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31)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31화(31/203)
031
‘저 가면, 벗으면 안 되나?’
대화는 언어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얼굴의 작은 표정 하나하나도 훌륭한 대화 수단이다.
내가 던진 질문에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던 게르트의 눈동자, 시선을 회피하던 동작 등이 그 좋은 예시.
그런 의미에서 여우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오스틴과의 대화는 영 불편할 수밖에 없다.
알폰소에게 대충 사정은 들었었다.
‘얼굴에 큰 상처가 있다고 그랬지?’
나야 크게 개의치 않을 자신이 있다만, 그 부분이 콤플렉스일 게 분명한 오스틴에게 가면을 벗으라고 얘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만나자마자 열어놨던 오스틴의 상태창을 아주 잠깐 흘겨보았다.
[관계 : 평상]그래도 극적인 심리 변화는 감지할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을 하며, 여전히 싸늘한 냉기를 흘리는 오스틴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오스틴은 내가 자신의 여우가면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자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는지 나를 향해 기울였던 몸을 원래대로 되돌렸다.
“······ 설마··· 그런 인물이 없는 겁니까?”
나는 스스로 정답을 찾은 오스틴에게 빙긋 웃어주었다.
잘 생각해보면 쉽게 도출해낼 수 있는 문제였다. 나는 분명히 없는 증거를 만들어 4왕자를 암살한 범인으로 1왕자 진영 왕실위원회 의원을 몰아가자 했었다.
거기에 자극적인 양념 몇 개를 더 뿌린 것뿐이다. 그중 ‘마족’이란 양념이 MSG 급으로 자극적이라 프란을 만날 당시에는 말을 삼갔던 거고.
“함께 만들어야죠. 혹시 가장 마음에 안 들었던 1왕자 진영의 왕족이 있다면 거리낌 없이 말해보세요.”
“······ 5왕자님, 예상했던 것보다 더 무서운 분이셨군요. 마족과 왕족이 엮이는 순간, 왕실의 위엄이 땅바닥에 곤두박질칠 겁니다.”
전생의 역사에서 권력가들이 마음에 안 드는 반대 파벌 인간을 보낼 때 자주 사용하던 방법이 역모를 씌우는 거였다.
현생도 크게 다르진 않다.
그런데 역모보다 더욱 강력한 게 하나 있다. 바로 마족과 엮어버리는 것이다.
멀고도 먼 과거, 인간을 비롯한 이종족을 ‘사육’했다고 전해지는 마족은 그만큼 터부시되는 존재였다.
뭐, 그런 옛날이야기를 떠나서도 마족과 계약하려면 작은 마을 하나는 우습게 희생되어야 하는 걸 생각하면 그럴 만도 했다.
“북부해방군의 간부이신 오스틴 님이 왕실의 위엄을 걱정해주실지는 또 몰랐군요.”
왕실의 무능과 그로 인한 방치도 북부 몰락에 한 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왕실에 대한 북부해방군의 감정이 좋을 리가 없다.
“······.”
“······.”
잠시의 침묵.
여우가면 때문에 일말의 감정변화조차 읽을 수 없었다. 역시 가면을 쓰고 있는 건 반칙이다.
내가 입을 열려는 찰나, 오스틴이 먼저 말했다.
“왕실위원회 의원과 마족을 엮으려다 잘못되면 오히려 북부해방군이 대륙의 공적으로 몰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잘해야죠.”
“하······.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일단 우리가 타겟으로 삼은 왕족이 마족과 계약했다는 증거품이 필요할 텐데, 아시다시피 네크로노미콘은 구하고 싶다고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마족들이 마계로 떨어지기 전 중간계에 남긴 마도서들이 있다.
[네크로노미콘]이라고 통칭하는 그것들은 마족과 계약을 시도할 수 있게 해주는 위험한 물건.발견되는 족족 만신전에서 회수해간다.
– 알폰소, 근데 아까 말했던 북부해방군에서 마족과 계약하려고 했던 미친놈 말이야. 그놈이 사용한 네크로노미콘은 제대로 처리했어? 혹시 신전에 신고한 건 아니겠지?
– 당연하죠! 혹시라도 북부해방군이 연루된 게 걸리면 큰일 나게요. 태워봤더니 타지도 않아서 스승님과 저밖에 모르는 곳에 꽁꽁 숨겨놨습니다. 두 번 다시 세상에 나올 일 없으니까 안심하셔도······ 왕자님? 갑자기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세요?
나는 알폰소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아,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하나 구할 수 있습니다. 네크로노미콘.”
“······ 네? 대체 그걸 어디서!”
살짝 바람 새는 목소리로 되묻는 오스틴.
동네 잡화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는 듯이 말한 내 말투에 조금 놀란 것 같았다.
“그런데 들으시고 나면 북부해방군은 반드시 제 계획에 동참해야 할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 듣기가 무서워지는군요.”
“방법이 하나 더 있긴 합니다. 여기서 제 입을 영원히 다물게 하는 건데······ 안 하실 거라 믿습니다.”
“안 합니다. 그런 짓!”
“그 네크로노미콘, 북부해방군 소속의 인원이 사용하려다 못 쓴 거거든요. 크리스 바에르였나?”
“······.”
아, 역시 가면을 쓰고 있는 상대는 재미가 없다. 저 안에서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까?
북부해방군 소속의 누군가가 마족과 계약하려 했다는 사실, 절대로 세상에 퍼져서는 안 될 일이었다.
“정말 안 하실 거죠?”
나는 손으로 내 목을 댕강댕강하는 시늉을 보이며 물었다.
“······.”
아까처럼 안 한다고 발끈하지 않으니 조금 무서워졌다.
“······ 왕자님처럼 무서운 계획을 세우시는 분이 아무런 대비도 없이 그런 이야기를 떠들었을 거라곤 생각지 않습니다.”
맞다.
내가 멍청이도 아니고.
만약 내가 여기서 실종된다면, 모든 신전에 편지 하나가 도착할 거라든가 하는 그런 얘기는 굳이 꺼낼 필요가 없어 보였다.
“뭐, 편하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 사실을 누가······ 아, 알폰소겠군요. 알폰소와 왕자님 말고 또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제 오스틴 님도 알았군요. 뭐, 몇 사람이 더 알고 있는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기록’이란 형태로 남겨져 있지는 않지만, 누군가의 머릿속에는 들어있을지도 모르니 딱히 거짓말한 건 아니었다.
“북부해방군 입장에서도 크리스 바에르라는 미친놈이 가지고 있던 네크로노미콘, 어느 은밀한 곳에 숨겨져 있는 것보다는 알뜰하게 사용되어 버리는 게 나을 겁니다.”
“······.”
“아,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오늘 만남 이후에 또 간부들이 모여 회의를 해야 하는 건가요? 아침에 청문회 출석 요구서를 전달받아서 말입니다. 시간이 얼마 없거든요.”
말을 아끼던 오스틴이 이번엔 답을 해줬다.
“저를 포함, 다른 간부들도 결정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습니다. 왕자님을 만나본 제 결정에 다들 따르기로 합의해놓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어떻습니까? 저와 함께하시겠습니까?”
“잠시···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시죠.”
“그러시죠.”
나는 오스틴의 머리 위에서 탭댄스를 추고 있는 유령손을 감상하며 답변을 기다렸다.
***
오스틴은 여유로운 미소를 띠고 있는 에반을 바라보며 가면을 쓴 덕에 표정이 드러나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고를 수 있는 보기가 하나뿐인 시험지를 받은 것 같은 기묘한 기분이었다.
에반은 북부해방군 소속이었던 인원이 마족과 계약하려 했다는 걸 알고 있다. 심지어 네크로노미콘의 위치도.
대륙의 공적으로 몰릴 수도 있는 일이다. 적이 되지 않으려면 한배를 타야 한다.
‘5왕자, 에반 리오넬······.’
심계의 끝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오스틴은 에반의 계획대로 일이 성사된 이후를 상상해봤다.
‘범인으로 만든 왕족을 폭로하는 건······ 당연히 5왕자가 하겠지?’
북부해방군이 나서는 것보다는 왕실의 인원이 스스로 썩은 살을 도려내는 것이 보기가 좋다
대화 도중 왕실의 위엄 따위 개나 주라는 표정이었지만, 분명 그가 나설 것이다.
‘5왕자, 에반 리오넬이라는 이름을 왕국민들에게 선명히 각인시키는 일이 될 거야.’
그뿐이랴?
자연스레 북부해방군은 5왕자를 도운 휘하의 조직 정도라 인식될 거다. 그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그래서 북부해방군 입장에서 손해인가?
‘아니야.’
북부해방군 입장에서도 딱히 손해 볼 것은 없다. 5왕자 휘하의 조직이란 인식과 지도자도 없는 게릴라 집단이란 인식은 그야말로 천지 차이.
에반이 돌 하나를 던져 몇 마리의 참새를 잡으려고 하는 건지, 오스틴은 감히 짐작할 수가 없었다.
‘고작 13살······.’
왕궁이란 곳은 성인식도 치르지 못한 소년을 저런 괴물로 만들어 놓는 곳인가?
그런 생각을 함과 동시에 망나니 4왕자에 대한 영웅담들이 오스틴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5왕자가 특별한 거야.’
오스틴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속으로 안타까움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런 사람이 북부해방군에 있어야 했는데.’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생각에 오스틴은 흠칫 놀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를 본 에반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거절이신가요?”
“아, 아닙니다!”
“그럼 함께하시겠다는 거군요.”
“조금, 조금만 더 시간을.”
“뭐가 그리 마음에 걸리시는 거죠? 제 제안이 북부해방군에게 해가 될 거라고는······ 아, 만약 계획이 실패했을 경우는 조금 곤란하긴 하겠군요.”
그게 아니야!
오스틴은 속으로 그렇게 외쳤다.
어째서인지 에반이 계획한 일이 어그러질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스틴이 걱정하는 건······ 그래, 이번 일이 북부해방군을 통째로 에반에게 갖다 바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북부의 생존자들을 규합한 북부해방군이다. 그렇게 누군가의 손에 덩굴째로 굴러 들어가는 일,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었다.
“일이 무사히 성사되면 왕자님과 북부해방군의 관계는 어찌 되는 겁니까?”
“어찌 되긴요. 좋은 관계가 되는 거지.”
씩 웃으며 대답하는 에반.
“혹시, 제가 후에 북부해방군을 손에 쥐고 뒤흔들까 걱정이라도 되는 겁니까?”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오스틴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싫으십니까?”
“······ 무슨 말씀이시죠?”
“구심점도 없이 간부들의 ‘합의’로 굴러가는 현 북부해방군의 상태보다는 훨씬 나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오스틴은 딱히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지금 일만 해도 그렇다.
빠른 결단이 필요한 일이건만, 간부들이 모이고, 회의하느라 시간이 지체되었다. 그나마 원활한 합의가 이루어져 다행이었다.
“북부해방군 입장에서는 북부의 몰락을 가져온 놈들에게 복수하고 가문을 재건할 수 있으면 된 거 아닙니까? 자신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게 누군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아, 물론 제가 이번 일을 계기로 북부해방군을 억지로 어떻게 해보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북부해방군이 왕자님을 따르면 사양하진 않겠다는 말로 들리는군요.”
“감사한 일이겠죠.”
천연덕스러운 에반의 대답에 오스틴은 잠시 눈을 감았다.
북부의 힘을 하나로 모은 5왕자가 왕국의 잃어버린 영토를 향해 진군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상상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벅차오르는 광경.
오스틴은 어째서 그런 미래가 그려지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 아버지, 저희는 어째서 베이른 후작가를 따르시는 건가요?
– 무슨 소리를 듣고 왔는지 알겠구나. 베이른 후작가 뒷간을 청소하는 새턴 자작가, 뭐 그런 걸 들은 모양이구나.
– 아니, 뭐······.
– 괜찮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고. 흠······ 너도 언젠가 아! 저 사람이다! 저 사람을 따라가야 한다! 그런 생각이 드는 사람을 만나게 될 거다.
– 그게 베이른 후작님이셨어요?
– 나는 그랬다.
– 저는 누구를 따라가고 싶기보다는 끌고 가고 싶은데요.
– 하하하, 할 수 있으면 그리하거라.
– 지금 못 할 거 같아서 웃으신 거죠?
– 맘대로 생각하거라.
어릴 적 아버지와의 대화가 자꾸 귓가에 들려왔다.
‘틀리지 않으셨었지.’
이제 스스로가 누군가를 이끌 깜냥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오스틴은 눈을 천천히 눈을 떴다.
“그래서 왕자님이 생각해두신 타겟은 누굽니까?”
환하게 웃은 에반이 입을 열었다.
“베오르티오 리온. 남부의 대농장을 보유한 부호, 매일 밤 처녀들의 피로 목욕한다는 소문도 있는 인간이죠.”
“베오르티오 리온······.”
“북부해방군 내 강경파도 좋아할 겁니다. 하믈 제국의 침공 당시 돌연 왕당파의 뒤통수를 치고 1왕자 진영으로 전환, 북부로의 식량 지원을 막은 인간이니까요.”
“괜찮은 선택 같군요. 그럼 자세한 계획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오스틴은 또 어떤 기상천외한 계획으로 에반이 자신을 놀라게 할지 그의 입이 열리기를 기대했다.
“······.”
“왕자님?”
“······ 그건 이제 같이 생각해봐야죠. 제가 북부해방군의 전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세부 계획을 짜겠습니까?”
“그건······ 그렇네요.”
“걱정하지 마시죠. 금방 완벽한 계획이 만들어질 겁니다.”
자신감 넘치는 에반의 모습이 그에 대한 평가가 살짝 흔들리려던 오스틴의 마음을 단단히 붙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