랐다.
5왕자가 탄 마차가 그들의 옆을 스쳐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
“왕자님. 다 왔습니다.”
알폰소가 나를 안내한 곳은 허름한 주점이었다. 왕도 바로나의 하층민들이 일과를 끝내고 술 한잔하기 딱 좋은 그런 곳이었다.
“먼저 들어가 계시죠. 혹시 모르니까 입구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수고해.”
나는 문을 열고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도 없었다.
알폰소에게 들었던 대로 지하로 내려가 큼직한 술통을 치우자 비밀공간이 나왔다.
어두컴컴한 좁은 길을 5분 정도 걸어가자 빛이 보이기 시작했고, 작은 원탁과 의자가 놓인 공간에 도달했다.
그곳에 나를 기다리는 여우가면이 있었다.
“오셨군요. 북부해방군의 간부들을 대표해서 온 오스틴입니다.”
알폰소가 말했던 대로 중성적인 목소리에 이름도 남자, 여자 상관없이 많이 사용하는 이름.
상태창을 확인해봐도 성별이 ?였다.
보통 숨기고 싶어 하면 여자일 확률이 높을 테지만.
‘뭐, 상관없나.’
성별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앉으시죠.”
“그럼.”
오스틴의 권유로 의자에 앉은 나는 곧장 입을 열었다.
“일단 저를 만나자 한 걸 보면, 제가 프란 님에게 했던 말이 꽤 흥미가 있으셨다고 봐도 되겠죠.”
“그렇습니다. 그런데, 저도 그렇고 다른 간부들이 꼭 확인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뭐죠?”
“저희가 합류를 약속해야 말해주실 수 있다던, 왕국민들이 북부해방군이 단순히 무뢰배 집단이 아니란 걸 인식하게 만들어주신다는 말. 그걸 사전에 말씀해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아, 그거 말인가.
“뭐, 여기까지 오셨는데 그 정도는 말해드릴 수 있겠죠. 북부해방군이 리오넬 왕국을 위해 일어선 집단이라는 걸 증명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게 혹시 1왕자를 지지하는 왕족을 끌어내리는 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왕국민이 보기에는 왕실의 지저분한 권력 다툼 정도라 인식할 겁니다.”
나는 씩 웃었다.
“그 끌어내리는 왕족이 누구인지, 뭐 때문에 끌려 내려오는 건지에 따라 달라지겠죠.”
“자세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왕국을 말아먹을 뻔한 인간을 끌어내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왕국을 말아먹을 뻔한?”
“마족과 손잡고 북부에 역병을 퍼트려 하믈 제국이 침공할 발판을 만들어준 자. 그 정도 인물을 폭로해 왕궁에서 끌어내린다면, 어찌 왕국민이 북부해방군을 단순한 무뢰배 집단으로 보겠습니까?”
으드득.
“그게, 누굽니까?”
살얼음이 서린 오스틴의 목소리에 주변 공기가 싸늘해졌다.
‘누구긴, 같이 만들어야지.’
분위기가 당장 말하기는 조금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