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48)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48화(48/203)
048
바리사다와의 대화를 시도하기 전에도 머릿속은 내가 겪었던 ‘시련’에 대해서 꽉 차 있었다.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역시 진짜 꿈이었을 가능성.
현실의 시간으로 1초도 안 되었던 그 찰나의 시간 동안 내가 30년 정도 되는 현실 같은 꿈을 꾸었고, [바리사다]에 담긴 건국왕의 의지? 잔념? 하여간 그런 것이 그 꿈을 관찰한 뒤 내가 [바리사다]를 쥘 자격이 있는지 판단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아니야, 설명할 수 없는 게 너무 많아.’
꿈에서 익힌 비전들이 현실에서 스킬창에 등록되었고 실제로 발현된다는 것부터가 그랬다.
어떤 사서에도 건국왕 이후 [바리사다]를 사용한 3인이 시련을 통과한 뒤 익히지 않고 있던 검술, 마법 등을 사용한 기록이 없다.
그래, 솔직히 그건 선조들이 숨겼을 수도 있다고 치자. 나 역시 지금 당장 ‘에반식 리오넬 제왕검술’ 같은 걸 자랑하고 다닐 만큼 생각이 없진 않다.
리오넬 국왕으로 살았던 삶에서의 경지를 어느 정도 회복하기 전까지는 불필요한 관심을 끌어서 좋을 게 하나 없으니까.
내가 겪은 시련이 단지 꿈 따위가 아니라는 결정적인 모순은 따로 있었다.
바로.
┕ 타이탄에 관해 알려줘.
「보유하신 RP로는 해당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알지 못했던 미래의 지식이었다.
전생의 총, 전차, 전투기처럼 전쟁의 패러다임을 뒤바꿀 신병기.
강철의 거인, 타이탄.
내가 보유한 RP가 7만 가까이 된다. 전생의 현금 가치로 7억에 달하는 거금이다. 그런데도 어떠한 정보도 [도서관]을 통해 입수할 수 없었다.
‘기록’이 없는 정보가 아니다. 분명 존재하는데 RP가 부족해 구할 수 없는 특급 정보인 셈이다.
나는 [바리사다]를 뽑기 전까지 그 어디에서도 ‘타이탄’이란 단어를 접해본 적이 없다.
혹시 예지몽일까도 생각해봤었다.
그것 역시 아니다.
리오넬 국왕으로서의 나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로그인 창에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적어넣지 못했다.
시련 속에서의 나는 지구에서의 전생을 자각한 지금과는 전혀 별개의 삶이었다.
「말해봐. 네가 어떤 꿈을 꾸었는지.」
“너무 길어서 이야기하려면 며칠 밤을 새워야 합니다. 아주 간단히 말하면 리오넬 왕국의 마지막 왕으로 30년 정도 살았군요.”
「······ 30년이 넘는 삶?」
“네.”
「그, 그럴 수가!」
당혹스러워하는 바리사다.
“제 선조들은 다른 ‘꿈’을 꾸었습니까?”
「길어야 10일 정도인 시련의 길인데, 30년?」
“자세히 이야기해 주실 수 있습니까?”
「좋아, 들어 봐. 너 이전에 검을 뽑았던 머저리 같은 경우에는······.」
그녀가 한 선조가 겪은 시련의 길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다소 들뜬 기색이 느껴졌다.
「······ 그놈이 꼬마를 자기 아이라고 우기는 두 여자한테 어떤 판결을 했는지 알아? 꼬마를 포함해서 셋 다 죽여버렸어. 더러운 평민들이 자기 머리를 아프게 한 죄라나? 웃기지 않아?」
혼자 말하고 혼자 웃기도 했다.
거의 500년 만에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 탓인가?
「전장에서는 또 어땠는지 알아? 조금 밀리는 것 같으니 바로 근위기사단을 이끌고 왕성으로 돌아갔어. 짐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던가?」
슬슬 머저리 선조가 겪은 시련에 대해서는 그만 들어도 될 것 같았다.
“그러니까 선조들은 ‘시련의 길’을 걸으며 마주치는 상황들에서 어떤 대처를 했느냐에 따라 깨어날지, 못 깨어날지가 정해진다는 거군요?”
「그래, 꿈속의 시간으로 길어야 10일, 보통 5일 정도면 끝나. 그 과정이 그 녀석 마음에 들면 깨어나게 되지.」
“그 녀석이라면 역시 건국왕을 말하시는 겁니까?”
「그래. 그 자식.」
사서에는 건국왕이 바리사다를 토벌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녀는 건국왕에 대한 적대감이 생각보다 없어 보였다.
오히려 그를 언급할 때 특정 단어로 설명하기 힘든 복잡 미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뭔가 숨겨진 뒷이야기가 있는 것 같지만, 지금 당장 물어볼 만한 이야기는 아니라 생각되었다. 대답해줄지도 의문이고, 훗날을 기약하기로 했다.
“그런데, 시련의 통과 여부를 건국왕이 결정하는 거면 검에 그의 자아도 남아있는 겁니까?”
「엄밀히 말하면 그 녀석이 결정하는 게 아니야. 그 자식이 설계한 시련 그 자체가 통과의 여부를 결정하는 거지.」
궁금한 게 하나 생겼다.
“혹시 시련을 통과 못 해서 마나가 폭주한 선조들은······.”
「맞아. 내가 강제로 깨우는 과정에서 그렇게 된 거야. 나와 같은 공간에서 언제까지 처자게 내버려 둘 수는 없잖아? 최대한 조심히 깨워준 건데도 재수 없게 죽은 놈들이 몇 있어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전혀 미안하지 않은 말투였다.
‘흠······.’
바리사다와 대화하면서 하나 확신한 게 있었다. 내게 일어난 ‘시련’을 그녀에게 설명해도 답을 구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것.
「네가 꾼 꿈, 좀 더 자세히 말해 봐.」
“······.”
조금 망설여졌다.
바리사다의 근본은 반마족. 반이라지만 마족의 피가 섞인 그녀. 내가 꿈속에서 겪었던 일을 털어놔도 될까?
“그오, 그오.”
까드득, 까드득.
개가 뼈다귀를 먹듯 얼굴 없는 용이 철광석을 씹는 소리만 들리는 공터. 달빛이 비치는 [바리사다]를 바라봤다.
오만 걱정을 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속에 봉인되어 5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홀로 떠들었을 바리사다가 무슨 대재앙이라도 불러오겠는가.
오랜 세월을 살아왔으니 아는 것도 많을 테고, 앞으로 그녀에게 많은 마나를 빌리려면 친해져야 한다는 생각도 한소끔 정도 영향을 주었다.
“조금 긴 이야기가 될 겁니다.”
「그래, 그래. 빨리 말해 봐.」
“어디서부터 말해야 하나······ 그래, 첫 시작은······.”
막상 입을 여니 줄줄 흘러나왔다.
말하면서 깨달았다.
아! 이발사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사실을 외칠 수 있던 대나무숲처럼, 내게도 남들에게 쉬이 말하지 못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 필요했구나.
지구의 전생까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시련에서 리오넬 왕국 최후의 왕으로 사는 동안 있었던 중요한 순간들을 바리사다에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 삶이 단지 꿈이었을 때 발생하는 모순들도.
“······ 뭐, 그것들이 제가 그게 단순한 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
생각에 잠긴 듯 침묵한 바리사다.
나는 모닥불을 뒤적이며 그녀의 사념이 다시 들리기를 한참 기다렸다.
「······ 시련의 길은 시험자가 경험한 삶을 바탕으로 구성이 돼. 뜬금없이 동대륙 오지의 부족민이나 옆 섬나라의 어부가 된 상황은 주어지지 않는다는 말이지.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만······.」
바리사다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짐작이 갔다.
“제가 리오넬 왕국의 왕으로 살았던 삶이 제 경험을 바탕으로 구성되었다는 말입니까?”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말도 안 되는 것밖에 안 떠올라! 어떻게,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 거지?」
시련에서 겪은 삶이 꿈이 아닐 것이라는 판단 후.
내가 생각했던 가설이 두 개가 있다.
하나, 평행세계의 미래를 경험했다.
둘, 그건 내가 겪었던 진짜 삶이다.
바리사다와의 대화에서 답을 찾은 기분이었다.
‘후자야.’
지구에서의 전생을 자각하지 못하고 리오넬 왕국의 마지막 국왕으로 최후를 맞이했던 내가 과거로 돌아온 거였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만, 너,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오기라도 한 거야? 그런 거야?」
아카드에게 대가리 깨졌다 깨어나던 그 순간으로.
즉, 회귀.
그것도 지구의 전생을 자각하면서. 다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삶의 기억을 송두리째 잊은 채.
망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많은 것이 설명 가능했다.
내가 [스킬]에서 [무극 마나연공법]을 발견했을 때 작위적이라 느낄 정도로 친근감을 느꼈던 이유.
‘관계’가 좋지 않을 땐 상대가 감추고 싶은 비밀은 ?로 보이는 게 정상인데 알폰소의 성이 아인베르크라는 걸 바로 알았던 이유.
레이나가 왕국의 보검이 될 거라 확신했던 이유. 음······ 이거는 그냥 내 안목 같기도 하고.
하여튼.
「왜 그렇게 담담해? 말 좀 해볼래?」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름대로 답을 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자 갑자기 육체적, 정신적 피로가 몰려왔다.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잠은 안 주무십니까?”
조금 쉬고 싶었다.
***
다음 날.
나는 공터에 풋살장 정도 크기의 선을 그어놓고 얼굴 없는 용을 바라봤다.
“이 선 밖으로 나가면 어떻게 된다고?”
“그오옥! 오옥!! 오옥······.”
녀석이 칼에 베인 듯 몸뚱이를 모로 꺾더니 바닥에 자빠져 간헐적으로 떨어댔다. 훌륭한 죽은 척이었다.
역시 지용을 겸비한 개체.
[도서관]에서 파악한 바에 따르면 지능이 상당히 떨어진다고 했었는데, 저 정도면 3기사단에서 기르는 강아지보다 똑똑한 것 같았다.이름도 지어줄까?
얼굴 없는 용 중에 지능이 뛰어난 편이니······.
‘지드래곤?’
문득 떠오른 이름에 피식 웃었다.
완전히 길들이면 그때 확실히 정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자알~ 놀고 있네.”
프란이 족장과 함께 나타났다. 그녀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얼굴 없는 용과 나를 바라봤다.
결과가 좋았기에 대놓고 뭐라고 하진 않아도, 내가 [바리사다]를 뽑은 일로 화가 좀 난 상태였다.
“저걸 정말 길들일 수 있을 거 같아?”
“솔직히 시도도 안 해보긴 아깝지 않습니까?”
“그래, 맞는 말이긴 한데······ 위험한 것도 사실이지.”
“그옥, 그오오옥!”
얼굴 없는 용이 자기는 전혀 위험하지 않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라네요.”
“네가 말했던 것보다 지능이 더 뛰어난 것 같은데?”
“사람이라고 다 같은 머리를 가진 건 아니지 않습니까, 저 녀석들도 마찬가지겠죠.”
“쯧.”
프란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열심히 해 봐. 대신 사고가 났을 때 나를 찾으면 죽을 줄 알아.”
“물론이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진짜 사고가 터지면 그녀부터 찾을 생각이다.
프란과의 대화가 끝나자 족장이 입을 열었다.
“어제, 부족의 장로들과 밤새도록 회의를 했다.”
알고 있다.
나는 그 결과가 어떨지 설레는 마음으로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네 덕분에 7명의 아이가 목숨을 건졌다. 거기에 잃어버릴 뻔했던 삶의 터전을 지켰고. 우리 검은 모루 부족은 신의를 아는 드워프들이다. 반대하는 장로가 없던 건 아니지만······.”
그의 시선이 잠깐 얼굴 없는 용에게로 향했다. 녀석을 확실히 처리하지 않은 것에 불만을 가진 이가 있었던 모양.
“결론적으로 너와 광산 개발을 함께 진행해보기로 했다.”
나는 빙긋 웃었다.
“감사합니다.”
“끝가지 잘 들어라. ‘리오넬 왕국’이 아닌 ‘너’와 함께 하기로 한 거다.
“더 감사하군요.”
혹시라도 1왕자 진영에서 광산의 지분까지 넘볼 상황을 검은 모루 부족에서 차단해줬다.
얼씨구나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 일이라곤 [바리사다]의 모조품 하나 구해서 바꿔치기했을 뿐인데, 광산 지분을 탐한다? 염치없는 짓이지만, 놀랍게도 그것보다 훨씬 더한 일도 일어나는 게 정치판이다.
“거기다 저놈이 조금이라도 사고 치는 순간, 당장 없던 일이 될 거다.”
음, 이건 좀 걱정되는데.
“그옥! 그옥!”
분위기가 이상함을 느낀 얼굴 없는 용이 몸을 공처럼 말고 재롱을 떨었다.
뭐, 괜찮겠지.
“그래서 지분은······.”
“복잡한 이야기는 지금 당장 안 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제가 광산 개발에 더 큰 도움을 드릴지도 모르고요.”
나는 자기가 하나도 위험하지 않다고 어필하려는 듯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얼굴 없는 용을 바라보며 말했다.
“으음, 정말 저 녀석을 길들일 수 있겠나?”
“두고 보십시오.”
나는 자신감에 차서 말했다.
하루 만에 ‘죽은 척’을 가르쳤다. 일주일 뒤, 아마 내 스킬창에는 [마수 조련]이 생겨나 있을 터였다.