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40)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40화(4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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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로아는 감이 좋다.
특히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게 그녀를 크리스티 백작가의 가주에 오르게 했으며, 왕실기무대 정보부 수석 자리를 꿰차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한데 에반과의 대화하는 내내 그녀는 당혹스러운 속내를 숨기기 위해 표정 관리에 애쓰고 있었다.
– 얼마 안 됐습니다.
북부해방군과 언제부터 연락하고 지냈냐는 그 첫 질문의 대답부터 그녀의 센서가 고장 난 듯, 저건 참이라고 외쳐댄 탓이었다.
“그동안 다미안 형님에게 받은 게 있는데, 제가 어찌 형님에게 피해가 가는 일을 하겠습니까.”
하지만 지금.
밀로아는 비로소 오작동하던 그녀의 감이 원래대로 돌아왔다고 느끼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 발언은 거짓이 확실했다.
“안타깝군요. 2왕자님과 그렇게 돈독한 사이셨다니.”
“알아봐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거, 제가 너무 오랫동안 밀로아 백작님과 밀담을 나눈 것 같네요. 뒤에서 수군거리는 사람이 많을까 두렵습니다. 슬슬 들어갈 시간이 되지 않았나 싶네요.”
“그러네요. 못다 한 진실 게임은 ‘다음에’ 이어서 하죠.”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그럼, 이만.”
등을 돌리는 에반.
그가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밀로아의 머릿속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4왕녀가 제국의 황족과 혼인하는 건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해.’
4왕녀가 맘에 들든, 마음에 들지 않든, 약혼 성사만으로도 만성적인 마정석 부족에 시달리는 왕국에 마정석이 대량 풀리게 된다.
신부 측에 막대한 지참금을 건네는 제국의 관습이 그렇게 만들 거다. 황족 특유의 허세를 잘 부채질한다면, 상급 이상의 마정석도 꽤 풀릴지 모른다.
‘나쁜 일이 아니야, 나쁜 일은······.’
문제는 그게 1왕자 진영에는 썩 기분나쁜 일이란 거다.
그 수혜 대상자들이 2왕자에게 격한 호감을 느끼게 될 거라는 건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공짜로 받기만 하는 건 아니기에 피해를 보는 이들도 생길 테지만, 국가의 운영이라는 대의에 있어 소수의 목소리 따위는 언제나 중요치 않았다.
가장 좋은 건 1왕비 소생의 왕녀와 제국의 황족이 결합하는 일이겠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 1왕자 진영이 생각한 최고의 대안은 3왕녀, 아네트 리오넬과 제국의 황족이 결합하는 일이었다.
5왕자가 유령왕자라는 허물을 벗기 전이라면, 밀로아도 분명 그런 방향으로 일을 진행했을 것이다.
‘안돼. 그러면 돌이킬 수 없게 돼.’
본능이 그렇게 속삭이고 있었다.
문득, 무엇이?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그 답을 찾기 위해 다시 인상을 찡그리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밀로아는 참고 있던 흡연욕이 밀려옴을 느꼈다. 허벅다리를 더듬던 그녀는 그제야 아까 담뱃갑을 버렸던 게 떠올랐다. 시선이 절로 쓰레기통을 향했다.
***
밀로아와 대화를 나누고 연회장으로 돌아왔다. 내가 그녀와 테라스에 꽤 오래 있었던 게 문제였는지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소곤거리는 이들이 많았다.
‘이상한 소문 나는 거 아니야?’
나와 그녀의 나이 차가 10살이다.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날까 싶었다.
절레절레 고개를 저은 후 시계를 확인했다.
‘2시간 정도 남았네.’
국왕과 두 왕비를 대동하고 등장하기 전까지 뭘 하고 있을지 잠시 고민하다 허기가 진 것 같아 배부터 채우기로 했다.
막 뷔페로 가 고기 몇 점을 그릇에 담는데, 주변에서 속닥거리던 인간들이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포크를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백발이 성성하고 기골이 장대한 노인이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왕실위원회 중립파의 거두, 베르트 리온. 찾을 때는 안 보이더니 어디 있다가 이제야 나타난 건지.
“5왕자님. 조금 전, 밀로아 백작과 담소를 나누고 오셨다 들었습니다. 잠시 이 한가한 사람과 산책하며 말동무가 되어주시겠습니까?”
“아무렴요.”
베르트가 흡족한 미소를 보이며 등을 돌렸다. 음식을 담은 그릇을 주변 시종에게 넘기고 그를 따라 정원으로 나갔다.
슬쩍 밀로아와 대담을 나누던 테라스를 바라봤다. 그녀가 보름달을 바라보며 멋들어지게 담배 연기를 내뱉고 있었다.
흡연자였나?
어쩐지 아까 희미하게 담배 냄새가 난다 했다.
현생의 담배는 전생의 것보다 부가적으로 들어가는 것들이 더 많아 몸에 더 치명적일 게 분명했다.
아직 담배가 귀족들의 기호품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부작용을 잘 모를 거다.
‘뭐, 알 바 아닌가?’
나는 밀로아에게 관심을 끄고 베르트 의원의 뒤를 뒤쫓아갔다.
근데 이 인간, 어디까지 가는 거야?
점점 가로등이 없는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가는 것 같아 조금 섬뜩해졌다.
내가 막 입을 열려는 찰나 그가 발걸음을 멈췄다.
“허허, 여기 정도면 괜찮겠군요. 주변에 뜨거운 청춘이 어찌나 많던지.”
으음······.
그런 거였다면 내가 할 말이 없다. 거기다 그 이유가 다가 아닐 것 같았다. 달라붙은 쥐새끼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문득, 밀로아 백작과의 대담 때 주변을 너무 의식하지 않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그때 대화를 복기했다.
‘딱히 책잡힐 만한 부분은 없네.’
의식은 안 해도 무의식은 알아서 조심하고 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그때는 말보다 제3의 언어가 주 대화 수단이기도 했고, 일 잘하는 밀로아가 미리 알아서 주변 정리를 했겠지.
이게 무능한 아군보다 유능한 적군을 믿는다 그런 건가?
“갑자기 무슨 생각을 그리하십니까?”
“아, 죄송합니다. 잠시 낯뜨거운 생각을 했습니다.”
변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허허허, 5왕자님도 이제 그럴 나이기도 하군요. 왕실의 인원으로서 미리미리 좋은 혼처를 알아봐야겠군요.”
“가능하면 무남독녀로 부탁드립니다.”
천덕스러운 대꾸에 그가 껄껄껄 크게 웃었다. 방금 대답이 그렇게 웃겼나?
“좋군요. 아무렴요.”
기분이 좋아 보였다.
곧, 그 이유를 깨달았다.
베르트에게 방금 내 대답은 누군가의 밑으로 들어가지 않고, 제3의 세력으로 홀로 서겠다는 뜻으로 들렸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의 반응을 보니 딱히 그 생각이 틀렸다고, 방금 내가 한 말의 뜻은 그런 게 아니었다고 부정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저번 청문회는 재미있었습니다.”
“즐거우셨다니 다행입니다.”
웃고 있던 베르트가 돌연 웃음을 멎고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5왕자님. 저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에 가로막혀 무릎 꿇은 사람이지만, 한때 기사였던 사람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베르트 리온, 그는 젊은 나이에 6성 기사가 되며 리오넬 왕국에도 드디어 8성 기사가 출현하지 않을까, 왕국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
동시대 인물 중 가장 먼저, 그리고 유일하게 심장에 7개의 별을 품은 이는 나의 외조부, 북부의 검 리처드 베이른이었다.
“왕실위원회라는 곳에 발을 디디며 온갖 오물을 뒤집어쓰는 바람에 지금같이 괴팍한 노인네가 되어버렸지만, 저는 아직도 미사여구 없는 진솔한 대화를 선호합니다. 어떻게, 저와 이야기를 나눠보시겠습니까?”
이것도 일종의 진실 게임인가? 오늘 유독 내게 속내를 드러내라 하는 인간들이 많다.
뭐, 베르트 의원이면 충분히 그 상대가 되어줄 수 있었다.
“좋습니다.”
내 대답에 그는 진실로 한 사람의 기사가 되었다.
밀로아와의 대담 때처럼 거짓말을 할 수도 있지 않겠냐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그건 모욕이었다.
나도 여태껏 왕실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으며 상대가 진심인지 아닌지 정도는 판단할 안목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틀렸다면 그게 내 한계겠지.’
그런 경우에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숱한 이들처럼 그렇게 사라져주는 게 맞다.
“저는 5왕자님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세게 나오시네.
“그런데 그 마음에 안 드는 점 때문에 왕자님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진솔한 대화를 선호하신다더니, 이래저래 이해하기 힘든 화법을 구사한다. 왕실위원회에 의원을 하면서 묻은 버릇 탓인가.
“억울한 베오르티오를 단칼에 베어내며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신 그 비정함 말입니다.”
“죽어 마땅한 인물이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허나 왕궁에서 닭 모가지 비틀어본 적도 없을 5왕자님 아니십니까? 그 마녀에게 없는 죄도 뒤집어씌우시면서 정말 아무렇지도 않으셨습니까? 지은 죄에 합당한 벌만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안 하셨습니까?”
“전혀요.”
나의 단호한 대답에 그가 빙긋 웃었다.
“혹, 베오르티오가 아닌 진실로 왕국민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어도 그리하셨을 수 있겠습니까? 단지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
이번엔 곧바로 답하지 못하고 잠시 입술을 닫았다. 질문의 대답은 떠올렸지만,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그때, 그가 너털웃음 지었다.
“껄껄껄, 역시 제가 사람을 제대로 본 것 같군요. 아직 제 안목도 쓸만한 것 같습니다.”
내 침묵에서 베르트가 어떤 대답을 들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를 확률이 매우 높은데 뭐가 그리 기분이 좋은 건지.
나는 입을 열기 위해 입술을 움직였다.
***
베르트는 굳게 입을 닫은 에반의 얼굴에서 선대 국왕이 떠올랐다.
훌륭한 왕이었다.
인망 있고, 기사의 능력도 출중했다. 언젠가 북벌을 감행해 리오넬 ‘제국’을 만들겠다는 거창한 야망도 가지고 있었다.
‘하나만 모자라지 않았어도.’
독심.
필요할 때면 눈물을 머금고 충신의 목도 날려버릴 독심이 그에게는 부족했었다. 결국 그게 발목을 잡아 허무하게 쓰러지고 말았다.
“저는······.”
“말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베르트는 입술을 달싹이는 에반을 제지했다.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훌륭한 답이 되었다. 물론, 대답이 궁금하긴 했지만, 미리 알면 너무 재미없지 않겠는가. 훗날의 즐거움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왕자님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야 5왕자 님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 드리고 싶지만, 이래저래 쉽지 않은 게 사실이지요.”
베르트를 중심으로 모인 중립파 왕족과 귀족. 섣불리 5왕자를 지지한다며 나서봤자 1왕자, 2왕자 진영이 합심해 짓밟아버릴 게 분명했다.
14살, 아직 너무 어리다.
구린내가 진동하는 하이에나가 우글거리는 왕궁 구석에서 발견한 새끼 사자다. 어떻게든 성체가 되어 하이에나들을 물어뜯을 때까지 보호해야 했다.
“그래도 작은 선물은 드리죠. 얼마 후에 왕자님의 호위기사들이 에메랄드궁을 방문할 겁니다.”
이 정도는 그의 힘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얼마 전, 때놈이 메어튼 백작가의 여식을 희롱할 때, 호위 하나 없이 나섰다는 말에 가슴이 철렁했었다.
베르트의 말에 에반의 눈이 반짝였다.
“진심이십니까?”
“물론입니다. 제 심장에 깃든 6개의 별을 걸고 맹세하겠습니다. 다만, 귀족 출신은 조금 힘들 수도 있습니다.”
“3기사단의 인원들이겠죠? 평민에서 올라온?”
베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그중에 제가 원하는 이를 호위로 삼아도 되겠습니까?”
“호, 3기사단의 연무장을 자주 방문하신다 들었는데, 마음에 드는 이가 있으신가 보군요. 그리하시지요.”
“우선 아돌 스미스, 버논 스테일러.”
“작년에 왕실사관학교를 차석과 삼석으로 졸업한 이들이군요. 그런데 왜 굳이 예비단원인 기사들을?”
“마지막 한 명이 조금 어려운 부탁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대체 누구를······ 헉, 설마!”
“레이나 잔느. 그녀가 파견 형식이지만 지금은 3기사단 소속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녀를 제 호위기사로 주십시오.”
베르트는 조금 전 내뱉었던 맹세를 어떻게 무르자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설마 맹세를 어기실 생각은 아니시겠죠?”
에반은 그런 그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