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44)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44화(44/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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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족들이 인간을 싫어하긴 한다.
과거, 노예제도가 성행했을 때 그들을 대상으로 한 인간들의 횡포가 말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종족 연합국가 ‘아덴’이 건국되면서 그들을 대상으로 한 노예사냥은 엄격히 금지되었지만, 아직도 노예가 존재하는 하믈 제국과 아르야 왕국의 고위층이 그들을 최고의 ‘상품’으로 거래하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하지만 인간이 싫다고 이종족들이 완전히 폐쇄된 삶을 살지는 않는다. 그들도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인간과 거래한다.
“그 똥고집 난쟁이들은 절대 인간들과 협업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단순히 검은 모루 부족과 함께 마정석 광산의 개발을 진행해보고 싶다고 운을 뗐을 뿐인데도 저런 반응을 보이니 조금 당혹스러웠다.
“드워프들과 거래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장 눈앞에 큰 이익이 있다면 충분히 거래를 틀 수 있다는 것도요.”
우리가 타고 왔던 열차만 해도 선대 국왕이 아덴 연합의 드워프들과 협업해서 만든 거였다.
“왕자님, 검은 모루 부족은 조금 특별합니다. 이건 저희 영지에서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이야기인데······.”
뭔데 저렇게 뜸을 들여.
망설이던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들은 한때 인간들에 잡혀 노예가 되었던 드워프들의 후손입니다. 인간들에 대한 적개심이 남다르죠. 혹시라도 검은 모루 부족의 인원을 만나시면 그들의 선조가 인간의 노예였던 걸 알고 계신 내색을 하면 절대 안 됩니다. 제 입에서 그 얘기가 나왔다는 걸 알면 아마 당장 영주성으로 쳐들어와 행패를 부릴 겁니다.”
“메어튼 영지에서 그들과 거래하는 상인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검은 모루 부족의 시조들이 노예 탈출을 할 당시 도와줬던 이들의 후손입니다. 그마저도 세월이 흐르면서 단순한 거래 대상 그 이상은 아니죠.”
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런 역사까지 있을 줄은 솔직히 생각도 못 했었다.
감정의 문제는 쉽지 않다.
이성적으로 일어나기 힘든 전쟁이 순전히 감정싸움 때문에 일어난 사례는 역사적 무수히 많다.
솔직히 나부터도 하믈 제국 놈이 접근해서 같이 큰 사업을 진행해보자고 하면 일단 거부부터 하고 볼 것 같다.
문득, 진노한 프란의 손짓 한 번에 새까만 재가 되어 절명한 괴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설마 그녀가 나를 죽이기야 하겠느냐마는 왠지 모르게 그 광경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무슨 이야기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그래도 그들과의 만남을 주선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빈털터리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큰 이익이나 공동의 적 앞에서 뿌리 깊은 앙숙 관계도 모든 과거를 일단 묻고 협력한 사례 또한 역사적으로 무수히 많다.
“소용없으실 텐데······. 왕자님이 그리 원하시니 한번 만남을 주선해 보겠습니다.”
“다행이군요. 혹시 그들과의 만남조차 불가능할까 봐 걱정했습니다.”
“하하, 저희 메어튼가의 선조도 검은 모루 부족이 터를 잡을 때 상당한 도움을 줬다고 합니다.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얘기 정도는 들어줄 겁니다.”
그나마 대화의 통로는 열려있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1차 유통망이니 어쩌니 하는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그런 건 검은 모루 부족과 이야기가 잘 통한 다음에 해도 충분한 이야기였다.
백작과의 독대를 마치고 내게 마련된 객실로 돌아가는 길. 복도 창가 너머로 정원을 산책하고 있는 프란이 보였다.
모른 척하고 지나가려는 데 그녀가 나를 먼저 불렀다.
“어이, 이야기가 잘 안 풀렸나 봐?”
머리를 벅벅 긁은 후, 복도 창문을 뛰어넘어 정원으로 나갔다.
“검은 모루 부족이 제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는 거, 알고 계셨죠?”
만찬 자리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통해 프란이 메어튼 영지와 붙어있는 엘프의 숲 출신일 거라 짐작하고 있었다.
분명 그녀 정도의 인물이라면 검은 모루 부족의 시조가 탈출한 노예 출신이란 걸 알고 있었으리라.
“내가 아는 그들 그대로라면.”
“······ 왜 제가 프란 님을 찾아갔을 때는 아무런 언질도 없으셨던 거죠?”
“하도 신통방통한 정보력을 보여주길래 당연히 알고 있을 줄 알았지. 아닌가 보네?”
“아이라 양도 모르고 있던 사실인데,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열심히 해 봐. 만약 실패하면 알지? 네가 왕자건 뭐건 무인도로 데려가 평생 노······ 아니, 제자로 부려 먹을 테니까.”
기괴하게 웃는 프란.
방금 한 말이 진심이란 생각에 등골이 오싹했다.
나는 화제를 돌리기로 마음먹었다.
“근데, 만찬 자리에서 얼핏 듣기로 메어튼 영지와 붙어있는 엘프의 숲이 고향이신 것 같던데, 안 가보십니까?”
“흥, 고향은 무슨.”
프란이 코웃음을 쳤다.
생각해보면 반이라지만 그녀도 엘프의 피가 흐른다. 숲의 요정족 엘프가 불을 싫어하는 건 기본 상식.
그런데 프란은 불속성 마법에 특화된 적탑에서 마법을 수학했다. 그것에서부터 그녀가 고향에서 그리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으리란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같은 인간만 해도 인종이 섞이면 대놓고 차별하는데, 하프엘프인 프란은 오죽했으리.
“뭐, 지금은 별 감정 없어. 내가 살아온 세월이 있는데.”
엘프는 인간보다 오래 산다.
120년 정도? 7개의 별을 다루는 그녀는 거기다 못해도 30년 정도의 수명은 더 얻었을 테니······.
외조부와 비슷한 나이라고 생각하면······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네?
대체 몇 살이지?
혹시 외조부를 만났을 때도 훨씬 연상이었나?
“제 외조부가 혹시 동생······.”
“시끄럽고 빨리 가서 난쟁이 놈들 설득할 방법이나 생각해.”
역시, 여자의 나이를 묻는 건 큰 실례다.
***
메어튼 백작이 붙여준 남자의 안내로 산 중턱에 자리한 검은 모루 부족을 찾았다.
호위기사들, 알폰소, 그리고 프란이 함께였다. 솔직히 프란이 따라올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여기까지 온 김에 인사할 인물이 있다며 따라왔다.
덮수룩한 수염을 기른 드워프 경비들이 우리를 발견하곤 눈을 모로 세웠다. 남자가 그들의 조장에게 다가가 뭐라 뭐라 쑥덕거렸다.
오기 전에 미리 기별을 보내놨다 들었다. 여기서 문전박대당할 일은 없었다.
그의 얘기를 들은 드워프가 우리를 한번 쓱 둘러보더니 툭 내뱉었다.
“족장에게 안내해 주지. 조용히 따라와라.”
석조 건물로 이루어진 마을.
누가 집을 멋있게 꾸미나 내기라도 하는지 하나같이 근사한 조각, 그림 등이 외벽을 장식하고 있었다.
“어, 인간이다!”
“인간들이 찾아왔다!”
“너무 길쭉해!”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아!”
길거리에서 놀다 우리를 발견한 꼬마 드워프들이 신나게 우리 주변을 돌아다녔다.
“이놈들! 저리 가서 놀아!”
우리를 안내하던 경비 조장이 호통을 치자 와하하 웃으며 어디론가 몰려갔다. 어디를 가나 애들은 비슷한 것 같다.
불끈불끈한 드워프의 근육을 뽐내는 조각이 새겨진 집에 도착했다.
“여기다. 잠시만 기다려라. 족장! 족장! 어제 말했던 인간들이 왔다!”
“대표만 들어오라고 해.”
프란이 나만 들어오라는 말을 무시하고 먼저 안으로 쏙 들어갔다.
입술을 달싹이려는 알폰소와 호위기사들.
“들어갔다 오겠습니다. 다들 기다리세요. 프란 님이 옆에 있는데 별일이야 있겠습니까.”
“방금 들어간 인간이 대표 아닌가?”
“인간이 아니니 괜찮습니다.”
어리둥절한 경비 조장을 지나쳐 족장의 집으로 들어갔다. 문의 높이가 낮아 허리를 숙여야 했다.
다행히 내부가 넓어서 이야기를 나누기에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뭐야, 대표만 들어오라니까 왜······ 응?”
“오랜만이야. 길루드.”
“프란? 네가 왜 여기 있어.”
“못생긴 얼굴은 여전한가 궁금해서 와봤어. 난 신경 쓰지 말고 일단 이 녀석이랑 얘기부터 해. 이야기가 끝나면 나도 쫓아낼 건 아니지?”
“여전하군. 그 주둥아리는.”
프란, 은근히 마당발이란 말이야.
족장이 그녀와 대화하는 동안 잽싸게 그의 상태창을 열어봤다.
[관계 : 불신]이런, 아까 경비들도 그렇고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불신을 깔고 가는 듯했다.
절레절레 젓던 족장이 나를 바라봤다.
“알버트 놈한테 미리 연락받았다. 나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족장은 듬성듬성 흰 머리카락이 보이는 중년의 드워프였다. 여기까지 안내해 준 경비 조장도 드워프 중에는 꽤 덩치가 컸는데 그보다 머리 반 개는 더 컸다.
드워프 특유의 두꺼운 허벅지와 팔뚝이 아니었으면 키가 좀 작은 인간이라 해도 믿을 것 같았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입을 열었다.
“리오넬 왕국의 5왕자 에반 리오넬이라고 합니다.”
“알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 아닌 내게 너희들 예를 바라진 마라.”
“아무렴요. 저도 쓸데없는 겉치레는 생략하고 본론부터 말하겠습니다. 검은 모루 부족이 마정석 광산을 개발 중에 중단했다지요?”
그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제가 어쩌다 보니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원인을 제거해 드리는 대가로 광산의 지분 일부와 유통에 대한 독점 계약을 맺고 싶습니다.”
“호, 그 이유를 알고 있다고? 대체 어떻게 알았지? 그 사실이 인간들의 귀에 들어갈 리가 없는데 말이야.”
족장이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 법이죠. 비밀을 유지한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내가 해줄 말은 그 정도가 다였다.
“어떤 염병할 놈이 입을 나불거렸는지 또 푸닥거리 한 번 해야겠군.”
애꿎은 그의 부족민들에게 심심한 사과를 전했다.
“그래, 말해 봐라. 우리가 광산 개발을 중단한 이유가 뭔지. 혹시 개수작 부리는 거라면······.”
“얼굴 없는 용, 아닙니까?”
“······ 거짓말은 아니었군.”
“얼굴 없는 용이 개발하려는 광산 중심에 둥지를 틀고 동면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놈을 쫓아내 드리죠. 대신 마정석 광산이 개발된 후의 이권을 조금 챙겨주십시오.”
족장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다 집구경을 하고 있는 프란을 힐끔 보았다.
“프란, 이 녀석, 믿을만한 녀석인가?”
“리처드 손자야.”
“으음······.”
「길루드와의 관계가 개선되었습니다.」
[관계 : 경계]손자라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관계가 개선되다니. 외조부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했다.
대체 과거 어떤 모험을 하셨을까? 평상까지는 안 간 걸 보니 그렇게까지 친하진 않았을지도······.
“뭐, 리처드는 리처드고, 그 녀석은 또 모르지. 나도 지켜보는 중이야. 약속을 잘 지키는 놈인지.”
굳이 안 해도 될 소리를.
나는 프란을 원망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턱수염을 만지며 생각에 잠겼던 족장이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궁금한 게 하나 있다. 정말 얼굴 없는 용을 얌전히 둥지에서 쫓아낼 수 있단 말이냐? 하다못해 곰도 동면 중에 강제로 깨우면 발광한다. 만약 그대로 놈이 우리 부족의 터전을 쑥대밭으로 만들기라도 하면 네가 책임질 테냐?”
나는 솔직히 말했다.
“열에 아홉. 그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수에 관한 각종 논문, 얼굴 없는 용에 관한 과거의 기록을 [도서관]에서 닥치는 대로 구매해 공부했었다.
그 결과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열에 한 번은 부족의 터전이 쑥대밭이 된다라······ 네 녀석이면 할 수 있겠냐?”
맞는 말이다.
십 분의 일 확률. 실제로 닥치면 100%다. 분명 반대하는 인원들도 많을 거다.
“어떻게 무사히 광산을 개발했다고 치자. 그걸 네놈들이 홀랑 집어삼키지 않는다고 어찌 장담할 테냐? 함께 개발한 광산에 군대를 몰고 온 인간 놈들 때문에 터전을 잃은 드워프 부족이 한둘인 줄 아느냐?”
“그런 일은 아덴 연합이 생겨나면서 더는 일어나지 않은 걸로······.”
“죽은 놈들은 말을 못 하는 법이지.”
예전에 내가 오스틴에게 했던 말을 족장에게서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구구절절 맞는 말.
하지만 내게도 설득할 방법은 있다.
“족장님. 얼굴 없는 용이 언제부터 동면하고 있었는지 아십니까?”
“응? 그, 글쎄······.”
“과거 얼굴 없는 용은 드워프들에게 있어 최악의 마수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광물을 섭취하며 땅속을 기어 다니는 놈이 드워프들과 사이가 좋았을 리가 없다.
“그렇지······.”
“그런 놈들이 사라진 게 언제부터죠?”
“500년 정도 된 걸로 알고 있다. 모종의 이유로 멸종했다고······.”
“그럼 검은 모루 부족이 발견한 얼굴 없는 용도 그 정도는 동면 중이었겠군요.”
“그렇겠지?”
“500년 안팎입니다.”
“!!”
내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이해한 그가 눈을 부릅떴다.
“얼굴 없는 용의 동면 주기는 약 500년. 검은 모루 부족이 발견한 놈은 지금 당장 깨어나도 전혀 이상하지가······.”
쿠궁! 쿠구구궁! 쿠궁─!
와장창! 쨍그랑!
지진이 난 것 같았다. 족장의 집 선반에 있던 그릇, 도자기 등이 깨져나갔다.
‘X됐네.’
그래도 지금 깨어나는 건 아니지······.
“길루드! 빨리 마을 인원들 대피시켜!”
프란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